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목격한 사람 - 고병권 산문집
고병권 지음 / 사계절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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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궁금했다. '사람'을 목격한 '사람' 중 앞의 '사람'은 누구이고 뒤의 '사람'은 누구일까. 특히 표지에 앞의 '사람'은 총 다섯 종류의 글씨체로 각각 쓰여 있으며, 이 제목이 총 다섯 번 적혀 있다. 결국 앞의 다양한 '사람'에 더 중심을 두고 있겠구나, 싶은 짐작은 했다. 그리고 다섯 번이나 반복해서 적혀 있다는 건, 중요하다는 뜻(반복은 강조니까!)이니 더욱 궁금했다.

하지만 나는 '사람'이라는 말에 이들 모두를 담고 싶다. 말의 의미를 바꾸어서라도 말이다. 애초에 '사람'이 '살다'에서 나온 게 사실이라면 그리고 이 말에 생명의 고귀함이 담겨 있다면, 나는 사람임을 부인당한 모두에게서 사람을 본다. 이들 모두가 위태로운 사람들이고 이들 모두가 고귀한 사람들이다.(7쪽_'프롤로그' 중)

'프롤로그'를 읽으며 저자가 어떤 마음으로 이 글들을 엮었을지 짐작이 갔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그 짐작이 맞아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 맞아 떨어져서 기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이 불편했다. 이 불편함은 이 세상을 허투루 보지 않겠다는, 그래서 '사람'을 더욱 잘 보겠다는 다짐과 비슷하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세상에 대한 일침, 그리고 그 일침을 스스로 마음에 새기며 제대로 '사람'으로 보겠다는 의지의 불편함. 내 마음 하나 편하자고 멋대로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두고 두고 펼쳐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가끔 나 스스로 나 자신이 안이해지고 편한 쪽으로만 바라보려는 시선이 생기려고 할 때, 어떤 꼭지라도 펼쳐 읽기만해도 그 마음을 다시 단속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의 책. 저자는 이미 나에게 이름만으로도 믿고 읽게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어서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마음을 굳혔다. 이 책은 가끔(자주 보려고 든다는 건, 나 스스로 내가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 더 많이 생긴다는 것이니, 그건 사양한다), 다시 들춰봐야할 책이라고.

책을 읽고 든 또 하나의 생각은, 뒤의 '사람'이 참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 '사람'의 시선으로 '사람'을 볼 줄 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런 사람이 우리 사회에 있음을, 그래서 이 세상과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보아오고 있음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 중 나도 한 '사람'일 수 있기를 바라기도 했고. 나는 여전히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자신있게 나서서 목소리를 낼 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좀 없지만, 이런 '사람'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이 이 '사람'들과 다르지 않음을 마음으로라도(이 지점이 나에겐 늘 풀지 못하고 있는 숙제이지만) 잊지 않으려는 것이다.
내가 직접 참여하고 행동하며 함께 연대할 줄 아는 실천력은 없다. 나 스스로가 갖고 있는 깜냥이 이 정도밖에 안 되어 그럴 지, 아니면 용기가 없어서 그럴 지, 혹은 둘 다일지 모르겠지만. 생각과 의식만으로 지금 산재해 있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생각 다음이 필요한데, 마치 그 다음은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 품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에 고개는 끄덕여도 옳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면에서 오히려 이 세상은 잘못된 생각을 가진 자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리는 사회인 것은 아닌지, 요즘 더욱 더 자주 생각해보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이 책의 역할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 불편하게, 그래서 자신을 자꾸만 들여다보고 생각을 점검하게 만드는 데 있는 것 같다. 저자의 글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을 해야한다고 강하게 호소하고 있지는 않다. 그저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진솔한 표현들일 뿐인데도, 읽는 나로서는 자꾸만 마음의 부담을 안게 된다. 그러니 더 자꾸 책을 들여다보게 될 수밖에. 그 마음의 부담을 쉽게 내려놓지 않을 수 있도록, '사람'에 대한 시선을 거두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허리를 곧추 세우고 몸에 힘을 주어 단단하게 위태롭지만 고귀한 '사람'들에 대해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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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탈한 하루 - 다정하게 스며들고 번지는 것에 대하여
강건모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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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하세요?"
그와 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무슨 일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잠시 대답을 망설이곤 한다. 넓은 의미에서는 프리랜서이지만 그것은 직업 분류일 뿐, 내가 하는 일이 다양해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그러다보니 묻는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질문한 사람이 책과 관계가 있으면 작가나 편집자로 소개하고, 사진 찍기를 좋아하면 사진가, 음악을 즐겨 듣는다고 하면 작곡가 또는 싱어송라이터, 영화나 영상 쪽 일을 하면 영상 제작자, 강의나 전시 등 예술 관련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으면 문화예술 강사, 예술 기획자가 되는 식이다.(172-173쪽)

