비밀의 들판 - 침묵은 어떻게 역사를 드러내는가
마거릿 주혜 리 지음, 장상미 옮김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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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들판 #마거릿주혜리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비밀의 들판. 마거릿 주혜 리 지음/장상미 옮김. 한겨레출판. 2026.
_침묵은 어떻게 역사를 드러내는가

저자의 가족사는 곧 역사였고, 그 역사를 알아나가는 시간은 곧 자신을 찾는 과정이었다. 내가 누구인가 어디에서 어떻게 완성되어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는지. 그 과거를 알기 위한 노력은 힘겹고 어렵울 수밖에 없었지만, 그만큼의 가치와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의미는 고스란히 저자의 아이들과 가족 모두에게로 이어지게 될 것이고.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까지 가치있는 길을 함께 따라가보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너희가 정체성을 탐구해 나가는 과정은 나와 너희 아버지와는 다를 거야. 언젠가 배우자나 부모나 반려인이 되겠지. 나는 너희가 알았으면 해. 너희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 될지는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 연결고리는 너희 증조할아버지의 이상주의와 증조할머니의 투지와 생존 의미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과 애정에서, 어머니의 탐구와 아버지의 헌신에서 비롯했다는 것을.
너희에게 우리가 있다는 것을.(386-387쪽)

'나'라는 존재가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닌 이상, 우리에겐 우리가 온 분명한 지점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 중 얼마나, 그 지점을 알고 찾고 확인하고 싶어할까. 어쩌면 일반적으로 우린, 우리의 뿌리와 그 과거가 낯설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고, 그래서 더 알아야한다는 생각 없이 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미, 이민자로서 환경의 변화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정체성이 혼란을 일정부분은 경험했기 때문에 더욱, 궁금하고 알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갖게 된 것이 아닐지. 그러면서 자연스레,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그 다음 세대와 또 그 다음의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알아나가는가가 결국은 그 다음의 삶을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답이 된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지 않을까.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방법은 자기 자신의 지금이 어떤 과거와 역사에서 비롯되었는가를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참 굴곡 많은 시간과 사건의 연속이었다. 물론 이 굴곡진 역사는 현재에도 진행중이기는 하다. 그리고 이 역사를 감당하는 것은 오롯이 그 역사 속을 살아냈어야 했던 우리였고, 그런 우리의 과거를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은 책임이지 않을까. 그 책임을 다하는 과정이 순탄할 수는 없다. 쉽지 않기도 하고. 그럼에도, 저자가 쫓으려했던 이야기는 그만큼의 이유가 있었고 찾아야만 했던 가치가 충분했다. 단순히 한 가족의 개인적인 과거의 기록으로 그치지 않고 더 커다란 감동을 우리에게 줄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의 과거는 비단 개인의 것으로만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 책의 기록이 소중한 이유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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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니주의보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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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니주의보 #정지아 #창비 #가제본서평단 #서평

찌니주의보. 정지아 장편소설. 창비. 2026.

정지아가 정지아했다! 책을 읽으며 이 생각을 제일 많이 했다. 맛깔스런 문장과 표현, 살아있는 듯한 인물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의 의미와 주제, 우리가 어떤 삶의 공존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하지만 절대 심각하거나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았으며,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하는 마음으로 아무렇지 않게 다루고 있다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특히, 대놓고 이야기하는 지점에서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레즈비언!
쑤언이 야물딱지게 큰소리로 외쳤다. 백주대낮에, 그것도 가을볕이 거침없이 쏟아져 눈이 부실 지경인 장씨댁 시멘트 마당에 레즈비언이라는 말이 동네 떠나가라 울려 퍼졌는데, 이상도 하지, 그 순간 레즈비언이라는 말에 내포된 은밀함, 비밀스러움 같은 것들이 햇빛 맑고 바람 좋은 오늘 같은 날 빨랫줄에 걸린 빨랫감처럼 순식간에 꼬들꼬들 말라 바삭바삭 부서지고 마는 것이었다. 레즈비언이라는 말이 이제는 촌구석 노파나 영감을 입에 다방 레지라는 말과 다른 바 없이 마구 오르내려도 괜찮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96쪽)

이 소설은, '레즈비언!'이라고 외친 쑤언의 이 한 마디가 다했다는 느낌이다. 다른 게 뭐가 있을까. 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닐까, 밥 먹으러 오라는 말처럼, 김장 김치 가져다주는 마음처럼, 그저 옆에 있는 그 누군가에게 툭 일상의 아무것도 아닌 말과 마음을 던질 수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잘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 그 정도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기희의 삐순이 삐돌이도 그런 게 아닐까. 모든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와 기준이 있다. 그리고 그 관점으로 다른 이와 사물, 현상과 상황을 판단하고 움직인다. 하지만 그 기준이라는 것이 순전히 자신의 것이니, 모든 사람이 자신의 기준으로만 움직인다면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

