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의 세계사 - 문명의 거울에서 전 지구적 재앙까지
로만 쾨스터 지음, 김지현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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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 관심이 많다. 지구를 생각하면 화가 더 많이 나는 사람이 나다. 쓰레기 문제는 곧 경제와 소비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비건을 지향하고 최소한의 소비만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 한 예로 옷을 사지 않기로 했다. 기존에 있던 옷, 혹은 누군가 그만 입기로 한 옷을 가져다 입는다. 새옷은 사지 않는다. 플라스틱과 비닐 쓰레기, 일회용품의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 애쓰지만 이게 제일 쉽지 않다. 내 의지만으로 되는 문제는 아니어서 늘 조금씩은 답답하고 화가 나 있는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쓰레기의 세계사>를 읽었다.
이 책을 아껴가며 읽었다. 두꺼운 책이지만 하나도 두껍다는 생각 없이 꼼꼼하게 읽어나갔다. 감동이면서 동시에 내내 갖고 있는 화가 조금 더 커진 느낌이었다. 답답함도 한몫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기분이 우울했다. 한숨이 나오고 인상이 써지며, 지금의 이 세계가 이제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떤 분명한 답을 내놓아야 할 때이지 않나, 걱정스러웠다. 설마 아직도 이 쓰레기 문제에 관심조차 없는 거라면, 너무 속상한 것을 뛰어넘어 분노가 치밀어 오를 것만 같았다. 내가 만들어내는 가정 쓰레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척 적다. 그걸 이미도 알고 있었다. 산업의 구조와 경제,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얼마나 광범위하게 많은 쓰레기가 지구 환경 오염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장 내가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시급함이 밀려왔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었다. 이 책, 법이나 정치, 정책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 필독서로 지정해야할 것 같다.

