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지 할머니 건전지 가족
강인숙.전승배 지음 / 창비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건전지할머니 #강인숙 #전승배 #그림책 #창비 #추천도서 #책육아 #독서 #서평단 #서평 #책추천

동구가 동구 할머니를 찾아가듯, 건전지 어린이들이 건전지 할머니를 찾아가듯, 나도 할머니를 찾아가 사랑을 듬뿍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뭉클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그림책을 읽어나가는 내내 잔잔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든든한 책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들의 마음이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덩달아 어깨를 바로 펴고 힘을 주어 단단해져야겠다는 마음을 먹어 보게 되었다. 할머니들의 사랑의 힘이 나에게까지 힘을 주는 듯한 기분이었다.

동구 할머니와 건전지 할머니의 손발이 척척 맞아 떨어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힘을 발휘해야 하는지를 특히, 건전지 할머니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동구에게, 그리고 동구 할머니에게 일어나는 일에 건전지 할머니가 펼치는 활약은 놀라운 감탄을 자아내기에 딱 알맞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들을 지켜내겠다는 다부진 마음과 각오가 한눈에 확인되는 순간들이었다. 특히 위기의 상황에서 발휘되는 능력은 어느 때보다도 건전지 할머니의 힘이 왜 필요한 지 한번에 알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 이런 할머니라면 마음을 놓아도 좋을 것 같다. 또한 동구 할머니도 예사롭지 않았다. 동구에게 있어서는 둘도 없는 친구이면서 보호자이면서, 사랑을 듬뿍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려주는 존재였다. 따뜻하면서도 강한 우리의 동구 할머니. 이런 할머니라면 동구도 마음껏 커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두 할머니가 만났으니, 이들 같은 누구든 안전할 수밖에. 두 할머니의 조화가 예사롭지 않으면서도 괜히 마음 뿌듯, 기분 좋아지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할머니들만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것은 아니다. 동구도, 그리고 건전지 아이들도 할머니들에게 힘을 준다. 어쩌면 두 할머니에게는 이 아이들이 찾아와 기쁘게 반겨 안기는 것만으로도, 함께 즐겁게 웃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만으로도, 그저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만으로도 할머니들을 기운나게 만드는 것일 수 있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와의 시간이 더할나위 없이 기쁘고 행복할 수 있는 건, 그런 서로의 마음이 서로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고, 그런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동구 할머니도 건전지 할머니도 오히려 힘이 불끈 솟고 기운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동구 할머니의 집 마당에서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누는 와중에 홀로 돌아가는 건전지 할머니가 조금은 쓸쓸하단 생각을 했다. 모두들 하루를 잘 마치고 모여 하하호호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중에 건전지 할머니만 혼자 남겨졌다는 생각에 외로워 보였다. 하루의 일을 잘 마치고 돌아서는 홀가분함보다는 조금은 허전한 느낌이 더 컸다. 함께하지 못하고 혼자만 떨어져 돌아오는 발걸음에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런 건전지 할머니에게 쏟아져 들어온 건전지 아이들! 이때 제일 활짝 웃었던 것 같다. 건전지 할머니에게도 기운을 듬뿍 나눠 줄 아이들이 찾아왔다는 것만으로도, 그래서 북쩍이며 시끌시끌, 할머니와 알콩달콩하는 모습을 보며 되려 안심을 했던 것 같다. 그럼, 뭐니뭐니해도 이렇게 정신없어도 함께 할 때 기운이 더 나는 법이지.

"으라차차! 할머니 충전 완료다."

할머니들을 '충전'시켜드리는 것이 어쩌면,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도 당연해서 그동안 쉽게 잊고 있었던 것. 그리워하고 보고싶어하고, 그래서 만나 반갑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것.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때마침 5월이고,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에 충분한 날들이 가득하니, 이번 기회에 우리 할머니들 충전 좀 시켜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덩달아 할머니의 기운도 좀 얻어 오고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025 한국출판문화상 교양 부문 수상작
희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은다음 #희정 #장례 #죽음 #르포르타주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0기 #서평단 #서평 #책추천

