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훅스 같이 읽기 - 벨 훅스의 지적 여정을 소개하는 일곱 편의 독서 기록
김동진 외 지음, 페페연구소 기획 / 동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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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훅스의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은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다였다. 한창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던 시기였고 또,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시기였다. 자연스레 여성의 삶에 대한,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직장에서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에서 선택했던 책이 벨 훅스의 책이었고 표지 그림을 담은 작은 벳지를 굿즈로 받아 그 독서모임을 이끌었던 모임장에게 선물하기도 했었다. 이야기는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페미니즘에 대해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그게 벌써 거의 7년 전의 이야기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페미니즘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나, 이 책을 읽으며 더욱 그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어느 순간 페미니즘이나 여성이라는 단어 자체가 혐오의 단어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관련 책을 읽자고 누구에게 선뜻 권하거나 추천하기에 주저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어른이 아닌 어린 학생들에게는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하게 되는 면이 있었다. 심지어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추천 도서로 선정하면서 결국은 여성 혹은 양성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은 조용히 빼기도 했다. 괜한 반발 혹은 혐오 발언을 듣고 싶지 않은 나 스스로의 방어기제이기도 했다. 헌데 이 책을 읽으며, 그랬던 내가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아무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가장 공감하며 읽었던 부분이 "까칠한 페미니스트 교사도 사랑을 한다"였다. 과연 교실과 학교에서 내가 갖고 있는 생각과 판단을 아이들에게 강요할 수 있을까. 내가 옳다고 판단되는 부분이 아이들에게도 옳다고, 나는 단언할 수 있을까. 나의 비건(지향)을 아이들에게 공개하고 함께 하기를 권하는 것은 과연 옳을까. 여러 다양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공동체 안에서, 결국 그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일지, 그 다양성에 대해 옳지 않음을 강하게 가르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일지, 나도 이 부분을 읽으며 생각이 많아졌다.

여성으로 사는 것이 너무도 힘들고, 사회는 더욱 차별과 혐오의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 낙담할 때도,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자고 말을 건네는 벨 훅스의 문장들을 읽으면 책을 덮을 때쯤 다시 희망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7-8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처음 부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이런 이런 주제와 내용, 생각을 서로 주고받는 수고를 기꺼이 스스로 선택하고 있는 이유는, '희망' 때문이지 않을까. 나 또한 벨 훅스의 여러 책들 중 몇 권을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마음을 다시 먹게 되는 것 또한, 결국 이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지식과 학생 사이를 연결하려는 교육자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어떤 주제와 지식을 말한다는 게 가능할까?(184쪽)

특히 가르친다는 행위에서 나의 감정과 판단이 다수의 아이들에게 어떤 '희망'의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다시금 마음을 굳게 먹을 수밖에. 그리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더 웃긴 건 '나는 성매매 여성이 아니야, 학생이지! 그것도 여성학 전공!'이라고 항변하는 나였어."/"그 말을 진짜로 했다고?" 조용히 얘기를 듣던 벨이 깜짝 놀라 황급히 질문을 던진다.(30쪽)
_성매매 여성과 학생은 다른가? 나의 어떤 말이 또다시 무시무시한 폭력과 혐오의 말이 될 수 있음을, 나 스스로 매번 확인할 줄 알아야 한다.

물고기가 물을, 인간이 공기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나에게 언제나 새삼스럽다. 수조에 가득한 가부장제를 감각하게 해준 것, 이 수조 바깥의 세상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과 방법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알려준 것이 페미니즘이다.(82-83쪽)
_우린 과연 공기를 인지하고 살고 있는 것이 맞을까? 인지하고 있다면, 그 공기의 질을 이제 따져야할 때가 아닐까. 가부장의 물 속에서 허우적대는 물고기가 아닌, 이제는 좀 더 '희망'적인 물로 바꿀 수 있는 물고기의 움직임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는 하나의 하얀 기준에 맞추기 위해 우리의 황색 몸을 굶기는 행동에 왜 이렇게 익숙해졌을까. 그 기준에 익숙해하는 나는 '기준에 맞지 않는 여성'들과 다른 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125쪽)
_나의 황색 몸을 굶기려는 시도를 자주 한다. 프리 사이즈의 '기준'에 내 몸을 맞추기 위해 하던 안간힘이었나. 모두 다른 사람들이 같은 사이즈의 몸을 갈망하는 것이라면, 과연 나는?

