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의 최후 북멘토 그림책 14
난주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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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엄마다. 나도 아이들에게 이런 저런 잔소리를 한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도 이런 생각을 했을까?

<잔소리의 최후>라는 제목만 보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과연 그 최후는 어떻게 될까? 너무 궁금했다. 나도 곧잘 아이들에게 잔소리(인줄도 모르고 하게 되는 잔소리)를 하니, 나의 최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최후'라는 단어가 뭔가 무겁고 기분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했다. 분명, 아이가 엄마의 잔소리를 듣다듣다 최후에 어떻게 되었을 거라는, 혹은 그 잔소리가 퍼지고 퍼져 나중에 결국 엄마와 아이에게 어떻게 되었을 거라는, 뭔가 그런 불길한 생각을 먼저 하게 됐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그림책인데, 아이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인데, 설마 험한 이야기가 담기기야 했을까, 싶은 마음으로(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을 듬뿍 담아) 읽기 시작했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안심이 되는 그림책이었다. 이건 어쩌면 내가 엄마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엄마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또 한편으로는 이 아이의 생각과 마음이 정말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실은 좀 뭉클했다. 보통은 잔소리 듣기 싫어, 하거나 혹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무시의 방법을 쓰거나일텐데, 이 아이는 어쩜 되돌려주기 위한 노력을 이토록 열심히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 노력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엄마를 쫓아다니는 이 아이를 나도 함께 쫓아다닐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어, 그런데 좀 귀찮네.
엄마를 계속 봐야 하잖아.
놀고 싶은데......

그러다 이 문장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이건, 잔소리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니까. 계속 보고, 신경쓰고, 걱정하고, 관심을 가져야만 할 수 있는 거니까. 이건 해본 사람만 아는 건데, 싶었다. 뭔가 (잔소리하는) 내 마음을 이해받은 것 같기도 해 심장이 살짝 쿵, 했다. 감동이었다. 누군가 아주 사소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감정을 알아채주고 공감해주면 순간 긴장이 풀리며 떨리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계속 봐야 하'는 마음, 계속 보게 되는 마음, 보고 싶은 마음이라는 걸 이렇게 알려주다니. 이때부터는 그대로 푹 빠져 그림책을 읽게 됐다. 그리고 이제, 정말 궁금했던 그 '최후'가 나올 테니 더욱 궁금한 마음으로 한장 한장 소중하게 넘겼다.

엄마도 나를 계속 지켜본 거네.
다칠까 봐, 나쁜 일 생길까 봐!

이 그림책에서 제일 좋은 페이지를 찾았다. 이 그림책 전체 중에서 제일 좋은 부분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이 부분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매 순간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보고 잔소리했던 엄마의 모습들. 아이에게 이해받은 엄마의 잔소리라고나 할까. 엄마의 마음을 알아준 아이의 마음이라고나 할까. 이 장면에서 잔잔하고 애틋한 배경 음악이 어디선가 들리는 듯도 했고, 그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있었던 많은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며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이 그림책은, 엄마의 필독서 목록에 넣어야 할 듯!

이런 <잔소리의 최후>라면 아무래도 잔소리 좀 더 해도 될 듯하다. 이 세상의 아이들이 이 얘기를 듣는다면 격하게 거부하겠지만. 그런 상상을 하며 혼자 웃었다. 이런 상상마저도 즐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덧-
그런데, 반대로 아이의 잔소리가 더 늘었다면? 아이가 엄마 못지 않게 계속 잔소리를 늘려간다면, 이건 좋은 걸까? 엄마의 잔소리를 이해받은 것처럼, 아이의 잔소리도 들어줘야 할 것 같은데... 왠지 이 생각이 들면서, 잔소리가 좋은 건가 아닌가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내가 하는 것은 좋지만, 또 들으려고 하니 좀... 난처해지는 생각에, 이런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또 웃기기도 했다. 이 그림책, 재밌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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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하면 좀 어때 - 이런 나인 채로, 일단은 고!
띠로리 지음 / 푸른숲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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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중요한 건, 망한 것 같아도 티만 안 나면, 또 한바탕 웃음으로 넘길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니까요. 그런 와중에 잠깐 허술해 보이는 것쯤이야 별일이랴 싶습니다.(8쪽)

이 부분에서 빵 터졌다. 그렇지, 망해도 티만 안 나면 되지! 이미 책을 읽기 전부터 마음의 평안이 느껴졌다. 나라는 사람이 늘 일에 아둥바둥, 완벽하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구멍을 자주 만들곤 한다. 그리고는 그 구멍으로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자책하고. 심지어는 퇴근하는 1시간 운전하면서 그 시간을 내내 자책한 적도 있다. 내가 왜 그랬을까의 무한 반복이었다. 그런데, 티만 안 나면 된다는 말에 안 웃을 수가 없었다. 사실 이 모든 구멍의 대부분은 나만 아는,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고 묻힐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들이니까. 다만, 내가 나의 허술을 넘기지 못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뭔가 내 갑갑했던 마음에 물꼬가 트인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3. 망했어도 티만 안 나면 오케이' 부분이 예사로 읽히지가 않았다.

