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란다 복제하기 사계절 1318 문고 143
캐럴 마타스 지음, 김다봄 옮김 / 사계절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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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겐 영혼이 있어. 그건 너만의 것이야. 적어도 난 그렇게 믿는단다. 설령 네가 영혼을 믿지 않는다 해도, 너와 이브, 미란다는 분명히 달라. 과학이 설명해 내지 못하는 면에서 말이야. 너는 인생에서 여러 선택을 하게 될 거야. 어떤 선택은 네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럼 넌 변하겠지. 인생은 복잡한 거란다.(323쪽)

이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인생을 저만큼 앞서 산 어른으로서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갖고 고민하고 갈등할 때, 누구나 다른 인생을 향해 가는 각자의 독립된 개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만들어나가게 될 거라는 것을 말해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린 박사님의 뒤이은 대사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엘, 어른이 되어 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야. 복제인간이 아니라도 말이야.(323쪽)

사는 것이 쉬우면 인생이 아니라는 말을 가끔 하기도 했는데, 여기서 이렇게 마주하게 될 줄 몰랐다. 이미 어른이 된 나로서는 이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아직 어른이 되기 전의 이 아이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혹여라도 이런 말을 하는 어른인 내가 요새 흔히 말하는 꼰대가 되는 건 아닐지.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생명을 복제한다는 것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과거 관련된 사회적 이슈도 있었고, 또 지금의 새대는 인공지능이 삶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되어 있는 시점이니, 인간이란 존재도 사람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그 원하는 방향으로의 조작(?)이 충분히 가능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하게 되었을 때, 그 결과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인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 혹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사실, 이미 이런 생각에 대한 나 스스로의 부정적인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조작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결국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현상에서의 심각한 부작용을 짐작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여러 사회적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한 존재의 고유한 특성을 무시하고 실험 대상 혹은 활용 가치가 높은 하나의 도구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성장하는 청소년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지금 이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스스로 잘 찾아 바르게 세울 줄 아는 힘일 것인데, 그런 힘을 작위적인 통제를 통해 조작하고 있으니,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이 소설에서 완벽하다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미란다는 착한 아이로 성격뿐만 아니라 공부나 발레에 있어서도 거의 완벽함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다 발병하면서 어른들은 오히려 충격을 받는다. 완벽하지 못함에 대한 충격. 거짓말도 해서는 안 된다는 미란다와 그런 미란다를 자신들이 원하는 아이로 성장시키기 위한 어른들의 기대가 씁쓸하게 느껴지는 부분(심지어, 미란다의 부모로서의 모습에 더욱 완벽함을 만들기 위해 성형까지 한 부모의 모습은 충격)이기도 했다.

제가 방금 선생님을 불쾌하게 했는데도 금방 기본 상태인 유쾌함으로 돌아오시잖아요. 저한테는 그런 기본 상태가 완벽함이에요!(348쪽)

그럼에도 미란다, 아리엘, 이브, 이 아이들은 제 인생을 향해 스스로 선택했고 자신을 만들어 나갔다. 그 부분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선택이 옳았든 그렇지 않았든지는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그저 인생의 기로에서 아이들이 그때그때 문제를 잘 해결해 나가면 될 뿐. 그것이 이 아이들이 배운 인생이지 않을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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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카페 싱긋나이트노블
구광렬 지음 / 싱긋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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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자살카페라니. 요근래 더욱 죽음, 자살과 관련해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에, 이 소설을 읽다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무겁게 내려앉는 소설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고, 다 읽고나서 생각보다 더 마음이 가라앉았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죽음의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어떤 죽음도 정당하거나 마땅한 죽음은 절대 없다. 얼마 전 읽었던 책에서 마주해야 했던 노동자들의 죽음도 그랬지만, 제 스스로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죽음을 보면, 화가 난다. 그리고 한 마디로, '억울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죽음은 절대, 그들의 손에 의해 선택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분명,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 간 상황과 세상,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 속이 상하다.

