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AI 시대를 산다면 - 2500년을 초월하는 논어 속 빛나는 가르침
김준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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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오래 가는 문장들이 또 있을까. 언젠가 논어 필사를 하던 때가 있었다. 짧은 문장이지만 그 문장 안에 담긴 깊은 뜻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던 기억이 있다. 여전히 높이는 그런 울림을 남겨주고 있다. 어쩌면 지금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럴 수도 있다. 지금의 시대가 참, 다채롭고 화려하면서도 가장 근본적인 것을 점점 잃어가는 시대인 것 같다. 사람이라면 무엇을 잃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 없이, 시간에 쫓기고 상황에 따라가다보니 정작 갖추고 간직해야 하는 것들 죄다 잃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그런 삶이 당연한 것인 듯, 발빠르게 지금의 시대에 발맞추는 것이 정답인 것처럼 사회는 사람들을 몰아가는 듯하다. 그러니, 이럴 때 다시 근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건 그만큼의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지금이 어느 때보다도 딱, 논어를 읽어야 할 때인 것이다.
언젠가부터 인공지능, AI 없이는 가벼운 대화조차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무엇이든 쉽게 문제를 해결하고 답을 알려주고, 인간의 수고를 한층 덜어주는, 그래서 무척 고마운 존재가 된 듯한 느낌이다. 그러다보니 AI를 잘 활용하는 것이 지금의 시대를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뭐든 척척 해주니 그만큼의 노력이나 시간을 들이지 않게 되기도 하고. 하지만, 이런 AI의 활용이 점점 잦아지면서 점점 생각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줄어들게 된다. 몇 가지의 키워드만으로도 충분히 내가 원하는 것 그 이상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데, 굳이, 애써가면서 시간을 들여가면서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전전긍긍해야할 이유가 없어지는 듯도 한 것이다.(심지어, 이런 서평을 경우에도 과연, AI가 아닌 인간이 직접 쓰는 시대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일지,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 올바른, 관계, 배움, 삶.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키워드 5가지다. 이 키워드들만 보더라도 지금의 AI 시대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어떻게 보면 고리타분한 이야기라고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 시대가 이전과 다르다고 해서 사람이 아닌 기계나 로봇으로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닐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결국 사람으로 시작해 삶으로 가는 과정에서의 필요한 덕목들이 아닐까.

공자가 '인'을 다양한 의미로 사용하기 합니다만, 공통으로 '사람다움'을 가리킵니다.(...) AI로 인해 사람이 소외되거나 피해를 보는 일은 없는가, 사람의 존엄성이 침해당하지는 않는가를 감시해야 합니다.(31쪽)

'인'에 대해 공자가 거듭 강조하고 있는 이유가 '사람'에 있을 것이다. 사람일 수 있는 필수 덕목이면서 동시에 사람으로서 대우받는 최소한의 가치일 것이다. 그럼에도 오히려 사람이 AI에 밀리거나 소외되고 또 버려지게 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다. 어떤 경우라도 사람의 존엄이 훼손되지 않을 수 있는 AI와의 협업이 필요할 것이다.

이 '신뢰'는 AI와의 관계에서도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미 많은 분야에서 이른바 'AI 에이전트'가 인간과 협업하는 팀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AI가 데이터에 기반해 결정할 때 그 과정이 낯설더라도 일단 믿어 봐야 합니다. AI가 인간보다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신뢰하는 '디지털 마인드셋'을 길러야 합니다.(157-8쪽)

결국 우리의 삶에서 AI를 빼고 생활한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AI와 함께 공존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해야할 것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신뢰. 신뢰받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세종대왕 맥북프로 던짐 사건' 같이 황당한 할루시네이션은 극복되었지만,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학습했을 경우 편향되거나 거짓 해석을 내놓을 위험은 여전합니다. 따라서 AI가 알려 준 정보가 할지라도 무작정 수용하지 말고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합니다.(259쪽)

