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비밀 친구
경혜원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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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빛 도서관'에 들어서는 이 아이, 이 아이가 도서관에서 읽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아픈 엄마와 바쁜 아빠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너무 외로웠을 이 아이. 밖은 이미 봄이 한창이지만 여전히 계절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이 아이의 그늘은 시리도록 아프다. 머리카락을 살랑 넘기는 봄바람에도 그저 시큰둥한 이 아이의 무표정은 어느 곳에서도 온기를 찾을 수 없는 고요하고도 적막함일 뿐이다.
하지만, 이 때 우리 아이에게 들려오는 따스한 봄의 기운!

_"그다음이 뭐야?"

마냥 겨울의 추위 속에 혼자 웅크리고 있어야할 것만 같던 이때! 봄은 다가왔다, 아니 두리는 다가왔다.

_"네가 읽는 책 정말 재미있다. 더 읽어줄래? 내 이름은 두리야."
_"배고프지? 밥 먹자."
_"이번 주는 어땠어? 별일 없었어?"
_"또 만나자. 여기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을게."
_"하고 싶은 말 모두 나에게 들려줘. 내가 들어 줄게."
_"그럴 수 있어. 그래도 괜찮아."

커다란 비밀 친구 두리는 어쩜 이리도 마음을 다 알아채주고, 따뜻한 말로 위로해주는지. 아무것도 아닌 듯한 몇 마디의 말이 차가운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어준다. 마치 봄을 만나게 하는 방법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곁을 내어주고 들어주고 공감해주며, 그 모든 것에 진심이기만 하면 된다는 듯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을 아픈 엄마와 바쁜 아빠. 결국 우리 아이 곁을 언제까지라도 지켜줄 수 있는 든든한 '커다란 비밀 친구'일 것이다.

상담을 공부하면서 만난 말 중 '마음 챙김'이란 것이 있다. 이론이야 어쨌든, 그저 춥고 아프고 힘든 마음을 잘 다독이고 챙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 마음 챙김을 떠올리며, 토닥토닥 해주는 두리의 말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저 말들을 자주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도, 또한 나 자신에게도. 그리고 '꼬옥' 안아줘야지. 안아주는 건 중요한 거니까.

봄빛 도서관에서 만난 친구, 그리고 병원에서 확인한 엄마와 아빠의 사랑, 그리고 이 계절을 함께한 소중한 '카다란 비밀 친구' 두리에 대한 추억 덕분에, 한뼘 더 자란 우리 아이는 그 다음 겨울이 두렵지 않을 것 같다. 추위를 이겨낼 든든한 방한 대비 완료!
앞으로 우리 아이에게 늘 봄과 같은 따뜻함만이 남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덧-
괜히 두리의 말을 가만히 따라 읽으며 혼자 뭉클, 또 울컥했다. 나도 알게모르게 마음의 그늘과 외로움이 있었나보다. 사실, 저 말들은 일상에서 흔히 하게 되는, 별 의미없이 주고받는 인사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진데, 왜 이 말들에 마음이 사로잡히는지. 이래서 이 책을 쉽사리 책꽂이에 꽂아놓지 못하고, 내내 책상 위에서 들춰보고 또 들춰보고 있다. 이 책이 우리 아이들에게 참 좋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어른들에게도 무척 필요한 위로다. 그냥 내내 여운이 남는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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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원 - 제20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137
김지현 지음 / 사계절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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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내내 달이가 누구일까를 계속 궁금해했다. 마치 어느 순간 정원의 친구들 중 누군가가 사실은 내가 달이야, 하고 비밀을 이야기해줄 것만 같았다. 그 장면을 기대하며 읽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알았다. 아! 정원과 연결되어 있는 관계들이 모두 달이였고, 달이가 누구여도 상관없었던 거구나! 그리고 정원도 역시 달이가 될 수 있었던 거구나! 정원이 달이를 찾듯 혜수가 늘 정원을 찾아와 정원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했음을 알아챘다. 그리고 정원은 기꺼이 문을 열어 자신의 정원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혜수의 손을 잡아 이끌어 주었다. 자신의 세계를 열고 자신만의 공간을 내어주는 일, 이것이 곧 사람과 사람이 이어질 수 있는 끈이며 따뜻한 연대이지 않을까. 정원은 자신의 손을 잡아준 친구들의 온기를 발판삼아 더 큰 온기를 내어줄 수 있는 힘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크면 말이야. 마당이 한 100평 정도 되는 단독 주택을 짓는 거지. 그래서 갈 곳 없는 강아지들을 많이많이 데려와서 밥도 주고, 마음껏 뛰어놀게 하는 거야."(185쪽)
"여레야, 우리도 같이 할래?"(186쪽)

