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사라진 날 당신을 위한 그림책, You
산드라 디크만 지음, 김명철 옮김 / 요요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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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어제까지 모든 시간을 함께했던 소중한 존재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면, 그 충격과 상심은 어느 정도의 고통일까. 그것도 예상하지 못한 이별을 경험하게 될 때의 상실감은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과연 극복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남겨진 이의 마음은(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일 것이다. 한순간에 세상은 밝은 빛에서 암흑으로 바뀔 것이며, 고통의 크기는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온통 어둠만이 가득한 세상속을 헤매며 쉽게 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_"나, 내일은 저 별빛이 될 거야."
하지만 여우는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늑대가 나쁘다는 생각을 했다. 남겨질 여우에게 알아듣지 못할 말만을 남기고 그렇게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별빛이 되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늑대를 여우는 내내, 별빛을 볼 때마다 떠올리고 아파하게 될 테니까. 여우가 별빛을 따뜻하게 안아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고, 늑대를 원망해보았다.

_"늑대는 하늘의 별빛이 될 거라고 했어.
그럼 지금 저 하늘 위에 있을지도 몰라!"

여우는 늑대를 찾겠다는, 늑대를 만나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늑대가 있을 것이라는 그곳이 어디든, 늑대를 찾으러 가겠다는 마음인 것이다. 하지만, 안다. 아무리 늑대를 찾아 그 꼭대기를 오르고 또 올라도, 늑대를 만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걸.

_여우는 손을 쭉 뻗어서
하늘에서 빛나던 별 담요를
끌어내려 버렸습니다.
세상이 온통
어둠으로
뒤덮였습니다.

하지만 여우는 알고 있었다. 세상을 어둠으로 만드는 것도, 다시 빛으로 만드는 것도 모두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는 것을. 반짝이는 별빛 속에서 자신이 다시 생기 넘치게 타오를 수 있다는 것을. 환한 세상 안에서, 늑대와 함께했던 그 시간들만큼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_"삶은 정말 아름다워." 늑대가 말했습니다.
"맞아! 너랑 있으면 언제든 그래!" 여우가 대답했습니다.
"나에게 약속해 줄 게 있어." 늑대가 말했습니다.
"우리의 오늘을 언제까지나 기억해 줘."
여우는 행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죠.

떠나는 이가 남겨질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늑대가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바뀌지 않는 이상, 남겨진 이의 슬픔 또한 막을 수 없다. 다만 남겨진 이의 슬픔을 다독일 수 있기 위한 방법은, 그 슬픔을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는 것. 늑대가 여우에게 남긴 말들 속에 그 해답이 숨어 있었다. 곁에서 옆구리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던 체온은 느낄 수 없어도, 그가 남겨놓은 기억의 따스함은 내내 몸속에서부터 온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늑대가 여우에게 몹쓸짓(여우가 별빛을 볼 때마다 슬퍼하게 만든 것)을 했다고 생각했던 처음의 생각을 반성했다. 오히려 별빛으로 여우의 삶이 여전히 늑대와의 기억으로 아름다울 수 있을 거라는 걸, 별빛을 통해 알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배려였다. 아, 이걸 느낀 순간, 뭉클했다.
책을 다 읽은 후 표지를 다시 봤다. 표지 속 여우의 표정을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우가 늑대와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는 것도 잘 알 수 있었다. 소중한 존재와의 약속을 늘 간직하며, 소중한 존재를 마음속에 품고, 더 밝고 씩씩하게 살아갈 힘을 스스로 찾은 여우가 너무 대견했고, 감동적이었다. 표지의 여우의 모습을 한참 지그시 바라보게 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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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의 작은 새 인생그림책 18
윤강미 지음 / 길벗어린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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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표지를 봤을 때 느낌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빨간 표지 안에 노란 '작은 새'가 주인공이구나, 예쁘네. 그런데, 이 '작은 새'는 새장 안에 살고 있구나, 가 나머지 하나였다. 그리고나서 다시 제목을 봤다. <미나의 작은 새>. 여기서 '미나의'라는 말이 걸렸다.

