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힐 스토리에코 2
하서찬 지음, 박선엽 그림 / 웅진주니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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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힐 #하서찬 #웅진주니어 #청소년소설 #서평단 #서평 #책추천

샌드힐. 글 하서찬/그림 박선엽. 웅진주니어. 2025.

탈출. 지훈이 형과 함께 했던 집에서의 탈출, 다시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했던 탈출. 지훈의 두 번의 탈출이 이 이야기를 전반을 이끌어가는 중심인 듯하다. 탈출은, '어떤 상황이나 구속 따위에서 빠져나옴.'의 뜻을 갖고 있는 단어다. 지훈에게는 폭력이 난무했던 공포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리고 타인의 잘못된 기대에 의해 제 삶을 스스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구속에서 빠져나오려는 탈출로 보인다. 지훈에게 벌어진 이 모든 상황이 그저 답답하고 고통스럽게만 느껴진다. 이런 고통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어쩌면 탈출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훈의 마음에 공감이 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 잃게 된다는 것, 그것도 자신으로 인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죄책감은 무거운 마음의 짐으로 다가올 것이다. 어쩌면 지훈이 조각하는 병정들은 그런 지훈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을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유일한 도구일 것이다. 하지만 그 마저도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이 없게 된다면, 지훈은 더 이상의 희망을 생각할 수 없게 되겠지. 마지막 남은 끈을 쥐어잡고 있던 힘이 모두 사라지면, 지금까지 겨우 견디고 있던 그 마지막 힘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 마지막 힘을 쥐어 짜 지훈은 자신이 가야할 곳을 향해 가는 선택을, 그 탈출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에게는 장 같은 친구도, 라희처럼 마음을 내어 줄 친구도 없었다. <샌드힐> 속 지훈에게는 그런 친구들이 있다. 나는 그 인물들을 통해 치유되었다.(185쪽_'작가의 말' 중)

작가의 말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훈이 외롭고 슬프고 아프기만 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에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분명, 고통 속에 혼자 버려진 듯한 느낌에 한없이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잡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지훈과 눈 마주치고 웃어주며 함께 이야기나누고 동행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다. 사실은 이런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지훈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힘이 생겼을 것이다. 지훈의 입에서 '희망'이란 단어가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런 힘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지훈에게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쉽게 사라지지 말아야 한다는, 분명 가야만 한다는 그런 이유. 그 이유를 만들어 준 존재 또한 친구들이었다.

나는 장의 편지를 접었다. '우리는 영원히 친구야.' 나는 중얼거렸다. 가슴에 있는 얼음 조각 하나가 녹는 기분이었다.(179쪽)
이제 진짜 잠을 잘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날 것이다. 자는 동안 라희가 사라질까 봐 손을 꽉 잡았다. 손이 따뜻했다. 라희도 내 등 위에 엎드렸다.(182-3쪽)

여전히 지훈의 곁에는 친구들이 있다. 친구들이 만들어주는 따뜻함으로 지금껏 힘겹게 버티려고만 하고 있던 차가웠던 지훈의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릴 수 있는 것이다. 따뜻함의 온기가 다시 지훈을 감싸고, 그 따뜻함으로 다시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겉에 생긴 상처는 약을 바르고 치료하면 언젠가는 낫는다. 흉터는 생기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흉도 옅어진다. 하지만 안에 생긴 상처는 약을 바를 수도, 쉽게 치료할 수도 없다. 치료가 된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흔적이 오래 간다. 지훈의 마음 속 상처는 무척 깊다. 그 깊은 상처를 한순간에 사라지게 만들 수는 없다. 어쩌면 평생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이후 지훈이 대해 걱정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다. 분명, 서서히 조금씩, 상처는 작아질 것이고 차가웠던 마음도 따뜻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무척 불안하고 마음이 불편했다. 지훈에게 계속 나쁜 일들이 거듭될까봐 조마조마하고 아팠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내려놓고 지훈의 삶에 '희망'이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졌다. 지훈이 이제 그만 아프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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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게
모예진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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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게. 모예진 그림책. 문학동네. 2018.

