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의 밤 - 당신을 자유롭게 할 은유의 책 편지
은유 지음 / 창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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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작가는 이제 이름만으로도 충분한 사람이다. 은유 작가의 신작이 나오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고 읽고 싶어진다. 지금까지의 작가의 책들 중 절반 이상은 읽었고, 읽을 때마다 후회가 없었다. 당연히 이번 책도 마찬가지.
사실, 책에 대한 책에는 살짝 의심과 부담을 덧붙여 읽는다. 책을 소개하는 책이 되면 실망하게 될 터이고, 내가 잘 모르는 책에 대한 내용을 구구절절 설명한다면 흥미를 잃게 될 테니까. 하지만, 이 책은 책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책만 이야기하지 않고 있어 자연스레 은유 작가에게 빠져들며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분류한다면 어디에 넣어볼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어찌보면 작가의 생각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에세이이면서, 사실은 우리 사회의 만연한 문제와 편견, 부조리 등을 설파하고 있는 인문학 책인 듯 보였다. 단순히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기보단, 지금까지 자신이 어떤 삶의 철학으로 삶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 안에서 사람과 어떤 관계 속에 숨쉬고 있는지가 잘 보였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며 자꾸 내 생각이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마침 설 연휴를 지나면서 더욱 생각이 많아졌다. 딸로 며느리로 또 엄마로 명절을 지나온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실컷 설거지와 뒷정리 다 하고 돌아선 며느리에게, '설거지라도 해야 마음이 편할 것이'니 설거지 정도 하는 건 당연하다는 시어머니의 말이 목구멍에 걸려있다면, 내가 책을 바로 읽은 것이겠지 하며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그제서야 책의 제목도 제대로 눈에 들어온다. <해방의 밤>. 우리가 아직도 쟁취하지 못한 '해방'은 언제나 나의 삶이 될 수 있을지. 주변이 모두 잠들어야만 '나'가 될 수 있는 시간 '밤'은 온전한 '해방'의 통로를 마련해줄 수 있을지.
다행인 건, 내가 찾아 숨고 싶어하는 곳과 작가가 그러하고 싶었던 곳이 일치했다는 것. 내가 집 곳곳을 책으로 쌓고 또 쌓으며, 아이로부터 '엄마는 책 중독'이란 말까지 들으면서 책에 파고드는 근본적인 이유가 작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에서 또 한번 위안을 얻었다. 책이 답을 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책을 통해 세상이 바뀌지도 않을 것이지만, 읽고 있는 그 순간과 읽고 난 후의 마음과 생각의 미약한 변화만으로도 충분히, 책은 '해방'의 시작이 될 수 있을 테니까.

특히, 교사로서 과연 나는, 어떤 교사여야 하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여전히 학교 안 아이들에 국한된 시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지만, 과연 그 많은 아이들이 세상과 부딪히게 되는 그 순간들에 나는 어떤 어른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이 많아진다.

무엇보다 적자생존으로 돌아가는 경쟁 시스템은 멀쩡하던 사람도 '늘 화가 난 사람'이나 '고통에 무감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데, 이렇게 폭력이 만연한 풍토에서 어느 직종이라고 해서, 어떤 스펙으로 무장을 한들, 몇살이라고 해서 안전할 수 있겠느냐고요.(161쪽)
왜 타인의 아픔에 관심을 가져야 하느냐고요. 그럴 때 선생님에게 배운 아도르노의 말을 전합니다. "나의 상처로부터 해방이 되려면 이 사회적인 상처를 볼 줄 알아야 된다."(179쪽)

공감하지 못하고 타인의 삶에 대해 관심조차 없는 세상이라면, 과연 우린 아이들과 '희망'을 말할 수 있을지.