결국 산업혁명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구나 싶었다. 양차대전을 겪으며 많은 부분에서 우리 세계는 바뀌었구나 싶었다. 우리 사회는 지금의 이 흐름을 거슬러 다시 과거로 갈 수 없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지구가 이렇게 병들었다고 다시 구석기시대로 가자는 말은 아니라는 것 쯤, 이미 벌써 알고 있다. 물론 무지했던 예전처럼 바다에 버린다거나 땅에 묻는 것으로 돌아간다는 뜻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지금의 이 화와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으려면 우린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바로 답을 찾아야 한다. 지금의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답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 지금의 경체제제와 다양한 상품의 공급을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쓰레기 처리에 대한 획기적인 기술을 담보로 한 처리시설을 만들 국가들도 없을 것이다. 당연히 이 모든 것이 다 돈, 경제와 맞물려 있으니까. 그러니 돈도 되면서 또한 지금의 쓰레기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답을 내놓아야 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듯 소비를 줄이자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며 더 확실해지기만 했으니까.
또한 지금도 여전한 세계 빈부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문제다. 귀족이나 부자들이 만들어내는 쓰레기를 가난한 나라 혹은 사람들에게 떠넘기는 몰상식한 짓은 이제 그만해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여전히 지금도 내내 쭉, 내가 만든 쓰레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누군가에게 넘겨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너무도 불편하고나 화가나는 지점이다.
그리고 재활용, 재사용 문제도 충격이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내가 만든 쓰레기가 버려지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든 활용, 사용될 수 있으면 다행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이런 말을 들었었다. '쓰레기로 쓰레기를 만든 것이다.' 결국 또 다른 쓰레기, 예쁜 쓰레기를 만든 것에 불과하다면, 생각을 달리 해봐야하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며, 역사를 아는 것은 중요하단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어떤 것이든 지금까지의 과정이 어떠했는지를 아는 것은 앞으로 어찌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지금까지의 악순환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부해야 한다. 알아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고, 이것이 쓰레기에 대해 제대로 된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 방법이 될 것이다. 쓰레기 문제를 제대로 연구하려는 움직임에 나도 동참하고 싶어졌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완전 강추다.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니, 모두가 읽어야할 책이다. 정말 놀랍도록 흥미로운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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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산책 수업 : 가을·겨울 - 시인 같은 생물학자 김성호 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학교 어린이 교양
김성호 지음, 안경자 그림 / 우리학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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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이제야 딱 가을이 되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찬 기운이 들고 한낮의 햇살은 따스하다. 참 가을이다. 이런 가을이 김성호 선생님과 산책하면 참 좋겠다. 내가 초롱이가 되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들으며 걷는 산 산책길은 힘들지만 상쾌하고 유쾌할 것 같다. 더러 감동적이기도 하고. 산을 오르느라 살짝 땀이 나도 좋겠고, 그 땀이 다시 살랑거리는 바람에 말라도 기분 좋겠다. 책을 들고 산을 가야하나, 혼자 고민하며 읽다 마지막에 답을 찾았다. 아, 간편하게 검색해보는 방법도 있었구나. 하지만, 이 책의 미니버전이 있으면 좋겠다. 걸쳐입은 외투 주머니에 살짝 넣고 때때로 산속에서 펼쳐봐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들고 가기에는 아직 산행이 익숙하지 않으니까.
산책 수업이란 말이 딱 어울렸다. 어쩌면 수업이라고 해서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전혀. 말 그대로 산책이었다. 이런저런 것들에 걷다 멈추기를 반복하며 천천히 자연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충분했던 산책. 올해 봄, 학교 아이들과 숲해설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해설가 선생님들이 이끌어주시는대로 따라가며 신기한 것들을 직접 경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아이들은 자연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어쩌면 아이들이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숲 해설가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다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 면에서 아이들이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가을은 풍성하기만 할 것 같았다. 우리가 알고 있듯 온갖 곡식과 과일들을 수확하게 되는 계절이니까. 과연 안에서도 그럴까? 산에서도 각종 식물과 동물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계절이었다. 물론 계절 앞에 장사는 없었다. 마냥 가을을 만끽하기만 할 수는 없던 것이, 곧 겨울이 다가오니까. 겨울을 준비하기 위한 분주함도 한몫 하는구나 싶었다.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건 어떤 경우라도 마찬가지구나. 사람도 그러하니, 이 세상의 생명은 모두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다면 겨울에는? 역시, 동물들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겨울엔 식물도 동물도 몸을 움츠리는 계절이라고만 생각했다. 사람도 동면하는 동물처럼 이불 밖으로 나가기 싫은 것이 사실이니, 바깥의 동식물들은 더할 거라는 생각만 했다. 하지만, 그런 동식물들도 겨울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각자의 방식과 습성을 통해 어떻게 이 계절을 지날 수 있는지를 스스로 체득하여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발걸음(발자국)을 따라가며 신기하면서도 뭉클함이 느껴졌다. 어떤 면에서는 살아있는 생명이란 것 자체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발자국이 깊이 패인 그곳에서 하늘의 별과 달을 봤을 동물의 그 오롯함이 나에게도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볼 줄 알아야 하는가를 생각해본다. 사람 눈에 그저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와 도시의 삶만이 보인다면, 너무 삭막할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잠시 눈을 돌려 각 계절에 따라 제 생명을 알맞게 살아내고 있는 식물과 동물들을 바라볼 줄 아는 눈이 생기면 좋겠다. 보는 눈은 자주 볼 때 만들어질테니, 자주 (책을) 보고 또 (자연을) 보면 좋겠다.
오늘은 따스한 가을 햇살을 등에 맞으며 가을산책을 나가봐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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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퍼즐