나는 이런 꿈을 응원해주고 함께 실천할 수 있는 어른이 맞는지 생각해봤다. 쿠쿠 책방 부부처럼 싫어하는 것이 같은 사람들끼리 좋아하는 것을 늘리며 살아낼 수 있는 어른이 맞는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모두, 쉽게 어른과 아이들 사이에 경계를 세우고 그 안에서 뻔한 소리만을 고집하는 어른들이 아니다.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진심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지점의 고민과 열정과 사랑을 듬뿍 쏟는다. 그런 어른이고 싶은데, 과연 나는 그런 어른일지.

우리는 앞으로 어떤 어른이 될까. 어른이 된다는 건 나보다 먼저 산 사람들의 뒤를 따라가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어른이 될지는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들로 이루어진다니, 그게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니. 그것만큼 다행인 사실이 또 있을까?(151쪽)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할 것인가에 대한 자기 자신의 지분을 늘릴 수 있다는 것(100 중 100이 될 수만 있다면... 물론 이런 생각도 순전히 먼저 산 사람들의 뒤를 따라갔던 고리타분한 어른의 생각일 수도!)만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그저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겁쟁이 어른의 반성이 아니냐며 놀려도 할 말이 없다. 사실이니까. 다만 우리 아이들에게만큼은 우리 아이들의 '가치관이나 살아가는 방식 같은 중요한 것들도 함께 만들고 공유하는'(151쪽) 어른으로 성장할 아름다운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투덜이 참새> 책이 궁금해졌다. 가끔 좋아하는 것이 뭐냐, 어떤 게 싫으냐 누가 물으면, 단박에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우선 처음에는 음... 하고 시간을 끌고, 그나마 말해도 괜찮을 듯한 분위기나 사람 앞에서만 겨우 나의 생각을 조금, 아주 조금 내비칠 뿐. 대부분은 그저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 다 좋아. 좋아도 괜찮아, 싫어도 괜찮아, 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따라가기 일쑤다. 그래서일까, 다른 이의 관심을 살피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보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투덜이 참새가 또 누구이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졌다. 그리고, 나도 '투덜이 OO'이 되어 한 번 번호를 매겨볼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재밌겠는데, 싶은.
그리고 정원과 정원의 친구들이 부러웠다. '노잼 리스트'를 뽀개는 <<목요 독서회>>'를 만들어 함께 할 친구를 살피고 이에 마땅한 정원을 초대한 친구들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런 친구들의 초대에 기꺼이 응하고, 그러면서 더 눈부신 시절을 즐기는 이 아이들의 삶과 시간들이 어찌 이리도 아름다운지. 이 시간들의 소중함을 이미 어른이 된 이후 언젠가에 회상하며 느끼는 것이 아닌, 지금 현재 이 시간들의 순간순간에 느끼고 있다는 것이 감동이었다. 질투이면서 흐뭇함이기도 한, 이 아이들의 '정원'을 또 다시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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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좀 빌려줘 사계절 1318 문고 136
이필원 지음 / 사계절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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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가끔, '꿈같은 일이었어' 혹은 '꿈이었으면' 내지는 '꿈에서라도'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런 일들이 실제로 나에게 온다면, 나는 그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억하게 될까. 이 소설집의 이야기들에는 이런 소망과 소중한 마음들이 담겨있어, 그 마음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잘 모아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우리가 가꾸어 나가야 할 것들이 있으며, 그 가치들이 잘 지켜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특히 우리 아이들의 마음과 상황이라면 더욱.
혹등고래 전학생과의 소중한 순간을 지우지 않으려는 우성, 지구가 아닌 다른 공간으로 사람들을 보내는 Q와 떠나지 않는 나, 호랑님의 생일날 탬버린 쳐준 인간 고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엄마와 재회하는 수완, 도깨비의 장난으로 악몽을 꾸던 윤희와 호박마차 아줌마, 그리고 할머니의 마지막을 지켜주고 싶었던 은채까지. 각자에게 일어난 일들 속에서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무게에 어쩌면 포기하고 무너질 수도 있었겠지만, 무언가의 단단함으로 자신을 잃지 않고 그 순간들을 잘 버텨낼 수 있었다. 아마도 그 무언가는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 신기하면서도 꿈같은 일들이었을 것이며, 그런 현상 속에서 이들이 제 스스로를 놓지 않고 묵묵히 그 모든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관심과 친절, 배려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과 마음들이 모여야만 제 힘을 발휘할 수 있으니, 이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시간들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를 수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읽으며 중간중간 웃음이 나기도 하고 신기한 세계가 궁금하기도 했다. 때론 나도 지우개 빌리고 빌려주는 친구가 그립기도 했다가 정말 우주선에 사람들을 태우고 식인이 사는 어딘가로 가게될 수도 있는 미래는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먼저 말 걸어주고 생일잔치에 초대해준 호랑님, 함께 울어주는 용 포뢰, 호박마차의 아줌마가 있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안심되고 따뜻해지는 느낌이기도 했다.

