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트 창비청소년문학 135
이라야 지음 / 창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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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 이라야 장편소설. 창비. 2025.

하람이의 삶이 짠했다. 아이들을 1차적으로 가정의 부모로부터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사회에서 지탱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하는데, 하람이는 그것이 불가능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부모가 부모로서 아이를 보듬어주지 못하고 자신의 슬픔과 불행 안에 갇혀 지내기만 했다는 건, 어찌보면 아이를 방치한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람이의 처지가 안타까운 것을 넘어 화도 났다.
물론, 엄마 아빠의 아픔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옛말처럼, 예찬이를 향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있다면 하람이에 대한 사랑과 책임도 있어야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른이 해야할 몫인 것이다. 하지만 하람이의 엄마는 그 어른으로서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물론 아빠도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른의 아픔을 치유하려는 노력은 했으나 아이가 상처를 받고 아파하고 있다는 것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최소한 이 애가 잡고 버틸 만한 애정의 끄나풀 정도는 내밀어줘야 할 거 아니에요. 그것까지 외면하면 어떻게 버티라고. 어른이 왜 그렇게 모질어요."(...)
"그렇잖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가 자기를 얼마나 탓했겠냐고요. 내 잘못으로 엄마가 화났다, 내가 엄마를 슬프게 했다고 하면서 얼마나 자책했겠냐고요."(158쪽)

속이 다 시원했다. 권 경위의 말이 어쩌면 권 경위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대놓고 쓴소리를 날릴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주는 어른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어른들은 어떤 면에서는 아이들보다도 더 비겁할 때가 많으니 말이다. 자신의 상처 안으로 숨기 바쁘고 다른 이들에게는 상처만 보이며 모든 것에서 도망치려고만 하고. 이런 어른에 대한 권 경위의 뼈 있는 말이었단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무하, 원지는 왜 이렇게 착한지, 권 경위는 어쩌면 이렇게 다 챙겨주는지, 체육관의 관장도 원지 엄마도 이해하고 도우려는 마음이 이렇게도 강할 수 있을까 싶었다. 카페 사장님과 감초 삼촌까지도 모두가 그랬다. 버스 정류장에서 처음 보는 이들에게 옷을 건네주던 할머니마저도. 지금까지 아빠와 엄마가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보상이라도 해주듯, 하람이가 이제 마음을 놓고 진짜 삶을 편안하게, 그것도 웃으며 살아볼 수 있도록 해주는 이들이었다. 이보다 더 다행인 것은 없겠다 싶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상처를 주고받는 사이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거리가 있을 것 같았고, 위로와 힘을 주는 관계에서는 서로의 마음이 같다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200-201쪽_'작가의 말' 중)

무하랑 셋이 있는 단톡방을 만들고 이름까지 지었다. '파이트!'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이 구호가 우리의 시작도 알리는 거라고 했다.(180쪽)

하람이 말고도 무하, 원지까지. 이 아이들이 나아갈 세상은 어떤 어른의 비겁함도 없는,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다 해나가도 되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니 지금까지 갖혀 있는 마음의 굴레는 여기서 끝!

'파이트!' 이제 다시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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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의 말들 -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행복
은한 지음 / 문학수첩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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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의말들 #은한 #문학수첩 #서평단 #서평 #책추천

해금의 말들. 은한 지음. 문학수첩. 2025.
_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행복

