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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용어의 탄생 - 역사의 행간에서 찾은 근대문명의 키워드
윤혜준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1월
평점 :
24개의 키워드로 근대를 모두 알아나가겠다는 건 무리겠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뭔가 내가 역사적이고 근대적인 지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이 된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키워드 몇 가지에 대해서는 어디 가서 아는 척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물론, 이 책의 방대한 문헌 자료와 키워드에 따른 역사의 흐름을 정확히 다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솔직히, 생각보다 역사가 깊고 방대했다. 모든 내용을 마스터했다고 얘기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내 머릿속에 모든 지식을 넣고 있어야하는 게 아님을 변명으로 삼아 본다면, 이 책을 옆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읽으며 각 용어의 의미 변화를 찾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은 생겼다. 책이란 그래서 곁에 두는 거지, 하는 변명과 함께.
이 책은 '근대문명'이라는 용어가 포괄적으로 뜻하는 체제, 제도, 문화, 가치, 정서 등이 한반도에 도입되어 유지되는 현실을 전제로 한다.(9쪽_'머리말' 중)
그리고 이 책이 그저 단순히 서양의 근대만을 다루고 있지 않아 읽기 더 좋았다. 시작은 이랬는데, 그게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받아들여져서 사용되고 있다, 하는 식. 그러니 그저 남의 이야기라고만 생각이 들지 않고,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다루게 되는 개념들에 대해 그 의의를 찾아보려는 시도처럼 보이기도 했다. 특히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런 용어들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봐도 좋지 않을까, 싶은 용어들에서는 책 읽는 속도를 줄이게 되기도 했다. 내가 의도를 잘 맞춰 읽고 있는 거라면, 이 책은 같은 속도로 한번에 읽어내려가는 책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책의 특징이, 어떤 키워드를 먼저 읽어도 불편함이 없다는 것(물론, 앞에서 언급된 이야기를 알아야 그 뒤의 설명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는 있다. 그렇게 연결고리를 지어주고 있기도 하고). 관심이 가는 것부터 골라 읽으며 조금씩 용어의 범위를 확장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를테면, 자본주의나 민주주의, 그리고 헌법, 법, 자유를 묶어서 함께 읽어도 좋았겠다는 생각. 그리고 그 와중에 우리 사회에서 지금 현재 사용되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를 가늠해보는 것까지. 요즘 부쩍 이런 개념과 가치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되는 때이기도 한듯도 하다.
누군가는 익히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아메리카'라는 이름의 유래부터 생소했다. 아, 사람 이름, 그것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인물의 이름을 딴 게 아니라니, 싶어 놀라웠다. 그리고 이런 놀라움은 시작에 불과했다.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분에서의 용어의 의미가 읽으면서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아, 그랬구나. 어머, 이런 뜻이였어. 아, 이렇게 쓰였던 말이 지금 바뀐 거구나. 그러니 이런 내 모습을 누군가 옆에서 보고 있다면, 그동안 이정도의 지식도 없이 어떻게 살았나, 혀를 찰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신기한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근대 시장경제의 원조 영국에서 '경쟁'을 뜻하는 'competition'은 적어도 그 어원의 의미는 '전쟁'과 사뭇 다르다. 이 영어 단어의 라틴어 어원 'competere'는 '다툼'보다는 '협동'의 뜻에 더 가깝다. '함께com-'와 (어떤 대상을 얻기 위해 ) '노력하다petere'가 결합된 형태다.(52쪽)
'통화currency'와 비교하면 '유동성liquidity'은 그 어감부터 사뭇 전문적이고 다소 신비스럽다. 돈의 움직임이 '쉬엄쉬엄' 다니던 시대에서 '뛰어다니는' 시대를 거쳐 '유동성'으로 액체화된 시대에 도달하면 수치로만 존재하던 거액이 한순간 증권시장에서 '증발'하는 기체 상태로까지 변하는 일도 다반사가 된다.(96쪽)
개신교 국가인 프로이센의 지식인 이마누엘 칸트가 보기에 '계몽'의 적은 '미성숙함Unmundigkeit'이었다. 그가 말한 '미성숙함'은 개인이 자율적 사유와 판단을 하지 못하는 상태, 즉 매사에 가섭하는 국가 권력 및 국가의 공식 교회를 비판한 셈이었다.(124쪽)
'산업'으로 뜻이 변할 'industry'를 아직 '근면'으로 이해하던 시절에도 윌리엄 호가스의 예가 보여주듯이 '근로'의 뜻이 한편에는 담겨 있었다.(148쪽)
'대통령'으로 번역된 'president'가 선출직이 아니거나 주재하는 회의와 상관없는 권력자를 가리킬 때도 최고 권력자 자체를 지칭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위임받은 권위를 행사하는 대리자를 이렇게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196쪽)
사실 너무 많아 추려 정리할 수조차 없지만, 뭔가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내용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 눈이 반짝여지는 걸 어쩔 수 없었다.
모든 책은 장황하게 부제를 달아 자화자찬하는 문구를 나열하곤 했다. 그 말만 믿고 돈을 지불하고 책을 살 것인가? 막상 사서 보면 실망하지 않을까? 이러한 불편을 해소해주는 것이 <먼슬리 리뷰>의 취지였다.(250쪽)
지금 쓰고 있는 서평도, '리뷰'. 과연 누군가 나의 이 '리뷰'를 보고 실망하지 않으면 좋겠다. 불편을 해소해줄 수 있는 리뷰였길.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