느그가 난 년들이다, 난 년들이여. 한 년이 아프먼 딴 년이 밥이라도 채릴 것 아니냐.
한씨댁은 그새 식은 커피를 후루룩 들이켰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찌니들은 난감하기만 했다.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을 이해받은 것인가, 아닌가. 받았다고도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오묘한 말이었다.(...) 염치도 없이 이른 아침 남의 집에 쳐들어온 한씨댁은 후루룩, 요란한 소리를 내며 믹스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226-227쪽)

그 시작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참 잘 보여준다. 거침없고 솔직한 이 마을 사람들처럼만 하면 될 것 같은 것이다. 대놓고 하는, 자칫 무례해 보이는 말들에 알게모르게 관심도 호응도 인정도, 그리고 격려와 응원도 모두 내포되어 있다.

이 소설 각 부분의 소제목은 모두 '누구나'로 시작한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 누구나 조금씩은 나쁘다, 누구나 이상한 구석이 있다, 누구나 자기 기준으로 산다, 누구나 이유가 있다, 누구나 모르고 산다.' 그래서 이 모든 이야기의 대상은 '누구나'가 되는 것이다. 이 말이 괜히 위안이 된다. 꼭 누군가를 콕 집어 말하지 않아도 되는, 너도 나도 우리 모두도 또 그 외에 누구라도, 하는 식으로 아무나여도 된다는 말로 들리는 것이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허락의 말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게 생각보다 무척 안심이 되는 것이다. 다 괜찮아질 수 있게 만드는 마력과도 같은! 이 소설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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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 - 171회 아쿠타가와상 후보작
사카사키 가오루 지음, 원선미 옮김 / 달로와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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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 #사카사키가오루 #달로와 #서평 #책추천

해안가. 사카사키 가오루 지음/원선미 옮김. 달로와. 2026.

진짜와 가짜. 이 둘 사이에는 어떤 차이와 경계가 있는 것일까. 이 책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이 진짜에 대한 것일까, 가짜에 대한 것일까. 가짜라고 다 허상에 쓸데없고 무가치한 것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우린 어떤 진짜를 향한 삶을 살고 있으며, 어떤 가짜를 등한시하고 있는 것일까. 가짜라고 하면 무조건 말도 안 되는 것이기만 한 것일까. 우리가 살면서 마주치게 되는 수많은 상황 속, 가짜인 것이 얼마나 많을까. 우린 그 가짜들 중 진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없을까. 가짜이지만 가치있고 의미있는 가짜, 진짜라고 여기고 싶은 가짜, 가짜인 줄도 모르고 믿고 있는 가짜는 없을까.
책을 다 읽고도 생각을 정리하는 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아, 다 읽었다, 하고 개운하게 책을 덮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궁금증이 늘어났고 생각에 또 생각을 거듭하게 됐다. 단순하지 않다는 뜻이다. 내용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생각하라고 뜻이다. 생각하면서 살라고.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진짜라 여기고, 그렇지 않은 것을 모두 가짜라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고.) 그리고 가짜를 거짓과 동의어로 보고, 사람들에게 속임수를 써서 눈을 가리게 하고 그 상황을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가짜는 나쁜 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가지고 가짜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신경조차 쓰지 않고, 의미조차 부여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모두, 자신의 관점으로만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내 식대로, 내 마음대로.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화두와 문제를 생각해보게 된다. 돌봄, 여성, 이주민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하고도 무거운 주제들이다. 그리고 이들 주제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동반되어 있다. 그리고 가짜라는 프레임을 씌워 그 의미를 제대로 다루지 않고 중심에서 소외시킨다. 끊임없이 주변으로, 바깥으로 밀어내며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려고만 한다. 사토 씨가 내내 버스를 기다리는 가짜 버스정류장, 구즈미 씨를 받아들여준 '커뮤니티' 등 분명 존재하고 있으나 그 존재의 의미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인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안다. 나는 계속해서 소리친다. 나는 옳지 않아, 당신도 옳지 않아. 이 세상에 옳은 사람 같은 건 없어. 아마, 절대로.
"당신들이 보고 있는 마리아는, 가짜야."(...)
음폴라 음폴라. 나는 계속 춤을 춘다. 땀이 난다. 겨드랑이에서, 손바닥에서, 냄새와 함께.(146-147쪽)
사토 씨가 퇴소하는 날, 나는 버스정류장에 있었다. 진짜인 쪽의.(148쪽)