어떻게 우리가 AI 시대를 살아가야 할까에 대해서는 우리 각자가 답을 내려야 할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만 쫓아갈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과거의 생각만을 고수해서도 안 된다. AI가 우리의 삶 중 많은 부분을 바꾸어놓고 있으며 바뀐 삶의 환경 안에서 우리가 어떤 것을 쥐고 놓을 것인가를 잘 고민하고 판단해야 한다. 어떤 것도 주어지는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결국, 이 시대는 어떤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태도로 사람의 삶을 만들어 나갈 것인가에 주안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오래도록 사람을 살피고 보듬어왔던 문장들을 만나는 것은 중요하다. 아차 하는 순간 놓치게 될 수 있는 생각들을 차근히 되짚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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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좋아질 거야, 행복이 쏟아질 만큼
길연우 지음 / 북로망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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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순탄하지 않을 때가 있다. 왜 나한테만, 이란 생각이 밀려오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 자책이 꼬리를 잇는다. 땅속에 굴을 파고 내려가야 할 정도로 자존감은 하락한다. '나'는 존재하지 않고 '남'만 존재하는 세상이 된 듯하고, 온 세상이 나를 향해 눈을 흘기거나 손가락질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된다. 어디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찾으려는 생각은 없어지고 그저, 나를 탓하는 일만 남는다. 어떻게 손을 쓰지 못한 채 좌절하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최선이 된다.
이럴 때 진짜 필요한 책이다. '나'를 향해 내가 손을 내밀어주어야 할 때, '나'를 더 이상 혼자 두지 말아야 할 때, '나'를 향해 내가 달려가 끌어안고 따뜻한 온기를 전해야 할 때 필요한 책. 이 책의 제목이 이제야 정확히 이해가 된다. 누군가 이렇게 말해주는 한 사람이 필요하다. '다 좋아질 거야'라고. 내가 하는 일에 자신이 없고 그저 안 되는 쪽으로만 일이 진행될 때, 누군가 딱 한 사람만이라도 이렇게 말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다 좋아질 거야'라고. 설사 좋아지지 않는다해도 그 말 한 마디가 어떻게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지는, 말이 갖고 있는 힘이 얼마나 큰 지는, 해 보면 안다. 그래서 이게 무척 중요한 것이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나를 믿어주는 것은, 오직 나 자신뿐이니까.(...) 그러므로 나는 나에게 흔들림 없는 확신을 보낸다. 누구의 검증도 필요치 않은, 굳건한 지지를 보낸다.(35쪽)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나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나를 만들어낼 수 있기 위한 건, 자신이 자신에게 건네는 응원이고 지지이고 확신이다. 내가 나를 믿고 나아갈 때 다른 이들도 나를 따르게 된다. 내가 나에 대한 자신이 없을 때 누구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나는 내가 지키는 것, 내가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낼 줄 알아야 내가 온전히 바로 설 수 있는 것이다.

매일이 햇살 같지 않아도 괜찮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너무도 다를지라도, 결국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나를 아우를 수 있는, 또 다른 내가 있음을, 이제는 안다.(135쪽)

매일이 좋을 수는 없다. 매일 앞으로만 나아갈 수는 없다. 잠시 주춤할 수도 혹은 뒷걸음을 칠 수도 있다. 또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인 것처럼 나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모습은 바로 나다. 내가 갖고 있는 다양한 모양과 색깔은 각각의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런 모든 모습 또한 나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필요할 것이다. 내가 나로부터 시작되어 더 크고 다양하고 반짝이는 나를 만날 수 있도록, 나를 알려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그런 일도 있는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토닥여 주며
조금 더 나아가 보려 한다.(284쪽)

그러니까. 그런 일도 있는 거지, 어떻게 매번 같은 빛깔만을 낼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 말이 백프로 공감한다. 오늘 하루, 그럴 수도 있는 거다. 그러니 그런 마음 추스리고 다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으면 된다. 그렇게 내디딘 한 걸음이 두 걸음이 되고, 다시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이 마련된다. 그런 동력으로 가다보면, 그런 일은 잊고 좋은 일을 맞이할 수 있게 될 테니까.