사실 잠재적 가해자의 억울함은 그가 잠재적 가해자의 고통을 알면 사라질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몸을 돌려 타인의 입장으로 건너가보는 일은 지구를 반대로 돌리는 일처럼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게 희망입니다.(312-313쪽)

결국 돌고 돌아, 언제나 마음 속에 남는 단어는 '공감'이다. 내 삶을 구성하는 몇 단어들 중 하나이기도 한 이 단어를, 다시 마음에 새긴다. 이 세상을 '공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며.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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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타 선생과 우주 문지아이들 176
김울림 지음, 소복이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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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내가 꾸어 무엇 하나. 결국 아빠 엄마가 원하는 대로 재단될 거다. 싹둑싹둑 잘라질 거다.'(12쪽)

어른은 분명 아이 때를 모두 겪고 어른이 된 것인데도, 왜이렇게 아이의 마음을 모르는 걸까. 이 질문은 어른인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가끔 우리집 아이들에게 묻는다. 그래도 엄마가 그렇게 꽉 막힌 건 아니잖아? 아이들은 웃기만 할 뿐이다. 이럴 때 순간 다음 할말을 찾기 어렵다. 아이들의 눈에는 그저 똑같은 어른의, 그렇고 그런 어른의 그런 류의 잔소리들일 뿐이겠지 싶다. 그래서 최대한 아이들 방에 자주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게 또 잘 되지는 않는다. 반성 모드.

우주는 이미 엄마 아빠가 자신을 집어넣으려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에 실망, 혹은 더 큰 절망을 안고 있다. 말해봐야 소용 없다고 생각해, 말조차 꺼내지 않는다. 두근거리는 마음은 더 큰 실망이 되지만, 그런 감정조차 어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배려를 한다, 우주가. 부모님이 실망하지 않도록. 아이의 배려는 어른에게 닿는데, 어른은 아이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하는구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지 못하는구나, 어른이 갖고 있는 판단의 기준으로만 상황을 정리하지 아이의 눈과 입을 봐주지 않는구나, 싶어 안타까웠다. 그러면서 이 모습이 나의 모습일까봐 걱정이 됐다.

"오만불손한 대가가 되기보다 생물과 교감하는 진짜가 되고 싶어."(35쪽)
솟아오른 모양이 신기하고 재밌었을까. 맛있어 보여서일까. 짖고 장난치더니 먹어 버렸다. 진짜 강아지가 된 것처럼.(54쪽)

고타 선생 스스로도 사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알고 있었다. 다만 어떻게 해야 될 수 있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 어쩌면 그동안 진짜 자신이 모습을 찾지 못하고 인위적으로 꾸미고 가꾸려고만 했던 것은 아닐지. 어떤 것이 자신의 '진짜'인지를 스스로 알아채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고타 선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자신을 찾아가는 것은 어른에게도 쉬운 것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별은 축구공으로 바뀌어 있었다. 축구공에는 글씨가 보였다. 글씨가 별빛처럼 반짝거렸다./'진짜 마음.'(66쪽)

우주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의 '진짜 마음'을. 다만, 그 마음을 보여주지 못했을 뿐. 그것이 어른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자신을 속여, 가짜 자신을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기타 선생과의 시간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당당하게, 자신의 '진짜 마음'을 보여줄 때. 당당히 말하고 돌아서는 우주의 모습이 이렇게나 듬직하고 단단해 보일 수가 없다. 자신을 바로 세워 스스로 성장할 줄 아는 아이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재밌었다. 건조하게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애들 이야기에 무슨 재미냐고, 가볍게 취급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어떤 어른의 이야기를 읽은 것 못지 않게 감동이 있었다. 단순히, 아이가 자신의 꿈을 찾아 나간다는 교훈이 다가 아니었으니까. 이 책의 소제목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1. 가짜 진짜
2. 진짜 가짜
3. 진짜 진짜

