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 범죄 너머에서 발견한 인간에 대한 낙관
정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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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정명원 지음. 한겨레출판. 2025.
_범죄 너머에서 발견한 인간에 대한 낙관

결국, 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있을 것 같은 검사의 일도, 결국은 다 사람의 삶을 근간에 두고 일어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찌 그렇지 않겠나. 결국, 법이라는 것도 다 사람이 사람 사는 데 필요해서 만든 것들이니 말이다. 그러니, 어떤 것도 사람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염두에 둔다면, 어떤 법도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납득될 수 없는 것이 사실인 것이고 말이다.

의사로 일할 때는 환자가 하는 말을 의심하지 않아요. 의심할 필요가 없어요. 의사는 환자가 하는 말이 진실이라는 전제에서 그에 따른 처방을 내어놓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검사가 되어 보니 전혀 다른 거죠. 검사는 진술이 거짓말을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하잖아요.(108쪽)

이 말이 한참 오래 남았다. 아, 그렇구나 싶었다. 끊임없이 거짓말을 의심하고 상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지 못하고, 마치 색안경을 끼고 보듯 범죄의 혐의를 염두에 두고 사람을 대해야 한다는 건, 무척이나 힘들고도 고달픈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과연 믿는다는 것이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진실의 편을 들어주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법의 세계이지만, 그 진실의 편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과 고생이 수반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임신한 상태에서 뱃속의 아기를 향해 '아가야, 엄마는 지금 좋은 세상을 위해 기꺼이 무서운 것을 보고 있는...'(171쪽)이라고 말하며 일을 계속 해나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보면, 어떤 사명감이나 가치, 철학을 갖고 있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뉴스로 잠깐 접하게 되는 수많은 사건 사고들을 매일 밤낮으로 들여다보며 대부분의 깨어있는 시간들을 그런 사건 사고와 관련된 생각으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 세계의 일도 그리 만만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검사로서의 소신이 어떤 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쉬운 길을 향해 가려고 했다면 지금의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일을 일로만 끝내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일을 찾아가려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들을, 또 굳이 일부러 찾아내서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사람. 정명원이라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지 않을까 싶었다.

누구 하나 집중해서 보여주는 사람이 없다 한들(대부분 자기 춤추느라 바쁘니까 남이 어떻게 추는지 보지 않는다)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나는 <바위처럼>을 잘하고 싶었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무척 잘하게 되었다.(202쪽)

이 부분에서 웃었다. <바위처럼>은 그 당시 대학생활을 했던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곡이고, 나도 춤이라고 할 것인가는 잘 모르겠지만, 율동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웃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공감대라기보다는, 이 부분에서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가 잘 보였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어떻게 보여지는지보다는,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움직이고자 하는가가 더 중요한 사람. 회식 자리에서 기여이 술을 따라주지 않았던, 그 뒤로도 그 술을 따라줄 것인가 아닌가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사표까지 쓸 각오를 했던 사람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쉽사리 굽히지 않으려는 단단한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각 또각 또각, 또오각 또오각, 또각또각또각또각...
망설임과 깨달음, 주저함과 두려움,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보는 순간들과 지겹고 힘들었던 날들, 신났던 일들, 아무렇지 않았던 날들의 감정을 담아 구두 소리를 울리며 나의 검찰 생활은 이어져왔다.(277쪽)

저 구두 소리를 내는 시간이 얼마나 많이 쌓여갔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 구두 소리의 순간들이 곧 자신이 가야할 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저자의 구두 소리를 떠올리며, 나는 어떤 구두 소리를 만들며 지금까지 살아왔나, 생각을 해보게 됐다. 분명 저자와 같은 많은 감정과 상황들을 지나오면서 만들어낸 구두 소리가 있을 것이다. 그 구두 소리가 어떻게 나라는 사람을 지금까지 이끌었을까의 답을 떠올려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어, 하는 말 말고, 어떻게 열심히 살았는지에 대해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고, 진짜 열심히 살았는지도 생각해보고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각자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생활 안에서 각자의 구두 소리를 만들며 살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삶 속에 범죄라고 이름 붙은 것들을 찾아내고 분석하고 분류하고 그에 마땅한 답을 고르는 일을 한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이 일을 잘 해내려면 먼저 토양이 되는 사람들의 삶의 결을 이해해야 한다.(305쪽)

그러니까 말이다. 결국,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 우리 사람이 하는 일이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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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스펙터클, 민주주의 - 새로운 광장을 위한 사회학
김정환 지음 / 창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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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스펙터클, 민주주의. 김정환 지음. 창비. 2025.
_새로운 광장을 위한 사회학

우리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민주주의, 그 과정에서 우리가 겪어와야했던 그 역사가 모두 어떤 이미지 혹은 의미로 우리에게 남아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사회는 정말 우리가 보아왔던 그것이, 그 이미지가 맞는 걸까. 진실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우리에게 오롯이 전달되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런 과정에서 우리에게 각인되는 것은 무엇일까. 나의 감각이 어떤 결론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지, 사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내가 봤다고 생각했던 것이 과연 옳았던가.