마음챙김(Mindfulness)이란 말이 있다. '현재 순간에 주의를 기울이고,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심리적인 과정'으로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걱정 대신, 지금 이 순간의 경험에 집중함으로써 정서적 안정과 명료한 인식을 얻을수 있도록 돕는다'고 한다. 요즘은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너무도 필요한 듯 보이는데, 이 책을 통해 마음챙김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가만히 천천히 읽어나가는 것만으로도, 기울어져가는 마음을 다시 세울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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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딸기 아파트에 봄이 왔어요
주미경 지음, 민승지 그림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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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산딸기 아파트 2층으로 이사가도 될까? 산딸기 아파트로 이사가서, 까망코와 친구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도 싶고, 호두 씨와 책 이야기를 나누며 '호두 선생이 보랏빛 문을 두드렸어요.' 다음 문장을 함께 의논해도 좋을 것 같다. 도야 씨가 만들어 주는 산딸기 피자를 얻어먹고 싶기도 하고, 이제 더 이상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되는 늑대 할아버지 아오 씨와 차 한 잔 함께 마셔도 좋을 것 같다. 언제까지고 산딸기 아파트는 봄기운이 가득할 것만 같은 느낌이니, 여기에 살면 늘 봄 기운 가득, 이웃들과 함께 따뜻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란디, 아파트를 칠해 달라고 연락한 게 누구요잉?"

그러게. 이건 좀 미스테리, 궁금한 지점이다. 누가 당깨 씨에게 편지를 써서 아파트에 페인트를 칠해 달라고 연락했을까? 다들 당깨 씨의 방문에 놀라고 예상하지 못한 일인 듯한 반응이었는데 말이다.
호두 씨일까? 다음 이야기를 쓰지 못하고 힘들어 하고 있어, 아파트를 새로 페인트칠하면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부탁한 것은 아닐까? 혹시라도 2층 도야 씨에게 차마 직접 말하지 못한 슬리퍼 이야기를, 당깨 씨를 통해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연락한 것은 아닐까? 사실은 '보랏빛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 것은 아닐까?
도야 씨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집 밖으로 나갈 일이 없었지만 이제라도 아파트가 예뻐지면 그 예쁜 아파트를 보기 위해서라도 나갈 마음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소풍 이후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 아이들을 생각하며 아파트를 칠하고 싶어진 것은 아닐까?
설마 늑대 할아버지 아오 씨? 사실은 이웃들에게 관심도 많고 어울리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선뜻 그러지 못하는 트라우마가 있다. 빨간 두건을 쓰고 귀를 보이지 않는 데에는 그만한 사정이 있을 거지만, 그 사정을 감추고 생활하고 있다. 그러니, 내심 이웃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에 당깨 씨한테 연락한 것은 아닐까?
어쩌면 까망코가 이 모든 일을 계획한 것일 수도 있겠다. 당깨 씨가 산딸기 아파트를 찾아왔을 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까망코였고, 페인트 칠하는 것과 관련한 의견을 제시한 것도 까망코다. 까망코는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이 컸고, 늑대 할아버지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갔다. 누구와도 서슴없이 친해지고 다가갈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모두 갖추어져 있던 아이가 까망코. 그러니, 까망코의 계획에 따라 각 이웃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며 자연스레 함께 보여 이야기 나누고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려던, 큰 그림이 아니었을까?