와, 부럽다! 무슨 일을 하냐는 말에 한 가지밖에 대답할 말이 없어, 밝혀야 하나 밝히지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는 나와는,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하는 저자의 모습이 마냥 부러웠다. 그만큼 할 줄 아는 것, 하고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많다는 뜻이고, 그래서 이 많은 것들을 다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마흔 되기 전에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서요."(41쪽)라고 말하고 자신이 하던 일을 과감히 접고 퇴사할 용기를 가진 것도 부러운 지점이었다. 그만큼 자신에 대해 자신이 있었다는 뜻으로 보였다. 순간, 이 경우에 나를 대입해보았다. 과연 나는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마흔을 넘어서는 어느 지점에서 비슷한 질문을 여러 번 받곤 했다. 만약 더 젊은 시절을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겠느냐고. 다시 돌아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겠냐고. 그때마다 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했었다. 지금 여기까지 살아오면서 쌓아온 시간들이 너무 아깝다고. 지금의 나에 만족한다고. 헌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만족하는 것이 맞았나, 혹시 안정적인 생활을 착각한 것은 아닐까 과거의 나에게 의심을 품게 된다. 지금 마흔도 훌쩍 넘겨 쉰에 더 가까운 이 시점에서, 다시 이 질문을 받게 된다면, 난 좀 신중히 대답하느라 '음음, 어어, 쩝쩝 등'의 뜸을 들이게 되지 않을까.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제게 중요한 의미이자 가치인 다정함은 추운 겨울밤 조용히 타오르는 모닥불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꺼지지 않는 한 저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49쪽)

같은 질문을 나에게도 던져 보았다. 과연 나에게는? 닉네임에 포함시킨 '행복함', 아니면 사회에서는 인정받지 못하지만 나와 한몸 같은 '착함', 나보다는 타인을 위한 '친절함', 그렇지만 때에 따라 나를 올곧게 세우고자 할 때의 '단호함'. 떠올리려하면 할수록 하나를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떠오르는 가치가 많아졌다. 그래서 포기. 딱 하나로만 내가 원하고 지향하는 가치를 찾기에는 불가능하다. 그냥, 가볍게 생각해도 쉽게 떠오르는 모든 가치를 몸에 품고 있는 나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우선, 정리했다.

저자가 던진 질문들이 있었다. 그 질문들에 대한 저자의 답을 책 한 권으로 읽었으니, 나도 각 질문에 대답을 해보면 어떨까, 책을 덮으며 생각해 보았다.

*오늘 당신의 하루는 무슨 색이었습니까? 어떤 향기가 났습니까?
_하얀색 그리고 까만색. 말라가는 빨래 냄새. 새벽부터 내리는 눈을 거실등을 끄고 보면 하얗게, 거실등을 켜고 보면 까맣게 보였다. 거실에 널어놓은 빨래가 말라가는 냄새가 났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 마음의 등을 켜고 볼 때와 끄고 볼 때가 달라진다는 것을. 때론 불을 끄고 고요한 어둠 속에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보이는 것들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내 마음의 축축함도 함께 마르기를 바랐다.