"사공철호, 하영욱, 김준혁, 설주택, 정현아, 한슬기...... 이분들은 영안실에 계시고...... 그리고......"(194쪽)

소설을 읽으며 이들이 어디에서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어떤 것도 해결될 수 없는 절망적인 극단의 상황에 내몰렸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이것이 문제였다. 이들이 처한 상황은 충분히, 극복될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어떤 해결방법도 찾을 길 없어 막막한 상황에서 모든 삶의 힘을 내려놓을 지경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겪은 상처와 고통이 가볍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마음의 무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무거웠다. 그 무거움을 내려놓을 힘조차 없어 그 무게에 계속 짖눌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이들은 제 혼자의 힘으로도 제 삶을 어쩌지 못하고 결국, 다른 이의 손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해결할 수 있는, 충분히 다시 삶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다만, 그 문제들을 들어주고 살펴 해결할 수 있도록 나서려는 사람, 조직, 사회가 없었다는 것. 자신들과는 별개의 문제로 두고 남 탓으로만 넘기려 했다는 것. 그래서 어디에서도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심지어는 그들의 목소리를 막기까지 했다는 것.

'차라리'와 '어차피'는 힘든 시기에 빈도 높게 쓰이는 말이다. 차라리는 후회, 실망, 절망 등과 친하며 '살다' 뒤에 '죽다'를 놓으면 '사느니 차라리 죽다'가 된다.(201쪽_'작가의 말' 중)

'차라리'는 '여러 가지 사실을 말할 때에, 저리하는 것보다 이리하는 것이 나음을 이르는 말. 대비되는 두 가지 사실이 모두 마땅치 않을 때 상대적으로 나음을 나타낸다.'의 뜻을 갖고 있다. 여기서 눈길이 가는 부분은 '두 가지 사실이 모두 마땅치 않을 때'에 있다. 삶도 죽음도 모두 마땅치 않은데 그 중 나은 게 죽음인 거니까. '어차피'는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또는 이렇게 되든지 저렇게 되든지.'의 뜻을 가진 단어다. 삶이든 죽음이든 상관 없으니, 죽음이어도 괜찮다는 거다.
이 소설을 읽고 다짐하게 된다. 이 두 단어는 웬만하면 쓰지 말아야겠다고. 이 두 부사가 죽음과 엮이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결말로 가는 지름길이 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무서운 결말을 상상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올해 소망을 여러 번 말하게 되는 것 같다. 가장 간절한 소망이어서 그렇다.
아무도 슬프고 아픈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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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목격한 사람 - 고병권 산문집
고병권 지음 / 사계절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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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궁금했다. '사람'을 목격한 '사람' 중 앞의 '사람'은 누구이고 뒤의 '사람'은 누구일까. 특히 표지에 앞의 '사람'은 총 다섯 종류의 글씨체로 각각 쓰여 있으며, 이 제목이 총 다섯 번 적혀 있다. 결국 앞의 다양한 '사람'에 더 중심을 두고 있겠구나, 싶은 짐작은 했다. 그리고 다섯 번이나 반복해서 적혀 있다는 건, 중요하다는 뜻(반복은 강조니까!)이니 더욱 궁금했다.

하지만 나는 '사람'이라는 말에 이들 모두를 담고 싶다. 말의 의미를 바꾸어서라도 말이다. 애초에 '사람'이 '살다'에서 나온 게 사실이라면 그리고 이 말에 생명의 고귀함이 담겨 있다면, 나는 사람임을 부인당한 모두에게서 사람을 본다. 이들 모두가 위태로운 사람들이고 이들 모두가 고귀한 사람들이다.(7쪽_'프롤로그' 중)

'프롤로그'를 읽으며 저자가 어떤 마음으로 이 글들을 엮었을지 짐작이 갔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그 짐작이 맞아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 맞아 떨어져서 기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이 불편했다. 이 불편함은 이 세상을 허투루 보지 않겠다는, 그래서 '사람'을 더욱 잘 보겠다는 다짐과 비슷하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세상에 대한 일침, 그리고 그 일침을 스스로 마음에 새기며 제대로 '사람'으로 보겠다는 의지의 불편함. 내 마음 하나 편하자고 멋대로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두고 두고 펼쳐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가끔 나 스스로 나 자신이 안이해지고 편한 쪽으로만 바라보려는 시선이 생기려고 할 때, 어떤 꼭지라도 펼쳐 읽기만해도 그 마음을 다시 단속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의 책. 저자는 이미 나에게 이름만으로도 믿고 읽게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어서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마음을 굳혔다. 이 책은 가끔(자주 보려고 든다는 건, 나 스스로 내가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 더 많이 생긴다는 것이니, 그건 사양한다), 다시 들춰봐야할 책이라고.

