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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완벽한 무인도
박해수 지음, 영서 그림 / 토닥스토리 / 202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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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완벽한 무인도. 박해수 장편소설/영서 그림. 창비.
순간순간, 소설이 맞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실제 무인도에서의 삶을 에세이로 적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분명 소설이라고 적혀있지만 자꾸만 에세이로 읽고 싶어지는 건, 이런 삶에 대한 로망을 누구나 한번쯤을 가져봤을 거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이 시끄러운 도시에서의 삶 대신 조용하고 나만 홀로 있을 수 있는 공간에서의 삶을 꿈꾸기도 했다. 아니,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꿈꾸고 있다. 물론 그 로망의 시작은 지안이 처음 섬으로 들어갈 때 가져갈 목록을 적었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래서 현실감은 좀 떨어지지만, 그럼에도 이런 일상을 살아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그래서 더욱 이 소설에 마음이 끌리는 것 같다.
이곳 무인도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나는 고독은 아무 소리가 없는 상태라고, 내가 만들어내는 소리 말고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상태가 아닐까 짐작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고독의 소리는 모래들이 사각이는 소리, 꼬마물떼새가 내는 소리, 쉼없이 치는 파도 소리다. 결국 삶이란 수많은 소음들 속에서 사는 것이라고, 지금 내 앞에 펼쳐진 풍경들이 이야기해주고 있었다.(40쪽)
소음에 예민한 편이다. 작은 소리에도 귀가 쫑긋거려지고 그 소리들에 몸살을 앓는 느낌도 든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공간을 꿈꾸고 또 그런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매일 새벽 달릴 때도 음악조차 듣지 않는다. 누군가가 작게라도 틀어놓은 음악소리가 들리면, 그 소리를 피해 다른 곳으로 방향을 돌린다. 내 귀에 휴식을 주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하지만, 주변에서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자연은 수많은 소리를 내게 되어 있다. 새 지저귀고 날갯짓을 하며 날아가는 소리, 바람에 나뭇잎이 부딪히고 흔들리는 소리, 비가 땅과 나무에 떨어지는 소리 등 가만히 있어도 나는 소리가 있다. 하지만 인간이 내는 소리가 아닌 이런 소리들은 오히려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줄 때가 있다. 소리에 대한 차별을 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소설의 저 대목에서 생각했다. 우리가 소음 속에 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결국 어떤 소음 속에서 살 것인가는 선택할 수 있겠구나. 그리고 나에게 그런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나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구나.
매일 아침 일어나 물질을 하고 갯방풍을 따고 텃밭에서 채소를 키우며 까달은 것은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꽤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용역이 없는 삶, 오롯이 단 한사람이 누리는 자유에는 더더욱 많은 불편이 뒤따랐다.(206-207쪽)
조용한 곳에서 나만의 공간을 꾸리고 사는 삶에 대한 로망을 이야기할 때 주변에서 해주는 조언은, 그런 곳에서 혼자 모든 것을 감수하며 사는 것은 너무 힘들고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관리해주는 공간에서 안락한 생활을 누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일정 부분 동의한다. 그리고 나 혼자 많은 것들을 감당할 정도로 내가 용감하거나 씩씩하거나 건강하지 않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지안에게 현주 언니가 있듯이, 작은 도움의 연결이 끊어지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의 자급자족의 삶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싶긴 하다. 아직은 꿈만 가득해서인지는 몰라도 아직은, 이런 불편마저도 기꺼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긴 하다.
물론 이 소설에서 지안은 사회에서의 상처를 안고 떠난 삶이었다. 녹녹하지 않았던 사회가 안겨준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지조차 감도 잡지 못한 채 무작정 떠났던 것이었고, 다행히도 자신을 온전히 내맡길 수 있는 자연의 공간, 무인도의 공간을 찾아 새로이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온전히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무인도의 공간, 즉 아무도 없는 고립된 공간에서 제 스스로 회복할 힘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진짜 지안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자신에게 힘을 주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분명 지안 주변에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들의 도움이 지안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지안에게 뜨끈한 섭국 한 그릇을 내어주던, 지안을 기꺼이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고 배에 태워주던, 바다에서의 물질을 가르쳐주던 이들 말이다. 그리고 늘 마음 한켠에 있는 가족, 엄마까지도. 그러니, 어쩌면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가 다시 사람으로부터 치유된 것일 수도 있다.
제목을 한참 생각하게 된다. <나의 완벽한 무인도>. 어떤 지점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일까. 무엇으로 완벽의 기준을 삼을 수 있을까. 이 소설에서는 지안의 '마음'을 완벽하게 만들어놓은 섬의 의미인 듯하다. 그렇다면, 나에게 '완벽한 무인도'는 어디일지,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꼭 섬을 찾아가지 않아도 가까운 어딘가에 그런 공간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이 생기기도 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