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과 시 일상시화 3
윤유나 지음 / 아침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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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했다. 차를 운전하고 가다 간혹 마주하는 죽은 새(동물). 그대로 지나친 후 다음 날이 되면 바닥에 흔적만 남아 있고 새(동물)은 사라져있곤 했다. 누가 어떻게 한 걸까. 특히 고속도로에서 자주 목격하게 되니, 고속으로 달리는 차들 가운데에서 어떻게 새(동물)을 도로 밖으로 끌어올 수 있었을까. 늘 생각만 하고 궁금해만 했었다. 길을 걷다 마주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혹 마주쳤다 해도 외면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모르니까. 아무도 그런 건 가르쳐주지 않으니까.
시인은 종량제봉투를 샀다. 과연 나도 그럴 수 있을까.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작은 생명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생명이 다했는지 다하지 않았는지와 상관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을 이어갈 수 있을까. 죽음. 죽음을 때때로 목격한다는 것은 어쩌면 삶을 감각하는 것과 닮아있을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살아있는 누군가에 의해 죽은 이의 마지막을 보는 일이지는 않을까.

새를 치우고 새와 인간을 기억하는 산문을 쓰는 동안 산문 쓰는 일이 접속사 '그리고'를 문장 앞에 투명하게 새기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그리고. 새를 치우는 행위에서 시작한 그리고의 세계 속에서 나는 결국 인간을 관찰하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148쪽)
죽은 종달새를 들고 걷는 동안 잠은 살아 있는 것들의 본능이라는 걸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잠은 살아 있어야 가능한 욕구였다.(123쪽)

결국 인간, 살아있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겠구나 싶다. 그리고 잠이라는 건 살아있을 때에만 느낄 수 있는 감각. 죽음과 잠이 비슷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실은 꽤 다른 결을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감각이 봉투를 든 손에 느껴진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섬뜩하기도 했을 것 같다.

잠은, 내 평생의 화두이기도 하다. 잠을 잘 자고 싶은 욕망이 늘 내 삶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욕망은 욕망으로만 남아있을 뿐, 욕망이 충족되지 못하는 상태의 연속이다. 헌데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없다. 자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교육을 받아 익혀야 하는 상태라는 생각 말이다.

신기해. 아기는 재워줘야 하고, 자는 연습을 해야 하다니. 졸린 건 본능이지만 잠은 교육하고 교육받는 행위 혹은 그런 상태라는 게 신기했다. 인간의 잠에는 인격이 있었다.(57쪽)

그렇구나. 아이를 키워봤으면서도 수면교육이 필요한 걸 잊고 있었다. 그렇다면 난, 교육을 덜 받은 것인가. 연습이 부족했나.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졸립다고 자고 졸리지 않다고 깨는 반복이 아닌, 인격적으로 교육받아 익혀야 하는 것이겠다 싶다.

비가 내리려고 하는 날에는 쉬이 잠들지 못한다. 깜빡 잠들었다가도 눈을 뜨면 몇 분 뒤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멍하니 어둠만 응시한 채 바깥에서 들려오는 빗소리를 듣고, 비가 온다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고 속삭이다 눈을 감는다.(82쪽)

어젯밤 비가 내렸다. 그러다 눈으로 바뀌었다. 비는 소리가 나지만 눈은 소리없이 내린다. 비의 감각을 느끼듯 잠의 감각을 느껴보고 싶어졌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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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 - 어느새 인간관계가 고장난 사람들에 관하여
맥스 디킨스 지음, 이경태 옮김 / 창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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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왜친구가없을까 #맥스디킨스 #창비 #서평단 #서평 #책추천
#남성우정 #인간관계 #북스타그램

굳이 남자의 이야기로만 국한지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인간관계라는 것은 남자도 여자도 피할 수 없는 공통의 문제니까. 하지만 남자와 여자가 사람 간의 관계, 소통, 공동체, 그리고 감정에 있어서 조금은 우위에 있는 것은 맞는 것 같다. 물론 개인차가 분명하고 이 세상을 꼭 남자와 여자로만 나누어 성격을 구분지을 수는 없으니 모두에게 적용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며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는, 공감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전부터 너무 궁금했다. 진짜,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 가까이 있는 남자가 딱 그렇다. 친구가 없다. 매번 나누는 대화의 대상도 딱 정해져있다. 이미 30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는 친구들. 그 외 친구를 새로 사귄다거나, 새롭게 모임을 형성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볼 수가 없다. 만들었던 관계마저도 중간에 그만 두고, 새롭게 누군가를 만나려는 의지조차 없다. 또래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대체로 남편들이 다 비슷한데, 왜 그럴까 싶었다. 그 이유가 여기에서 조금 이해가 갔다.