김규아 지음 / 창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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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와 지빈이, 두 아이에 대해 한참 생각해보게 된다. 이 두 아이가 조금씩 점점 더 건강해질 수 있는 힘은 무엇이었을까에 대해서. 분명 두 아이 모두에게 상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서서히 아물어가고 있다. 완벽해질 수는 없지만 그 상처를 스스로 보듬을 줄 알게 되면서 두 아이는 성장하고 있다. 분명 두 아이가 커 나갈 수 있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당연히 가족이다. 은오의 어린 시절 상처는 늘 눈앞에 있다. 은오가 로봇팔을 볼 때마다 그 상처는 과거가 아닌 현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은오는 상처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너무나 씩씩하게 자신을 내려다볼 줄 안다. 그럴 수 이었던 것은 엄마와 아빠, 그리고 할머니 덕분일 것이다. 특히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사랑으로 지지하고 응원해줄 수 있는 가족의 힘은 매우 크다. 그런 가족의 관심과 사랑이 은오를 이토록 단단한 아이로 만들어준 가장 큰 힘이 것이다. 하지만 지빈이에게는 오히려 그런 가족이 상처의 원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가족이란, 특히 부모란 아이에게 사랑을 주기 위한 존재라는 것을. 지빈이가 봉투 속에 숨고 싶었던 것은 오히려 부모의 사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모두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 그것이 모든 아이들의 공통된 마음이다. 그런 마음을 알아채주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일 뿐. 이것은 아이도 마찬가지. 부모는 누구라도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이 또한 아이가 알아채주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지빈이가 엄마의 사랑을 알아채는 순간, 지빈이의 마음은 더욱 따뜻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자기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알아채는 것.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보다 어쩌면 더 어려운 숙제인 것이다. 자신의 마음인데 왜 모르냐, 할 수도 있지만 사람이란 게 이렇게 자기 마음을 제일 잘 모른다. 관심과 시선이 다른 사람에게 먼저 가고 자신을 보는 것은 다른 도구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은오에게 손거울을 친구로 소개해준 것은 아마 그런 의미를 너무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사람을 먼저 보느라 미처 자신을 보지 못하는 은오에게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는 자기 자신임을 알려주시려는 의도셨을 것이다. 지빈이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봉투를 벗어 던질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준 친구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늘 혼자 외로웠던 지빈이에게 자신을 봐주는 누군가의 등장은 무척 생소하고 당황스러우면서도 감격적인 경험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지금껏 꽁꽁 싸매고 있던 자신의 마음과 삶을 풀어내고 펼쳐내는 데 도움을 주었다.
결국 친구가 이 모든 것을 가능하도록 만들어준 제일 좋은 힘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있어 또래의 친구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존재다. 그런 존재를 얻는냐 혹은 잃느냐는 우리 아이들에게 무척 중요한 부분이다. 친구를 잃는 순간 생활의 전부가 바뀌게 된다. 다시 친구를 얻는 순간 삶의 의미가 달라진다. 은오가 혼자 겪은 시간들과 또한 지빈이가 외롭게 품고 있던 시간들이 결국 친구들과 함께 함으로써 다시 회복되고 축축하게 젖어가던 이 아이들의 마음을 뽀송하게 만들어 준 강력한 한방이 된다. 역시, 친구의 힘이구나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2038년이 아닌 지금의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였다. 아이들에게는 보이거나 혹은 보이지 않는 상처들이 한 가지 이상씩을 갖고 있다. 그런 상처는 또한 작품에서처럼 돌고 돈다.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다고 내내 그 상처로 힘들어하기만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그런 상처가 나에게 돋아나도 끄떡하지 않고 잘 회복해내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이것은 은오 혼자서 혹은 지빈이 혼자서 할 수 없다. 수아, 재우 등 다른 친구들이 모두 함께 모여 빈 공간들을 채워나가야 한다, 마치 퍼즐처럼. 어디가 꼭 알맞은 자리인가를 찾기 어렵지만 결국 제 자리는 있다는 것. 그 자리를 잘 찾아 나가는 것이 이 아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삶의 숙제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맞춰가는 시간 속에서 미완의 그림이 조금씩 완성되어가는 재미를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손바닥을 펴고, 그 안에 작은 점을 찍어, 후~ 하고 날려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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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 기자·PD·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글쓰기의 모든 것
김창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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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언론인이 되려는 마음은 없다. 근데, 글쓰기에 대해 이토록 체계적으로 잘 적은 글을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누군가 글을 쓰고 싶다고 한다면 추천해줄 만하다. 쉽고 간편하고, 책 자체가 잘 구조화되어 요점을 딱 잘 잡아주고 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이 정도의 책이 나올 정도가 되어야 글쓰기에 대해 책을 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더 솔직히는 이 중 몇 가지는 나도 써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에게 글쓰기 수업을 종종 하는데 어떻게 이야기해주는 것이 좋을지 고민될 때가 있다. 체계적으로 이야기해주자니 막막하고, 그렇다고 무조건 쓰라고 하고 첨삭만 해주려면 너무 고달프다. 이럴 때 이 책의 일부분을 발췌해서 인용해줘도 좋을 것 같다. 필요한 내용을 군데군데 발견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으니, 아이들에게도 자신들의 어려운 지점을 잘 찾으며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든 근본적인 생각은, 글쓰기에 대한 필요와 의지가 선행되어야 이 모든 것을 의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이 책은 분명한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고 있는 글이었다. 어떻게 글을 써야 자신이 원하는 글을 완성할 수 있는지에 대해 꼭 필요한 독자라면 당연히 알아야할 내용을 조목조목 짚어주고 있었으니까. 헌데 나는 그런 목적 의식 없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글쓰기를 이야기해야 하는 위치이다보니, 나의 위치에서 과연 어떻게 이 이야기들을 전달해야할까라는 고민이 들었다. 좋은 내용도 받아들이는 상대의 태도에 따라 그 가치가 상당히 달라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는 인류가 지닌 최고의 문화 유전자다.(...) 종으로서 인류에게 지적 발전을 가져다준 글쓰기는 개별 인간 차원에서 뇌의 결정적 발달을 돕게 된다.(23쪽)