_ "나의 작은 새야, 드디어 숲이야! 좋은 공기를 마음껏 마셔 봐."
_ "할아버지, 내 작은 새도 저 새들처럼 하늘을 날 수 있을까요?"

'나의 작은 새', '내 작은 새'라는 표현에 눈길이 갔다. 전에 들었던 의문이 하나 있었다. 흔히 사람들이 반려 동물과 함께 지내면서, 이 반려 동물의 '주인'이라고 하는 표현은 옳은가. 주인이 맞나. 예전,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 궁금한 마음으로 부모교육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때 강사가 강조했던 말이, 아이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고. 부모 원하는대로 아이를 휘두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당연한 것을 잘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또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우리의 '미나' 역시 이 '작은 새'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존재하고 움직이길 바랐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나서 표지를 넘겨, 속표지를 봤을 때 미나의 마음이 숨어있었다.

_ 미나는 작은 새를 무척 아꼈습니다.
새에 대해 공부도 하고 그림으로 그려 보기도 했습니다.
미나는 그 새를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무척 소중하고 좋아하는 누군가(혹은 무언가)가 생기면, 당연히 내 것으로 만들고싶은 욕심(소유욕)이 생긴다. 특히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사랑하는 대상이라면 더더욱 늘 '곁'에 두고 싶은 것이 공통된 마음일 테니까. 하지만 이 마음이 때론 상대에게 구속이 되고 한방향의 사랑이 되지는 않을까. 어쩌면 잘못된 방식의 사랑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의 서포터즈로 신청하며 들었던 생각(기대평)은 이랬다. "사랑하는 존재와 늘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죠. 체온을 느끼고 곁을 내주며 따뜻하고 싶습니다. 떠나보내기 싫잖아요. 하지만, 늘 그렇게만 지낼 수는 없죠. 어쩌면 그건 나만의 욕심일 수 있으니까요. 언젠가는 곁에서 떠나보내야하는 순간을 결심하고, 사랑하는 존재의 삶과 사랑, 행복을 위해 보내줘야겠죠. 잘 보내주는 것 또한 그 존재를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요?" 책을 읽으며 이 생각이 더 명확해졌다. 여기서 중요한 건, '사랑하는 존재의 삶과 사랑, 행복을 위해'다.

_ '작은 새는 이곳에 남고 싶은 게 아닐까?'

'미나'가 경험한 '작은 새'의 공간에서 '미나'는 알 수 있었다. 자신과 '작은 새'가 행복을 느끼는 부분이 다르다는 것을. 그 대상을 사랑하는 방법에는 그 대상이 있어야 할 공간으로 보내주는 것 또한 포함이라는 것을. 그리고 보내줄 수 있는 '용기' 또한 사랑의 또다른 마음이라는 것을. 그래서인지, '미나'의 결심과 선택이 참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보통, 사람들은 무언가를 손에 쥐기 위해 무척 애쓴다.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수고와 어려움을 감수한다. 그리고는 놓치지 않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쏟아 붓는다. 움켜쥔 손을 절대 펴지 않는다. 아마도, 얻기 위해 했던 노력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절대 잃지 않겠다는 마음일 것이다. 그만큼 무언가를 놓는 건 더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그 어려운 것을, '미나'는 했다. 그리고 그 이후, '미나'의 더 행복해진 표정을 나는 읽을 수 있었다. 그 이전보다 더 편안해진 마음과 더 풍성해진 감정의 '미나'를 느낄 수 있었다. 결국은 '작은 새'에 대한 '미나'의 사랑이 더 켜졌다고 생각했다.
'미나의 작은 새'가 아닌 '작은 새'가 큰 새가 될 때까지, '미나'와 '작은 새'의 사랑이 이 숲에서 오래도록 이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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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보와 앤 - 아무도 오지 않는 도서관의 두 로봇 보름달문고 89
어윤정 지음, 해마 그림 / 문학동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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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어낸 후, 마음이 찡했다. 답답함이 밀려왔다. 만나야 하는데 만나지 못하는 '그리움'이 이런 거겠지. 리보와 앤의 '기다림'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이 모든 상황들은 지금의 코로나19 상황을 경험한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지 않을까. 그래서 더욱 리보와 앤의 마음이 간절하게 전해졌다.
그리고, '관계' 그리고 '소통'이란 단어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결국 우리가 존재하고 살아가는 주요한 요소 중 하나가 사람 간의 관계와 소통이지 않을까. 우린 서로 만나며 관계맺어야 하고, 소통을 통해 상대와 감정과 생각을 나누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많은 부분에서 이 둘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몇 년을 지내왔다. 지난 시간들 속에서 자주 할 수밖에 없었던 말이 '거리두기'이지 않을까. 어떤 상황에서도 철저히 지켜야만 했던 것이 이 '거리두기'였다. 아, 이 단어만큼 무섭고 아픈 단어가 또 있을까. 특히 아직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성장해야하는 아이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_마스크를 써야 했다. (눈 말고는 어떤 표정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_칸막이 식탁에서 밥을 먹어야 했다. (작은 사각형 공간 안에 식판과 나만 있었다.)
_짝꿍 없이 혼자 공부해야 했다.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_주먹 인사를 해야 했다. (손을 잡고 포옹을 하며 서로의 체온으로 따뜻해질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_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켜야 했다. (사람 간 거리가 멀어진 만큼, 마음도 함께 멀어진 듯했다.)

