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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훅스 같이 읽기 - 벨 훅스의 지적 여정을 소개하는 일곱 편의 독서 기록
김동진 외 지음, 페페연구소 기획 / 동녘 / 2024년 1월
평점 :
벨 훅스의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은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다였다. 한창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던 시기였고 또,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시기였다. 자연스레 여성의 삶에 대한,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직장에서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에서 선택했던 책이 벨 훅스의 책이었고 표지 그림을 담은 작은 벳지를 굿즈로 받아 그 독서모임을 이끌었던 모임장에게 선물하기도 했었다. 이야기는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페미니즘에 대해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그게 벌써 거의 7년 전의 이야기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페미니즘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나, 이 책을 읽으며 더욱 그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어느 순간 페미니즘이나 여성이라는 단어 자체가 혐오의 단어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관련 책을 읽자고 누구에게 선뜻 권하거나 추천하기에 주저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어른이 아닌 어린 학생들에게는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하게 되는 면이 있었다. 심지어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추천 도서로 선정하면서 결국은 여성 혹은 양성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은 조용히 빼기도 했다. 괜한 반발 혹은 혐오 발언을 듣고 싶지 않은 나 스스로의 방어기제이기도 했다. 헌데 이 책을 읽으며, 그랬던 내가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아무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가장 공감하며 읽었던 부분이 "까칠한 페미니스트 교사도 사랑을 한다"였다. 과연 교실과 학교에서 내가 갖고 있는 생각과 판단을 아이들에게 강요할 수 있을까. 내가 옳다고 판단되는 부분이 아이들에게도 옳다고, 나는 단언할 수 있을까. 나의 비건(지향)을 아이들에게 공개하고 함께 하기를 권하는 것은 과연 옳을까. 여러 다양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공동체 안에서, 결국 그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일지, 그 다양성에 대해 옳지 않음을 강하게 가르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일지, 나도 이 부분을 읽으며 생각이 많아졌다.
여성으로 사는 것이 너무도 힘들고, 사회는 더욱 차별과 혐오의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 낙담할 때도,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자고 말을 건네는 벨 훅스의 문장들을 읽으면 책을 덮을 때쯤 다시 희망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7-8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처음 부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이런 이런 주제와 내용, 생각을 서로 주고받는 수고를 기꺼이 스스로 선택하고 있는 이유는, '희망' 때문이지 않을까. 나 또한 벨 훅스의 여러 책들 중 몇 권을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마음을 다시 먹게 되는 것 또한, 결국 이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지식과 학생 사이를 연결하려는 교육자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어떤 주제와 지식을 말한다는 게 가능할까?(184쪽)
특히 가르친다는 행위에서 나의 감정과 판단이 다수의 아이들에게 어떤 '희망'의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다시금 마음을 굳게 먹을 수밖에. 그리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더 웃긴 건 '나는 성매매 여성이 아니야, 학생이지! 그것도 여성학 전공!'이라고 항변하는 나였어."/"그 말을 진짜로 했다고?" 조용히 얘기를 듣던 벨이 깜짝 놀라 황급히 질문을 던진다.(30쪽)
_성매매 여성과 학생은 다른가? 나의 어떤 말이 또다시 무시무시한 폭력과 혐오의 말이 될 수 있음을, 나 스스로 매번 확인할 줄 알아야 한다.
물고기가 물을, 인간이 공기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나에게 언제나 새삼스럽다. 수조에 가득한 가부장제를 감각하게 해준 것, 이 수조 바깥의 세상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과 방법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알려준 것이 페미니즘이다.(82-83쪽)
_우린 과연 공기를 인지하고 살고 있는 것이 맞을까? 인지하고 있다면, 그 공기의 질을 이제 따져야할 때가 아닐까. 가부장의 물 속에서 허우적대는 물고기가 아닌, 이제는 좀 더 '희망'적인 물로 바꿀 수 있는 물고기의 움직임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는 하나의 하얀 기준에 맞추기 위해 우리의 황색 몸을 굶기는 행동에 왜 이렇게 익숙해졌을까. 그 기준에 익숙해하는 나는 '기준에 맞지 않는 여성'들과 다른 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125쪽)
_나의 황색 몸을 굶기려는 시도를 자주 한다. 프리 사이즈의 '기준'에 내 몸을 맞추기 위해 하던 안간힘이었나. 모두 다른 사람들이 같은 사이즈의 몸을 갈망하는 것이라면, 과연 나는?
이 책을 읽고 최종적으로 든 생각은, 그래서 결국 자꾸만 서로 만나 같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구나, 였다. 수많은 백인 인종차별주의자 앞에서 연설을 한 벨 훅스의 모습을 떠올려보며, 누군가 나와 다른 생각으로 또다시 혐오와 차별의 말을 듣게 된다 해도, 결국은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를 자꾸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이 책의 저자들처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눈다면 더할나위 없이 무척 훌륭한 것이고 말이다(나도, 1인분의 자립! 실천해 볼까?).
우리는 'OO 님 얘기를 듣고 보니 저도......' 하는 말을 다리 삼아 자꾸만 연결되었다.(104쪽)
다른 이의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가 되고, 나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이들과 분명 '연결'되는 지점이 생긴다. 그 연결 지점을 통해 다시 페미니즘을, 그리고 교육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실천으로부터!
덧-
인상적인 문구가 있었다. 아, 하고 감탄한 문장이었다. 두고두고 잊지 않고, 나도 '선의를 가진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가정에서 부당하고 강압적인 대접을 받을 때 아이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은 법이나 제도가 아니라 선의를 가진 어른들뿐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다른 곳이 아닌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143쪽)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