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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탈한 하루 - 다정하게 스며들고 번지는 것에 대하여
강건모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12월
평점 :
"무슨 일 하세요?"
그와 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무슨 일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잠시 대답을 망설이곤 한다. 넓은 의미에서는 프리랜서이지만 그것은 직업 분류일 뿐, 내가 하는 일이 다양해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그러다보니 묻는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질문한 사람이 책과 관계가 있으면 작가나 편집자로 소개하고, 사진 찍기를 좋아하면 사진가, 음악을 즐겨 듣는다고 하면 작곡가 또는 싱어송라이터, 영화나 영상 쪽 일을 하면 영상 제작자, 강의나 전시 등 예술 관련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으면 문화예술 강사, 예술 기획자가 되는 식이다.(172-173쪽)
와, 부럽다! 무슨 일을 하냐는 말에 한 가지밖에 대답할 말이 없어, 밝혀야 하나 밝히지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는 나와는,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하는 저자의 모습이 마냥 부러웠다. 그만큼 할 줄 아는 것, 하고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많다는 뜻이고, 그래서 이 많은 것들을 다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마흔 되기 전에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서요."(41쪽)라고 말하고 자신이 하던 일을 과감히 접고 퇴사할 용기를 가진 것도 부러운 지점이었다. 그만큼 자신에 대해 자신이 있었다는 뜻으로 보였다. 순간, 이 경우에 나를 대입해보았다. 과연 나는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마흔을 넘어서는 어느 지점에서 비슷한 질문을 여러 번 받곤 했다. 만약 더 젊은 시절을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겠느냐고. 다시 돌아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겠냐고. 그때마다 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했었다. 지금 여기까지 살아오면서 쌓아온 시간들이 너무 아깝다고. 지금의 나에 만족한다고. 헌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만족하는 것이 맞았나, 혹시 안정적인 생활을 착각한 것은 아닐까 과거의 나에게 의심을 품게 된다. 지금 마흔도 훌쩍 넘겨 쉰에 더 가까운 이 시점에서, 다시 이 질문을 받게 된다면, 난 좀 신중히 대답하느라 '음음, 어어, 쩝쩝 등'의 뜸을 들이게 되지 않을까.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제게 중요한 의미이자 가치인 다정함은 추운 겨울밤 조용히 타오르는 모닥불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꺼지지 않는 한 저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49쪽)
같은 질문을 나에게도 던져 보았다. 과연 나에게는? 닉네임에 포함시킨 '행복함', 아니면 사회에서는 인정받지 못하지만 나와 한몸 같은 '착함', 나보다는 타인을 위한 '친절함', 그렇지만 때에 따라 나를 올곧게 세우고자 할 때의 '단호함'. 떠올리려하면 할수록 하나를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떠오르는 가치가 많아졌다. 그래서 포기. 딱 하나로만 내가 원하고 지향하는 가치를 찾기에는 불가능하다. 그냥, 가볍게 생각해도 쉽게 떠오르는 모든 가치를 몸에 품고 있는 나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우선, 정리했다.
저자가 던진 질문들이 있었다. 그 질문들에 대한 저자의 답을 책 한 권으로 읽었으니, 나도 각 질문에 대답을 해보면 어떨까, 책을 덮으며 생각해 보았다.
*오늘 당신의 하루는 무슨 색이었습니까? 어떤 향기가 났습니까?
_하얀색 그리고 까만색. 말라가는 빨래 냄새. 새벽부터 내리는 눈을 거실등을 끄고 보면 하얗게, 거실등을 켜고 보면 까맣게 보였다. 거실에 널어놓은 빨래가 말라가는 냄새가 났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 마음의 등을 켜고 볼 때와 끄고 볼 때가 달라진다는 것을. 때론 불을 끄고 고요한 어둠 속에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보이는 것들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내 마음의 축축함도 함께 마르기를 바랐다.
*어릴 때처럼 뭔가가 궁금했던 순간이 있었습니까?
_펄펄 내리는 눈을 맞으며 마냥 신나 뛰는 아이들의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다, 그 아이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어떤 마음이어야 마냥 행복하게 눈을 맞을 수 있을까. 아이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 이상 평생 그 마음을 알 길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얻었나요?
_열정과 도전을 잃었고, 안정과 반복적인 일상을 얻었다. 잘 살고 있는 건가?
*오늘 마음의 마당에는 어떤 꽃이 피어 있었습니까? 무엇에 스며들고 번졌나요?
_얼음 속에 피어있는 할미꽃. 조만간 가느다랗고 하얗게 변할 것만 같다. 그리고 시들겠지. 다시 계절이 한 바뀌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지.
*나에게, 타인에게 얼마나 다정했습니까?
_나에게도 타인에게도 다정하지 못했던 것 같다. 요즘 그랬던 것 같다. 이 질문에 자신있게 난 다정한 사람입니다, 라고 답을 하지 못하겠다.
폭낭뿐 아니라 소나무, 밤나무, 자작나무 등 몇몇 나무들이 일부러 잎을 떨어뜨려서 태풍을 피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바람이 닿는 면적을 스스로 줄이는 것이다. 내가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그들만의 대처 요령이 있는 거였다.(70쪽)
나무와 자연에서 얻는 배움이 있다. 마당을 작업실 삼아 글을 읽고 쓰는 저자의 모습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연 속의 삶이 그대로 글에 담기겠다는 생각을 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