나열하다보니, 우리가 건너온 시간들이 이토록이나 슬프고 힘든 시간들이었구나 싶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 서로의 간격을 넓히고 그 안에서 자신의 안전을 우선시했던 과거를 돌아보게 됐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던 허전함이 사실은, 이런 거리감에서 만들어진 공허함과 외로움이지 않았을까. 도서관에 남겨진 리보와 앤이 다시 찾아올 아이들을 기다리며 서서히 힘을 잃어가는 모습은, 관계와 소통의 부재가 어떻게 우리의 힘을 약화시키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결국 관계하고 소통하지 못하면 이렇게 힘을 잃는구나.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대답해주며 서로를 궁금해하는 그 마음이, 사실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아닐지. 우리가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너무 쉽게 잊고 지냈던 소중한 모습은 아닐지.

가슴에서 지르르 진동이 울렸다. 감정 센서가 아이의 글에서 그리움을 느낀 건지, 내가 그리움을 떠올린 건지 모르겠다.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107쪽)

이제 굳게 잠긴 도서관의 문을 활짝 열고, 반갑게 쏟아져 들어오는 아이들을 환한 인사로 맞이해야 할 때이다. 아무도 오지 못하도록 막았던 마음의 장벽까지 모두 허물어, 누구라도 함께 인사하고 이야기나눌 수 있는 만남의 장이 되어야 한다. 그런 도서관에서 리보도 앤도, 그리고 끝까지 그 연결의 끈을 놓지 않았던 도현이까지! 이들이 모두 이제는 '그리움' 대신 '즐거움'과 '사랑'으로 가득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바로 그런 아침을 맞이해야 할 때이다. 그리고 그 아침, 리보의 반가운 인사를 받고 나도 반갑게 인사하고 싶다.