*어릴 때처럼 뭔가가 궁금했던 순간이 있었습니까?
_펄펄 내리는 눈을 맞으며 마냥 신나 뛰는 아이들의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다, 그 아이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어떤 마음이어야 마냥 행복하게 눈을 맞을 수 있을까. 아이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 이상 평생 그 마음을 알 길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얻었나요?
_열정과 도전을 잃었고, 안정과 반복적인 일상을 얻었다. 잘 살고 있는 건가?


*오늘 마음의 마당에는 어떤 꽃이 피어 있었습니까? 무엇에 스며들고 번졌나요?
_얼음 속에 피어있는 할미꽃. 조만간 가느다랗고 하얗게 변할 것만 같다. 그리고 시들겠지. 다시 계절이 한 바뀌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지.

*나에게, 타인에게 얼마나 다정했습니까?
_나에게도 타인에게도 다정하지 못했던 것 같다. 요즘 그랬던 것 같다. 이 질문에 자신있게 난 다정한 사람입니다, 라고 답을 하지 못하겠다.

폭낭뿐 아니라 소나무, 밤나무, 자작나무 등 몇몇 나무들이 일부러 잎을 떨어뜨려서 태풍을 피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바람이 닿는 면적을 스스로 줄이는 것이다. 내가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그들만의 대처 요령이 있는 거였다.(70쪽)

나무와 자연에서 얻는 배움이 있다. 마당을 작업실 삼아 글을 읽고 쓰는 저자의 모습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연 속의 삶이 그대로 글에 담기겠다는 생각을 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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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보는 마음 - 우리 시대의 시인 8인에게 묻다
노지영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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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와 시인들의 만남. 시인들의 내밀하고 솔직한 시에 대한 이야기를 가감없이 담아낸 두툼한 인터뷰집을 읽었다. 인터뷰집이어서 처음엔 마치 만담을 듣는 마음으로 가볍게 읽어나가도 좋겠다는, 감상자의 입장으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그 마음을 접고, 각 잡고 앉아 읽기로 마음을 바꿨다. 그만큼의 묵직한 시인들의 철학이 무게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름 국문학을 전공하고 발뒤꿈치 정도는 문학에 담그고 있다고 어디 가서 이야기하기에도 이젠 부끄럽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삶 한 곁에 문학을 두고 오고가며 곁눈질하는 삶을 살고는 있는 나에게, 이 책은 또 한쪽 측면으로의 자극이 되었다.
이 책을 가만히 읽으며 떠오른 이미지가, 여전히 우리 시는 어렵다는 것이 전제로 깔려 있나보다 였다. 독자의 입장에서 어떤 시를 어떻게, 그리고 시인이라는 시를 이렇게 써야지, 하는 선배들의 조언이 아낌없이 담겼다고나 할까.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시를 가운데 두고 오고가는 시인과 독자 사이의 대화, 그리고 그 거리감.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시론에 대한 생각을 각 시인에게 공통 질문으로 던지는 저자의 의도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시인의 특징이 그래도 묻어나는 대답들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었다.
그러면서, 시는 왜 어렵게만 다가오게 될까, 였다. 시를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장르가 시고, 나 또한 이젠 난해(이건 오로지, 전적으로, 나의 시 해독 능력의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해서 완벽하게 시의 이야기를 내 내면으로 끌어와 공감하기 못하는 시들이 많아지는 현실 앞에서 나를 깎아내리는 결론이 씁쓸하기도 했는데, 마지막 김기택 시인의 말에 시를 멀리하지 않아도,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겠다는 위로를 받았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독자들이 오독을 하는 건 크게 상관이 없어요. 시인이 쓴 것과 달리 독자는 엉뚱한 거 상상하면서 흥분하고 좋아하게 되는 것도 저는 굉장히 좋은 감상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얘기하는 생동감이라는 것은 바로 그런 내면의 운동, 즉 독자의 내면ㄴ에서 일어나는 감각의 운동이자 정신적인 운동인 거죠. 그렇게 되면 독자가 시에 참여하는 것이고, 독자가 창작자가 되는 것이고,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고, 작품의 완성은 독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죠.(354쪽_'시인의 둘레길, 김기택' 중)

