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 - 건설 노동자가 말하는 노동, 삶, 투쟁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외 기획, 이은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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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라는 말을 오랜만에 써보는 것 같다. 일부러도 이 말은 쓰지 않았었다. 사전을 검색해 봤다. '막일, 막일꾼'으로 바꿔 쓰도록 나왔다. '막일, 이것저것 가리지 아니하고 닥치는 대로 하는 노동.' 비슷한 말에 막노동이 있다. '막일꾼, 막일을 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막일이든 막일꾼이든 노가다든, 어느 단어도 적절한 표현이 아닌 것만 확실히 확인했다. 이것만 보더라도 건설 노동자를 다른 말로 쓰려고 굳이 애쓸 필요가 없는데, 왜 아직도 이런 단어가 남아있는 걸까, 답답하고 화가 났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너무도 진한 색안경을 끼고 사람들의 삶을 구분하여 저울질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 걸까. 아직도 1980년대 전후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씁쓸할 뿐이다.

예전부터 건설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안 좋잖아요. 현상 수배범 전단에 '노동자풍'이라고 쓸 정도였으니까요. 다른 나라에서는 작업복 입고 지하철 타고 다니는 게 일상인데 우리는 그러면 다 쳐다보지 않을까요? 사람들 인식이 아직도 그런 거죠.(214쪽)

그러니까 말이다. 이게 우리 사회 사람들의 인식의 수준인 것이다. 아직도 화이트와 블루로 색을 나누고 노동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일의 가치를 구분 지으려는 사람들 말이다. 노동의 소중함과 경건함을 모른 채 주변을 둘러볼 줄도 모르는 이들의 시선이 언제 올바른 판단과 관점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지은 죄도 없이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광역수사대 같은 곳에서 이리 와라, 저리 와라 하면 꼼짝없이 불려 다녀야 하니 일할 맛도 안 나고요. 경찰이나 검찰 같은 데서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없는 죄도 만들죠.(167쪽)

경찰이나 검찰이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공정한 잣대로 죄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측의 이익과 권력에 의해서만 따라 움직이며 그 반대편에 대해서는 무조건 죄를 만들어 씌우려는 태도가 아직도 여전하다니. 공갈 협박 죄로 노동자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행태가 기가막힐 뿐이다. 얼마나 붙일 죄목이 없으면 만들다 만들다 공갈 협박이란 단어를 쓸 정도일까.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 놓은 법이 아닐텐데 말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건설 노동자들이 폭력배로 매도되는 상황에 불만이 클 수밖에 없어요.(...) '건폭'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화가 많이 나더라고요. 저희를 폭력배 취급하는 거잖아요. 언론도 계속 노조를 때리고, 심지어 다른 단체에서 한 일까지 민주노총이 그런 것처럼 싸잡아서 매도하더라고요.(125쪽)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 끼워져 돌아가고 있는가가 한눈에 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떤 정부가 등장하느냐에 따라 너무도 쉽게 사회가 무너지고 또 횡포와 무시가 난무하게 되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해 나가야 할 것인가를 제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움직여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결국은 이런 연쇄작용이 우리 삶의 아주 가까운 부분까지도 침범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연대일 것이다. 바로 노조가 필요한 이유이다. 혼자의 힘으로는 버거울 수 있어도 함께할 때에는 그 힘이 배 이상으로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가 노조 못 하겠다고 하니까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사측이나 자본은 운다고 주지 않는다. 달라고 목소리 내고 외쳐야 한다.(...) 지금 주저앉으면 그다음에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겠느냐"(42쪽)

이 말도 참 슬펐다. 너무도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임에도 달라고 소리내어 외치고 목소리를 키워야만 겨우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사회가 얼마나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고 공정하게 대우하지 않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울고 울지 않고와 상관 없이, 목소리 높여 외치는 것과 상관 없이, 당연한 것에 대해서는 기꺼이 그 당연함을 보장해줄 수 있는 사회여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노동'이라는 말에 부정적인 것 같다. 그래서 '노동절'도 근로자의 날로 바꿔 부르는 것일 수도 있다. 왜? 노동자로 인정받고 싶은 1인으로서,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확립될 수 있는 우리 사회였으면 좋겠다. 이들의 삶을 어느 누구도 함부로 훼손하지 않을 수 있는, 서로의 노동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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