이 책을 읽고 최종적으로 든 생각은, 그래서 결국 자꾸만 서로 만나 같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구나, 였다. 수많은 백인 인종차별주의자 앞에서 연설을 한 벨 훅스의 모습을 떠올려보며, 누군가 나와 다른 생각으로 또다시 혐오와 차별의 말을 듣게 된다 해도, 결국은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를 자꾸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이 책의 저자들처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눈다면 더할나위 없이 무척 훌륭한 것이고 말이다(나도, 1인분의 자립! 실천해 볼까?).

우리는 'OO 님 얘기를 듣고 보니 저도......' 하는 말을 다리 삼아 자꾸만 연결되었다.(104쪽)

다른 이의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가 되고, 나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이들과 분명 '연결'되는 지점이 생긴다. 그 연결 지점을 통해 다시 페미니즘을, 그리고 교육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실천으로부터!

덧-
인상적인 문구가 있었다. 아, 하고 감탄한 문장이었다. 두고두고 잊지 않고, 나도 '선의를 가진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가정에서 부당하고 강압적인 대접을 받을 때 아이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은 법이나 제도가 아니라 선의를 가진 어른들뿐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다른 곳이 아닌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143쪽)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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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
강재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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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카메라가 향한 곳에 있는 그 어떤 생명체에게라도 폭력이 되지 않게 사진 찍기를 즐기자고. 나무를 꺾거나 풀을 뽑아내고 찍은 사진으로 진정 즐겁거나 행복하고 성취감을 느낀다면 그건 잘못된 사진임을 알아차리자.(216-217쪽)

저자가 갖고 있는 태도를 잘 보여주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자연, 나무를 향하고 있는 저자의 마음은 어떤 경우라도 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강하게 들었던 생각이기도 하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그 영향을 고맙게, 온몸으로 받아 안아야한다는 것. 인간이 자연을 인간의 관점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 이것이 일평생 좋아하는 마음으로 자연을 사진에 담아내고자 했던 저자의 삶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감동적이었다. 이런 마음 정도는 되어야 자연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만 같아 나 자신이 작게 느껴지기도 했다.

산과 바다, 줄 중 하나를 고른다면 어디를 고를래?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다. 산! 산이 좋은 이유는 딱 하나, 나무가 좋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은 것은 참을 수 없지만, 나무가 빼곡하고 무성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그런 산을 가까이 두고, 사계절 변화를 때때로 살피며 살 수 있는 지금이 참 좋다(가고 싶을 때 5분 안에 언제라도 산의 흙을 밟을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반가웠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 책의 글보다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글을 읽을 때보다 사진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었다. 어쩔 수 없었다. 글보다 사진이 주는 감동이 더 컸다. 사실, 평소 사진을 좋아하지도 잘 찍지도 않는다. 사진을 잘 찍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적도 없었다. 나 스스로도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하니까. 하지만 꼭 산에 가게 되면, 아름다운 자연을 보게 되면 손에 든 휴대폰을 꺼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내 휴대폰에는 나무, 산, 하늘, 구름 사진이 많다. 가끔 새와 곤충의 동영상까지. 이런 나이다보니, 이 책의 사진들이 더욱 와 닿았다.

모처럼 나선 숲길에서 만난 어떤 나무를 자신의 나무로 정해 보면 어떨까. 자주 찾는 곳이면 더 좋겠다. 마음에 드는 나무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주거나 그게 조금 쑥스러우면 그냥 친구로 삼는 것 말이다.(176쪽)

그리고나서 결심했다. 쑥스럽지만, 나만 알고 있는 내 나무를 정해야겠다고. 친구 나무에게 내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주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어디에 있는 나무를 정하면 좋을까, 책을 읽으면서도 우리 동네 나무, 우리집 뒷산의 나무들을 눈으로 그려봤다. 내일이든 모레든, 친구 나무를 찾아 동네 마실을 설렁설렁 다녀와야겠다고도 생각했다. 입춘이 금방 지났고 곧 우수가 올 테니, 봄을 준비하는 나무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코로 감각할 수 있도록 다녀와야겠다는 생각 포함해서.