책을 읽고 든 또 하나의 생각은, 뒤의 '사람'이 참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 '사람'의 시선으로 '사람'을 볼 줄 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런 사람이 우리 사회에 있음을, 그래서 이 세상과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보아오고 있음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 중 나도 한 '사람'일 수 있기를 바라기도 했고. 나는 여전히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자신있게 나서서 목소리를 낼 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좀 없지만, 이런 '사람'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이 이 '사람'들과 다르지 않음을 마음으로라도(이 지점이 나에겐 늘 풀지 못하고 있는 숙제이지만) 잊지 않으려는 것이다.
내가 직접 참여하고 행동하며 함께 연대할 줄 아는 실천력은 없다. 나 스스로가 갖고 있는 깜냥이 이 정도밖에 안 되어 그럴 지, 아니면 용기가 없어서 그럴 지, 혹은 둘 다일지 모르겠지만. 생각과 의식만으로 지금 산재해 있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생각 다음이 필요한데, 마치 그 다음은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 품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에 고개는 끄덕여도 옳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면에서 오히려 이 세상은 잘못된 생각을 가진 자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리는 사회인 것은 아닌지, 요즘 더욱 더 자주 생각해보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이 책의 역할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 불편하게, 그래서 자신을 자꾸만 들여다보고 생각을 점검하게 만드는 데 있는 것 같다. 저자의 글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을 해야한다고 강하게 호소하고 있지는 않다. 그저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진솔한 표현들일 뿐인데도, 읽는 나로서는 자꾸만 마음의 부담을 안게 된다. 그러니 더 자꾸 책을 들여다보게 될 수밖에. 그 마음의 부담을 쉽게 내려놓지 않을 수 있도록, '사람'에 대한 시선을 거두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허리를 곧추 세우고 몸에 힘을 주어 단단하게 위태롭지만 고귀한 '사람'들에 대해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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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탈한 하루 - 다정하게 스며들고 번지는 것에 대하여
강건모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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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하세요?"
그와 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무슨 일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잠시 대답을 망설이곤 한다. 넓은 의미에서는 프리랜서이지만 그것은 직업 분류일 뿐, 내가 하는 일이 다양해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그러다보니 묻는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질문한 사람이 책과 관계가 있으면 작가나 편집자로 소개하고, 사진 찍기를 좋아하면 사진가, 음악을 즐겨 듣는다고 하면 작곡가 또는 싱어송라이터, 영화나 영상 쪽 일을 하면 영상 제작자, 강의나 전시 등 예술 관련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으면 문화예술 강사, 예술 기획자가 되는 식이다.(172-173쪽)

와, 부럽다! 무슨 일을 하냐는 말에 한 가지밖에 대답할 말이 없어, 밝혀야 하나 밝히지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는 나와는,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하는 저자의 모습이 마냥 부러웠다. 그만큼 할 줄 아는 것, 하고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많다는 뜻이고, 그래서 이 많은 것들을 다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마흔 되기 전에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서요."(41쪽)라고 말하고 자신이 하던 일을 과감히 접고 퇴사할 용기를 가진 것도 부러운 지점이었다. 그만큼 자신에 대해 자신이 있었다는 뜻으로 보였다. 순간, 이 경우에 나를 대입해보았다. 과연 나는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마흔을 넘어서는 어느 지점에서 비슷한 질문을 여러 번 받곤 했다. 만약 더 젊은 시절을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겠느냐고. 다시 돌아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겠냐고. 그때마다 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했었다. 지금 여기까지 살아오면서 쌓아온 시간들이 너무 아깝다고. 지금의 나에 만족한다고. 헌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만족하는 것이 맞았나, 혹시 안정적인 생활을 착각한 것은 아닐까 과거의 나에게 의심을 품게 된다. 지금 마흔도 훌쩍 넘겨 쉰에 더 가까운 이 시점에서, 다시 이 질문을 받게 된다면, 난 좀 신중히 대답하느라 '음음, 어어, 쩝쩝 등'의 뜸을 들이게 되지 않을까.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제게 중요한 의미이자 가치인 다정함은 추운 겨울밤 조용히 타오르는 모닥불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꺼지지 않는 한 저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49쪽)