마리아처럼 춤을 추고, 사토 씨와 진짜 버스를 타는 구즈미 씨가 진짜일까?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구즈미 씨는 가짜? 가짜였기 때문에 의미도 가치도 없는 걸까? 아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구즈미 씨는 이미 알고 있었다. '가짜에는 가짜의 의미가 있고, 긍지가 있다.'(13쪽)는 것을. 가짜라고 구분하고 경계를 나누려는 것 자체가 착각인 것이고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라는 것을. 가짜가 존재하는 그 의미와 긍지가 분명 이 사회에 필요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 가짜를 향한 마음과 행동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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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마음에 이름 붙이기 - 현대인을 위한 정신분석사전
노은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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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마음에이름붙이기 #노은정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모호한 마음에 이름 붙이기. 노은정 지음. 한겨레출판. 2026.
_현대인을 위한 정신분석사전

이 책을 읽으며 아, 이런 걸 지칭하는 용어가 있었네, 싶은 마음이 컸다. 이런 것도 정신분석에서 설명하고 있는 용어와 개념이 있다니, 재밌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놀랍고 또 뜨끔해지기도 했다. 아무래도 이 책은 자꾸 읽으면 읽을수로, 내가 이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찾게 된다. 나의 지금의 상태와 마음, 정신이 어느 지점에 가 있는지, 나는 이 중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지를 가능하고, 체크리스트의 몇 개가 나에게 해당하는지를 확인하느라 멈칫하게 됐다. 심지어 지인에게도 해당할 것 같은 부분의 체크리스트를 보여주고 확인해보고 했다. 그 지인의 반응은, 책을 조용히 나에게 다시 전해주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항목에 다 해당한다는 뜻. 스스로의 상태를 직면할 마음의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나보다. 이 책을 다시 꼼꼼하게 읽어보라고 추천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EP(Effortless Perfection)문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되, 그 과정에서 힘들어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을 지칭하는 심리적 사회문화적 분위기.

애쓰지 않는 듯 보이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수정씨의 마음은 EP(Effortless Perfection)라는 개념으로 풀어볼 수 있다. 직역하자면 '노력 없는 완벽함'이라는 뜻이다. 애쓰거나 노력한 티를 내지 않고 자연스러운 완벽함을 추구하는 태도이자 사회적 분위기다.(17쪽)

처음부터 너무 내 얘기여서 깜짝 놀랐다. 요즘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다. 정말 괜찮냐고. 주변에서 걱정이 많다. 그렇게 바쁘게 살고 또 할일이 많으면 안 힘드냐고. 어떻게 힘들다는 소리 한번이 없냐고. 그 말에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괜찮아요, 할만해요, 생각하는 것처럼 그정도는 아니네요, 정말 괜찮은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집에 와서는 한숨이 깊다. 숨을 깊게 쉬어야 지금의 상황을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은 새벽까지 무엇을 더 해야 하고, 내일까지는 어떤 일을 마무리해줘야 하고, 또 그 다음날 어떤 출장과 일이 있으며, 여러가지 산발적인 일들을 모두 다 해내려면 철저하게 시간과 계획과 또 나의 체력과 에너지를 잘 정리해놓아야만 한다는, 긴장을 늘 안고 있어야 한다. 그걸 알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 행동한다. 딱, 나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상호주관성 Intersubjectivity
사회심리학 교육학 정신분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는 철학의 주요 개념이다. 의사소통 사회적 상호작용 문화적 이해의 기반이 되며, 사람들이 각자의 현실을 연결해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보여준다.

일방적인 관계 역학에서 벗어나 '지금 우리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보면, 지금 내가 경험하는 현실이 한쪽의 역할이나 책임으로만 발생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우리의 삶은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는 만큼 끊임없이 반응한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우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당신이 나를 반응하게 하고, 나는 당신에게 반응한다.(81쪽)

가끔 이중인격자 혹은 다중인격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 사람한테는 이렇게, 저 사람한테는 저렇게, 감정에 휘둘려 나의 태도와 반응이 달라지고 말이 다르게 나가는 것을 나 스스로 느끼게 된다. 내가 부족하고 또 감정적이어서 그런가 싶을 때도 있고, 아직 덜 성장하여 부족한 인성을 탓하고 될 때도 있다. 이게 상호주관성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 배웠다. 늘 나의 생각과 태도와 인성의 탓으로 돌리며 반성을 주로 했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된다는 자책도 많이 했다. 하지만 결국 나 혼자의 탓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싶은 생각이 들면서, 지금까지 갖고 있는 마음이 조금 위안받는 느낌이 들었다.

역의존 Counter-Dependency
역의존은 타인에게 신체적 정서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두려움을 느끼고, 독립성과 거리두기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심리적 방어양상이다. 겉보기에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도움을 요청하거나 감정적으로 의존하는 상황 자체를 위협으로 인식한다.