장례식장을 다녀온 다음에는 꼭 화장실에 먼저 들렀다고 집에 들어오라고, 부모님이 당부하셨다. 어렴풋이 그게 집 안으로 함께 들어오지 않고 하려는 미신의 행동일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말을 지키려고 했다. 물론, 언젠가부터는 지키지 않고 있지만. 가깝게 외삼촌은 장례식장만 다녀오면 며칠 크게 앓아 누우신다. 거의 실신할 정도로 많이 아파 몸을 움직이지 못하신다. 어릴 적 장례식장에서 몹쓸 것을 보았다고 표현하시는데, 그 이후로 어떤 장례식장이든 그렇다고 하셨다. 그래서 무섭다고. 그럼에도, 가족 친지의 장례식장에 빠지지 않고 오신다. 그게 할 도리라면서. 장례식장은 늘 익숙해지지 않는다. 죽음 또한 삶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삶을 대하는 자세가 이토록 엄숙하고 슬프고 무겁고 아플 수가 없다. 물론 이보다 더 힘겨운 삶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무게로 보았을 때 죽음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아직까지는. 그래서 죽음 이후를 다루는 이 책도 처음에는 너무 힘겹게 읽어 나갔다. 괜히 이 책을 펼쳐 들고 있으면 마음 또한 슬퍼지는 듯했고, 마음을 경견하게 다잡아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책 읽기의 속도가 조금 더 더뎌질 수밖에 없었던. 죽음은 아직까지도 나에게는 커다란 또 다른 삶의 숙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장례 노동 현장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장례를 겉으로만 그리고 어쩌다 가끔씩만 생각하게 되는 우리와 그들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게 되었다. 일이라는 말에 공감이 갔다. 언젠가 지인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늘 슬프고 아픈 사람들만을 보며 일을 해야 하니, 장례식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마음이 힘들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또 그렇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이 되고 또 그 이상의 사명이 되면, 마냥 감정으로만 그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아닌, 일로서 혹은 전문가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이 더 커질 것 같다. 그러니 누구나 자신의 일 앞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몸과 마음을 모두 쏟는 것처럼, 이들도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일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에도 동의한다. 일로서 접근한다고만 생각하면 누구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일도 일 나름일 것이다. 누구라도 쉽게 이 현장에 들어가 일하겠다고 말하기가 과연 쉬울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이 일에서 손을 놓지 못하는, 오랜 세월 누군가를 위한 마음을 내려놓지 않고 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래야만 한다는 자신들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이들의 마음이, 단순히 일이라는 것을 넘어선 또 다른 차원의 정성으로 보였다. 정성. 어쩌면 이 말이 맞는 말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정성을 들이는 것, 정성을 다하기 위해 작은 것까지도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하려는 바로 그 마음.
죽은 이와 산 자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도 맞는 말이다. 우리가 지금 숨쉬며 살고 있는 이 공간 아래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죽은 이들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린 그런 죽은 이들 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비어있는 유리잔에 비유해서 이야기하고 있듯 비어있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왔던 시간들 속에서 태어나고 죽는 과정이 반복되어왔을 것을 생각해보면, 당연하게도 비어있기만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공존. 이 말이 맞아 보인다. 비어있든 채워져있든 결국 어떤 식으로든 함께하고 있다는 것은 맞는 것 같다.

나눔과 나눔이 하는 건, 장례라는 예식을 건네어 존엄을 지키는 일이다.(282쪽)

'왜 장례를 치르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존엄'. 존재를 인정하는 일. 요람에서 무덤까지라고 했던 것처럼, '무덤'까지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인정할 수 있는 존엄이 장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 존재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것, 그것이 장례겠구나. 그러니, 장례가 필요하겠구나, 누구나에게 차별 없이 평등하게 말이다.