해금켜는 은한, 영상을 봤다. 사실 해금, 이라고 말만 들었지 이렇게 생긴 악기에 이런 음색이 나오는 줄 잘 모르고 있었다. 아, 가끔 이 비슷한 소리를 어디선가 들어봤던 것 같은데, 이게 해금이었구나, 싶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기는 하다. 물론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다르겠고 또 어떤 곡조로 연주하는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내가 듣고싶은 대로 마음을 따라가며 듣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그런 마음으로 듣고싶어서, 그렇게 들린다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 관심이 갔다. 국문학을 전공했고, 임용고시를 준비했고. 나와 비슷한 구석이 많아 더 관심이 갔던 것일 수도 있다. 어떤 과정이 있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어떤 노력들을 했을 것인지, 너무 짐작이 되어 더욱 그랬을 수도 있다. 시험을 보기까지, 그 시험에 실패하고 또 시험을 보려는 마음을 먹기까지, 어떤 각오를 다져야했을지 너무도 잘 알 수 있어서. 그리고 실패 후 어떤 마음에서 자신에게 1년의 유예 시간을 주게 되었을 지도 조금 짐작이 갔다.
그런데 신기했다. 그런 과정 속에 결론이 해금이라니. 그리고 궁금했다. 해금이 어떤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거지, 싶어서.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전문적인 해금 연주자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을까, 싶어서. 결과적으로만 본다면, 마치 해금 연주자가 되기 위한 길의 과정을 거쳐 결국 이렇게 된 것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해주고 있는 그 과정은 그리 만만치 않았고, 그 과정을 안다면 선뜻 나설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저자도 그런 모든 것을 예상하고 이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닐테니, 겪으면서 알게 된 많은 고충과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일 뿐. 하지만 그 과정을 써 내려가는 저자의 태도가 그리 나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런 저런 일들에 대해서 별 거 아닌 것처럼(물론 그 일들을 겼던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너무도 태연하게 많은 일들에 반응하는 느낌이, 글에서 느껴졌다. 글을 읽으며 어떡해, 어떡해, 하는 마음보단 그랬구나, 와 어쩜 그런가, 하는 마음이 더 컸으니까.

"남들 눈치 보느라 아무것도 못 한다면 제 행복은 찾을 수 없겠지요."(69쪽)

이 태도가 저자가 지금의 거리 연주자, 해금 연주자가 되어 10년을 살 수 있었던 근간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대학 전공을 해야하고, 그 전공을 살려 자신의 일을 찾아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마치 세상을 잘못 살고 있는 것처럼 보는 세상 사람들의 잘못된 시선에서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고 다독여 다시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큰 힘이, 이런 마음가짐이지 않을까. 그렇지! 남들 눈치 보느라 시간 다 쓸 수 없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판단 안에서 휘둘리기 시작하면 어떤 것도 제 의지대로 해 나가는 것이 불가능해질 테니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삶에 대한 태도가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저자는 가만 있지 않는 사람이다. 한 가지를 하고 나면 또 다른 한 가지를 도전하고, 그 도전으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일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그 다른 것들에 자신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역량과 능력을, 그리고 배우고 익힌 것들을 연결시켜 나간다. 하나에만 안주하지 않고 또 다른 것을 향해 힘을 쏟을 준비가 이미 마음 속에 가득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사실,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공간, 특히 거리에서 오로지 홀로 나를 보인다는 것이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으니, 처음 시작부터 저자는 남달랐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며, 나라면 이렇게 못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제일 많이 했다. 그래서 감탄하며(때론 말도 안 되는 상황과 사람들의 태도, 말에 화를 내며) 읽게 된 것 같다.

앞으로 저자의 모습을 가끔 찾아보게 될 것 같다. 지금은 어떤 곳에서 어떤 곡을 연주하고 있을지, 또 다른 어떤 도전들을 하고 있을지, 응원하는 마음으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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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아무것도
최제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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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아무것도. 최제훈 짧은 소설. 한겨레출판. 2025.