새로 알게 된, 특별한 대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인의 목소리로 직접 들었을 때 자괴감에 빠진 독자에게는 큰 위로와 힘이 되어주는 법이니까. 그런 면에서 내내 인터뷰를 읽어오다가 마지막에 불편한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문학이든 예술이든 시민운동이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 못지않게 기존의 완강한 이야기를 흔드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라고 봅니다.(28쪽_'생명에의 옹호, 이문재' 중)
시인들은 다 약자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지 않나요? 다치고 버려진 자들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지 않나 싶어요. 기본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여기에 있는 말들로 다 표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저 말을 쓰는 것이고요. 또 여기에 있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저기의 세계를 그리는 거잖아요.(123쪽_'시인은 그렇게 살겠지, 신용목' 중)
기본. 기본으로 돌아가야 해요. 뭐 하러 시를 쓰고 글을 씁니까. 끊임없이 달라져야 하는 거죠. 누가 나보고 변했다고 그럴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나는 야, 그렇게 변하려고 기를 쓰는데 사람 변하는 게 그렇게 힘들더라. 오히려 이렇게 답변해요. 그렇게 변하려고 기를 쓰는데도 못 변하는 게 큰 문제입니다. 시인이라면 어쨌거나 변하려고 기를 써야죠.(267쪽_'번역들, 김정환' 중)

시인들이 시를 쓰는 관점과 그 시를 통해 어떤 생각을 세상에 펼치고 나아가고자 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뭔가 시만큼이나 심오하고 어려운 일이 시인의 시작 활동이라는 생각도 더불어 했다. 시를 써본 경험은 많지 않지만, 쓸 때마다 작위적인 느낌이 많이 들었다. 지나치게 나 자신을 옹호하고 과장되게 키우려는 심리도 강했고. 그러다보니 (시 다운 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시가 시 답지 않다는 느낌이 들곤 했는데, 내가 알고 있는 시는 겉핥기에 불과했구나, 반성이 됐다. 시인들이 부단히 구축해내려는 시 세계 속을 감히 함부로 다 안다고 말해도 안 되겠구나, 싶기도 했다. 뭔가 시인의 이야기 속에서 나를 또 들여다보게 되는 경험의 독서였다.

이제 남은 일은, 그동안 읽어보지 못했던 시인들의 시집을 다시 찾아 읽어보는 일. 그리고 시인들의 시 말고 산문들을 찾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을 시로만 읽으려는 마음은 이제 그만, 산문이 시가 되고 시를 향해 가는 시인들의 속내가 산문 속에 담겨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산문만큼 더 솔직한 이야기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특히 강은교 시인의 이야기에서 더 확실해졌다. 독서 숙제가 많아지는 행복한 고민으로 올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해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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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박물관 순례 1 - 선사시대에서 고구려까지 국토박물관 순례 1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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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할 곳들을 하나씩 정리해보는 재미가 있다. 정확히 알지 못했던 우리의 역사와 과거를 현재의 모습에서 살펴보는 맛이 있으니까. 그런 맛이 있으에도 지금껏 한 번도, 여행의 목적이 과거를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학창시절 다녀온 수학여행이 있기는 했지만, 내가 여행을 선택해 가고자 했던 목적이 없었으므로 제외!). 그만큼 나에게 여행과 역사는 하나로 뭉쳐지기 힘든 것이었나, 이제야 새삼 깨닫게 되기도 한다. 아마도 역사 혹은 지리 전공자들에게는 친숙한 여행(혹은 답사)이 될 테지만, 난 그 경우가 아니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책으로 찾아보는 여행기(혹은 답사기)는 흥미롭게 읽곤 했다. 아무래도 내 발을 움직여 직접 경험하는 쪽보다는 편안하게 자리 잡고 앉아 책으로 훑어보는 쪽을 더 선호하는 나의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헌데 나이를 먹었는지, 이젠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이런 곳을 이렇게 돌아다니며 보고 느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책을 덮는 순간 생각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 지점까지는 여행의 계획을 세우고 절반 정도는 출발한 상태에 머물기도 한다. 이건 전적으로 유홍준 교수님의 힘이기도 하다. 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감정이기도 하니까. 다른 여행기와는 다르게 그런 느낌을 갖게 만든다. 직접 그 길을 따라 걸어야할 것만 같은 느낌. 그러니 시대 순서대로(혹은 가까운 순서대로) 찾아가봐도 좋겠다.