다시 돌아가자. 마을 앞 서낭당을 지키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자. 나 혼자 잘 사는 게 아니라 마을이 함께 잘 살기를 바라는 버팀목. 묵묵히 할 일을 하며 자신을 낮추는 '언눔'이 되자. 과도한 욕심을 내려놓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실천하자. 그것이 거짓과 폭력으로 내 배를 불리거나 일확천금을 기대하는 것보다 '소원 성취'를 이루는 훨씬 빠른 길이다. 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위해.(174쪽)

올해 삶의 목표로 삼아도 좋을 글을 발견했다. 언눔, 배려하는 마음, 다 함께 잘 사는 세상. 한 그루의 나무가 되자고, 오늘 일기에 적어야겠다. 나무의 마음으로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감쌀 수 있는 내가 되어야겠다고, 올해의 다짐을 적어봐야겠다.

가끔 마음이 퍽퍽해질 때 이 책의 사진을 들춰봐야겠다. 나무가 주는 기운을 사진으로 받아 안고, 마음을 촉촉하게 가꿔나갈 수 있도록. 올해 초, 딱 필요한 책을 읽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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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좋은 동시 2023
안도현 외 지음, 홍성지 그림 / 상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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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가 좋다. 시를 좋아하지만 요새는 머리가 굳었는지, 시가 참 어렵다. 점점 어려워지겠지, 싶은 마음으로 쉬운 시를 찾는 건 아니다. 시를 좋아하는 마음따라 동시도 이미 좋아진 지 오래니까. 잠시 외국에 머물고 있을 때 '동시마중'을 알게 되었다. 그 동시마중을 구독하고 싶어 얼마나 마음이 조급해졌는지. 귀국하자마자 2년 구독을 했으니까. 그리고 때때로 시 필사를 하며 동시 필사도 함께 했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동시를 모아 좋은 시집을 보니, 괜히 마음이 뿌듯하다. 동시를 사랑하는 어른 독자가 있음을, 시인들도 알고 있을지. 동시를 통해 여전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어른 독자가 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는 마음을 살짝 가져본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온라인으로만 아이들을 만나야했던 때, 딱딱한 전달사항 외에 내가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뭐가 있을까 고민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동시였다. 내가 좋아하는 걸로 아이들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아침마다 동시를 하나씩 적어 보내주었다. '오늘의 시'라는 타이틀로 매일 적어주었다. 아이들의 아주 작은 반응에도 크게 마음이 흔들렸던 기억이 새록새록. 수업에서도 동시는 자주 수업의 재료가 된다. 동시만의 재치와 유머, 그리고 뜬금없는 구석에서의 감동이 아이들에게도 전달되나보다. 아이들이 진지하게 동시를 해석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면, 괜히 내가 마음이 벅차오른다. 그런 면에서, 나는 좋은 소통의 자료, 수업의 자료를 하나 얻었다. 그래서 더 기분이 좋다.

이 시집을 보면, 그동안 잘 알고 있던 시인의 이름도 보이지만 잘 모르던 시인의 이름도 눈에 들어온다. '책머리에'에 소개되고 있는 말처럼, 우리 동시에 대한 사랑이 많은 시인들을 통해 지속된다는 것이 나도 참, 좋다. 오래도록 동시 근처에서 얼쩡거릴 수 있으려면 다양하고 많은 동시가 계속 발표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래야 앞으로도 쭉, 동시들을 쏙쏙 골라 읽고 필사하고, 이야기 나주며 동시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
눈에 들어오는 시 몇 편을 필사했다. 정말, 이런 마음이라면 우리 아이들과도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없지 않을까. 뭔가 심장을 쿵, 내리누르는 구석이 여기저기에서 보였다. 이래서 동시를 읽지, 싶어지는 부분들이었다.