남자들은 자신의 성을 의식하지 않고 살면서 늘 그 성적 가치관과 인식 안에 사로잡혀 사는 것은 아닐까 싶다. 남자는 이래야 하고, 또 그래서는 안 된다는 선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 그렇지 않은 말과 행동을 늘 경계한다. 마치 여자라는 소리를 듣게 될까봐 두려워하면서. 남자들의 성에 대한 인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똑같구나, 싶어 쓴웃음이 나온다. 관계맺기에 있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마치 남자들끼리 통하는 권력인 듯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그 태도가 결국 스스로를 외롭게 만드는 거겠구나 싶었다.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나 배려도 부족해 보인다. 한참을 만나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대화를 나누었어도, 가까운 지인의 감정과 상태를 궁금해하지 않고 묻지 않는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서로에게 거칠게 말하고 남자들만의 의리처럼 과한 반응과 행동을 이어가지만, 정작 그 사람의 진짜 마음을 헤아려주거나 공감해주려는 태도는 쉽게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저 농담을 통해 웃기려고만, 그리고 대수롭지 않고 맥락에 맞지 않는 얘기로 말을 돌리려는 태도가 서로를 더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점점, 남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집안의 여자에게서만 찾게 되는 것이지 싶다.
운동은 같이 할 수 있어도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없다. 열심히 밤새워 놀 수는 있어도 결혼식의 들러리가 되어달라고 말할 수는 없다. 돈으로 친구를 사귀고 포옹을 경험할 수는 있어도 스스로 친구가 되고 또 포옹해주는 건 어렵다. 목적에 따라 대화를 이어나가는 건 가능해도 문자 하나 전화 한 통의 안부 묻기가 어렵고 또 그런 행동이 오해를 만들까봐 걱정한다. 어찌보면 남자들이 단순해서 친구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남자가 더 복잡하다. 재고 따지고 눈치보고 신경쓰느라 정작 챙겨야 할 것을 놓치는 것이다.

우정은 사전에는 없는 관계다. 일정한 의식이 없는 관계.(...)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아끼는지 보여줄 수 있는 허가를 받지 못한 것처럼 느꼈다.(...) 내가 남긴 편지가 우정을 수선하기 위한 계기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연애관계의 상징인 러브레터가 그 역할을 한 것이다.(...) "네가 떠날 때 얼마나 힘들어했을지 느껴졌어." 일은 인정한다. "네가 떠나는 게 마치 우리가 어른이 되어가고 있고 근심 없이 해맑던 시절은 전부 지나갔다는 신호 같았어." 나는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우리의 우정은 모든 순간, 모든 일을 전부 함께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점은 그 우정이 우리 인생의 특정 시기를 관통했다는 것이다.(318-9쪽)

필과 호프와 나눴던 우정을 다른 말로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남자가 아니어서 우정일 수 없다고, 그래서 모든 관계는 사라져야한다고 관습적인 태도만 일관할 것인가 말이다. 결국 맥스가 해결하려했던 숙제의 답은,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이고, 그 문제를 대하는 자세를 달리 해야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맥스는 답을 얻었다. 맥스처럼 남자들이 답을 얻었으면 좋겠다.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삶은 달라질 수 없다. 사람에 대한 갈증은 있지만 그 갈증을 누군가 대신 풀어줄 수는 없다. 스스로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수밖에. 그러려면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 이 책은 가까이 있는 남자 손에 쥐어줘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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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를 멈추지 않을 거야 - 고전 속 퀴어 로맨스
숀 휴잇 지음, 루크 에드워드 홀 그림, 김하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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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를멈추지않을거야 #고전속퀴어로맨스 #숀휴잇 #루크에드워드홀 #김하현 #을유문화사 #서평단 #서평 #책추천