독자들께서는 2~4장에서 필자가 제시하는 한국 민주주의의 상상계에 대체로 수긍할 수 있는지, 여러분 역시 그런 식으로 민주주의를 생각하고 실천해왔다고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지 우선적으로 검토하면서 이 책을 읽어주시기를 바란다.(49-50쪽)

그래서 펼쳐본 2~4장이 몸과 스펙터클을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또한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격언은 민주화 과정에서 죽음을 무릅쓴 시민들의 희생에 대한 기억을 전제로 인용되는 것이다.(61쪽)
한국 민주주의라는 드라마에서 죽음이라는 스펙터클은 말 그대로 엄청난 "공포의 힘"을 발휘해왔다. 그것이 제공해온 감각적 인지적 충격을 재차 강조하며 경악하기보다는, 관객으로서 우리가 그러한 스펙터클을 어떤 식을 바라봐왔는지를 바라보자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120쪽)

진압, 고문, 이 모든 것들이 결국 국가적 힘이 민에게 가했던 폭력이고 그 폭력의 극단이 죽음이라는 것이다. 그런 죽음이 그 이후 다시 민을 움직이게 만들고, 그것으로 다시 민주주의로 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결국 피를 흘리는 희생과 의지 없이는 그 다음으로 건너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폭력의 실체가 시체, 주검의 모습으로 사람들에 보여지고 그 이미지를 우리는 끊임없이 학습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 이 책을 보는 내내 그런 죽음의 이미지를 나는 또 다시 학습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숨고 싶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동안의 죽음을 통해 민주주의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은 무척 무섭고 괴로운 경험이라는 것을 이 책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분명 우리가 피하고 도망친다고해서 달라지지 않는 엄연한 사실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미 일정 부분 이상은 여러 매체들을 통해 접하고 또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 이 죽음의 이야기를 다시 확인해야한다는 것이 무척 고통스러웠다. 심장이 조여오는 느낌, 아픔이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이것이 결국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몸, 그 스펙트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 이 책 역시, 그런 민주주의의 상상계를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도구가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감각이 결국, 사람들을 광장으로 몰려나가게 만들고, 행동하게 만들고, 소리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계속 반복되고 반복되는, 같은 영상을 돌려보는 듯한 느낌을 만든다. 이런 영상을 보며 우린 어떤 생각을 갖게 되는 걸까.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등장하는 민의 모습은 대단한 스펙터클로서 극적인 쾌감을 고조시키지만, 민주주의를 일상적인 실천을 통해 구현되고 확립되어야 할 원칙이라기보다는, 되찾아야 할, 회복해야 할, 탈환해야 할, 하지만 아직은 온전히 도덜하지 못한 저 높은 곳에 머물러 있는 목표로 고립시킨다.(328쪽)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 맞나 싶다. 늘 민주주의를 갈망하고 있다면, 여전히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닌 것인데,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라고 자신있게 말해도 되는 것일까. 그리고 분명 이런 민주주의를 자꾸 빼앗기는 것이 국가의 폭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민은 늘 국가를 상대로 싸워왔으니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저자 덕분에 하게 됐다.

요컨대 지금과 같은 한국사회에서 민의 죽음은 국가의 폭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커다란 보상이 주어지는 희소한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민간의 경쟁과 투쟁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356쪽)

한 마디로, 맙소사다. 결국 우리 손에 의해 끌어내려졌던 것이다. 직접 우리가 만들어냈던 민주주의를 우리가 직접 몰아내고, 또 다시 만들어나가고 또 무너뜨리고. 그렇게 훼손된 민주주의를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 극단의 방식을 택하는 희생으로 내내 겨우 유지해오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이 책에서 말하는 그 스펙터클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형이구나 싶다. 우리가 마음속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회를 보느냐에 따라, 어떤 과정으로 민주주의를 만들어내고 있는가에 따라, 어떤 사회를 만들어낼 것인가는 달라지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우리가 이제부터라도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 잘 판단해야 한다. 광장에 모이는 것까지 다 잘 해놓고, 우리의 잘못으로 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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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미래가 도착했다 - AI시대 인간의 조건
우숙영 지음 / 창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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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미래가도착했다 #우숙영 #창비 #서평단 #서평 #AI책추천
#AI시대인간의조건

