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카페 싱긋나이트노블
구광렬 지음 / 싱긋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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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자살카페라니. 요근래 더욱 죽음, 자살과 관련해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에, 이 소설을 읽다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무겁게 내려앉는 소설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고, 다 읽고나서 생각보다 더 마음이 가라앉았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죽음의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어떤 죽음도 정당하거나 마땅한 죽음은 절대 없다. 얼마 전 읽었던 책에서 마주해야 했던 노동자들의 죽음도 그랬지만, 제 스스로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죽음을 보면, 화가 난다. 그리고 한 마디로, '억울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죽음은 절대, 그들의 손에 의해 선택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분명,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 간 상황과 세상,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 속이 상하다.

"사공철호, 하영욱, 김준혁, 설주택, 정현아, 한슬기...... 이분들은 영안실에 계시고...... 그리고......"(194쪽)

소설을 읽으며 이들이 어디에서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어떤 것도 해결될 수 없는 절망적인 극단의 상황에 내몰렸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이것이 문제였다. 이들이 처한 상황은 충분히, 극복될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어떤 해결방법도 찾을 길 없어 막막한 상황에서 모든 삶의 힘을 내려놓을 지경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겪은 상처와 고통이 가볍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마음의 무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무거웠다. 그 무거움을 내려놓을 힘조차 없어 그 무게에 계속 짖눌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이들은 제 혼자의 힘으로도 제 삶을 어쩌지 못하고 결국, 다른 이의 손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해결할 수 있는, 충분히 다시 삶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다만, 그 문제들을 들어주고 살펴 해결할 수 있도록 나서려는 사람, 조직, 사회가 없었다는 것. 자신들과는 별개의 문제로 두고 남 탓으로만 넘기려 했다는 것. 그래서 어디에서도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심지어는 그들의 목소리를 막기까지 했다는 것.

'차라리'와 '어차피'는 힘든 시기에 빈도 높게 쓰이는 말이다. 차라리는 후회, 실망, 절망 등과 친하며 '살다' 뒤에 '죽다'를 놓으면 '사느니 차라리 죽다'가 된다.(201쪽_'작가의 말' 중)

'차라리'는 '여러 가지 사실을 말할 때에, 저리하는 것보다 이리하는 것이 나음을 이르는 말. 대비되는 두 가지 사실이 모두 마땅치 않을 때 상대적으로 나음을 나타낸다.'의 뜻을 갖고 있다. 여기서 눈길이 가는 부분은 '두 가지 사실이 모두 마땅치 않을 때'에 있다. 삶도 죽음도 모두 마땅치 않은데 그 중 나은 게 죽음인 거니까. '어차피'는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또는 이렇게 되든지 저렇게 되든지.'의 뜻을 가진 단어다. 삶이든 죽음이든 상관 없으니, 죽음이어도 괜찮다는 거다.
이 소설을 읽고 다짐하게 된다. 이 두 단어는 웬만하면 쓰지 말아야겠다고. 이 두 부사가 죽음과 엮이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결말로 가는 지름길이 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무서운 결말을 상상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올해 소망을 여러 번 말하게 되는 것 같다. 가장 간절한 소망이어서 그렇다.
아무도 슬프고 아픈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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