그런 면에서, 이 글을 읽어주면 아이들이 반응하게 될까, 살짝 생각했다.

또 들었던 생각은, 그렇다면 나는 과연 이런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하는 점이었다. 언론인의 글쓰기가 보통의 글쓰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고,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글을 읽는 독자에게 명확히 전달될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고통을 것이다. 그러니 이미 나부터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연습해야하지 않을까 싶었다. 아, 결국 내가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우선은 나에게 적용시켜보기.
그렇다면 무엇부터 시작하면 좋을까를 고민했을 때, 결국 많은 것을 이미 알고 있고 습득해야 좋은 글이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력된 것이 있어야 출력도 가능한 법. 많은 것을 읽고 익혀야 그 안에서 나만의 독창성과 통찰력을 갖춘 글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 글만 쓰려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남의 글도 잘 읽을 줄 알아야 하고 또 많이 읽기도 해야한다. 정리도 잘 해야 하고. 결국 기본은 독서구나, 하는 생각으로 귀결되는 지점이었다. 그리고 난 후에 비로소 다양한 작법에 대한 기술들을 쌓고 연습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설계도를 잘 그릴 줄 살아야한다는 것. 결국 기본을 갖춘 상태에서 그 다음이 쌓여 자신만의 실력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이건 내가 진짜 써먹어봐야지, 했던 부분이다.

논증3: 주장+이유+근거+전제
선생님, 화장실에 보내주세요. 오줌이 마려워서 못 참겠어요. 2주 전에도 이렇게 마려웠는데 화장실에 못 갔다가 바지에 지렸어요. 긴급한 생리 현상의 해결은 제 인격권과 건강권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기 때문에 꼭 해결해주셔야 해요.(129쪽)

지금껏 주장과 이유(근거)로 논증해야 한다는 것을 수없이 이야기했었지만, '전제'가 갖춰졌을 때 어떻게 달라지는 지를 이번에 알게 되었다. 저렇게 이야기하는 학생이 있다면 당장에 화장실을 보내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글의 논리력이 한껏 상승하게 되는 지점이 '전제'였고, 이것의 유무가 글의 설득력의 차이를 만드는구나, 깨달았다.

이 책은 아무래도 사무실 책상에 가져다 놓아야겠다. 필요할 때마다 꺼내보며 각 부분의 내용을 활용해봐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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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명은 비밀입니다 창비청소년문학 129
전수경 지음 / 창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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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명은비밀입니다 #전수경 #창비 #가제본서평단 #서평 #책추천