제목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읽어보게 된다. 제일 먼저는 물음표를 붙여서 읽고 싶어진다. '어디로 가게?' 그렇다면 저 질문에 무엇이라고 답할까. 어디로 간다고 할까,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표를 준다면, 나의 답은 어디가 될까. 그 다음은 '어디로 가게!' 느낌표를 붙여본다. 가지 말라는 뜻으로 읽히거나 혹은 어디로 갈 것인지 너무 궁금하다는 느낌이 든다. 자칫 너무 강한 느낌으로 다가와 아직 어디로 갈 지를 결정하지 않은 입장에서라면, 부담스러울 것 같다. 헌데 이 책은 '어디로 가게'의 명사로 읽어야 한다. '가게'. 어디로든 갈 수 있도록 표를 건네주는 묘묘 씨의 가게. 손님들은 누구든 묘묘 씨로부터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는 표를 받을 수 있다. 묘묘 씨 덕분에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것이다. 묘묘 씨는 그렇게 누구든 어디로든 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고맙고도 소중한 '어디로 가게'의 주인이다.

"그런데 묘묘 씨는 한 번도
여행을 떠나 본 적이 없어.
어디로 떠나야 할지 몰랐거든."

정작 묘묘 씨는 막막하다. 떠나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어디로 갈 지를 모르니까. 나도 이 기분이 어떤 것일지 알 것 같다. 나도 정작 떠날 수 있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 지 정하지 못할 것 같으니까. 도착하고 싶은 곳의 분위기와 느낌만 갖고 있을 뿐 딱히 어디라고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말이다. 그저, 내가 좋아할 분위기의 바로 그곳으로의 여행을 막연하게 동경하기만 할 뿐. 묘묘 씨도 그렇지 않을까. 많은 여행자를 떠나보내는 일을 매일 하고 있다. 그 매일의 일상이 어떤 면에서는 정작 자신이 갈 곳은 결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또 다른 굴레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막상 떠난다고 해도 어떻게 가면 좋을지에 대한 생각만 가득하지 쉽게 실천으로 옮기기엔 또 다른 용기가 필요하기도 하니까.

"그때 묘묘 시는 발견했어.
길 건너편에 처음 보는 문이 있는 거야."

그런 묘묘 씨에게 선물처럼 나타난 '문'. '문'이라는 도구가 가고 있는 역할이 참 묘하면서도 신기하다는 생각을 한다. 닫혀 있을 때는 단절이지만 손잡이를 돌려 빼꼼 여는 순간, 소통이 된다. 물론, 이때 중요한 것이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여는 행위이겠지만. 문을 바라만 본다고 저절로 문 밖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손잡이를 잡고 돌리는 데에는 그만큼의 힘이 들어야 한다.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수도 있다. 궁금함을 생각으로 풀어나가기만 할 수도 있다. 그저 그렇구나, 하고 그냥 스쳐 지날 수도 있다. 나와 상관 없는 공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묘묘 씨는 기꺼이 그 문을 열고 들어가 본다. 그리고 그 다음의 문을 또 그 다음의 문을 열고 나아가는 쪽을 선택한다.
이 선택이 중요한 것 같다. 사실 선택하지 않고 다시 돌아선다면 그 다음의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한 발짝 앞으로 다가가보는 시도가 새로운 여행이 가능할 수 있는 시작이 될 수 있으니까. 언젠가 지인이 경험주의자가 되라고 했던 적이 있다. 시도하지 않고 다가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고. 새로운 것에 대해 직접 몸으로 부딪혀보는 경험주의자가 되어 다양한 것을 해보기에 주저하지 말라고. 그 동안의 생각을 바꿔주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묘묘 씨 역시 그런 경험주의자가 되어보았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통해 문 밖에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 많은가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는 기꺼이,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표를 들고 언제든 가게 밖으로 나설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지금도 여전히, 묘묘 씨는 여행 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살짝 해본다.

다시 제목을 본다. 꼭 '가게'로 읽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게?'로 읽어도, '가게!'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이것 또한 읽는 사람 마음대로, 시도해보는 거다. 그러면 이 제목에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어디로 갈까? 묘묘 씨가 있는 '어디로 가게'로 찾아가 물어보고 싶다. 묘묘 씨,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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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토마토, 기막힌 가지
박찬일 지음 / 창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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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토마토기막힌가지 #박찬일 #에세이 #서평단 #서평 #책추천

망할 토마토, 기막힌 가지. 박찬일 에세이. 창비. 2014(개정판 2025).