"그건 네 외로움을 해결 못 해."(...) / "너를 믿어. 너 자신이 믿어 주는 네가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기대해 봐." / 내가 나를 믿는다니. 어쩌면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는 고운에게 그건 너무도 어색한 일이었고,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말이었다. 그 말이, 고운의 헝클어진 마음을 두드렸다.(78-9쪽_'호랑님의 생일날이 되어' 중)
"화해는 빨리할수록 좋은 거야."(...) / " 시간이 너무 지나면, 어느 순간 미안하다는 말을 잃어버릴 수도 있어."(104쪽_'우는 용' 중)
"외로운 사람을 내버려 두면 쓰나. 더욱이 학생을."(151쪽_'호박마차' 중)

전학생이 웃으면 주변이 밝아진다는 걸 방금 깨달았다. 햇살이 비쳐 들듯이 눈부신 건 아니고 그저 웃는 게 새하얘서 주위가 맑게 느껴진달까. 아무튼 그런 여자애였다.(10쪽_'지우개 좀 빌려줘' 중)

외로움에 스며드는 또 다른 어둠을 몰아내 어느 순간 밝은 빛으로 바꿔줄 수 있는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숨을 쉴 수 있어진다. 그러니, 그런 밝은 빛을 뿜어내는 존재들의 따스함이 모두에게 스며들 수 있기를.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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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피부 - 나의 푸른 그림에 대하여
이현아 지음 / 푸른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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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한복판은 살짝 지난, 이제 여름의 끝에서 가을을 기다리는 시점에 '여름' 책을 읽었다. 근데, 이 책 여름 책 맞나? 여름 색깔의 대명사일 것만 같은 '푸른색'은 사실, 편견이었지 싶다. 저자의 이야기 속에는 어쩌면 더 깊은, 가을과 겨울, 봄의 감정까지도 모두 녹아있는 '푸른색'이 담겨 있는 듯했다. 어쩌면 여름에 읽어 여름의 블루라고 생각했을 지도. 가을에 읽으면 가을의 블루, 겨울에 읽으면 겨울의 블루, 봄에 읽으면 봄의 블루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지금은 여름이라, 여름의 블루가 제일 잘 어울리지만.