같은 질문을 나에게도 던져 보았다. 과연 나에게는? 닉네임에 포함시킨 '행복함', 아니면 사회에서는 인정받지 못하지만 나와 한몸 같은 '착함', 나보다는 타인을 위한 '친절함', 그렇지만 때에 따라 나를 올곧게 세우고자 할 때의 '단호함'. 떠올리려하면 할수록 하나를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떠오르는 가치가 많아졌다. 그래서 포기. 딱 하나로만 내가 원하고 지향하는 가치를 찾기에는 불가능하다. 그냥, 가볍게 생각해도 쉽게 떠오르는 모든 가치를 몸에 품고 있는 나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우선, 정리했다.

저자가 던진 질문들이 있었다. 그 질문들에 대한 저자의 답을 책 한 권으로 읽었으니, 나도 각 질문에 대답을 해보면 어떨까, 책을 덮으며 생각해 보았다.

*오늘 당신의 하루는 무슨 색이었습니까? 어떤 향기가 났습니까?
_하얀색 그리고 까만색. 말라가는 빨래 냄새. 새벽부터 내리는 눈을 거실등을 끄고 보면 하얗게, 거실등을 켜고 보면 까맣게 보였다. 거실에 널어놓은 빨래가 말라가는 냄새가 났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 마음의 등을 켜고 볼 때와 끄고 볼 때가 달라진다는 것을. 때론 불을 끄고 고요한 어둠 속에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보이는 것들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내 마음의 축축함도 함께 마르기를 바랐다.

*어릴 때처럼 뭔가가 궁금했던 순간이 있었습니까?
_펄펄 내리는 눈을 맞으며 마냥 신나 뛰는 아이들의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다, 그 아이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어떤 마음이어야 마냥 행복하게 눈을 맞을 수 있을까. 아이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 이상 평생 그 마음을 알 길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얻었나요?
_열정과 도전을 잃었고, 안정과 반복적인 일상을 얻었다. 잘 살고 있는 건가?


*오늘 마음의 마당에는 어떤 꽃이 피어 있었습니까? 무엇에 스며들고 번졌나요?
_얼음 속에 피어있는 할미꽃. 조만간 가느다랗고 하얗게 변할 것만 같다. 그리고 시들겠지. 다시 계절이 한 바뀌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지.

*나에게, 타인에게 얼마나 다정했습니까?
_나에게도 타인에게도 다정하지 못했던 것 같다. 요즘 그랬던 것 같다. 이 질문에 자신있게 난 다정한 사람입니다, 라고 답을 하지 못하겠다.

폭낭뿐 아니라 소나무, 밤나무, 자작나무 등 몇몇 나무들이 일부러 잎을 떨어뜨려서 태풍을 피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바람이 닿는 면적을 스스로 줄이는 것이다. 내가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그들만의 대처 요령이 있는 거였다.(70쪽)