하지만 엄마,/내가 그 애를 때리면/그 애가 아프잖아(14쪽_고영민 '친구' 중)
그게 숲을 이루는/착한 일이었다는 것도 까먹어요(29쪽_김성민 '착한 일은 그렇게 하는 거니까요' 중)
이제야 깨닫습니다/사랑은 니가 필요합니다(64쪽_신민규 '사랑이란' 중)
밤새 내린 눈이 어쩜 무척 섭섭해/다시는 우리 마을을/찾아오고 싶지 않을 것 같다(90쪽_장동이 '걱정이다' 중)
"왜 잘못 없는 사람들이 다치고 아프고 죽는 거예요?"(100쪽_조인정 '밥을 먹어요' 중)

자칫, 동시는 아이들만 읽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음을 알려면, 어른들도 동시를 열심히 읽어야 한다. 동시에 담아낸 그 마음을 함께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좋은 동시가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으며 따뜻하게 활짝 피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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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 내 인생 도넛문고 7
윤해연 지음 / 다른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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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가 예쁘다고 생각했다. 하얀 바탕에 레인보우의 알록달록한 색이 글씨에 입혀져 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글씨체도 예뻤다.

'길벗체'
이 표지에 쓴 글씨체는 길벗체입니다. 무지개 깃발을 처음 디자인한 '길버트 베이커'의 뜻을 잇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위한 '벗'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한글 최초로 전면 색상을 적용한 완성형 서체입니다.(출처: rainbowfoundation.co.kr)

어쩐지. 예쁜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이 더 마음에 들었다.

레즈비언 부부, 이다의 두 엄마 난다 씨와 온다 씨, 두 개의 이름을 갖고 살아가는 보니 씨와 다월 씨, 그리고 우연. 이다와 이다의 친구인 유진과 지우. 이 소설을 다 읽고나서 든 생각은, 어쩌면 이 소설은 이 모든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다양하고 다채로운 삶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르다는 건 다양성을 의미해. 우리 모두가 한쪽 방향으로 달리면 정말 재미없잖아. 다 다른 방향으로 달려 보자는 거지. 난 이다의 부모님이 다른 방향을 향해서 달리는 분들이라고 생각해. 뭐가 어려워. 다주 단순하잖아?(143-144쪽)

각자가 선택한 각 방향으로 달려나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인생이지. 암, 그렇지! 우리 지우가 참 똑똑하네, 싶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우리는 혹시 경주마인 건 아닐까. 주변이나 옆을 보지도 못한 채 내 앞으로 남아있는 선 안의 길만을 따라 달려야 하는 경주마. 그래서 그 길 아닌 다른 길이 존재하고 있음을, 멈추거나 혹은 돌아나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러다보니 내 길이 올바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인정하지 못하는 고정되고 편협한 사고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지. 혹여라도 내가 그런 시선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려하지는 않을지, 스스로 경계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오히려 당사자의 이야기를 직접 그려내려 하지 않아 더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다와 같은 청소년기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고, 그 고민에 대해 어설픈 어른의 조언이나 충고를 늘어놓으려는 거였다면, 오히려 이 소설이 더 우리 사회의 편견을 대변하는 소설이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다를 둘러싼 상황과 환경 속에서 스스로 성 정체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를 판단하고, 특히 이에 대해 다른 이에게 용기있게(물론 조금 떨리기는 했지만) 말할 줄 안다는 점이 무척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앞으로도 어떤 시선과 관점으로 이 모든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근데 어쩌냐? 난 내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아."(142쪽)