어느날 미래가 도착했다. 우숙영 지음. 창비. 2025.
_AI시대 인간의 조건

실습 1 <질문: [8장] 배움과 교육: 무엇을 배우든 어차피 인공지능이 더 잘할텐데 공부를 해야할까?">
<AI 대답>
1. 공부는 단순히 '일을 잘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2. AI를 잘 쓰려면, 이해력이 더 중요해진다.
3. AI가 대체하지 못하는 영역은 남아 있다.
4. 공부는 자기 성장의 수단이다.
"공부는 AI보다 더 똑똑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AI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더 잘 배워야 하는 이유가 되는 거예요. 우리가 주체가 되기 위해, 선택하고 이해하기 위해, 계속 공부하는 거예요."
<내 생각>
인간의 영역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은 결국 기계가 인간을 닮아가려는 과정인 것이고, 결국 인간이 하는 일을 따라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인간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는 인간이 정하면 된다. 인간이 원하는대로 인공지능을 조절하면 된다. 그러니, 인간은 배워야 한다. 할 줄 알아야 한다. 인간이 할 줄 알아야 인공지능을 시킬 수 있다.

실습2 <질문: "나는 교사인데, AI가 이 분야에 어떤 영향을 줄까?">
<AI 대답>
1. 반복적·기계적인 업무는 줄어든다.
2. 개별화 학습이 가능해진다.
3. 학습 설계자로서의 역할이 강화된다.
4. 비인지적 기술(소통, 협업, 윤리, 창의성) 교육이 중요해진다.
"교사라는 직업의 미래는? AI 시대에도, 학생에게 영감을 주고, 삶의 방향을 함께 고민해주는 교사는 절대 대체되지 않을 거예요. 다만, '무엇을 가르치는가'보다 '어떻게 함께 배우는가'가 더 중요한 시대로 바뀌고 있어요."
<내 생각>
동의한다. 지금까지 시간을 많이 들여 하던 반복 단순 행정 업무는 줄어들 것이다. 다만 어떤 교수학습의 계획을 세워 수업하고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주도성이 강조되면서 어떤 교수자의 전문성을 갖출 것인가가 중요해질 것이다. 또한 창의성, 소통, 협업의 중요성도 맞는 이야기다. 인간의 감각이 사람과 사람으로 만났을 때 전해질 수 있는 소중한 느낌이라면, 이 느낌은 교사-학생이 서로 직접 마주하고 있을 때 가능할테니 말이다.

실습3 <질문: 지금까지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인공지능과 함께할 때 지켜야 할 원칙 3가지를 만들어 줘.">
<AI 대답>
1. AI는 도구이지, 결정권자가 아니다.
2. 기술보다 사람을 먼저 본다.
3. 함께 배우는 존재로서 성장한다.
"AI 시대에도 가장 중요한 역량은 끊임없이 배우고 변화에 적응하는 힘이다. 교사든 학생이든 '배움은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걸 기억해야 해요. AI와 함께 변화하는 시대에서는, 'AI를 잘 다루는 능력'과 함께 '새로운 것을 배우는 태도'가 매우 중요해져요."

<내 생각: "AI와 나, 함께 살아가는 길은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AI의 도움을 받으며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AI를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도태된 사람으로 인식되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다만, 어떤 부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사람의 중요한 판단이 개입되는 부분이다. AI가 하고 있는 작업이 모두 내가 원하는 것을 100%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부분, 수정이 필요한 부분, 그리고 내 생각이 명확히 들어가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과감히 AI의 의견을 버리고 내 스스로의 판단으로 밀고나갈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분명 주도권은 인간이 쥐고 있어야 한다. AI가 인간의 힘겨루기 상대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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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이세요? 창비청소년문학 133
표명희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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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이세요?. 표명희 소설집. 창비. 2025.

4개의 소설이 담겨 있는 소설집니다. 이미 표명희 작가에 대해서는 믿음이 있으니 이 책 역시도 그런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물론, 그동안의 작가의 이미지와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표지 그림. 역시, 작가의 말에서처럼 작가는 청소년소설집은 처음이란다. 이해가 갔다. 표지에서 이미 느껴졌고, 소설을 읽으면서도 다른 느낌을 받았으니까. 물론, 이 소설집 역시 난 참 좋다. 마음에 든다. 작가의 생각도, 작가가 말하고 싶어하는 의도도 다 좋다. 그냥, 앞으로 표명희 작가의 작품은 안 읽어봐도 다 좋을 것 같은 그런 믿음이 더욱 생겼다.