'고복, 반함, 성복, 발인, 반곡, 이제, 졸곡'. 장례가 어떤 과정과 순서로 진행되는지에 대해 진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르포르타주의 장점이기도 할 텐데, 책 속에서만 보아오던 장례 문화의 각 명칭이 실제 사람 손에 의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또한, 사는 것의 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이와 산자의 연결, 어찌보면 죽은 이가 산 자를 살리는 것이 산 자의 손에 의해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어쩌면, 여전히 우린 장례를 통해 죽은 이를 잘 보내기 위한 과정을 거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샌드힐 스토리에코 2
하서찬 지음, 박선엽 그림 / 웅진주니어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샌드힐 #하서찬 #박선엽 #청소년소설 #웅진주니어 #가제본서평단 #서평 #책추천

섬뜩하다. 공포스럽기도하다. 이런 상황에 놓이는 상상조차 무섭기만 할 정도이다. 이 상황에 놓인 지훈이 할 수 있는 선택은 과연 무엇이어야 할까. 가정에서의 폭력, 믿고 의지했던 형의 사고, 낯선 나라에서의 괴롭힘과 친구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마치 이 소설을 읽는 지금, 내 눈 밑으로 입 안으로 서걱거리는 모래가 들어와 까끌거리는 듯 불편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지훈에서 남은 선택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일지. 이 아이에게 있어 어떤 희망이라도 존재하는 것이 맞기는 한 것인지.

쥐도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 쫓아야 한다. 어느 한 구석이라도 숨 쉴 수 있는 구석이 있어야 한다. 지훈에게는 형이 그런 공간이었고, 형과 찾은 동굴이 그런 집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지훈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모래 구덩이에 몰아놓고 올라오려할 때마다 구덩이는 점점 힘없이 무너져 더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함정과 같은 것이다. 이 구덩이에 몰아놓은 것은 결국 어른들일 것이다. 어른들의 문제가 고스란히 지훈에게 닿았고, 그런 과정에서 지훈이 할 수 있는 것은 더 깊은 구덩이에 빠지는 것밖에 없었던 것이다.

요리사도 조각가도 포기했어. 꿈보다 탈출이 먼저야. 너도 데려갈게. 야자수 밑에서 콜라나 마시자.(26쪽)

아이들의 꿈 이야기가 이렇게 치열해야만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의 상황에서 기댈 수 있는 희망이 이것 하나뿐이라는 사실에 몸서리가 쳐질 정도다. 어떻게해서든지 도망치기 위한 방법만을 머릿속에 가득 담고 살아가야 했던 현실에서 과연 형은 벗어난 것이 맞는지. 그런 형을 지켜보며 지훈 또한 현실에서 어느 만큼이나 도망칠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깜깜한 암흑같은 느낌일 뿐이다.

하지만, 지훈이 내내 이렇게 도망만 치면서 살 수만은 없을 것이다. 계속 모래 구덩이를 밟을 때마다 무너지기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모래 구덩이지만 그 사이 어디라도 조금 단단한 곳을 밟고 올라갈 수 있는 땅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 구덩이에서 진짜, 탈출을 해야 하는 것이다. 온 힘을 다해 도망치기보다는 다시 살기 위한 방향으로 온 힘을 다해야 한다. 과연 지훈은 그 방향을 잘 찾아 다시 달려나갈 수 있을지. 사실은,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방법을 잘 찾아 지금의 상황에서 빠져나오기만을 바라는 마음뿐이다.

덧-
이 아이들은 어쩌면 내내, 도와달라고 외치고 있었던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훈이 찰흙으로 조각을 하나씩 만들어 나갔던 것도, 라희가 '선배님'에 집착했던 것도, 사실은 살려달라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간절하게 외치는 말들이었던 것이다. 다만, 이 외침을 어느 누구도 들어주지 못했다는 것, 도움을 줄 수 있는 손길 하나 내밀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 라희에게 지훈이, 또 지훈에게 라희가 그나마 나약한 손을 내밀어주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아이들이 서로에게 조금이나마 온기를 줄 수 있는 유일한 손길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서관 문이 열리면 마음이 자라는 나무 44
범유진 지음 / 푸른숲주니어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관문이열리면 #범유진 #푸른숲주니어 #가제본서평단 #서평 #책추천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 낡은 책 종이 냄새가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공간, 그래서 혼자 숨어 있기 딱 좋은 공간, 그곳이 바로 도서관이다. 이 소설 도서부 아이들은 모두 이런 공간을 원했다. 상처받고 아프고 속상한 마음을 달래지고 위로해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고, 그 위로를 책에서 받았고 책이 만들어주는 포근한 분위기에서 받았다. 이런 공간을 향해 한 계단씩 밟아 올라갈 마음만 있다면 어느 누구에게도 활짝 열려 있는 공간, 그곳이 바로 도서관이다.

