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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에 입술을 달아주고 ㅣ 에세이&
이근화 지음 / 창비 / 202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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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에 입술을 달아주고. 이근화 에세이. 창비. 2025.
시인의 에세이를 읽다보면 어느 순간 에세이가 아닌 시를 읽는 느낌을 받곤 한다. 이 책 역시 그랬다. 분명 산문인데 시가 되는 마법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래서 시인이구나 싶었다. 시인의 내밀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면서 그 이야기 중 독자로 하여금 멈칫하게 만드는 지점이 곳곳에 있었다. 차마 그냥 넘길 수 없는 이야기, 화가 나고 슬퍼지는 지점, 따뜻하면서도 애틋한 부분, 그러면서도 자세를 다시 고쳐 앉아 읽어야할 것만 같은 이야기까지. 마치 우리가 살면서 느끼게 되는 갖가지의 감정으로 조목조목 풀어내고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하나의 감정이 아닌 여러 갈래의 감정이 마음껏 움직여 떠다닐 수 있도록, 그렇게 떠다니는 감정을 따라 독자도 함께 흘러갈 수 있도록 해주는 듯했다.
에세이를 읽다보면 자꾸 글쓴이가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며 성격은 어떻고, 어떤 심성과 가치관을 지니고 있으며, 그래서 어떤 삶의 지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를, 혼자 가늠하고 판단하게 된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글쓴이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고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글쓴이를 짐작해보는 건 또 하나의 재미이기도 하니 이런 생각을 놓을 수는 없다. 그래서 들었던 생각인데, 시인은 무척 착한 사람이구나 싶다. 언젠가부터 착하다는 말이 칭찬이 아닌 말로 쓰인다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착한 사람이 좋고 또 나 또한 착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러니 이 말은, 시인이 참 마음에 든다는 뜻이다.
엄마는 예민하고 지극한 사람이다. 평생 흔들림 없이 아내와 엄마의 자리를 지켜왔기에 아빠는 엄마가 죽는 순간까지 잘 보살펴주고 싶다고 울먹거리며 자식들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26쪽)
높낮이와 좌우를 따지는 일은 무용한 집착이라는 것. 어떤 편향과 위계가 사람의 살이를 망칠 수도 있다는 것. 편견과 억압이 인간을 구부리고 괴물을 만들어낸다는 것. 결국 자연에 대해 생각해본다.(...) 인간사회는 더 축소되고 삶을 살아가는 자세는 절제되어야 한다.(113쪽)
이 책을 읽으며 마치 시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겠다는 마음이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시인의 마음에 나도 마음이 가고 또 일정 부분 비슷한 생각이 겹치면서, 공동의 가치관을 품고 있다는 동질감을 느꼈다고나 할까. 시인의 이야기 꼭지들을 읽으며 속으로, '나도!' '맞아!' '아, 진짜!' 같은 말들로 동조하며 읽었기 때문이다. 엄마에 대한 생각도, 황인숙 시인과의 데이트도, 자연을 대하는 마음도, 그리고 사람을 소중히 하고 그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것도 모두, 아름답게 느껴졌다. 어느 것 하나 함부로 하지 못하는 사람,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스스로 단속하는 것으로 방법을 찾는 사람, 조용히 자신을 단속하며 내면의 단단함을 만들어나가는 사람, 그러면서도 화를 낼 줄 아는 사람. 내가 본 시인은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런 사람이 풀어내고 있는 말들 또한 아름답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번씩 사람을 제대로 흔들어놓는 문장들이 곳곳에 보였다.
세세한 돌봄은 아내에게 미뤄둔 채 분위기 파악 못하고 버럭하는 남편들, 상황 무시하고 아무 때나 요즘은 정말 편해졌어 하는 어르신들, 엄마가 뭘 알아 하는 사춘기 아이들을 마주 대하면 화가 치민다. 싹 긁어모아 보자기에 싸서 한강에 내던져버리고 싶다.(39쪽)
두 다리 멀쩡히 달려 있어도 골목길에서 넘어지는 것처럼 그렇게 자주 넘어지는 인간이 바로 나였다.(86쪽)
종강할 무렵 부고가 날아왔어요. 망할 놈의 수업, 아니 다 핑계지요.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160쪽)
이런 솔직한 감정과 문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자신의 삶과 생각, 그리고 사람과 그 관계를 곱씹을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 가능한 표현들이었다.
가만히 응시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때로는 강약의 조절을 통해 깊게 혹은 여유롭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는 이야기이었다. 나도 딸이고 또 엄마이며, 나의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는 생활인으로서, 시인의 마음을 나의 마음처럼 읽어낼 수 있게 해 준 글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