짧은 소설. 흥미로운 장르다. 우리가 보통은 소설을 길이에 따라 장편소설, 중편소설, 단편소설로 나누는데, 이 소설을 단편소설보다도 더 짧은 소설이란 뜻일 것이다. 실제로 소설이 진짜 짧았다. 근데 이 짧은 내용이 은근히 사람의 흥미와 재미를 끌어당기는 요소가 되는 듯하다. 장편소설은 긴 호흡으로 글을 읽어나가야해서 그 긴 호흡 속에 서사를 충분히 이해하고 또 푹 빠져들었다 나올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다양한 관계와 사건, 그걸 통해 갖게되는 다채로운 생각들 속에서 마음껏 놀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반면 단편소설은 간결하고 핵심만을 간결하게 전달해서 오히려 더 강력한 후폭풍을 가져오기도 한다. 짧다고 무시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파장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오히려 장편소설보다 이야기를 곱씹으며 되돌아 다시 읽어야하는 수도 생긴다. 더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이 소설들을 그보다도 더 '짧은' 소설이었다. 짧은 건 빠르게 금방 읽을 수 있어 좋을지는 모르지만, 생각보다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기도 하다. 마치 이야기를 하다 만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더 흥미로운 것이다. 뭐지, 이거 뭐라는 거지,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 하면서 혹여라도 내용 중 놓치고 넘어갔던 부분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의심도 하게 된다. 어떻게해서든 소설의 의도와 의미를 다 알아내겠다는 집념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냥 단순히 짧게만 쓴 소설들이 아니라, 정말 그 단 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이야기 전달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느낌. 그만큼 몰입도가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지하게 각 잡고 이야기를 서술해나갔다면 그만큼 재미가 떨어졌을 것이다. 이 소설들의 묘미는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처럼 쉽게 다 말해주는 것처럼, 속내를 다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여주면서, 그런 속내가 강렬하게 다가오게 만들었다. 어떤 면에서는 엉뚱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예를 들어, <작가의 말>은 진짜 작가의 말인지, 작가의 말을 빙자한 소설인지 헷갈리는 소설(?)이었다. 대부분의 책에서 작가의 말은 보통 제일 마지막에 부록처럼 나오는데, 이 책은 중간 부분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건 잘 모르겠다. 소설인지, 작가의 말인지. 분명 보통의 작가의 말과 비슷한 형식과 내용을 담고 있지만, 또 이런 소설을 썼다고 해서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니 말이다. 이런 식인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진짜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쓰고 있는 것인지 다 허구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글을 쓰는 주인공이라면 자꾸 작가의 모습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소설 속 서술자와 작가를 혼동하며 읽게되는 지점도 있었다. 소설책을 읽고 있지만 이렇게 알쏭달쏭해지는 책은, 오랜만이었다. 이런 게 재밌는 것이다.

짧아서 더 그런 것 같다. 이야기를 가만히 읽어 나가다 누군가 옆구리를 쿡, 찌르는 듯한 느낌의 소설들이 있었다. 앗, 하고 한순간 숨을 흡, 하고 멈추게 만드는 순간들 말이다.

이런 건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아뇨, 아무것도."(81쪽_'아뇨, 아무것도' 중)

"야! 주계병(조리병) 깨워!"
그렇게 전통과 현재는, 상상과 행위는 또 한번 타협하며 명맥을 유지했다. 튀김옷을 입고 노릇하게 튀겨진 채로.(155쪽_'타협' 중)

흔한 표현으로, 빵 터졌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웃기네, 하고 말이다. 이게 진짜 짧은 소설의 묘미구나 싶었다.

바로 우리의 정체성 말입니다. 우리는 날지 '못하는' 새들이 아니라 날지 '않는' 새들입니다. 창공을 누비는 자유를 반납하고 대지의 품에 안기기로 스스로 선택한 것이죠. 자유롭지만 공허한 하늘 대신 생명의 기운이 순환하는 흙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닭이 땅에 정착한 사연은 인간에게 노예처럼 사육당했기 때문입니다.(16쪽_'날지 않는 새들의 모임' 중)

아, 이런 게 우화구나, 생각했다. 정체성을 논하다니, 그 정체성이라는 것을 스스로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그들의 입을 통해 인간들의 세상을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구나, 싶었다. 어떤 삶을 선택한 것인가, 혹은 선택이 맞기는 한 것인가, 그런 모습을 저들이 이토록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결국 집단과 단체라는 것이 어떻게 그 나머지를 배척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고 되었다.

이러니 이 소설들이 흥미로울 수밖에.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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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 - 나를 활자에 옮기는 가장 사적인 글방
양다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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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활자로옮기는가장사적인글방

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 양다솔 지음. 한겨레출판. 2025.
_나를 활자로 옮기는 가장 사적인 금방

