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아이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김희진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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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실화를 가지고 허구로 쓴 이야기임을 인지하고 읽기 시작했는데도, 자꾸 마틴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읽는 내내 힘들었다.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조마조마했다. 마틴이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게 될지, 어른이 된 이후 어떻게 자신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을지, 해결을 할 수는 있을지 힘들게 읽어나갔다. 가장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던 이야기였다. 그래서 끝까지 긴장하느라 몸에 힘이 들어갔다.

유일한 한 명이 필요한 순간에 두 번째라는 것이 갖는 의미가 무엇일지 조금은 짐작이 됐다. 지금껏 1등 혹은 1명이었어야 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았지만 나에게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고, 둘 중 한명에 들지 못했을 때엔 허탈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한동안 속상했고, 관련 공간을 매일 지나쳐야 하는 것이 마음으로 괴로웠다. 어떨 때는 지나치지 않기 위해 다른 길로 돌아다닌 적도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 일로 인해 내 삶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전전긍긍해봤자 달라지는 것이 없음을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체념했다. 그 과정이 어쨌든, 내가 적합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고 그 사실을 인정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그 인정이 결코 쉬운 건 아니었다.

만일 마틴이 "왜 내가 아니라 그 애죠?"라고 물었다면, 그 '작은 뭔가가 더' 없었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을 것이다.//그토록 사소한 것으로 이토록 크게 어긋난다면 미쳐버릴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나쁜 쪽으로 곤두박질친다. 언제나 하잘것없는 게 차이를 낳는다. 고작 쉼표 하나가 어디 있는지가 팔백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의 의미를 바꿀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89쪽)

인생이 크게 달라지고 곤두박질칠 수 있음은, 맞다. 누군가는 왜 그런 것에 신경쓰느냐고, 마음이 나약해서 그러는 거라며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이 '사소한 것'에 의해 충분히 인생 전부가 무너져내릴 수 있다. 내가 마틴의 마음으로 소설을 읽게 되었던 것도 이 마음을 절대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그래서 마틴의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지가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마틴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기 혼자 감당하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모습이 더 안타까웠다. 자신의 마음으로 인해 주변인이 힘들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을 더 다그치고 괴롭히는 모습이 지켜보기 힘들었다. 결국 자신을 속이지 않고 내보이기 위해 냈던 용기가 조금이나마 숨 쉴 수 있는 구멍이 된 것 같았다. 혼자 감당하기에, 마틴 마음의 괴로움은 너무 컸다.

고등학교에서의 지난 두 해는 힘겨웠고, 따라서 질문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인생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180쪽)

그럼에도 이 질문은 놓지 않고 있었던 것 같다. '인생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스스로는 숨기 위한 차선책으로 선택했을 지는 모르겠지만, 읽는 나는 마틴이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고 홀로서기하기 위해 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자신을 안으로만 다그치며 침전하는 마틴이었다면 이런 선택을 통해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기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틴에게는 아직 자신의 인생에 대한 답을 찾을 힘이 남아 있었고, 그 힘을 자신을 찾는 데 쓰기로 했다. 그리고 그런 힘이 남아있던 데에는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도 한몫 했다.

어떤 고통에는 출구가 없는 것 같다. 잠잠했던 몇 년이 지나고 마틴은 실패의 고통에 다시 빠져드는 걸 느꼈다. 우울증은 언제나 느낌을 통해 자신이 찾아왔음을 알린다.(231쪽)

우울증. 이 단어가 여기에서 처음 나왔다. 마틴의 병은 우울증이었나. 그리고 그 고통은 출구없이 마틴 안에 숨어있다가 문득 나타나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때도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힘들게 할까봐 먼저 도망치려했다. 나보다 다른 사람이 먼저인 마틴. 다행히도 소피는 그런 마틴을 적극적으로 보살펴주었고, 결국 마틴의 우울증이 다시 숨을 수 있도록 도왔다. 여러 시행착오와 시도들 속에 결국 다시 소피의 곁으로 마틴은 돌아올 수 있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실화여도 소설이어도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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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자의 사전
구구.서해인 지음 / 유유히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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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자라는 말을 익숙하게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나 자신을 가리키는 단어로 작업자는 적합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작업과 일이라는 단어 사이에 어감의 차이도 나 보였다. 뭔가 '작업'이라고 하면 좀 더 구체적인 결과물이나 성과를 만들어내야 할 것만 같은 느낌. 내가 하는 일이 딱 한마디로 결과가 만들어져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더 그랬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더 궁금했을 수도 있다. 다른 영역과 삶을 들여다본다는 느낌.
헌데 읽으면서 딱히 그렇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단어들마다의 정의를 읽으며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으니까. 일이라는 것이 어떤 분야든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었다. 무슨 일을 하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감정은 거기서 거기구나. 그러면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 걸까요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내 일과 이 세상의 모든 작업에 대해.