우리는 어쩌면 많은 가짜를 나 스스로 만들며 진짜를 감추고 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사실은 진짜 자신을 알지 못한 채 가짜가 진짜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을 수도 있다. 진짜, 진짜가 무엇인지는 자기 자신만 안다. 그런 면에서, 고타 선생과 우주는 스스로 자신의 진짜를 찾았으니, 이 둘은 이것만으로도 참 대단하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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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훅스 같이 읽기 - 벨 훅스의 지적 여정을 소개하는 일곱 편의 독서 기록
김동진 외 지음, 페페연구소 기획 / 동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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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훅스의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은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다였다. 한창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던 시기였고 또,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시기였다. 자연스레 여성의 삶에 대한,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직장에서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에서 선택했던 책이 벨 훅스의 책이었고 표지 그림을 담은 작은 벳지를 굿즈로 받아 그 독서모임을 이끌었던 모임장에게 선물하기도 했었다. 이야기는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페미니즘에 대해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그게 벌써 거의 7년 전의 이야기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페미니즘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나, 이 책을 읽으며 더욱 그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어느 순간 페미니즘이나 여성이라는 단어 자체가 혐오의 단어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관련 책을 읽자고 누구에게 선뜻 권하거나 추천하기에 주저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어른이 아닌 어린 학생들에게는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하게 되는 면이 있었다. 심지어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추천 도서로 선정하면서 결국은 여성 혹은 양성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은 조용히 빼기도 했다. 괜한 반발 혹은 혐오 발언을 듣고 싶지 않은 나 스스로의 방어기제이기도 했다. 헌데 이 책을 읽으며, 그랬던 내가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아무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가장 공감하며 읽었던 부분이 "까칠한 페미니스트 교사도 사랑을 한다"였다. 과연 교실과 학교에서 내가 갖고 있는 생각과 판단을 아이들에게 강요할 수 있을까. 내가 옳다고 판단되는 부분이 아이들에게도 옳다고, 나는 단언할 수 있을까. 나의 비건(지향)을 아이들에게 공개하고 함께 하기를 권하는 것은 과연 옳을까. 여러 다양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공동체 안에서, 결국 그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일지, 그 다양성에 대해 옳지 않음을 강하게 가르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일지, 나도 이 부분을 읽으며 생각이 많아졌다.

여성으로 사는 것이 너무도 힘들고, 사회는 더욱 차별과 혐오의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 낙담할 때도,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자고 말을 건네는 벨 훅스의 문장들을 읽으면 책을 덮을 때쯤 다시 희망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7-8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처음 부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이런 이런 주제와 내용, 생각을 서로 주고받는 수고를 기꺼이 스스로 선택하고 있는 이유는, '희망' 때문이지 않을까. 나 또한 벨 훅스의 여러 책들 중 몇 권을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마음을 다시 먹게 되는 것 또한, 결국 이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지식과 학생 사이를 연결하려는 교육자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어떤 주제와 지식을 말한다는 게 가능할까?(184쪽)

특히 가르친다는 행위에서 나의 감정과 판단이 다수의 아이들에게 어떤 '희망'의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다시금 마음을 굳게 먹을 수밖에. 그리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더 웃긴 건 '나는 성매매 여성이 아니야, 학생이지! 그것도 여성학 전공!'이라고 항변하는 나였어."/"그 말을 진짜로 했다고?" 조용히 얘기를 듣던 벨이 깜짝 놀라 황급히 질문을 던진다.(30쪽)
_성매매 여성과 학생은 다른가? 나의 어떤 말이 또다시 무시무시한 폭력과 혐오의 말이 될 수 있음을, 나 스스로 매번 확인할 줄 알아야 한다.

물고기가 물을, 인간이 공기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나에게 언제나 새삼스럽다. 수조에 가득한 가부장제를 감각하게 해준 것, 이 수조 바깥의 세상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과 방법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알려준 것이 페미니즘이다.(82-83쪽)
_우린 과연 공기를 인지하고 살고 있는 것이 맞을까? 인지하고 있다면, 그 공기의 질을 이제 따져야할 때가 아닐까. 가부장의 물 속에서 허우적대는 물고기가 아닌, 이제는 좀 더 '희망'적인 물로 바꿀 수 있는 물고기의 움직임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는 하나의 하얀 기준에 맞추기 위해 우리의 황색 몸을 굶기는 행동에 왜 이렇게 익숙해졌을까. 그 기준에 익숙해하는 나는 '기준에 맞지 않는 여성'들과 다른 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125쪽)
_나의 황색 몸을 굶기려는 시도를 자주 한다. 프리 사이즈의 '기준'에 내 몸을 맞추기 위해 하던 안간힘이었나. 모두 다른 사람들이 같은 사이즈의 몸을 갈망하는 것이라면, 과연 나는?

이 책을 읽고 최종적으로 든 생각은, 그래서 결국 자꾸만 서로 만나 같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구나, 였다. 수많은 백인 인종차별주의자 앞에서 연설을 한 벨 훅스의 모습을 떠올려보며, 누군가 나와 다른 생각으로 또다시 혐오와 차별의 말을 듣게 된다 해도, 결국은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를 자꾸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이 책의 저자들처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눈다면 더할나위 없이 무척 훌륭한 것이고 말이다(나도, 1인분의 자립! 실천해 볼까?).