연천이 아무래도 가장 가까운 곳인 듯하다. 그레그 보엔이 발견한 주먹도끼도 봐야겠고, 멋드러지게 지어진 전곡선사박물관의 모습도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 연천 주상절리의 아름다운 모습은 어느 계절에 가야 어울릴까, 혼자 생각해볼 정도. 그러고보니 진짜 내가 여길 한 번도 안 다녀온 것이 맞나 싶기도 하다. '이 아름다운 강변 고을의 그윽한 정취를 맛보시라고 '강추'한다'(56쪽)고까지 하셨으니, 안 가볼 수가 있나. 여긴 날이 좀 따뜻해지면 강변에 한참 앉아 경치에 취해봐도 좋겠다.
부산은 지금껏 살면서 딱 한번 가 본 곳이다. 늘 가고싶다는 생각은 품고 있었는데 기회가 잘 되지 않았는데, 이제 부산에 아는 사람도 생겼고 얼마 전 딸의 수학여행지가 부산이기도 해, 이젠 더 미루지 말고 다시 다녀와야지 싶다. 제일 궁금한 건, 영도다리. 그리고 부산항대교의 그 아찔함이 어느 정도일지도 살짝 궁금하다. 예전 부산 방문 때도 택시 한 번 탔다가 부산 운전의 참맛을 느껴본 적이 있어 더 궁금하다. 동삼동패총전시관에서 패총도 보고, 빗살무늬토기도 구경해야지. '본래 선사시대 미술에서 통째로 벗긴 동물 가죽이나 살을 발라낸 생선뼈는 정복을 의미한다. 신석기인들의 식생활에 물고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았음을 고려한다면 이 생선뼈무늬에는 주식의 풍요와 원활한 사냥을 기원하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101쪽)는 말에 아, 생선뼈였구나, 뭔가 지금까지 늘 역사책 첫 부분에서 열심히 외우기만 했던 토기에 더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울산. 언양이라고 하는 순간, 언양불고기? 하고 떠올렸는데, 진짜 맞았다. 물론 언양읍성이나 반닫이가 더 중요! 그리고 반구대암각화를 보존하기 위해 계속 좋은 방법을 모색해보는 그 과정도 인상적이었다. 그 나라의 의식 수준이나 가치를 추구하는 지표에 과거 문화재나 역사적 유물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가 포함될 수 있을 것인데, 그런 면에서 보존대책을 마련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괜히 뿌듯했다고나 할까. 그리고 암각화는 마주할 때마다 참 신기하단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떻게 바위에 새길 생각을 했을까, 어쩜 오랜 시간 속에서도 그 모습이 남아 있을 수 있을까(역시, 바위는 대단해!), 그리고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든 다들 같은 마음으로 바위에 무언가를 새겨놓았다는 것이 참 재미있는 것 같다. 오영수 문학관을 찾는 것도 잊지 말아야할 코스.