나무와 자연에서 얻는 배움이 있다. 마당을 작업실 삼아 글을 읽고 쓰는 저자의 모습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연 속의 삶이 그대로 글에 담기겠다는 생각을 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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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보는 마음 - 우리 시대의 시인 8인에게 묻다
노지영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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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와 시인들의 만남. 시인들의 내밀하고 솔직한 시에 대한 이야기를 가감없이 담아낸 두툼한 인터뷰집을 읽었다. 인터뷰집이어서 처음엔 마치 만담을 듣는 마음으로 가볍게 읽어나가도 좋겠다는, 감상자의 입장으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그 마음을 접고, 각 잡고 앉아 읽기로 마음을 바꿨다. 그만큼의 묵직한 시인들의 철학이 무게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름 국문학을 전공하고 발뒤꿈치 정도는 문학에 담그고 있다고 어디 가서 이야기하기에도 이젠 부끄럽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삶 한 곁에 문학을 두고 오고가며 곁눈질하는 삶을 살고는 있는 나에게, 이 책은 또 한쪽 측면으로의 자극이 되었다.
이 책을 가만히 읽으며 떠오른 이미지가, 여전히 우리 시는 어렵다는 것이 전제로 깔려 있나보다 였다. 독자의 입장에서 어떤 시를 어떻게, 그리고 시인이라는 시를 이렇게 써야지, 하는 선배들의 조언이 아낌없이 담겼다고나 할까.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시를 가운데 두고 오고가는 시인과 독자 사이의 대화, 그리고 그 거리감.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시론에 대한 생각을 각 시인에게 공통 질문으로 던지는 저자의 의도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시인의 특징이 그래도 묻어나는 대답들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었다.
그러면서, 시는 왜 어렵게만 다가오게 될까, 였다. 시를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장르가 시고, 나 또한 이젠 난해(이건 오로지, 전적으로, 나의 시 해독 능력의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해서 완벽하게 시의 이야기를 내 내면으로 끌어와 공감하기 못하는 시들이 많아지는 현실 앞에서 나를 깎아내리는 결론이 씁쓸하기도 했는데, 마지막 김기택 시인의 말에 시를 멀리하지 않아도,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겠다는 위로를 받았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독자들이 오독을 하는 건 크게 상관이 없어요. 시인이 쓴 것과 달리 독자는 엉뚱한 거 상상하면서 흥분하고 좋아하게 되는 것도 저는 굉장히 좋은 감상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얘기하는 생동감이라는 것은 바로 그런 내면의 운동, 즉 독자의 내면ㄴ에서 일어나는 감각의 운동이자 정신적인 운동인 거죠. 그렇게 되면 독자가 시에 참여하는 것이고, 독자가 창작자가 되는 것이고,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고, 작품의 완성은 독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죠.(354쪽_'시인의 둘레길, 김기택' 중)

새로 알게 된, 특별한 대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인의 목소리로 직접 들었을 때 자괴감에 빠진 독자에게는 큰 위로와 힘이 되어주는 법이니까. 그런 면에서 내내 인터뷰를 읽어오다가 마지막에 불편한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문학이든 예술이든 시민운동이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 못지않게 기존의 완강한 이야기를 흔드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라고 봅니다.(28쪽_'생명에의 옹호, 이문재' 중)
시인들은 다 약자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지 않나요? 다치고 버려진 자들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지 않나 싶어요. 기본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여기에 있는 말들로 다 표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저 말을 쓰는 것이고요. 또 여기에 있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저기의 세계를 그리는 거잖아요.(123쪽_'시인은 그렇게 살겠지, 신용목' 중)
기본. 기본으로 돌아가야 해요. 뭐 하러 시를 쓰고 글을 씁니까. 끊임없이 달라져야 하는 거죠. 누가 나보고 변했다고 그럴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나는 야, 그렇게 변하려고 기를 쓰는데 사람 변하는 게 그렇게 힘들더라. 오히려 이렇게 답변해요. 그렇게 변하려고 기를 쓰는데도 못 변하는 게 큰 문제입니다. 시인이라면 어쨌거나 변하려고 기를 써야죠.(267쪽_'번역들, 김정환' 중)

시인들이 시를 쓰는 관점과 그 시를 통해 어떤 생각을 세상에 펼치고 나아가고자 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뭔가 시만큼이나 심오하고 어려운 일이 시인의 시작 활동이라는 생각도 더불어 했다. 시를 써본 경험은 많지 않지만, 쓸 때마다 작위적인 느낌이 많이 들었다. 지나치게 나 자신을 옹호하고 과장되게 키우려는 심리도 강했고. 그러다보니 (시 다운 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시가 시 답지 않다는 느낌이 들곤 했는데, 내가 알고 있는 시는 겉핥기에 불과했구나, 반성이 됐다. 시인들이 부단히 구축해내려는 시 세계 속을 감히 함부로 다 안다고 말해도 안 되겠구나, 싶기도 했다. 뭔가 시인의 이야기 속에서 나를 또 들여다보게 되는 경험의 독서였다.

이제 남은 일은, 그동안 읽어보지 못했던 시인들의 시집을 다시 찾아 읽어보는 일. 그리고 시인들의 시 말고 산문들을 찾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을 시로만 읽으려는 마음은 이제 그만, 산문이 시가 되고 시를 향해 가는 시인들의 속내가 산문 속에 담겨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산문만큼 더 솔직한 이야기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특히 강은교 시인의 이야기에서 더 확실해졌다. 독서 숙제가 많아지는 행복한 고민으로 올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해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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