누구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이 산딸기 아파트에 이들이 함께 지내게 될 지가 더 중요하다. 이미 산딸기 아파트에 봄이 왔다. 봄이 왔으니, 산딸기가 무르익고 그 싱그러움이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는, 그런 행복하고 따뜻한 시간이 오래도록 이어질 것 같다. 각자가 갖고 있는 조금은 부족하고 또 아픈 구석이 있다. 때론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감추고 되려 더 큰소리로 몰아붙일 때도 있다. 다른 이들과 소통하지 않고 혼자 모든 아픔을 끌어안고 지내기만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만 갖고 있는 아픔이 아닐 것이고, 그런 아픔도 함께하는 따스함의 나눔으로 조금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산딸기 아파트는 함께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제, 이들이 서로의 봄이 되어 따스함이 계속될 수 있도록 지켜주기만 하면 된다. 서로에 대한 배려도 이미 가득하다. 이런 아파트라면 서로 먼저 입주하겠다고 경쟁하게 될 듯.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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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란히 계절을 쓰고 - 두 자연 생활자의 교환 편지
김미리.귀찮 지음 / 밝은세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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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같이 새벽부터 비가 내린 날이면, 수풀집과 그리고다의 텃밭은 어떤 모양을 만들어내고 있을지 궁금해지고 상상해보게 된다. 여러 작물의 생장도 궁금하지만 얼마나 잡초들이 무성해지고 또 강렬한 생명력으로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을지가 더 궁금해진다. 겉으로 보기만 할 때의 시골 단독 주택의 삶과 텃밭 가꾸기를 더 넘어서,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고충까지를 다 알고나니, 더 깊은 애정과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마치, 나도 두 자연 생활자의 삶에 초대받아 그 삶을 들여다보고 경험해본 듯한 착각까지 들 정도로 말이다. 괜히 흙을 찾아 나도 어딘가 발길을 옮겨야할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
우선은, 부러움을 잔뜩 안고 편지를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오랜 로망에 가까운 삶을 이 두 작가님들이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조용하고 야트막한, 땅과 가깝게 생활하며 계절의 변화와 하늘의 움직임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삶을 꿈꾸어 왔다. 나의 공간 안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넣어두고, 자연에 나의 삶을 맡기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 작은 텃밭에서 나고 자란 것을 취하며 사는 삶, 손에 흙을 쥐고 사는 삶의 로망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더욱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냥 뽑아야지. 노상 뽑아야지, 뽑아서 없애야지."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온다는 걸 말하는 듯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였어요. 자연에, 사는 일에 순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293쪽)

누구나 이런 순응하는 삶을 꿈꾸고 있지 않을까. 다만 힘들어서 혹은 여의치 않아서 내지는 어쩔 수 없이, 그렇지 못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일 뿐. 그리고 가끔씩, 이런 이야기를 통해 잠시라도 숨 내쉴 수 있는 구멍을 찾으면서 말이다.

편지가 주는 편안함이 있다. 그 편안함에 두 작가님의 생활 밀착형 이야기가 더해져 더욱 생생히 전달되었던 것이, 이 책에 더 빠져들도록 만들었다. 변기 화장실에 정화조 얘기까지, 아름답기만 할 것 같은 이야기의 환상을 바사삭 부숴주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그런 이야기가 오히려 그들의 삶에 대한 친근감을 한껏 더 부풀렸다. 다르게 표현하면 제대로 날 것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있는 그대로는 보여주는 것에 더 나아가 엉뚱한 경험의 이야기를 상대방을 웃길 수 있을까 배틀이라도 하듯, 서로 귀여운 경쟁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 두 작가님의 주고받는 편지를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그 편지를 통해 무엇을 공유하고 관계를 촘촘히 다져가고 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두 작가님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고 보살펴주고 있었다. 누군가의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 물론, 공간적으로 떨어져 생활하고 둘 사이의 접점도 없어 보이지만, 그 가운데 추구하는 삶의 철학과 생활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알게모르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었다. 어떤 일에 있어서도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해내야한다는 것만큼 외롭고 힘든 경우가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누군가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그 다음은 일이 한결 수월하게 느껴진다. 같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에서 얻을 수 있는 힘인 것이다.