"안녕하세요! 즐거움과 안전을 책임지는 여러분의 친구, 리보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9쪽)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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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의 다이어리 베스트 세계 걸작 그림책 56
엘런 델랑어 지음, 일라리아 차넬라토 그림, 김영진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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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읽고 잠시, 아니 꽤 한참 후회를 했다. 나도 일찍부터 다이어리를 꼼꼼하게 쓸 걸... 하고. '리시'의 다이어리가 무척 부러웠다. 여기서 '리시'는 둘 다(같은 이름으로 마주선 두 '리시'의 관계에도 주목하게 된다. 세대를 넘어서면서도 연결되어 있는 느낌! 이 세상에 홀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져있다는 따뜻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얼마나 안심되는 느낌인지...)!
할머니 '리시'의 책꽂이 선반에 꽂혀있는 일기장들이 이렇게나 부러울 수가. 빼곡하게 채워진 이야기들이, 곧 삶의 축적이라고 생각하니 뭉클하기도 했다. 그리고 '리시'가 첫 일기장에 첫 일기를 쓰는 그 시작에, 마음이 살짝 떨렸다. 나만의 공간에 꾹꾹 눌러 적는 이야기에는 '리시'가 앞으로 펼쳐내고 싶은 모든 것이 담길 테니까. 그 처음의 설렘이 얼마나 기분 좋을지, 상상만으로도 리시와 함께 첫 일기를 써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기라는 것이 참 이렇게 묘하구나, 한번 더 생각했다. '리시'가 들고 있는 일기장에 걸려 있는 자물쇠와 열쇠.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만이 알고 싶은 이야기가 듬뿍 담길 것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일기장에 저 자그마한 자물쇠를 달아놓고,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던 추억. 그 일기장에는 웃고 울었던 일들, 나랑 누군가 사이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의 내 감정까지... 나만 알고 싶고 나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담겨 있었다(물론, 내 다이어리는 꾸준히 쓰지 못해 띄엄띄엄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담긴 초라한 일기장이 되었지만...).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도 새삼 느꼈다. 수많은 시간들이 흘러가고 그 시간들을 살면서 많은 일들이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우린 그 시간과 일들 속에서 나만의 역사를 선택하여 기록한다. 그렇게 기록은 쌓여 비로소 '나'가 완성되고, '나'를 오롯이 기억할 수 있도록 해주는데, 그것이 바로 일기장이다. 일기 속에서 '나'의 역사는 숨쉬고 살아 움직이며, 그 자체로 '나'가 될 수 있는 것. 우리가 매일 특별한 일들을 거치며 지금의 오늘을 맞이한 것이 아니듯, '나'라는 사람은 그동안의 별거 아닌 듯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쌓여 '나'가 된다. 뭔가 거창하고 대단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모두 사소하여 별거 아닌 이야기로 하찮게 여길 필요도 없다. 그저 그렇게 오늘의 하루하루가 누적되면, 그 자체로 의미는 충분한 거니까.

_ "좀 전에 읽어 준 이야기들은 내가 너만 했을 때 쓴 거야. 난 그 일기장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전부 모아 놨단다. 지금도 중요한 일들은 일기장에 다 서 놓지. 늘 기억하려고. 우리 리시도 일기 써 보고 싶니?"

과거의 일기장들을 잠시 꺼내보았다. 좋았던 일보단 그렇지 못했던 감정에 더 치우친 일기들이 대부분이지만(평소 농담삼아, '오늘 집에 가서 이불 뒤짚어쓰고 울 거야'라는 말 대신, '나 오늘 일기 쓸 거야'하는 느낌!), 그때의 솔직함을 오랜만에 대면하니 살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아, 일기가 이런 거였지, 심장이 소리없이 쿵! 했다. 할머니의 말씀처럼, 일기를 쓴다는 것은 늘 기억하겠다는 것. 그리고 늘 기억한다는 것은 그 어떤 순간들도 모두 소중히 여기겠다는 말이지 않을까.

몇년 전부터 매일 꾸준히 다이어리를 적어나가고 있다. 꼬박꼬박 써 내려간지 얼마 안 되었지만(많이 늦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나의 생각과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올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리시' 할머니의 선반에 올려진 일기장들처럼 나의 일기장도 고스란히 내가 될 수 있도록. 좋았던 일도 나빴던 일도 모두 다 나의 이야기로 완성될 수 있도록 그렇게.

_나의 첫 일기장에게
오늘은......

덧-
속표지를 보고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쩜 이리도 다이어리 감성에 꼭 맞는 속표지를 갖고 있을까!
알록달록, 아기자기, 앙증맞은 일러스트들...
모두 다이어리 꾸미기에 최적화된 그림들!
당장에 다이어리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이 숨어 있었다.
아무래도, "<리시의 다이어리>+다이어리" 세트가 있어야 할 듯.
이때 다이어리는 꼭! 자물쇠가 달려 있어야 함!