제목에 끌렸다. '망할'이라니! 토마토가 무슨 죄가 있기에 망할, 이라고 표현했을까 궁금했다. 역시, 읽어보니 토마토는 죄가 없다. 그저 그 토마토에 이끌리 사람들의 잘못이 있으면 있을 뿐. "토마토만 이해하는 데도 평생이 필요하다."(19쪽)라고 생각하는 사람 밑에서 토마토를 요리해야 한다면, 당연히 '망할'이라고 말할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밌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재밌다. 사실, 음식이나 식재료에 그다지 진심이지 않은 사람으로서, 이 책이 막 끌리고 엄청 흥미롭지는 않았다. 그런데 가만가만 읽다보면 흥미로워지고 또 재미있어졌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이 책은 단순히 음식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였다. 음식이란 누군가가 먹거나 혹은 먹이려고 내놓는 것이라면, 음식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충분히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음식은 그저 맛이나 향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그 음식을 만나 먹었는가가 종합적으로 기억으로 남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기억의 종합적 서사이고,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음식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에 그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재밌는 것이다.
무려 11년 전에 나왔던 책이라는 것, 그럼에도 11년 후에 읽어도 손색이 없는 책이라는 것,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읽기에 충분히 좋은 책이라는 것. 시일이 정해진 책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책은 아마도 또 11년 후에 다시 개정판이 나와도, 또 읽기 좋은 책을 것이다. 음식은, 그리고 그 음식과 관련한 기억과 추억은 오래 묵힐수록 더 재밌고 진해질 테니까 말이다.

아귀찜을 놓고 무려 열명의 지역 문사들이 시를 짓고 글을 올렸다. 그러니까 마산에선 아귀로 시도 짓는다. 마산에서 아귀찜을 자리가 어디인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107쪽)

그러니까 말이다. 얼마나 대단하면 제대로 각 잡고 시를 짓기까지 했느냐 말이다. 그런 면에서 어떨 때는 내가 사는 우리 지역에, 전국적으로도 소문나고 찾아올, 그런 대표 음식이 있다는 것은 큰 자부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고장이나 지역에 대한 애정이 적어서 그런가, 내가 살고 있는 곳의 대표 음식을 굳이 떠올리려 노력한 적도 없어서 그런가, 이런 이야기가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있어서 음식이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용도로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도 실감했다. 어린 시절 밥 대신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알약이 개발되어, 그저 알약 하나로 식사를 끝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나로서는 무척 흥미로울 수밖에.

엄한 어른들 틈에서 집은 굴비 한점은 간단한 소금 맛으로 혀에 남아있다. 그후로 다시는 그런 굴비 맛을 보지 못했다. 내 혀가 둔해진 건지 모르겠으나 어렴풋이, 공활한 가을 하늘 아래 화덕에 굽는 굴비가 아니기 때문이야,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소금 간 잘된 좋은 굴비야 돈으로 살 수 있겠지만 유년의 가을을 되살 수는 없는 법이다 어쩐지 슬퍼진다.(162쪽)

이런 이야기가 가득이다. 음식에서 비롯된 당시의 추억이 어떻게 내면화되어 간직되고 있는지. 그 추억의 맛을 재현할 길이 없어 그저 아쉬운 마음을 가득 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는가 말이다. 이 책이 갖고 있는 매력이다. 음식을 하는 사람의 섬세한 감정과 그 깊이가 무척 다정하게 담겨 있다.
요즘 부쩍 음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소개되고 있다. 최근 다른 셰프의 책을 읽으면서도 들었던 생각이지만, 음식이 다분히 사회, 문화, 정치, 경제, 예술 등 다양한 영역이 종합되어 논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그저 입 안의 즐거움, 배를 채우는 포만감을 넘어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사회적 산물이며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즉, 오래 전부터 차곡차곡 쌓여오는 풍속의 내막이 그대로 음식에 담겨 나오는 느낌이었다.

<뜨거운 한입>이었던 기존 제목도 납득이 갔다. 내 입으로 들어오는 그 음식이 어떤 이야기를 품고 어떤 과정을 거쳐 뜨겁게 들어오게 되었을 지를 짐작하게 해 주니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음식이란, 단순한 잣대로 쉽게 말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한 시대 혹은 그 이전의 시대부터의 중첩되어 현재까지 이어지는 문화의 대표적인 소산이라는 것을. 이 책, 참 잘 읽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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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는 낙원 - 무루의 이로운 그림책 읽기
박서영(무루) 지음 / 오후의소묘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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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모르는낙원 #무루 #에세이 #오후의소묘 #서평단 #서평 #책추천

우리가 모르는 낙원. 무루 에세이. 오후의소묘. 2025.