공짜를 바라지 않는 건,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자기 몫에 만족하는 태도이며 그것이 곧 최소한의 정의라는 것이 엄마의 논리다. 그것만 지켜져도 세상은 살 만한데 사소한 욕심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삶이 불행해진다는 것.(39쪽_'이상한 나라의 하루:당근이세요?' 중)

좀 찔리기도 했다. 이 세상은 사실, 이런 별 거 아닌 욕심에서부터 크고 거대한 욕심을 부리는 것에서 모든 문제가 만들어지는 것일 수 있는데 말이다. 나도 이런 사소한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거라면 지금이라도 그 욕심을 버려야하는데,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보다 더 좋은, 혹은 더 행복한 삶을 바라는 것이 마치 공짜를 바라는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면, 조금 덜 좋거나 덜 행복해도 괜찮을 거 같다. 욕심을 버리자, 싶다.
그러면서, 이 소설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론을 다 읽고나서, 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런 소설의 결말이 없는 듯 보여서. 이렇게 소설이 끝난다고? 이게 진짜 결말이라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보고 들춰보기도 했다. 내가 소설을 잘못 읽었나? 이 모든 의문이 작가의 설명으로 풀렸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란 제목을 마주보는 순간 모든 설명이 되었다. 그렇구나. 그런 거였구나. 그래서 제목도 <이상한 나라의 하루>였구나 했다. 이런 요소가 재밌는 것 같다.

'그러니까 어머니께서 아주버님 생일날 면회 다녀오시고 며칠 뒤에 있었던 일이었나 봐요. 광주에 투입된 게......'(102쪽_'오월의 생일 케이크' 중)
'그걸 어떻게 보상해? 국가가 어떻게 보상하냐고! 돈으로? 웃기지 말라고 그래!'(105쪽_'오월의 생일 케이크' 중)

작가가 놓치지 않고 드러내고자 하는 생각이 바로 이런 식이었다. 분명, 인물들의 행동과 판단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가 그리 작거나 가볍지 않다는 것에, 나도 시선과 생각이 잠시 그 이야기에 머물렀다. 이 소설을 그냥 쉽게 읽어 넘길 수 없게 만드는 요소인 거고, 이러니 쉽게 세상으로 나갈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것이지 싶었다.

'똥은 누가 치우고?' 그것이 녀석을 향한 첫마디였던 것이다. 관계의 첫 단추가 끼워진 그날은 진서의 열세 번째 생일이었다.(118쪽_'개를 보내다' 중)

이 한 마디가 그 작은 개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싶다. 어쩌면 진주는 이 말을 다 알아들었던 건 아닐까. 인간의 말을 다 알아들으며 그런 인간을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하면 안 되겠다는 일념으로 식분증의 행동을 했던 것은 아닐까. 인간이 얼마나 동물을 함부로 대하고 있는 건지, 같은 동물이면서 인간이 그럴 자격이나 있나 싶어 조금 화도 났다.

원장이 똥 무더기를 구덩이에 던져 넣으며 말했다. 동물병원 원장답게 그는 언제나 사람과 개를 나란히 놓았다.(137쪽_'개를 보내다' 중)

이 원장이 뭘 좀 아는 사람이구나. 이런 생각이 우리 사는 세상에는 좀 더 많이 필요한데 말이다. 이런 마음으로 동물을 대하고 또 인간을 대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생명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마치 예쁜 장난감 하나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주인의 태도로 자기 멋대로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식이라면, 이러면 안 되지 싶은 것이다.

어쩌면 점점 <딸꾹질>의 엄마와 아빠처럼 살면서, 상황에 따라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 소신을 바꾸며 살아가게 되는 건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서서히 사회의 나쁜 부분들에 물들어가고 또 다른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함께 가고자 하는 것은 아닐지. 자신이 끝까지 버리지 말아야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하지 않은 채 조금씩 세상에 물들어가는 것이, 어른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삶의 방법은 아닐까도 생각해보고 됐다. 우리가 흔히, 나쁜 건 쉽게 물든다고 한다. 결국 지완이마저...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딸꾹질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남들은 알지 못하지만 자신만의 잘 알고 있는 딸꾹질.

이 책을 읽으며 조금 두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모습은 어느 쪽일지, 어떤 사람으로 보여지고 있을지, 무섭기도 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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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하루
미즈모토 사키노 지음, 크루 편집부 옮김 / 크루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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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하루 #미즈모토사키노 #크루 #그림에세이 #서평단 #서평 #책추천

보통의 하루. 미즈모토 사키노 지음. 크루. 2025.