작가의 편지에 답장을 쓰고 싶어졌다. 나도 저 '까불이 글방'에 들어가 매주 글을 쓰고 싶어졌다. 작가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용기가 났다. 꼭 잘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그저 나를 끌어낼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잘하고 있다고 힘을 실어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런 글쓰기를 통해 조금씩 나 자신에게는 더 솔직하게, 또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 더 후하게 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뭐가 됐든 비슷하겠지만, 꾸준한 글쓰기를 통해 이전과 다른 무언가를 이룬, 내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쩌면, 작가 그 근처의 뭔가 비스무레한 어떤 무엇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살짝 기대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글을 쓰면서 깨달은 사실은 모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묻지 않았고, 아직 쓰이지 않았을 뿐이다.(...) 모두 그저 자신에 대해 쓰면 된다. 누구도 자신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이야기를 가졌는지, 어디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지 쓰기 전까지는 알지 못한다.(8쪽)

각 글마다 작가는 '이 주의 글감'을 알려주었다. 이 글감으로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쓰는 것이구나. 그렇다면 나도 이 책의 글감들을 가지고 글을 써보면 되겠구나, 싶었다. 예를 들면,

이 주의 글감: 내가 좋아하는 거짓말(234쪽)

"거짓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거짓말에 대해 쓰라고요? 어떻게 좋아하지 않는데 좋아하는 거짓말을 쓸 수가 있을까요. 하지만, 이건 거짓말입니다. 저는 자주 쓰는 거짓말이 있거든요. 좋아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거짓말을 하면 그냥 그 다음의 이야기는 듣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합니다. 그래서 자주 하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쩌면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아하는 것에 별 게 아닐 것 같습니다. 자주 쓰고 또 그렇게 쓰는 것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데 도움이 된다면, 좋아하는 게 맞을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거짓말은, '괜찮다'입니다. 사람들이 자주 물어요, 괜찮냐고. 그럼 당연하다는 듯 괜찮다고 대답합니다. 이건 어린 시절 How are you? 라고 물으면 I'm Fine, thank you. And you? 라고 물어야한다고 배웠던 공식처럼, 마치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음료수가 툭 하고 나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말의 조합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게 되는 '괜찮다'는 대답이, 실은 안 그럴 때도 아무렇지 않게 나온다는 거죠. 그래서 거짓말인 겁니다. 그리고 이 거짓말은 티가 많이 납니다. 질문하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거짓말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 묻고 또 묻고, 대답하고 또 대답합니다. 이게 참 재미있는 지점인 것이죠.(...)"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쓰다보면 자연스레, 작가에게 각 글감마다의 답장을 적어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 이게 또 쓰다보니 써지는구나, 할 수 있겠구나, 그리고 생각보다 좀, 재밌구나.

언제나 할 말이 있는 사람의, 늘 말이 많은 사람의, 보기만 해도 사람들이 귀를 막고 도망가는 사람의, 아주 적절한 취미라고 생각했어요. 모든 사람이 그렇게 자신에 대한 책을 한 권을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슬렁슬렁 산책처럼 쓰기 시작한 글이 생각보다 긴 산책이 되어버려서 완성되고 마는 책이요.(227쪽)

어린 시절, 인생에서 꼭 이루고 싶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자주 이렇게 답했던 적이 있다.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을 갖고 싶다고. 이 책을 읽으며 이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작가가 보낸 10년의 시간만큼이면, 이란 생각.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며 웃었다.

이 책은 한 번에 후루룩 일어나지 말고, 한 꼭지씩 읽고, 또 그 꼭지의 글감으로 글을 쓰면서 천천히 읽어나가면 좋을 책이었다. 작가의 생각과 이야기를 듣는 것만도 좋지만, 제목에서처럼, 쓰기로 마음 먹었다면 과감하게, 작가가 제시해주는 글감의 글을 하나씩 차곡차곡 써나가보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방에 직접 참여할 수 없다면 이렇게 간접적으로 참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해보고 싶은 게 하나 더 생겼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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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번의 힌트
하승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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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번의 힌트. 하승민 외. 한겨레엔. 2025.

한겨레문학상 30주년! 우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우선, 30년 동안 30편의 작품이 차곡차곡 쌓였다는 뜻일 테니, 그것만으로도 감동이다. 물론 30이란 숫자를 억지로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던 것을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일 년, 또 일 년을 하고 또 해오다보니 30에 와닿은 것일 것이다. 그게 더 값진 결과이지 않을까. 꾸준함이란 것, 멈추지 않고 계속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 갖는 의미를 이 책을 통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보게 된다.