거절
작업자의 '짬'이 드러나는 궁극의 지표.
다음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성사시키고 싶은 것.

첫 단어부터 공감이 확 됐다. 요즘 자주 하는 생각이 '관계'다. 이 관계에 있어 '거절'이 차지하는 비중이 참 높다. 거절을 잘하는 것과 거절을 못하는 것 사이에서 관계는 곧 일이되고 나의 작업과 연결된다. 그러니 이 거절이 뜨거운 감자다. 또 그 사람을 어떻게 판단하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이 거절이 평판이 되고 사회성이 되며 작업의 능률과 능력으로까지 확장된다. 아, 너무나 어렵고도 고단한 길이 '거절'이다.
첫 단어를 읽으면서 이런 식이라면 이 책, 무척 흥미로운 걸, 하며 읽어나갔다. 재밌고 공감됐으면 때론 쓴웃음을 지었다. 나와 하는 일이 무척 다른 듯 보이는데도 왜 이 모든 단어가 내 일과 연결이 되는 건지. 내가 하고 있는 일, 직장, 나의 작업에 이 단어들을 연결시키며 나의 상황에 맞춰 해석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이게 바로 이 책이 갖고 있는 매력이구나. 다른 일을 들여다본다는 생각으로 펼쳤지만 누구나 자신의 작업을 생각하게 만든다는 건, 그만큼 이 사전이 보편화된 우리 모두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일 테니까. 이래서 이 책을 읽고나면 일과 작업에 대해, 우리가 하고 있는 노동에 대해, 그런 사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평소, 표준국어대사전을 자주 찾는다. 내가 하는 일(혹은 작업)과 연관성이 높기도 하지만, 그렇게 찾아 알게 되는 정보가 때론 미처 생각해보지 못하는 지점에 가 있기도 해, 그런 재미로도 사전을 곧잘 찾는다. 생각의 시작점을 찾고 싶을 때고 찾게 되고. 앞으로는 <작업자의 사전>도 자주 찾게 될 것 같다. 무언가 내 일에서 부딪히게 되는 어떤 순간들이 생길 때, 이 사전의 단어를 찾아 다시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잠시 위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만 이런 건 아니구나, 하는 동질감에서 오는 안정감 정도라고나 할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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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질수록 행복해진다 - 관계 지옥에서 해방되는 개인주의 연습
쓰루미 와타루 지음, 배조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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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의 '관계 지옥'이란 단어에 한참 눈이 간다. 얼마 전 겪은 일이 있어서 그런지 사람 간의 관계가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무섭기도 하고. 사람을 만나지 않고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든 관계를 잘 만들어나가기 위해 애쓰기에는 상처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것이 쉽지 않고 어느 지점에서 끊어내고 잘라내야 하는지가 익숙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더 솔직히는 그래도 되는지를 겁내고 있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제목을 여러 번 읽게 된다. <멀어질수록 행복해진다>는 말이 참 아이러니였다. 보통은 가까워지고 함께일 때 행복해지기 마련일텐데, 멀어지라는 책이라니. 그런데 한 장 한 장을 읽어나가면서 오히려 지금까지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이 깨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지나친 편견에 사로잡혀 내가 만든 편견의 둘레 안에 나를 집어넣고 힘들게 닦달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무척 의식하며 살았고, 남들이 욕하고 화내는 말에 쉽게 동조했고, 나를 괴롭히는 사람마저 품고 가까이 두기위해 혼자 상처를 안고 참으려고 했고, '가면을 쓴 나'를 연기해야할 때가 종종 있었고, 가족이라는 의무감이 무거울 때가 많았다. 가족이니까, 식구니까와 같은 말들로 강요당하는 행동들이 있었고, 그런 말과 행동이 언제나 행복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냈다.
이 책에서는 거리를 두고 가깝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조목조목 참 잘도 해주고 있다. 다들 가져야한다고 말하는 것들을 갖지 않아도 된다고, 해야한다고 하는 것들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있다. 그것도 힘들여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쉽고 가볍게 말해주고 있어 오히려 놀랐다. 마치 옆에서 매우 명쾌하게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야, 하는 식으로 정곡을 콕콕 찌르며 답해주는 것만 같았다. 짧은 글들을 통해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고 살아왔던 것들이 사실은 다 옳았던 것이 아니라고 결론내려주고 있었다. 너무 분명하게 말하고 있어서, 의심할 새도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나'였을까. '나'의 삶을 살아야한다고 하는데, 나는 과연 '나'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나는 어떤 '나'이고 싶은 것일까. '나'를 만들기 위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 것일까.
이 세상은 나쁜 것들만 가득 차 있다는 마지막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그런 나쁜 것들 속에 나만은 착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끝까지 남고 싶어 나를 남이 만들어놓은 굴레 속에 욱여넣으며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그렇다면 이제 나는 어떤 '나'의 삶을 살고 싶은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하루아침에 이 책 한 권으로 내 삶이 완전히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나'를 내가 스스로 몰아붙이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분명해졌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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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이데올로기 - 수저 계급 사회에 던지는 20가지 질문
조돈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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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이미 우리 사회를 '금수저-흙수저'의 '수저 계급 사회'로 부르고 있었다. 우리는 그런 사회에 태어났고, 그렇게 살고 있고, 그런 사회를 물려주게 될 것이다. 이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17쪽)