퀴어 로맨스를 고전에서 접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퀴어라는 인식은 최근에 나타난 것이라는 근거없는 생각을 어렴풋이 갖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혹은 고전 속 이야기는 일정 부분 고전이라는 명성에 기대어 오늘날 퀴어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보호받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고전 속의 이야기는 신적이고 영웅적인 면이 더 부각되며 오히려 퀴어의 인식보다는 다른 면을 더 강조해 의미를 부여하도록, 우리의 생각을 한정하고 제단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물론 모두,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만큼 지금까지 고전과 퀴어의 연관성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그래서 이 책이 무척 충격적이면서도 새로운 생각으로 확장해 나아가도록 만들어 준, 고마운 책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며 이 이야기들을 진짜 순수하게 '로맨스'로만 볼 수 있는 것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간혹 작품 속 로맨스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감정상의 사랑의 로맨스만을 말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까 말이다. 특히 고전이라고 하니 우리나라 고전 작품에서도 '임'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 종종 있고, 그럴 때는 주로 '임'이 임금을 뜻하게 되며 이때의 사랑은 곧 '충'을 의미하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볼 때는 사랑이지만 그 사랑 안에 담겨 있는 또 다른 의미가 작품 안팎에 깔려 있기 때문에 단순하게만 바라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였고, 이 책 속 고전 작품들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작품이나 혹은 특정 인물에 대한 이야기들은, 있는 그대로 감정상의 사랑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오히려 오늘의 퀴어 사랑보다 더 인정받고 있는 그대로 사랑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럴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해졌다. 솔직히, 현재 '퀴어'를 말하려고 하면 많은 사회적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쉽게 공론화하기 어렵고 또한 그렇게 하기 위해 감수해야 하고 거쳐야 할 난관이 참 많은 것이 사실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퀴어에 대한 낙인, 차별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 속 이야기를 그저 고전 속 이야기로만 보고 넘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고전에서도 아무렇지않게 다루어지고 있다면,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싶은 마음이라고나 할까.

이 책을 관통해서 자주 나오는 단어, 그래서 신경쓰이는 단어가 있다. 바로 '소년'이라는 단어다. 제우스를 비롯해 우리에게 꽤 익숙한 인물들 사이에서도 이 '소년'에 대한 관심과 애정, 사랑은 지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을 어떻게 생각해보아야할까 싶긴 했다. 만약 이 이야기가 오늘날의 이야기였다면, 이분들을 우리는 뉴스나 신문 기사에서 만나보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면, 신화의 성격이 분명한 작품 속 이야기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단순히 어린 소년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폭넓게 접근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접근의 가장 근간에는 결국, 이런 류의 사랑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감정인가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신도 인간도, 사랑의 감정은 그 대상을 누구로 두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감정이어야 하느냐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형태의 고전을 읽으면서 여러분은 현재의 언어와 지식을 과거에 적용하려고 애쓸지도 모른다. 우리가 자기 정체성을 표현하는 용어들을 과거에 대입하기란 쉽지 않은데, 각 용어에 고유한 역사적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대인에게 오늘날과 같은 겸(게이, 바이셀슈얼, 퀴어, 트랜스)이 없었을지는 몰라도, 인간성의 본질로 말미암아 우리는 연관성을 찾게 되고, 당연히 신중하게 연결고리를 이을 수 있다.(14쪽)