*서평단에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그림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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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센디어리스
권오경 지음, 김지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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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대해 잘 모른다. 어린시절부터 딱히 어느 한 종교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한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종교에 대한 맹신, 광신이란 단어들이 나에게는 쉽게 와닿지 않는다.
길을 혼자 걷다 보면 낯선 사람들이 자주 말을 걸어온다. 그 사람들이 어떤 의도로 말을 걸어오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의연하게 대화를 사양하고 걷던 길을 걸을 수 있다. 헌데 의문이 든 적이 있었다. 그들은 과연, 어떤 생각과 판단으로 그 수많은 거절의 말을 들으면서도 낯선 사람들에게 다가가 먼저 말을 걸 수 있을까. 그래서 대학 교정을 걷던 어느날, 그렇게 말을 걸어오는 누군가에게 나도 질문을 했다.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고, 그들이 하려고 하는 말에 계속 의도가 담긴 질문을 던졌다. 한참을 길에 서서 낯선 이와 대화(?)를 주고받았고, 어느 순간 그 낯선 이가 먼저 발길을 돌렸다. 너무 오래 전 이야기라 구체적으로 대화 내용이 생각나지는 않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남아있다. 그래서일까. 더욱 이런 부류 사람들의 생각을 쉽게 이해하기란 어렵다.
그러다보니 종교와 관련한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지게 되면, 쉽게 말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비슷한 판단을 하게 되곤 한다. 그들이 갖고 있는 종교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그런 종교에 그토록 몰입하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이며 납득하기 어려운지 등등. 어쩌면 소설 속 '피비'에 대해 세간에서 떠들어대는 이야기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말들을 쉽게, 내뱉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내뱉는 모든 것들을 경계해야겠다는 생각 또한 든다.
'피비', '존 닐', '윌'. 이 세 인물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들의 삶 속에 믿음이 자리하고 그 믿음에서 벗어나게 되는 그 순간들의 마음을 더듬어보게 되는데, 아무래도 이들 모두에게 일차적으로 연민의 감정이 생긴다. 우리가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너무 깊이 알게 되면 미워할 수 없어진다고. 어떤 문제 상황 앞에서도 그들의 깊숙한 이유와 내면을 알게되는 순간, 그들을 이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그런 비슷한 마음일까. 분명 두려워하며 비난하게 될 이들에게 우선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보려 노력하는 마음(소설 초반, '윌'이 하려던 그 노력이 이것일까...)이 생겼다. 이들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부딪히고 아파했던 그 각자의 삶의 어느 한 지점에서 이들을 만나게 했겠구나, 하는 생각. 그래서 피비의 모든 면을 하나하나 되살리며 그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윌의 마음을 따라가보고 싶어졌다. 그들에게도 분명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그 삶의 위치에서 그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니까.
하지만 여전히 내 상식으로는, 그런 일련의 행위들이 반사회적이며 불특정 다수의 타인을 위험하게 만드는 믿음이라면 어떤 경우라도 용납할 수가 없다. 아무리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이루어지는 이해의 노력이라 하더라고, 그것으로 인해 또 다른 누군가는 지옥과 같은 어둠을 경험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들이 자신들의 어둠을 극복하겠다고 다른 이를 또 다른 어둠으로 몰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무시무시한 일인가. 그런 면에서 여전히 '제자' 사람들의 행방을 확인할 수 없는 소설의 후반부를 읽으며, 무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다 읽고, 다시 1장을 읽었다. 윌은 어떤 마음으로 이들이 함께한 시간들을 떠올리고 기억하며 기록했을까가 다시금 궁금해져서.

하지만 여기서부터 나는 상상이 잘 안 돼, 피비. 건물들이 무너졌잖아. 사람들이 죽었고. 예전에 너는 내가 이해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고 했지. 그래서 지금 난 노력하고 있어, 이렇게.(12쪽)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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