쓴다는 것, 내려간다는 것, 써 내려간다는 것. 나는 그림일기를 쓰면서 줄곧 '내려간다', '가라앉는다'라는 신체적 느낌을 받았다. 펜을 움직이면서 나는 얼마나 깊이 침잠할 수 있을까.(17쪽)

저자가 이야기하는 이 하강의 침잠을 그림과 그림일기의 내용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하염없이 감정을 끌어내리는 하강이 아니었기 때문에, 놀이기구 타듯 위태롭고 불안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고요하고 조용히 저자의 도망 속으로 함께 따라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일기'를 써 내려갔음을 미리 이야기해줘서였는지 모르지만, 저자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듯도 해 이 내밀함에 조심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내밀함에서 나오는 진심이 느껴져 좋았다. 그저 단순히 남의 일기 몰래 훔쳐보는 음밀함이라기 보다는, 속깊은 대화를 나누고 난 후의 묵직함이라고나 할까. 어쩌면 이 책은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 혼자만의 공간에서 펼쳐보는 것이 더 어울리는 책일지도 모르겠다.

[책 속 문장들 & 생각]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대차게 혼난 뒤, 엉엉 울면서 집에 갔다. 무언가를 바라는 것만으로도 혼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56쪽)
_어쩌면 바라는 것, 얻고자 하는 것, 소유하고 싶은 욕심은 아주 작고 사소한 기억에서 비롯돼, 좌절당하고 거부당하며 자연스레 서서히 잊혀지는 것은 아닐지. 하지만 잊혀지고 가라앉을 뿐, 없어지지 않고 여전히 우리 삶에 들러붙어 있을 것이다. 이런 유년의 기억.

계절을 기온에 따른 기호로만 나타내는 건 어딘가 재미없고 맹숭맹숭하다. 수박도 한 번 먹어보지 못하고 여름이 가버린 것과 비슷하달까. 저마다의 몸이 다른 것처럼 계절을 살아내는 방식도 수천 가지다.(75쪽)
_그러니,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게절의 색깔과 느낌, 감정은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또 지금의 이 여름을 어떤 색깔과 방식으로 살아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꼭 푸른색이 아니어도 좋을, 나만의 여름.

소설가는 연고 없는 언어로 삶을 재건축하고, 화가는 타인에게 방향을 여는 행위를 통해 작은 망명을 실현한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생활의 자리에 앉는다.(100쪽)
_그래서 저자는 화가의 그림에 다시 자신의 노트북을 열었고, 나는 저자의 책에 다시 생각과 마음을 빼앗기는가보다.

매일 이 문 앞을 지나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문은 바닥에 닿아 있는데, 그림 속에선 왜 문이 떠 있을까? 이 문을 바라보는 건 일종의 의식이었을까? 정말 열기 위해 만들어진 문일까?(114쪽)
_쏟아지는 질문들과 무수히 많은 생각들, 이 모든 것에 정답이 없지만 그 속에서 또다시 정답을 찾아나가려는 시도와 시간들이 그만큼 더 값지고 소중할 것이다. 그렇다면, '조지아 오키프'의 문, 저자의 문, 그리고 나의 문은 무엇일까? 문 뒤의 공간은?

우연히 보게 된 그림, 책 속의 문장, 누군가가 건넨 한마디. 그것들이 곧바로 제 삶에 뿌리내리지는 못합니다. 그러다가 생각지도 못한 어느 날 기다렸다는 듯, 말간 얼굴을 하고 찾아오지요.(222쪽)
_꼭꼭 감추둔 보물상자 속 보석처럼 숨어 있다가 어느 순간 반짝! 눈앞에 떠오를 그림, 문장, 한마디를, 이 책에서 주워올릴 수 있을 듯하다.