나와 같은 마음을 느끼는 한 사람이 여기 있구나. 그럼 우리 둘이니까, 둘이 한다면 셋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셋이 한다면 넷이, 그렇게 이 글을 쓰기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작은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76쪽)

이 생각은 다만 어떤 하나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 같은 마음만 있다면 무엇이든 언제든 가능할 것이니까. 두 작가님의 계절을 지나 다시 같은 계절을 만날 만큼의 시간동안 쌓아온 이야기 속에서, 이미 이 편지를 읽고 있는 내가 그 안에 들어가 셋이 된 기분이 들었고, 어쩌면 나와 같은 마음의 넷, 다섯이 같은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누군가가 정성들여 써 준 편지를 받아보는 기분으로 읽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 고르는 모든 시간이 그 사람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는 것처럼, 편지를 쓰는 모든 시간이 그 사람을 떠올리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라는 게,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다.
이 편지가 끝나 아쉬우면서도 언젠가 이런 편지를 나 또한 누군가에게 써주고 싶어졌다. 같은 마음의 누군가에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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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밀크 그래피티 - 양장, 음식과 사람, 인생의 비밀을 찾아 떠난 이균의 미국 횡단기 에드워드 리 컬렉션
에드워드 리 지음, 박아람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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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삶과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단순히 음식을 따라가는 기행이라기보단, 각 이민자들의 삶과 그 뿌리를 찾아가는 기행이구나 싶었다. 물론, 그 기행의 아주 중요한 목적에는 음식도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오히려 에드워드 리가 각 이민자들과 나누는 대화, 그들을 대하는 방식과 자세, 그리고 그들의 음식에 배어 있는 삶과 전통을 중요시여기고 있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그리고, 그런 삶의 맥락이 어떻게 낯선 나라에서 유지되고 또 펼쳐지고 있는지에 더 주목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딱히 꼭 그 전통을 고수해야지만 된다는 고정된 사고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 각자의 문화가 새로운 문화와 만나고 또 어떻게 섞여 또 다른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갈 것인가 또한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 어찌보면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만이 제 나라의 것을 지키고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또 그것만을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계속 이어나가는 데 어려움을 줄 수도 있겠구나. 결국 하나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거지, 싶었다.

나는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음식에서 정통을 따지는 것이 불편하다. 정통이라는 말에는 옳은 것과 그른 것으로 나눠진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서다. 전통이 멈춰 있는 것이며 진화할 수 없다는 의미, 문화가 정적인 것이라는 의미가 은근하게 들어 있다.(302쪽)

옳고 그름으로 나눠 생각하게 되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정통이라는 말에 집어넣는 순간, 그 정통에 대한 판단과 가치는 줄어들고 고정된 틀만 남게 될 것이다. 이것이 에드워드 리가 생각하는 음식과 만나면 온전히 해석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변화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창의적 발상을 사그러들게 만드는 것이다. 이걸 경계한 것이 아닐까.

나는 이런 이야기에 끌린다. 두 문화가, 이를테면 이탈리아와 뉴잉글랜드의 문화가 서서히 점진적으로 연결되는 이야기. 미국 음식의 진화 과정에는 언제나 이처럼 전통과 혁신 사이의 긴장이 숨어 있다. 그런 긴장은 결국 우리가 가장 열망하는 음식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떠나온 고향과 선택한 고향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음식을 발견한다.(232쪽)

정체성의 문제는 쉽게 결론내리기 어려운 지점이 있을 것 같다. 솔직히 경험해보지 못한 '선택한 고향'의 문화가 어떻게 뿌리깊은 '떠나온 고향'의 색깔과 어우러질 수 있을 지는, 떠나 정착한 이들만이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음식과 그 음식을 만들어내는 이들의 이야기를 곰곰이 새겨보면, 결국 그들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시간 안에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문화와 음식, 그리고 전통이 담겨 있다. 그러니 우리가 음식을 만나는 건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음식 책이 아니라 인류의 문화, 역사, 예술, 그리고 지역, 국가, 민족 등을 다각도로 다루고 있는 책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한 진심어린 관심과 호기심, 진지한 애정으로 담아내고자했던 한 사람의 기록이지 않을까.
그 사람이 에드워드 리여서, 참 좋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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