이 소설을 다 읽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있다. 과학, 최첨단, 기술, AI, 미래, 새로운 세상 등 우리가 흔히 요즘 많이 언급하게되는 사회의 변화 속에서도 단연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은 그 사람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이란 생각을 했다. 어떤 발전된 미래 과학 기술보다도 더 중요하고 값진 것이 사람이고 사람 간의 관계이고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생각. 이게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뭉클하여 울컥한 장면이 있었다. 왜 이렇게 이 장면이 인상적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기도 했다. 아마도 소중한 아이들이 다치는 것이 이젠 너무 싫은 개인적인 감정이 이 부분과 만나면서 나타난 반응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이들이 다치고 상처받고 아픈 게 참 싫다. 정말 싫다. 아이들은 그저 제 양껏의 기분과 생각으로 충분히 이 시기를 만끽하며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나는 엎드려 기도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 해 보는 기도였다. 윤아를 살려주세요. 부탁입니다. 제발, 윤아를.(...)
"들었지? 윤아 숨 쉰다고. 아까 소방대원들도 그랬어. 윤아 살았다고. 그러니 정신 차려."
그제야 먹먹했던 귀가 서서히 뚫리며 주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벤치 앞 풍경도 흑백에서 천연색으로 바뀌고 상우의 움직임도 제 속도로 보였다. 윤아가 숨을 쉰다는 소식에 모든 감각 기관이 순식간에 정상으로 돌아왔다.(162쪽)

먹먹해지며 눈앞이 뿌얘지는 경험을 했다. 아, 다행이다. 이 아이를, 이 아이들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속으로 되뇌었던 것 같다. 그리고나서 뒤에 생각해보니, 이 감사 인사는 소설가에게 하는 게 제일 맞겠다는 현실감각이 돌아오긴 했다.

희진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 아이가 살아가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남다른 가정사가 있고 어린 시절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으며 공부에 대한 강박도 있다. 어찌보면 어린 시절부터 어른스러워야만 했던 부담으로 내내 불면에 시달리고도 있다고 보여진다. 그럼에도 이 아이는 단단해 보였다. 어떤 부분에서 이런 단단함이 만들어진 것일까 궁금했다.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답은 명확했다. 바로 희진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에 있었다. 텔레비전 앞을 벗어나지 않고 있기는 하지만 이 세상을 절대 떠날 수 없는 이유가 분명한 엄마, 그런 엄마와 희진을 물질적으로 그리고 분명 심적으로도 보살펴주고 계신 할아버지, 공부 잘 하는 아이니 더 신경을 써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종종 쓴소리와 격려를 해주시는 선생님.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충성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며 늘 희진이 옆을 지켜주는 상우와 수행평가와 성적을 과감히 포기하고서라도 지켜주고 싶은 윤아까지.
어떻게 보면 희진이는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로 주변 사람들이 희진이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며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는 덕분에 희진이는 지금의 단단한 모습과 생각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원동력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꿈이나 혹은 자신만의 철학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누군가와 반드시 지키겠다고 한 약속이거나 타인의 기대로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이 또한 누군가의 삶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런 연결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인가를 알고 세상을 형성해내가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에서는 희진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의 연결, 그리고 그런 연결이 또 다른 연결로 이어지고 그런 선한 영향력이 더 크게 확장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망이 만들어내는 효과는 무척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 것이기도 했다.

"제갈희진! 그만해. 네가 뭔데, 무슨 자격으로 엄마 일에 참견하고 함부로 그만두라는 거야. 네가 반대해도 어쩔 수 없어. 엄마는 일을 계속할 거고, 두 세계를 동시에 살 거야. 네가 일을 하든 말든 그건 나랑 상관없어."(169쪽)

하지만 절대 그런 연결망이 서로에 대한 구속이나 강요는 아니었다. 이 지점이 마음에 들었다. 어찌보면 엄마라는 딸에게 모든 것을 맞춰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는 살짝 통쾌함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관계란 이런 것이지 않을까. 서로 연결되어 안전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그 안에서 좌우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관계에서 정말 중요한 점이지 않을까.

우리는 각자의 세계를 살아가며, 잠시 중요한 세계를 공유할 뿐이다.(...) 나는 누구의 세계나 딸이 아닌 오롯한 나이며, 언젠가는 엄마를 떠나 나만의 세계로 힘써 날아갈 것이다.(192쪽)

그래서 나는 엄마도 딸 희진이도 모두 응원해주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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