우선, 재밌다. 그림책을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림책과 상관 없이 이 책은 재밌다. 깔깔 웃을 수 있는 재미를 얘기하는 건 아니고, 갖가지의 우리 삶과 인생 혹은 철학과 사상에 대해서도 가만히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에 대해 순간, 깊이 빠져들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한 순간,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을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책 한 권을 읽었지만 책 속에서 소개하고 있는 많은 그림책을 함께 읽은 기분이다. 그리고 조만간 도서관을 찾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그림책을 한 권 한 권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만들었다. 제대로 이 책에 푹 빠졌다.

그림책은 독자에게 언제나 재독을 요구한다. 아무리 단순하게 그려졌다 하더라도 그림책의 그림은 반드시 다시 읽었을 때 더 잘 보이는 맥락과 의미를 지녔다. 새롭게 발견된 이야기와 이전의 이야기 사이의 관계는 오답 노트 같은 것이 아니다. 오독은 실패가 아니라 이해에 도달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야기들은 그 과정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150쪽)

절실하게 공감한다. 그림책을 읽다보면 금방 읽었는데도, 한 번 더, 또 한 번 더 읽게 된다. 자꾸 읽으면서 그 전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숨은 요소를 찾게 된다. 놓쳤던 부분, 혹은 봤지만 미처 알아채지 못한 부분이 그 다음에 하나씩 발견될 때, 기분이 좋다. 또 다른 걸 찾는 기분으로 다시 앞으로 돌아가 책장을 넘기게 되니까. 그림책의 매력이 이런 게 아닐까.

그는 아예 공원의 작은 회양목 울타리 뒤켠에 강낭콩을 심기로 한다. 작전은 성공했고 이제 산책하는 노부인의 얼굴은 전에 없이 기쁨으로 충만하다. 7월의 어느 날 공원 관리인의 손에 콩이 뽑혀 버려지기 전까지는. 자신의 소중한 콩이 잡초와 다름없이 여겨진다는 사실을 노부인의 당당히 받아들인다.(60쪽)

깜짝 놀랐다. 당연히, 어머! 나의 소중한 강낭콩을! 하면서 속상해하고 좌절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당당하게 받아들인다니. 이 순간 내 손을 꼭 쥐어봤다.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 소중하다고 함부로 하기 싫은 것들에 대해 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었을까. 아주 작은 것 하나도 내 손 밖으로 사라지는 순간 안절부절 못했던 기억이 스쳤다.

이웃의 빈곤이라는 공동체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마을 주민들이 보여주는 타산적 연대의 동력은 공포와 이기심이다. 이 돌봄의 기저에는 손익계산에 근거한 방어기제만이 있다.(73쪽)
이 이야기가 실은 구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추방의 이야기였음을. 확실성의 세계가 구석진 골목의 일부를 떼어낸 뒤 캐비닛에 불확실성을 봉인하듯 세상으로부터 크리쳐들이 유리되는 과정을 그저 한 남자의 빛바랜 추억 속에서 쓸쓸히 되새겼을 뿐임을.(121쪽)

타산적 연대, 추방. 이런 단어를 마주하며, 우리 사회의 가장 가장자리, 누구나 인정하기 싫은 이면의 모습을 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감고 모른 척 넘기고만 있을 뿐 이 사회를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축인 것만은 사실이니까. 이런 사실을 간과하기보단 꺼내 들추고 보여주며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 지금의 우리 사회 역시 손익계산을 통한 추한 이기심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허울 좋은 겉모습을 위해 그 외의 모습은 그저 감추고 포장하려는 데에만 급급하고 있다. 추방이란 단어가 주는 혐오가 순간 느껴졌다.

인간과 요괴, 사람과 느림, 현실과 환상, 이성과 감성, 논리와 직관, 주체와 객체. 글과 그림은 두 세계를 각각 상징한다. 보이지 않는 것, 목소리가 없는 것, 믿기 힘들거나 증명 불가능한 것.(142-3쪽)

<숲의 요괴>라는 작품이 가장 궁금했다. 두 세계의 글과 그림을 통해 우리의 욕망과 본성을 확인시켜주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인간은 어느 쪽을 쫓으며 혹은 현혹되어 살아가고 있는지, 그렇게 사는 삶이 온전한 것이 맞는지를 질문 던지고 있다는 느낌. 나의 속을 드러내놓으라고 부추기고 있는 책이 것만 같았다.

이 책이 갖고 있는 매력이다. 자꾸 나를 들여다보게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궁금하게 만들고 또 나의 진짜 마음을 따져보라고 다그친다. 질문하게 만들고 그 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힌트를 준다. 이렇게 끝내기 아쉬울 정도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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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에 입술을 달아주고 에세이&
이근화 지음 / 창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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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에 입술을 달아주고. 이근화 에세이. 창비. 2025.