왜 저자가 이렇게 이야기했는지, 이 책을 다 읽고 알았다. 결국, 오늘날의 용어로 과거를 제단해 잘라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용어만으로 모두 규정할 수 없는 맥락이 존재하며, 그 맥락 안에 분명 이어져오는 이들의 사랑이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 사랑은 어느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아름다운 감정이었다는 것. 다른 시선이 끼어들지 않아도 되는, 각 부분에 충분히 내재되어 있던 감각이었다. 그걸 알아챌 수 있기만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가 고전에서 답을 찾으려는 이유를 이 책을 읽으며 한번 더 알았다. 고전을 통해 지금의 우리를 다시 엿볼 수 있다는 것이 감동적이었다. 이래서 고전이구나 싶기도. 그리고 이렇게 '퀴어 로맨스'라는 이름으로 고전을 만날 수 있게 된 것도 큰 행운이었다. 나의 생각이 한뼘 더 자랐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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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나를 위해 - 철학에게 일상을 묻다
에두아르도 인판테 지음, 유아가다 옮김 / 다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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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일상을 철학에게 물으면,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래도 나의 내공은 아직 부족한 듯하다. 이 책을 다 읽었고, 각 일상에서 마추지는 가치와 문제 상황에 대한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과연 이런 문제가 내 앞에 떡하니 놓이기 된다면 나는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다시 이 책을 들여다보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당당히 나의 생각을 조리있게 말하고 그 판단의 근거를 찾아 어느 누구와의 논쟁에서도 내 생각을 분명히 말할, 나만의 관점이 바로 서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책 한 권으로 이 모든 철학 사상과 논리를 다 알았다고 말하는 것 또한 무리이고 지나친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 담긴 18가지의 주제는 모두 우리가 가볍게 말하고 지나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다. 평생에 걸쳐 나만의 생각과 판단을 정립해 나가야하는 중요한 주제들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주제를 이 정도로 모두 알 수 있었다고 말해도 되느냐는 것이다. 사상가들은 평생을 두고, 심지어는 목숨을 걸고 이야기한 것들임을 안다면, 더욱 신중히 각 주제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확립해나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책 한 권 혼자 다 읽은 것으로는 한참 부족한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은, 이런 부족함을 알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각기 다른 사상을 펼쳐 나갔던 여러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한 꼭지에 담아주고 있다. 하나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사상가들은 입장에서도 서로를 비판하며 자신만의 철학을 세워 나갔음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묻는다. 과연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는 이 중 어떤 사상가의 이야기에 동의하는지,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 그리고 이런 질문에 우리는 고민하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어느 쪽의 생각을 따를 것인가에 대해 말이다. 그리고 이런 고민이 곧, 이 책에서 우리에게 해보라고 하는 철학이지 않을까.
이 책은 철학책이다. 철학적 사상가들은 생각을 교실 안에서 학문으로만 다루고자 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일상적 대화 혹은 삶의 상황 안에서 마주하게 되는 아주 흔한 상황에서 과연 우린 어떤 생각을 해야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이것이 철학책이 아니면 무엇이 철학책일까. 철학이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흔히 인식, 존재, 가치의 세 기준에 따라 하위 분야를 나눌 수 있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결국 철학은,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끊임없이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린 이 책에 담긴 18가지의 주제에 대한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의 철학을 해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철학을 할 때,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철학 사상가들의 이야기는 분명 도움이 되는 것이다.

왕따는 우리가 만든 기형적인 교육 시스템의 결과라고 볼 수 있어요. 학교 교육의 실패는 학생의 잘못이 아니라 교육 모델의 실패입니다. 서로 경쟁하고 상대방을 경쟁자로 보게 만드는 교육 시스템 아래에서 왕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놀랍지 않습니다. 루소는 왕따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 미친 사람들로 가득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교육을 개혁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52쪽)

사회는 아직도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고, 그 문제들은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고 세상을 만들어 나가면서 비롯된 것들이므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 또한 인간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중 교육도 마찬가지. 과거에서부터 여전히 현재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문제는 존재하며, 그 문제에 대한 해결을 철학에서 찾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 하게 된다.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문명의 질이 향상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는 인간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중이니까. 인간의 삶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성격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깊이 있게 연구한 논제는 바로 어떻게 하면 행복에 도달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그는 인간은 자기 삶을 충만하게 발전시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과 공존할 필요성이 있다고 확신했어요. 인간은 본성이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소로처럼 홀로 야생의 환경에서 살기로 한다면, 훌륭한 동물적 존재라는 살 수 있겠지만 인간적이지는 않을 거예요.(170쪽)