'보통'이란 단어에 자꾸 시선이 간다. 이 단어는 평소 곧잘 쓰는 단어인데도, 이렇게 책에서 만나게 되니 새삼 그 뜻이 뭐지, 보통이란 게 어떤 거지, 하는 질문이 자꾸 생긴다. 사전에서 '보통'의 뜻을 찾으면,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음. 또는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아니한 중간 정도.'라고 나온다. 이 뜻을 보며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이게 참, 제일 어려운 일이구나, 보통이라는 것이. 뛰어나게 잘하거나 훌륭하면 안 된다. 또 그렇다고 너무 못하거나 뒤떨어져서도 안 된다. 딱 그 사이 중간 쯤의 어딘가에 있어야 '보통'이란 단어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처음 생각에는 사전 뜻처럼 보통이란 게 제일 흔하지 싶었는데, 뜻을 보고 또 생각을 하다보니 이것만큼 어려운 게 또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매번 드는 생각이지만, 이렇게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하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생각이 깊어지기도 하지만 때론 엉뚱해지기도 한다. 보통, 참 요상하게도 흔한데 낯설게 느껴지는 단어다.

내게는 오늘을 살아가기 위한 활동 그 자체라 생각하는 일상은 모두에게 소중한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일상은 어떤 순간에도 계속 흘러가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했던 순간, 잊지 못할 만남이나 이별, 시시각각 변하는 일상 속에서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모두가 '혼자'다. 그래서 이 모든 순간에는 '외로움'이 있다. 외로움이 커지는 순간에도 일상은 계속된다.(197쪽)

작가의 후기를 보면서, '보통의 하루'는 한 마디로 '일상'이구나 싶었다. 사실, 이 책에서 뭔가 색다르고 특별한 일들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이미 제목에서부터 그렇지 않아도 소중한, 별 거 아니어도 그 자체로 좋은, 그런 이야기들이 담겨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헌데 이 책을 계속 보면서 든 생각은, 어쩌면 이 별 거 아니라고 생각되는 일상이, 사실은 그 당사자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이미 특별한 순간들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우린 매일을 살아간다. 반복적인 매일의 순간도 있고 때론 그날만의 색다른 삶이 펼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제와 같은 오늘이어도, 또 오늘과 다른 내일이어도, 그 모든 순간은 매일의 다른 날들의 각기 다른 날들인 것이 아닐까. 누군가 오늘 하루 어땠어, 라고 묻는 말에, 별 일 없었어, 혹은 똑같지 뭐, 하는 대답을 주로 하곤 하지만, 사실은 그 날들은 모두 다시 오지 않는 그날만의 하루가 되는 것이지 않을까. 그러니까 <보통의 하루>도 하루하루가 쌓이면 그 나만의 특별한 하루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그림일기를 썼다.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글을 쓰면서 매일을 기록해 나가는 것이다. 일기를 써본 사람은 느낄 것이다. 뭔가 오늘만의 특별한 일이 있으면 그 이야기를 일기에 쓰면 좋겠는데, 일기에 쓸만한 일이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지, 하며 하루를 돌아봐도 딱히 일기로 쓸 만한 일이 떠오르지 않을 때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쓴 일기를 다시 펼쳐보면 단 하루도 같은 내용을 똑같이 쓴 날은 없다. 어쨌든 그 날의 일과 생각, 행동과 그에 따른 감정은 매일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다른 이야기를 날마다 기록하는 것으로 우리는 <보통의 하루>를 매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작가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며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하루 하루 안에서 우리의 일상은 언제나 그렇듯, 보통의 일상으로 흘러가게 된다. 하지만 그런 '보통'의 일상이 좋다. 그런 하루 하루가 곧 '나'이기 때문이다. '일기'라는 것은 가장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형식의 글이다. 아무한테도 알려주지 않는, 나만 아는 이야기들을 잔뜩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일기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일기에 담기는 하루의 이야기는 곧 나를 확인하고 알아나가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이 책, 자연스럽게 천천히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서두를 필요 없다고, 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마음을 차분하게 정돈해주는 느낌을 준다. 여름의 뜨거운 햇살에 눈을 찡그리다가도 이 책을 보면, 그 햇살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보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살짝 살랑, 바람이 분다면 더 환하게 웃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도 손글씨 일기를 써서 작가님께 보내고 싶다. 그 일기의 순간을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나의 <보통의 하루>가 무척 아름잡고 소중한 나만의 하루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상상만으로도 다시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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