그리고 고민이 생겼다. 이 책을 읽으면서의 마음은 이곳들을 가보고 싶다, 였는데 과연, 만주까지 내가 찾아갈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교수님은 오히려 이 만주 지역에 힘을 실어 이 책을 쓰셨지만, 난 오히려 (그나마) 마음을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는 국내 지역에 더 마음이 끌린 것이 사실이다. 아, 만주라. 이 쯤부터 원래 나의 성향이 되살아났다. 편안하게 앉은 자리에서 책 속 여행 다녀오는 것으로 만족. 다만 고구려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드는 생각 하나, 이 광활한 공간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던 고구려라는 나라의 위상과 힘이다. 요즘 말로 정리하면, 완전 '스왜그(Swag)'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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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쓰기 나름이니까 - 세 명의 여행자, 세 가지 쓰기에 대하여
모도리.셔터맨.숑숑 지음 / 낯설여관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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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고 하면 내 몸의 크기가 작아지는 느낌이다. 여행은 내 몫의 영역이 아니라고 늘 생각하고 사는 사람 중 하나니까. 그래서 더 낯설고 두려운 영역이다보니, 책을 읽어도 여행 관련 책을 잘 읽지 않게 된다. 관심이 잘 가지 않는다고나 할까.
하지만 가만히 뜯어보면 왜 여행과 거리를 둔 삶을 살았을까, 하다 보면 여러 이유가 떠오르긴 한다. 어릴 적 부유 혹은 넉넉한 삶을 살지는 않았으니, 여행의 경험을 습득하지 못했다. 아마도 이것이 대학 시절까지 연결되었고, 졸업 때까지도 여행에 대한 꿈을 품어보지 않고 그럭저럭 시간을 쓰는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겠지만, 체질적으로 매우 집순이에 겁쟁이까지 장착하고 있어 어디를 어떻게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여행에 대한 경험이 희박할 수밖에.
지금 생각하면 참 답답한 삶을 살아온 것 같아 후회되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또 그 시간만큼 내가 채워갔을 삶의 궤적이 있을테니 너무 자책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혼자 여행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는 것. 여행의 묘미는 혼자 여행을 해봐야 알 수 있다는 얘기는 종종 듣지만 여태까지도 시도해보지는 않고 마음 속 아주 작은 주머니에 혼자 여행을 담고만 있는 정도. 이 나이가 되어서도 두렵고 눈치보는 삶이 더 익숙한 건 좀 씁쓸하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세 여행자의 여행기가 살짝 가슴을 설레게 했다. 어떤 여행지의 어느 부분이 마음이 들었다, 나도 이런 데 가보고 싶다 식의 감상이 아니라, 세 명의 여행자는 그저 '여행'이란 이 두 글자에 진심이었다는 것에 마음이 움직였다. 여행이 갖고 있는 좋은 의미들에 대해서 길게 열거하지도, 각 여행지의 특징이나 장점을 소개하지도, 그렇다고 여행에서 겪은 역경을 발판삼아 눈물바람 하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여행을 되돌아보고 묵묵히 써 내려갔다고나 할까. 지식이나 정보를 제공하려는 의도도, 또한 여행과 관련하여 추천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여행은 그랬다고, 그런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각 여행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이었다. 그래서 덩달아 나도, 여행에 살짝, 마음이 움직였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딱인 것 같다. 정말 <여행은 쓰기 나름이니까> 각자 나름대로 쓴 여행 이야기. 세 여행자의 색깔이 분명해, 각 꼭지를 읽어나가면서 누구의 글일지 짐작하게 되고, 그 끝에서 짐작이 맞음을 확인하는 재미도 있었다. 각자가 갖고 있는 캐릭터도 분명했고.

책을 덮고 서걱서걱, 표지를 쓸어내면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앞뒤, 그리고 책 중간중간 들어가 있는 삽화에도 눈길이 멈춘다. 같이 받은 엽서를 책상 한쪽에 세워놓고 멍하니 보기도 한다. 예쁘다. 그리고 나도 나름의 여행, 나름의 쓰기를 해봐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언젠가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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