수저 계급 사회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싶었다. 아, 이 말이구나.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 어떤 것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태생적 계급의 탄생이 결국 우리 사회를 뿌리깊게 관통하는 주축이구나. 이 이야기를 하려는 책이구나, 싶어 이미 머리말을 읽으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느 나라든 평등한 나라가 있기는 할까. 민주주의, 자본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나라라면 제 실력에 따라 사회에서 인정받는 기준이 정해진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상하, 다수와 소수의 기준은 사회적으로 분명해 보이고, 이런 분명한 기준 하에서 한국이라는 나라는 특히나 더 계급 간 이동은 불가능하다.

금수저로 태어나면 계속 금수저지만 흙수저로 태어나면 아무리 '노오력' 해도 금수저가 되기 어렵다. 이처럼 한국 사회는 부의 대물림이 구조화된 '수저 계급 사회'가 되었다.(56쪽)

결국 불평등은 세습되어 바꿀 수 있는 기회조차 없이 결정된 대로 받아들이고 따르는 삶이 될 것이다. 이미 사람들의 인식 조사에서도 엿볼 수 있는 것처럼, 달라질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안 될 것을 알면서 시도하려는 무모함은 누구도 갖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공정이나 기회의 균등도 우리에게는 와닿지 않는 말이 된다.

사람들은 불평등과 불공정 같은 원치 않는 사회적 현실이 불가피하다고 인식할수록 현실을 수용하고 정당화하는 경향성이 커진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불평등 체제를 비판하고 불만을 가는 것은 정치적 일탈 행위이기 때문에 불평등 현실과 평등 사회 대안 사이, 인지된 객관적 현실과 정서적 감정적 선호도 사이의 괴리를 견뎌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리게 된다.(197쪽)

그러니 점점 사람들은 무뎌지고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사회의 불평등은 심화되고 또 결국 당연시 여기게 되는 수준에 이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한국만큼 공정이나 평등에 대해 관심이 높고 의지가 강한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이미 다수의 국민들은 우리가 어떤 사회여야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다만 그에 대한 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계급이 있을 뿐. 이젠 진짜 제대로 답을 해야할 때가 아닐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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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나에게 단 한 번의 아침이 남아 있다면 - 오늘이 끝나기 전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들
존 릴런드 지음, 최인하 옮김 / 북모먼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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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 책의 표지를 넘기자마자 받은 질문이다. 이 페이지에 잠시 머물렀다. 이 질문의 답을 해야할 것 같아서. 과연 나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하려면 먼저,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삶일지 나 스스로 정의내릴 줄 알아야 한다. 나에게 가치 있는 삶은 나 스스로가 인정할 수 있고 뿌듯하며 그런 삶이 되돌아봤을 때 후회되지 않는 삶, 다른 누군가의 의견이나 판단 말고 내가 나에게 살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대답해줄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한 삶이다. 결국, 난 행복하고 싶은 것이고 행복한 삶이 곧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인생의 최종 가치는 '행복'이니까.
그런 면에서 난 '긍정적 편향'을 갖춰나가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젊었을 때는 아둥바둥 내가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조건 하면서 사는 삶을 꿈꿨다. 어떤 면에서는 완벽해야 했고 다른 사람의 질타나 지적받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씩 그런 마음을 내려놓고 있다. 내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지금의 내가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만족도 어느 정도 갖췄다. 물론 아직도 시기나 질투에 마음이 움직일 때면 이내 나 스스로를 책망한다. 나는 과거의 그 치열했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으니까. 난 지금의 이 선택과 상태가 딱 마음에 든다.