"<30>이라는 책 읽어 봤어? 무슨 문학상 후보라는데?"(14쪽)
그것이 일명 '잠도 탱크'라고 불리는 30호 탱크였다.(38쪽)
결국엔 남자보다 구속이 30은 떨어지게 돼 있단 말이야. 30킬로미터 퍼 아워, 그게 얼마나 큰 차인지 알지?(89쪽)
어찌 됐든 새로운 30년이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372쪽)

이런 식이다. 각 작가들의 짧은 소설들 속에 '30'이 들어가 있다. 재밌다. 이런 요소를 기꺼이 소설 속에 끼워넣는 그 잠깐의 재미가 있다. 뭔가 표지 그림과 같은, 이쪽과 저쪽이 가는 끈으로 연결되어 이어져있는 듯한 느낌이기도 하다. 양쪽의 종이컵, 그 종이컵 사이를 이어주는 끈, 그 끈을 통해 이쪽과 저쪽의 소통이 가능해진다는 것이 어쩌면 이번 앤솔러지 <서른 번의 힌트>의 주요 테마이지 않을까 싶었다. 30년을 쌓아 올린 각 문학상 작품들과 작가들이, 다시 그 소설에서 이어진 작은 소설을 통해 서로 이어지고 연결되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 연결이 자연스레 그동안 이 작품들과 함께했던 독자들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는 것. 소통이란 것이 결국은 이런 연결고리를 통해 지속성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 책에 담긴 스무 편의 소설들을 읽으며, 기존의 소설들을 다시 더듬어보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솔직히 고백하면 기존의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을 모두 읽어본 것은 아니다. 띄엄띄엄 읽었던 소설을 속에서 알아챌 수 있던 이야기도 있었고 그렇지 못했던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이 작품들이 기존의 작품들을 모티프로 썼다 해도 혹은 그렇지 않다고 해도, 이 작품들만으로도 이미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다고해서 크게 영향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연관성을 찾을 수 있는 지점에서는 그것대로의 반가움과 묘미가 있었고, 그렇지 못했던 작품들에서는 기존의 작품을 상상해보며 어떤 요소가 어떻게 작용해 지금의 이야기가 나왔을지를 생각해보는 재미가 분명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흥미로울 것 같은 기존의 수상작들을 다시 거꾸로 찾아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쩌면 이 책을 펴내면서 알게모르게 숨겨놓았던 의도가 이것이지 않을까도 싶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 의도가 나에게는 적중했다. 어떤 이야기 끝에 지금의 이 책 속 이야기가 탄생하게 되었을까의 궁금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조만간 몇 편의 이야기를 찾아 읽어보는 수고를 하게 되겠구나, 혼자 생각하며 살짝 웃었다.

그리고, 이런 문장들을 찾아내게 됐다.

영수는 유아차가 천천히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사진 속에 담겨 있던 것들을 떠올렸다. 감사와 애정과 호의 같은 것들을. 그리고 어쩌면 그런 것들이 미움이나 원망 같은 것들보다 더 단단하고 견고하며 완강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혹은 그러기를 바랐다.(182쪽)
죄가 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의 불행 따위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지하철 노조의 파업, 억울한 판결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 변두리 국가에서 일어나는 전쟁, 북극의 온도 변화...... 제 생활에만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밖으로 나가면 저는 바뀔 겁니다. 진짜로요. 사람들의 일에 관심을 가질 겁니다.(253쪽)

어쩌면 이런 문장들 때문에 이 이야기들을 계속 읽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 이야기들 속 인물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해주려는 것, 그 메시지를 확인해나가는 과정. 이것이 어쩌면 작품들을 찾아 읽어나가야만하는 과정이기도 하면서 또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반드시 마주해야하는 숙제같은 것이기도 할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작품의 결이 내내 다른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속속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었다. 결이 닮아있다는 느낌, 혹은 비슷한 마음과 생각을 갖고 있을 거라는 작가에 대한 믿음이 그들이 만들어내는 작품들을 통해 전달된 듯한 느낌. 때론 이 책의 이야기들이 모두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는 것 같다는 착하고 들었다. 다르면서도 닮았다는 것이 주는, 낯선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안도감이라고나 할까. 혼자 이런 생각들을 하며 읽어나갔던 이야기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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