도서관을 찾는 사람 중에는 씨앗을 가진 이들이 있다. 불안이나 고민 같은 이름이 붙은 씨앗. 그 사람들이, 그 씨앗에서 질긴 절망이 피어나기 전에 이곳에 왔으면 좋겠다. 사서 선생님이 좋아하는 이 공간에서, 씨앗의 이름을 바꾸어 줄 이야기를 만났으면 좋겠다.(45쪽)

아무도 나를 아는 척 하지 않는 공간에서 한없이 나에게만 집중하고 싶을 때가 있다. 대부분, 상처를 받고나 기분이 몹시 상하거나 혹은 사람들로부터 무척 시달려 이제 어느 곳에서도 사람의 인기척이나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을 때. 그럴 때 도서관에 잠입해 들어갈 때가 있다. 도서관은 늘 조용하고 또 아는 사람을 마주칠 가능성이 적다. 어느 책장 앞에 서 있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고 또 가만히 구석진 의자 깊숙하게 틀어박혀도 누가 간섭하거나 눈길을 주지도 않는다. 이 만큼 소중하고 고마운 공간이 또 있을까.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신이 하고싶은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어떤 모습의 나여야 하는지, 어떤 생각을 품고 나아가야 하는지, 자기 스스로를 제대로 볼 줄 알게 된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자신을 홀로 두었을 때가 바로 가장 좋은 성찰의 순간이니까. 그런 성찰의 계기를 만들어주는 공간이 도서관인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서관의 문이 열려야 하는, 닫히면 안 되는 이유는 충분한 것 같다.

나도 혼자 있을 곳이 필요했거든요. 처음 도서관에 왔던 것도 그래서였어요. 내 생각에는요. 누구든 나답게 있을 장소가 필요한 것 같아요. 선배가 화가 난 걸 이해는 하지만......, 도서관이 지금 나한텐 그런 소중한 장소거든요.(144쪽)

그러면서 이 공간에서 한 명 또 한 명, 서로 비슷한 마음들로 모이는 아이들이 생기게 되고, 그런 아이들이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어떤 시간이 쌓여야 진정, 나다운 나를 만날 수 있는지도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 모든 것의 힌트가 주어지는 곳이 도서관이고, 도서관에 꽂혀있는 책이다.
이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답을 찾으려고 한 듯 보이지만, 정작 진짜 답은 도서관의 책에서 찾았다. 책을 펼쳐 그 이야기에 빠져들고, 그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되짚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이 누가 억지로 시켜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별 이유 없이 이끌리 듯 찾아간 도서관에서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처럼, 이 아이들 앞에 책이 펼쳐졌고, 그 책은 아이들을 한뼘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이다. 이 정도라면, 도서관의 순기능 중 최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도서관이란 공간과 책은 무척 잘 어울린다. 또한 도서관의 책을 찾고 읽는 아이들 또한 너무도 잘 어울린다. 도서관은 책만 있어서는 제 역할이 다 한다고 할 수 없다. 바로 그런 책을 찾고 이 공간을 찾아오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 있어야 제대로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기분이 무척 좋아지는 책이다. 아이들이 도서관으로 하나 둘 모이게 되는 것도, 그 도서관을 통해 하나의 목소리가 만들어지는 것도, 그리고 그들의 관계와 대화를 통해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것도, 모두 아름답기만 느껴진다.