남에게 도움받는 일 자체가 익숙하지 않고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거나 괜히 번거롭기만 할 뿐 내가 필요로 하는 도움과 맞닿아 있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 나 말고는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195-196쪽)

부탁도 거절도 어려워한다. 일은 내가 해야지 누군가에게 하라고 시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걱정도 많고 불안도 많다. 그래서 더 일을 쌓아 하는 스타일이다. 누가 나한테 무언가를 해주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한다.

뭔가 이쯤 되니, 내가 많이 불완전하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된다. 심각하게 받아들이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 것 같아서 얼른 마음을 다잡는다. 그냥, 그런 성향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으로, 이런 마음이 꼭 나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위안으로 삼으려고 한다. 이책, 자꾸 들여다보면 볼수록 다 내 얘기같아서 더 빠져들려고 한다. 적당한 선에서 내 마음을 잘 간수해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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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첫 만남 : 속마음 세트 - 전3권 소설의 첫 만남
은소홀 외 지음, 이비(2B) 외 그림 / 창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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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첫만남_속마음세트 #축제는언제나물음표_은소홀 #여름을돌려줘_이주혜 #날갯짓연습_윤슬빛 #창비 #선생님북클럽 #서평

[소설의 첫 만남: 속마음 세트]
37. 축제는 언제나 물음표. 은소홀 소설/이비 그림. 창비. 2026.
38. 여름을 돌려줘. 이주혜 소설/김지인 그림. 창비. 2026.
39. 날갯짓 연습. 윤슬빛 소설/한요 그림. 창비. 2026.

분명, 나도 이 시절을 지나왔는데 왜 이런 마음들이 자라고 있었다는 것을 잊었을까. 청소년 시절을 지나지 않고 어른이 되는 사람은 없는데도, 어른이 되고 나면 청소년 시절의 마음이 어땠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청소년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하고 지나치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다행인 것은, 이런 책을 통해 그 마음이 어떠한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내가 만나는 아이들의 속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명, 어른들이 잘못할 때가 있다. 다성의 엄마처럼. 어른의 관점으로만 쉽게 말하다보니 아이들은 상처를 받는다. 어른의 입장으로만 아이들을 대하니 아이들은 내내 그런 어른으로부터 실망하게 되는 것이다. 실망이 맞다. 어른이 잘못이라고 따지고 드는 것이 아니라, 믿었던 이에 대해 갖게 되는 실망의 감정을 아이들은 어른으로부터 배우게 되는 것이다. 안 배워도 되는 걸 굳이. 물론, 이 과정 역시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필요한 감정이기는 하다. 알아야하고 또 겪으면서 극복할 수 있는 방법과 단단해지는 마음도 만들어낼 필요가 있기는 하다. 너무 크게 다치지 않는 선에서. 그래도 다성에게 다비가 있어서 이 과정을 크게 다치지 않고 잘 넘길 수 있었다.
어른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해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어른이어서 어른의 마음을 생각해보면, 아마도 여름의 엄마는 여름과 더 오래오래 행복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지만 그것을 쉽게 여름에게 터놓고 이야기하지는 못하는 것이, 여름의 엄마는 여름의 유일한 기댈 구석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여름에게 강하고 든든하고 책임감 강한 엄마로서 남고 싶은 이유이지 않을까. 그런 마음을 구구절절 여름에게 이야기할 수 없어, 여름의 오해를 사게 되는 것일 수 있다. 그래도 여름이 그런 엄마의 속마음을 눈치채고 알게 되면서 서로에 대한 감정의 벽이 옅어지고, 여름이 엄마에게 갖게 되는 이해의 정도가 더 커지면서, 그렇게 여름이 또 한층 커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날씨 여름도, 늠름여름도 되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말, 되찾을 수 있겠지?

아이들의 많은 생각들이 모두 겉으로 보여지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모두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고민하고 또 생각하고 가등하며, 그 안에서 자기 스스로의 답을 찾아 나가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 나간다. 겉으로 표시내는 아이도 있지만, 속으로 감추고 티내지 않으려는 아이도 있다. 이서와 한솔이 그런 아이들이다. 물론 단편적으로 보면 이서는 자신의 진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쪽, 한솔은 자신의 진로에 대해 명확하게 하지 못하는 쪽이지만, 그렇다고 이 둘이 자기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고민의 깊이나 생각이 다르지는 않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으로 아이들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위한 노력을 해 나가는가가 중요하기보단, 그 과정을 어떻게 지나고 또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가가 더 중요할 것이다. 이때 서로를 응원해줄 수 있는 친구가 곁에 있다면 더 좋을 것이고.

다비와 다성, 여름, 그리고 이서와 한솔. 이 아이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 아이들이 갖고 있는 속마음을 존중하고 그 마음을 스스로 잘 가꿔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읽었다. 아마 이 이야기를 우리 아이들과 나누게 된다면 또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야기 속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에게 전해줄지, 벌써부터 무척 궁금하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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