시인의 에세이를 읽다보면 어느 순간 에세이가 아닌 시를 읽는 느낌을 받곤 한다. 이 책 역시 그랬다. 분명 산문인데 시가 되는 마법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래서 시인이구나 싶었다. 시인의 내밀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면서 그 이야기 중 독자로 하여금 멈칫하게 만드는 지점이 곳곳에 있었다. 차마 그냥 넘길 수 없는 이야기, 화가 나고 슬퍼지는 지점, 따뜻하면서도 애틋한 부분, 그러면서도 자세를 다시 고쳐 앉아 읽어야할 것만 같은 이야기까지. 마치 우리가 살면서 느끼게 되는 갖가지의 감정으로 조목조목 풀어내고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하나의 감정이 아닌 여러 갈래의 감정이 마음껏 움직여 떠다닐 수 있도록, 그렇게 떠다니는 감정을 따라 독자도 함께 흘러갈 수 있도록 해주는 듯했다.
에세이를 읽다보면 자꾸 글쓴이가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며 성격은 어떻고, 어떤 심성과 가치관을 지니고 있으며, 그래서 어떤 삶의 지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를, 혼자 가늠하고 판단하게 된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글쓴이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고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글쓴이를 짐작해보는 건 또 하나의 재미이기도 하니 이런 생각을 놓을 수는 없다. 그래서 들었던 생각인데, 시인은 무척 착한 사람이구나 싶다. 언젠가부터 착하다는 말이 칭찬이 아닌 말로 쓰인다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착한 사람이 좋고 또 나 또한 착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러니 이 말은, 시인이 참 마음에 든다는 뜻이다.

엄마는 예민하고 지극한 사람이다. 평생 흔들림 없이 아내와 엄마의 자리를 지켜왔기에 아빠는 엄마가 죽는 순간까지 잘 보살펴주고 싶다고 울먹거리며 자식들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26쪽)
높낮이와 좌우를 따지는 일은 무용한 집착이라는 것. 어떤 편향과 위계가 사람의 살이를 망칠 수도 있다는 것. 편견과 억압이 인간을 구부리고 괴물을 만들어낸다는 것. 결국 자연에 대해 생각해본다.(...) 인간사회는 더 축소되고 삶을 살아가는 자세는 절제되어야 한다.(113쪽)

이 책을 읽으며 마치 시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겠다는 마음이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시인의 마음에 나도 마음이 가고 또 일정 부분 비슷한 생각이 겹치면서, 공동의 가치관을 품고 있다는 동질감을 느꼈다고나 할까. 시인의 이야기 꼭지들을 읽으며 속으로, '나도!' '맞아!' '아, 진짜!' 같은 말들로 동조하며 읽었기 때문이다. 엄마에 대한 생각도, 황인숙 시인과의 데이트도, 자연을 대하는 마음도, 그리고 사람을 소중히 하고 그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것도 모두, 아름답게 느껴졌다. 어느 것 하나 함부로 하지 못하는 사람,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스스로 단속하는 것으로 방법을 찾는 사람, 조용히 자신을 단속하며 내면의 단단함을 만들어나가는 사람, 그러면서도 화를 낼 줄 아는 사람. 내가 본 시인은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런 사람이 풀어내고 있는 말들 또한 아름답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번씩 사람을 제대로 흔들어놓는 문장들이 곳곳에 보였다.

세세한 돌봄은 아내에게 미뤄둔 채 분위기 파악 못하고 버럭하는 남편들, 상황 무시하고 아무 때나 요즘은 정말 편해졌어 하는 어르신들, 엄마가 뭘 알아 하는 사춘기 아이들을 마주 대하면 화가 치민다. 싹 긁어모아 보자기에 싸서 한강에 내던져버리고 싶다.(39쪽)
두 다리 멀쩡히 달려 있어도 골목길에서 넘어지는 것처럼 그렇게 자주 넘어지는 인간이 바로 나였다.(86쪽)
종강할 무렵 부고가 날아왔어요. 망할 놈의 수업, 아니 다 핑계지요.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160쪽)

이런 솔직한 감정과 문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자신의 삶과 생각, 그리고 사람과 그 관계를 곱씹을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 가능한 표현들이었다.

가만히 응시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때로는 강약의 조절을 통해 깊게 혹은 여유롭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는 이야기이었다. 나도 딸이고 또 엄마이며, 나의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는 생활인으로서, 시인의 마음을 나의 마음처럼 읽어낼 수 있게 해 준 글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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