덧-
두 번째로 만난 범유진 작가의 소설인데, 두 소설 모두 마음이 쏙 든다. 아무래도 다음 작품, 또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될 작가가 되지 않을까, 행복한 기대를 하게 된다.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 - 건설 노동자가 말하는 노동, 삶, 투쟁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외 기획, 이은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가다가아닌노동자로삽니다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이은주 #김그루 #또뚜야 #김다솜 #박신 #최석환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0기 #서평단 #서평 #책추천

'노가다'라는 말을 오랜만에 써보는 것 같다. 일부러도 이 말은 쓰지 않았었다. 사전을 검색해 봤다. '막일, 막일꾼'으로 바꿔 쓰도록 나왔다. '막일, 이것저것 가리지 아니하고 닥치는 대로 하는 노동.' 비슷한 말에 막노동이 있다. '막일꾼, 막일을 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막일이든 막일꾼이든 노가다든, 어느 단어도 적절한 표현이 아닌 것만 확실히 확인했다. 이것만 보더라도 건설 노동자를 다른 말로 쓰려고 굳이 애쓸 필요가 없는데, 왜 아직도 이런 단어가 남아있는 걸까, 답답하고 화가 났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너무도 진한 색안경을 끼고 사람들의 삶을 구분하여 저울질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 걸까. 아직도 1980년대 전후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씁쓸할 뿐이다.

예전부터 건설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안 좋잖아요. 현상 수배범 전단에 '노동자풍'이라고 쓸 정도였으니까요. 다른 나라에서는 작업복 입고 지하철 타고 다니는 게 일상인데 우리는 그러면 다 쳐다보지 않을까요? 사람들 인식이 아직도 그런 거죠.(214쪽)

그러니까 말이다. 이게 우리 사회 사람들의 인식의 수준인 것이다. 아직도 화이트와 블루로 색을 나누고 노동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일의 가치를 구분 지으려는 사람들 말이다. 노동의 소중함과 경건함을 모른 채 주변을 둘러볼 줄도 모르는 이들의 시선이 언제 올바른 판단과 관점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지은 죄도 없이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광역수사대 같은 곳에서 이리 와라, 저리 와라 하면 꼼짝없이 불려 다녀야 하니 일할 맛도 안 나고요. 경찰이나 검찰 같은 데서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없는 죄도 만들죠.(167쪽)

경찰이나 검찰이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공정한 잣대로 죄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측의 이익과 권력에 의해서만 따라 움직이며 그 반대편에 대해서는 무조건 죄를 만들어 씌우려는 태도가 아직도 여전하다니. 공갈 협박 죄로 노동자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행태가 기가막힐 뿐이다. 얼마나 붙일 죄목이 없으면 만들다 만들다 공갈 협박이란 단어를 쓸 정도일까.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 놓은 법이 아닐텐데 말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건설 노동자들이 폭력배로 매도되는 상황에 불만이 클 수밖에 없어요.(...) '건폭'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화가 많이 나더라고요. 저희를 폭력배 취급하는 거잖아요. 언론도 계속 노조를 때리고, 심지어 다른 단체에서 한 일까지 민주노총이 그런 것처럼 싸잡아서 매도하더라고요.(125쪽)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 끼워져 돌아가고 있는가가 한눈에 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떤 정부가 등장하느냐에 따라 너무도 쉽게 사회가 무너지고 또 횡포와 무시가 난무하게 되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해 나가야 할 것인가를 제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움직여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결국은 이런 연쇄작용이 우리 삶의 아주 가까운 부분까지도 침범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연대일 것이다. 바로 노조가 필요한 이유이다. 혼자의 힘으로는 버거울 수 있어도 함께할 때에는 그 힘이 배 이상으로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가 노조 못 하겠다고 하니까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사측이나 자본은 운다고 주지 않는다. 달라고 목소리 내고 외쳐야 한다.(...) 지금 주저앉으면 그다음에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겠느냐"(42쪽)

이 말도 참 슬펐다. 너무도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임에도 달라고 소리내어 외치고 목소리를 키워야만 겨우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사회가 얼마나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고 공정하게 대우하지 않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울고 울지 않고와 상관 없이, 목소리 높여 외치는 것과 상관 없이, 당연한 것에 대해서는 기꺼이 그 당연함을 보장해줄 수 있는 사회여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노동'이라는 말에 부정적인 것 같다. 그래서 '노동절'도 근로자의 날로 바꿔 부르는 것일 수도 있다. 왜? 노동자로 인정받고 싶은 1인으로서,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확립될 수 있는 우리 사회였으면 좋겠다. 이들의 삶을 어느 누구도 함부로 훼손하지 않을 수 있는, 서로의 노동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