행복해지는 비결이 뭐냐고? 여기서부터 시작해보자. 사람들이 당신에게 베푸는 모든 친절을 고맙게 받아들이고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으로 보답하라. 친구가 당신에게 점심을 살 수 있게 해주고 그 보답으로 친구를 도와줘라. 도움은 도움대로 받고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면서 더 큰 보람을 얻게 된 것이다.(98쪽)

이게 참 안 되는 사람이었다, 나는. 누군가로부터 받는다는 것이 부담이었다. 그래서 안 받고 싶었다. 누군가가 주는 것에 대한 대가가 반드시 있을 것이고 그 보답을 해야한다는 마음의 짐이 내내 불편함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주고 받지 못하는 것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보답을 바라고 주는 것이 아니니까. 다시 뒤돌아보니 이중적인 잣대로 살고 있었다. 자꾸 주려는 사람을 의심하고 관계를 힘겹게 만들었다. 이게 아니구나, 싶었다. 행복은 한끝 차이라는 걸 느꼈다.

"어젯밤 텔레비전에서 경기를 보고 펄쩍 뛰어올랐다니까. 침대에 아내가 없기에 망정이지 아마 그렇게 침대를 박차고 뛰어나가는 걸 봤으면 나를 미쳤다고 했을 거야. 그 순간에는 그게 행복이었지. 내 생각에 슬픔은, 전에 일어났던 어떤 나쁜 일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인 것 같아."(142쪽)

고령의 나이가 되면 이제 행복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죽음을 앞두고 얼마나 두렵고 슬플까,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책 속의 인물들은 그런 생각 따위는 자신의 삶에 넣을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그저 지금, 현재의 삶이 충만하고 만족스러우며, 그 안에서의 모든 순간들을 사랑, 기쁨, 만족, 행복으로 가득 채우려는 모습으로밖에는 안 보였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억지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통해 자연스레 축적된 태도임이 느껴졌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들이 다른 젊은 사람들보다 훨씬 건강하다고. 부럽다는 생각도 했다.

행복, 목적, 만족, 우정, 아름다움, 사랑과 같이 인생의 좋은 것들은 내내 그 자리에 있었다. 우리는 그것들을 얻기 위해 특별히 뭔가를 해야 할 필요가 없다. 좋은 음식, 친구, 예술, 따뜻함, 가치와 같은 것들을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그렇게 살기로 결심하기만 하면 된다.(317-8쪽)

지금도 점점 나이를 먹고 있지만, 더 나이를 먹은 후의 삶에 대해 쉽게 상상이 잘 안 된다. 그리고 그런 나이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어느정도 있다. 어쩌면 이런 마음은 아직 살아보지 않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서 비롯될 것이다. 누가 나서서 가르쳐주지도 않으니 내내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수밖에. 그래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나타나기 마련인 것이다.
헌데 이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이든다는 것이,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것이 그리 무섭거나 힘든 여정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따지고보면 다 마음 먹기 나름이라는 생각을 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우리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살고 있기도 하니까. 어떤 가치관과 마음으로 그 순간을 살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는 슬픔이고, 미래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현재의 어느 지점에서 내 마음이 움직이는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게 꼭, 고령의 나이에 되어서야 필요한 생각이 아니라는 것도.

오늘 나는, 마치 단 한 번의 아침이 남아 있는 사람처럼 살아야겠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나를 치장하고 닦아세우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가장 행복한 기분으로 하면서 보내는 시간. 그 시간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삶이면 될 거니까. 편안한 미소가 지어지는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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