저자가 '써내려간' 문장들에서 내가 '주워올린' 감정들을 다시 곱씹어보기 좋은,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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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 투쟁기 -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
우춘희 지음 / 교양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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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깻잎의 향과 맛을 좋아한다. 쌈을 먹을 때는 특히나 더 깻잎을 꼭 찾게 된다. 심지어 아이는 깻잎으로 싸 먹을 때 입에 들어가는 느낌을 더 부드럽게 하기 위해 거꾸로 뒤집어 싸 먹는다. 다른 초록 채소들을 외면하는 아이가 유독 사랑하는 채소이다. 요즘 한창 '깻잎 논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깻잎. 처음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는 '깻잎? 깻잎 투쟁기? 깻잎 논쟁과 비슷한 이야긴가?' 싶었다. 부제가 눈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머리로는 알고 있는 이야기가 실제로 내 주변의 직접적인 이야기가 되지 않을 때, 흔히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어떠한 것도 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하물며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가 있고 그것을 알게 되기까지 작고 큰 수고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라면, 우리는 쉽게 알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첫번째다. 알지 못하는 이야기였고, 알려는 노력을 기울여 알려고 하지 않았고, 알고 있는 작은 부분의 이야기마저도 알고 있는 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는, 과연 어떤 행동을 기울일 수 있을까. 소심한 변명을 늘어놓을 준비를 먼저 하게 되는 나 자신이 더 작게만 느껴졌다.
오래 전 교과서에 짧은 글이 실려있었다. 우리나라를 단일민족이라 부르지 말라는 세계인권위원회의 권고 사항. 이것은 국수주의면서 차별주의의 소산이므로 더이상 단일민족이라는 이름 하에 타민족에 대한 차별을 멈춰야한다는 것이었다. 짤막한 글이었지만 큰 생각이 자리잡게 된 계기였다. 그 이후 주변의 외국인에 대한 시선은 당연히 달리질 수밖에 없었고, 우리의 사회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하지만, 깻잎밭의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한 번도 눈여겨볼 기회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이주노동자의 주 일터는 당연히 공장이라고만 생각했다. 3D를 말하곤 했지만 그것에 농업이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는지.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하루 10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이 있을 거고, 그 노동이 이주노동자의 손에서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한번에 해본 적 없다는 사실이 조금 충격적이었다. 이것이 책을 읽으며 느낀 두번째다. 그들의 열악한 주거공간과 생활여건, 그들의 삶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인 예의도 없는 고용주와 우리 사회의 민낯, 그 민낯이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므로 더 부끄러워지는 것은 그나마 우리 마음 속, 아직은 완전히 내려놓지 않은 사람에 대한 존중이지 않을까. 저자가 '새끼'의 뜻을 말해주며 어쩔 줄 몰라했던 감정을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내 느끼고 있었다.
이들의 삶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은 사각지대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일부러 고개 돌리지 않으려는 불편한 진실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스스로 질문을 던져봤다. 물론 답은 저 두 지점의 사이 어디쯤일 듯. 전혀 몰랐어요, 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뻔한 거짓말일 테니까. 하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지금 당장 달려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한 몫의 작은 실천이라고 해야지! 하고 다짐하기에는 아직 용기가 없다. 다만 최소한 그들의 삶과 노력과 노동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고 그들의 존재를 잊지 않으려는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해보는 것으로, 스스로 타협안을 마련해 본다.
코로나가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고 한다. 이제는 절대(!) 코로나 이전으로는 돌아가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흔하다. 코로나로 인해 다 힘들어졌다는 이야기가 많은 가운데, 이주노동자에 대한 생각과 정책, 시행 등이 조금, 아주 조금은 반갑기도 하다. 우리는 분명 한 사람이고, 그 한 사람이 온전하게 사람으로 대우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우리는 왜 이리도 힘들여 하고 하고 또 해야하는 것인지. 그렇게 이야기하면서도 왜 사람들은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인지.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이루어져야하는 것이 상식인데, 그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우리 사회였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는 기간 동안 자꾸 책에 신경이 쓰였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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