우리는 'OO 님 얘기를 듣고 보니 저도......' 하는 말을 다리 삼아 자꾸만 연결되었다.(104쪽)

다른 이의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가 되고, 나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이들과 분명 '연결'되는 지점이 생긴다. 그 연결 지점을 통해 다시 페미니즘을, 그리고 교육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실천으로부터!

덧-
인상적인 문구가 있었다. 아, 하고 감탄한 문장이었다. 두고두고 잊지 않고, 나도 '선의를 가진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가정에서 부당하고 강압적인 대접을 받을 때 아이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은 법이나 제도가 아니라 선의를 가진 어른들뿐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다른 곳이 아닌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143쪽)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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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
강재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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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카메라가 향한 곳에 있는 그 어떤 생명체에게라도 폭력이 되지 않게 사진 찍기를 즐기자고. 나무를 꺾거나 풀을 뽑아내고 찍은 사진으로 진정 즐겁거나 행복하고 성취감을 느낀다면 그건 잘못된 사진임을 알아차리자.(216-217쪽)

저자가 갖고 있는 태도를 잘 보여주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자연, 나무를 향하고 있는 저자의 마음은 어떤 경우라도 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강하게 들었던 생각이기도 하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그 영향을 고맙게, 온몸으로 받아 안아야한다는 것. 인간이 자연을 인간의 관점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 이것이 일평생 좋아하는 마음으로 자연을 사진에 담아내고자 했던 저자의 삶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감동적이었다. 이런 마음 정도는 되어야 자연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만 같아 나 자신이 작게 느껴지기도 했다.

산과 바다, 줄 중 하나를 고른다면 어디를 고를래?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다. 산! 산이 좋은 이유는 딱 하나, 나무가 좋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은 것은 참을 수 없지만, 나무가 빼곡하고 무성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그런 산을 가까이 두고, 사계절 변화를 때때로 살피며 살 수 있는 지금이 참 좋다(가고 싶을 때 5분 안에 언제라도 산의 흙을 밟을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반가웠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 책의 글보다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글을 읽을 때보다 사진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었다. 어쩔 수 없었다. 글보다 사진이 주는 감동이 더 컸다. 사실, 평소 사진을 좋아하지도 잘 찍지도 않는다. 사진을 잘 찍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적도 없었다. 나 스스로도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하니까. 하지만 꼭 산에 가게 되면, 아름다운 자연을 보게 되면 손에 든 휴대폰을 꺼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내 휴대폰에는 나무, 산, 하늘, 구름 사진이 많다. 가끔 새와 곤충의 동영상까지. 이런 나이다보니, 이 책의 사진들이 더욱 와 닿았다.

모처럼 나선 숲길에서 만난 어떤 나무를 자신의 나무로 정해 보면 어떨까. 자주 찾는 곳이면 더 좋겠다. 마음에 드는 나무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주거나 그게 조금 쑥스러우면 그냥 친구로 삼는 것 말이다.(176쪽)

그리고나서 결심했다. 쑥스럽지만, 나만 알고 있는 내 나무를 정해야겠다고. 친구 나무에게 내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주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어디에 있는 나무를 정하면 좋을까, 책을 읽으면서도 우리 동네 나무, 우리집 뒷산의 나무들을 눈으로 그려봤다. 내일이든 모레든, 친구 나무를 찾아 동네 마실을 설렁설렁 다녀와야겠다고도 생각했다. 입춘이 금방 지났고 곧 우수가 올 테니, 봄을 준비하는 나무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코로 감각할 수 있도록 다녀와야겠다는 생각 포함해서.

다시 돌아가자. 마을 앞 서낭당을 지키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자. 나 혼자 잘 사는 게 아니라 마을이 함께 잘 살기를 바라는 버팀목. 묵묵히 할 일을 하며 자신을 낮추는 '언눔'이 되자. 과도한 욕심을 내려놓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실천하자. 그것이 거짓과 폭력으로 내 배를 불리거나 일확천금을 기대하는 것보다 '소원 성취'를 이루는 훨씬 빠른 길이다. 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위해.(174쪽)

올해 삶의 목표로 삼아도 좋을 글을 발견했다. 언눔, 배려하는 마음, 다 함께 잘 사는 세상. 한 그루의 나무가 되자고, 오늘 일기에 적어야겠다. 나무의 마음으로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감쌀 수 있는 내가 되어야겠다고, 올해의 다짐을 적어봐야겠다.