소로의 삶을 동경하고 그런 삶이 자유롭게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우정이 어쩌면 인간의 삶에서 더 큰 행복을 만들어낼 수 있는 필수 요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어느 쪽이 맞고 틀리는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니, 우린 이런 생각들 속에서 나의 생각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하나는 분명해졌다. 다른 사람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생각을 확실히 만들어 나갈 줄 아는 태도와 관점. 이걸 위해 필요한 것이 철학이라는 것. 그래서 이 책이 필요하구나 싶다. 그리고 이 책의 각 주제별 질문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던져봐야겠다. 그리고 각자 자신만의 철학을 세워보라고 해야겠다. 세상을 보고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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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조각난 세계를 삽니다 - 돌봄부터 자립까지,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이 함께 사는 법
윤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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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여전히 선을 긋는 사회구나 하는 씁쓸함이 밀려왔다.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 안에 사람을 구분하고, 그 경계의 선을 넘지 못하도록 가두는 사회. 그런 사회가 내가 살고 있는 사회라는 현실이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현실에서 늘 힘이 빠지는 건, 그런 사회를 바꾸고 변화시키기에 개인은 무척 약하다는 것이다. 소수, 개인, 그리고 당사자는 힘을 잃고 사회의 거대한 구조 안에 끼워진 채 살 수밖에 없다는 자조적인 기분까지 들었다. 우린 어떤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가, 우리가 원하는 사회의 모습을 구성원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물리적으로 환자를 돌볼 사람이 가족밖에 없다면, 가족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사적 구조에만 기대는 돌봄의 지속 가능하지 않다. 마을이, 사회가 조현병 환자의 돌봄을 나누지 않는다면 뉴스에서 접할 수 있는 심각한 사건이 만연해지는 현실이 될 것이다. 가족이 환자를 '독박 돌봄'하라는 요구는 버티다가 쓰러지라는 말과 다름없다.(76쪽)

'독박 돌봄'이란 말이 눈이 확 들어왔다. 아. 우리 사회는 이렇게 돌봄을 개인의 책임으로 오롯이 돌리는 사회였다. 어떤 돌봄이어도 마찬가지였다. '돌봄'이란 이름이 붙은 모든 것이 모두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까지만 가능한 것이다. 나무 씨의 가족이 여러 번 이사를 다니고 병원을 옳기고 또 주변 사람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따돌림을 당했던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함께 돌보았던 지점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어떤 제도고 어떤 체계도 이들의 삶이 깊이 관여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특히 저자가 내내 떨치지 못했던 자책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에서 특히 어린 자녀에 대한 모든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고, 사회는 몰아붙이니까.

조현병 당사자에게 일상을 유지하는 것은 약물치료 다음으로 중요하다.(...) '괜찮은 하루였다. 오늘도 나는 괜찮았다'라는 스스로의 평가가 당사자의 자존감을 유지하게 한다.(170쪽)

그런데 이것이 과연 당사자에게만 중요한 걸까. 병의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의 자리에서 자존감을 유지하고 '괜찮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매우 필요한 마음이지 않을까. 나를 저 문장에 대입시켜 생각해본다. 나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우리가 병의 이름만을 보고 그 이름 안에 존재하는 진짜 사람은 잊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봐야 한다. 병과 상관없이, 일상적인 삶을 유지하고 살아내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삶의 숙제이니까. 나도 여전히 나의 하루가 무사히 잘 유지되고 괜찮았다고 말하는 일상을 살아내고 싶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 스스로 안정감을 얻고 싶다. 그러니 꼭 나무 씨만의 이야기는 아닐 듯,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 현혹될 이유가 없다. 이건, 그저, 삶일 뿐이니까.
결국, 다른 시선으로 다른 삶이라고 미리 제단하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쉽게 선을 긋고 구분하려는 못된 습관을 버려야 한다. 각자는 각자만의 다른 특성과 성격을 가지고 살아간다. 조현병도 그런 특성 중에 하나라는 인식이 중요할 것 같다. 태화샘솟는집에서 하듯, 다른 사람이 갖고 있지 않은 특성 한 가지를 더 가지고 있다는 태도는, 다름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그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무의 치료에 있어서 어쩌면 '자존감'이 가장 효과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사람들의 존중과 지지를 수용하는 감각이 증상을 완홯는 데 가장 중요한 치료제가 아니었을까.(65쪽)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지지하기. 누구와도 비교할 필요 없는, 온전한 한 사람으로 늘 응원해주기. 친구가 되어주고 또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함께 갖기. 이 책을 통해 많은 걸 배우게 된다.

나무 씨가 '일하고 사랑하는 것'을 잃지 않고 잘 살아내기를 마음으로 응원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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