이다의 이 말이 갖고 있는 의미가 분명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순간 우리 사회도 사람들의 성을 둘로만 나누어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성에 대한 공개 여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변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될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지금까지 갖고 있던 생각이 잘못되었을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나마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에 대한 이다의 명쾌한 답변. 어른들보다 낫다는 생각과 이다가 참 잘 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특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우리 사회는 과연 어떤 답변을 내놓을까.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분명 그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의 생각을 단순히 한 가지로만 규정해놓으려는 사회적 편견을 내려놓을 수 있기만 해도, 우리 사회가 좀 더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는 사회가 될 것 같다. 그러면, 진짜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이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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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셋 2024
송지영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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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었다. 특히 소설에 마음을 빼앗겼다. 각 소설의 마지막 결말에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다시 여러번 반복해 앞뒤 이야기를 확인하기도 했다. 내가 이해한 것이 맞나, 맞게 이해했나. 충격적이기도 했고. 딱 지금의 우리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고 있는 것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더 현장감 있게 이야기를 따라갔던 것 같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결국, 우리네 삶이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의무감과 책임감, 하지만 그 안에서의 어려움과 힘듦. 외면하고 싶고 숨고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 모든 것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게 진짜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대놓고 그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그것이 어쩌면 사람의 도리, 양심. 이런 단어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그래서 더 인물들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었다.

매미 소리가 멈추면, 이라고 강선숙은 생각했다. 매미 소리가 멈추면. 네가 기억하는 집에 살던 두 사람은 죽었다는 이야기를.(...) 일정한 간격으로 도돌이표처럼 재생되는 매미 소리는 윤정화가 있는 독일까지 끝을 모르고 울려 퍼지고 있었다./겨울까지./겨울이 아닌 계절까지 강선숙의 발걸음을 쫓아올 소리였다.(43쪽_'마땅하고 옳은 일'(송지영) 중)

여름 뜨겁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를 떠올렸다. 지금은 겨울이고. 겨울까지 울려 퍼지고 있을 그 매미 소리가, 내내 귀를 따갑게 하겠지. 그 따가움이 사실은 마음을, 심장을 쪼아대는 소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쉽게 그 매미 소리가 멈추지 않을 것 같고, 또 반대로 그 매미 소리가 조금은 더 따라다니며 강선숙을 붙들어줘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선배는 다시 고갤 끄덕거렸고 뭔가 고민하는 듯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런 다음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짜깁기한 것은 자신만의 글이 될 수 없지만 꾸며 쓰는 건 다르지 않냐고. 거짓말에도 진실이, 그리고 진심이 깃들지 않느냐고./"무엇이든 그게 다 현진 씨 얘기지."(72쪽_'재채기'(성수진) 중)

숨길 수 없는 것. 참아지지 않는 것. 그게 '재채기'다. 감추고 싶지만 결국엔 들키고 마는 것. 사람 마음도, 진심도 그렇게 감춰지지 않는 것이겠구나 싶었다. 어떤 거짓으로 꾸며 써도 누군가의 눈엔 그저 그 안에 얇게 펼쳐져 있는 진실이 보이기도 하는 법. 어쩌면 다른 이들에게는 쉽게 보이는 것이 정작 자기 스스로에게는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잘 숨겼다고 생각하겠지. 그래도 결국, 큰 소리로 시원하게 재채기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분명 그러기까지의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지만.

따지고 보면 기사는 내가 이곳까지 오는 동안 떠올렸던 말들을 대신 해준 게 아닌가. 그리고 나는 송주에게서 들었어야 한 말을 해버린 셈이었는데. 어쨌거나 내가 내 입으로 했던 말 때문에 왜 이렇게 화가 치미는 건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아 참을 수가 없었다.(111쪽_'기다리는 마음'(정회웅) 중)

가만히 보면 너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말하다보면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오히려 내가 객관적으로 보이게 된다. 물론, 그게 쉽지 않아서 문제지만. 그리고 서두르지 않는 마음 속에서 결국 알아채게 되는 마음이 있다. 그걸 너무 늦게 않게 알게 되었구나, 싶었다.

덧-
머리가 굳었나보다. 폭넓지 못하거나. 시가 어렵게 다가왔다. 지금 내 마음 상태가 그런가. 조급하고 긴장되고 다급한 건지, 천천히 읽어내지 못하고 있는 내가 보였다. 시를 읽으며 자꾸 내가 읽혔다.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읽기!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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