가끔 마음이 퍽퍽해질 때 이 책의 사진을 들춰봐야겠다. 나무가 주는 기운을 사진으로 받아 안고, 마음을 촉촉하게 가꿔나갈 수 있도록. 올해 초, 딱 필요한 책을 읽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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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좋은 동시 2023
안도현 외 지음, 홍성지 그림 / 상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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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가 좋다. 시를 좋아하지만 요새는 머리가 굳었는지, 시가 참 어렵다. 점점 어려워지겠지, 싶은 마음으로 쉬운 시를 찾는 건 아니다. 시를 좋아하는 마음따라 동시도 이미 좋아진 지 오래니까. 잠시 외국에 머물고 있을 때 '동시마중'을 알게 되었다. 그 동시마중을 구독하고 싶어 얼마나 마음이 조급해졌는지. 귀국하자마자 2년 구독을 했으니까. 그리고 때때로 시 필사를 하며 동시 필사도 함께 했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동시를 모아 좋은 시집을 보니, 괜히 마음이 뿌듯하다. 동시를 사랑하는 어른 독자가 있음을, 시인들도 알고 있을지. 동시를 통해 여전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어른 독자가 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는 마음을 살짝 가져본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온라인으로만 아이들을 만나야했던 때, 딱딱한 전달사항 외에 내가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뭐가 있을까 고민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동시였다. 내가 좋아하는 걸로 아이들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아침마다 동시를 하나씩 적어 보내주었다. '오늘의 시'라는 타이틀로 매일 적어주었다. 아이들의 아주 작은 반응에도 크게 마음이 흔들렸던 기억이 새록새록. 수업에서도 동시는 자주 수업의 재료가 된다. 동시만의 재치와 유머, 그리고 뜬금없는 구석에서의 감동이 아이들에게도 전달되나보다. 아이들이 진지하게 동시를 해석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면, 괜히 내가 마음이 벅차오른다. 그런 면에서, 나는 좋은 소통의 자료, 수업의 자료를 하나 얻었다. 그래서 더 기분이 좋다.

이 시집을 보면, 그동안 잘 알고 있던 시인의 이름도 보이지만 잘 모르던 시인의 이름도 눈에 들어온다. '책머리에'에 소개되고 있는 말처럼, 우리 동시에 대한 사랑이 많은 시인들을 통해 지속된다는 것이 나도 참, 좋다. 오래도록 동시 근처에서 얼쩡거릴 수 있으려면 다양하고 많은 동시가 계속 발표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래야 앞으로도 쭉, 동시들을 쏙쏙 골라 읽고 필사하고, 이야기 나주며 동시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
눈에 들어오는 시 몇 편을 필사했다. 정말, 이런 마음이라면 우리 아이들과도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없지 않을까. 뭔가 심장을 쿵, 내리누르는 구석이 여기저기에서 보였다. 이래서 동시를 읽지, 싶어지는 부분들이었다.

하지만 엄마,/내가 그 애를 때리면/그 애가 아프잖아(14쪽_고영민 '친구' 중)
그게 숲을 이루는/착한 일이었다는 것도 까먹어요(29쪽_김성민 '착한 일은 그렇게 하는 거니까요' 중)
이제야 깨닫습니다/사랑은 니가 필요합니다(64쪽_신민규 '사랑이란' 중)
밤새 내린 눈이 어쩜 무척 섭섭해/다시는 우리 마을을/찾아오고 싶지 않을 것 같다(90쪽_장동이 '걱정이다' 중)
"왜 잘못 없는 사람들이 다치고 아프고 죽는 거예요?"(100쪽_조인정 '밥을 먹어요' 중)

자칫, 동시는 아이들만 읽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음을 알려면, 어른들도 동시를 열심히 읽어야 한다. 동시에 담아낸 그 마음을 함께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좋은 동시가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으며 따뜻하게 활짝 피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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