이미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고, 그 깽값을 갚을 일만 남았다면 잠깐 웃고 지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한바탕 웃음으로 페이드아웃하며 끝나는 영화 장면처럼 말이다.(171쪽)
그러니 망했어도 티만 안 나면 오케이다. 사실, 모든 건 어느 정도 망해가고 있다. 우리는 산소 없이 살 수 없지만, 산소가 체내에서 산화하며 우리는 늙어가고 죽어가게 만든다. 그게 두렵다고 당장에 숨을 참으면 질식해서 죽어가게 될 뿐이다.(237쪽)

깽값이라니, 여기서 또 웃었다. 아무래도 이 작가에게 나는 놀아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런 식이라면, 계속 놀아나고 싶다는 느낌까지! 그리고 제대로 안심이 되었던, 그러면서도 무릎을 쳤던 문장이, '모든 건 어느 정도 망해가고 있다.'였다. 우리의 생이 이미 망해하고 있다는데, 이보다 더할 것이 뭐가 있을까 싶었다. 이 정도라면, 어떤 망함도 견줄 수가 없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작가는 이렇게 덧붙였다.

뻔히 망한 줄을 알아도 그냥 가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상상한 어떤 디스토피아적 세상이 언젠가 찾아온다고 해도, 한날한시에 모두 죽지 않는 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살아갈 것이다. 결국 그때도 나름의 사랑과 모험을 펼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세상이 망할 듯 천둥 치는 창밖을 바라보며 카페에 갇혀 시시하게. 서로의 얼굴을 보고 실없이 웃으며.(237-238쪽)

이게 진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이지 않을까, 책을 덮고 가만히 생각했다. 무수히 많은 망함에 직면하는 삶을 우린 살고 있고, 이 망함이 나로 인해 혹은 누군가로 인해, 아니면 우리 모두로 인해 생기는 망함일 수도 있지만, 그 어떤 것이 원인이라 해도 그 망함을 느끼는 순간은 이미 회복할 수 없는 때라는 것. 물은 이미 쏟았고, 왜 물을 쏟는 삶일까를 자책할 필요 없이, 이런 망함이 나에게 생겼구나, 하고 지금 가던 대로 그저 의연하게 계속 가보는 수밖에 없겠구나.
헌데 이런 생각이 삶에 대한 회의나 염세로 인한 체념이 아니라는 게 중요하다. 마치, '이게 또 썩 나쁘지만은 않겠는데!' 같은 뭔가 희망적인 느낌에 더 가깝다고나 할까. 그래서 뭔가 그 다음에 뭘 다시 더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은, 건강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친구들은 인형 만드는 게 리본 묶기보다 열 배는 어려운데, 도대체 그건 어떻게 하는 거냐며 황당해한다. 듣고 보니 그렇다.(...) 괴짜처럼 보일까 봐 굳이 말하지 않지만, 나는 내 그런 서투른 부분들과 그로 인한 실수들이 재미있다. 그래서 그냥 둔다.(51쪽)
친구들한테 "오늘 또 너무 큰 쓰레기봉투를 사버렸어"라고 말한 뒤 면박을 들을 때도 나는 웃으며 한 귀로 흘린다. 실수했다고 해서 온종일 창피해하거나 자책하지 않는다.(52쪽)

이 재미있는 작가를 어쩌면 좋을까. 이런 허술함을 '은밀하고 소소한 취미'로 퉁치며 그 자체가 모두 자기 자신임을 이토록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래서 안 고치는 거라고 열심히 설득하고 있는 이 모습에 또 웃을 수밖에! 그리고 뜨끔했다. 나는 온종일 창피해하고 자책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구멍이 있어야 인간적이죠, 하며 혼자 자책했던 나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배웠다. '그래, 나 원래 이런 사람이지, 참!'하고 작가처럼 생각해야겠다고. 이런 모습도 또한 나라고.

뭐니뭐니해도 제일 좋은 건 이제는 "뭐 해?"라고 먼저 묻는 일이 두렵지 않다는 것. 내 작은 텃밭에 있는 친구들에게 물을 주며, "뭐 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니?"하고 종알종알 떠들고 싶다. 그게 내가 바라는 전부다.(179쪽)

나도, "뭐 해?" 안부를 묻고, 종알종알 떠들고 싶다. 허술하면 좀 어떠냐고, 망했어도 티만 안 나면 괜찮다고, 웃어 넘기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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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우다 1~3 세트 - 전3권
현기영 지음 / 창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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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비극,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인생은 아름답고,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_2023년 초여름 현기영

책을 펼치자마자 마주한 작가의 말이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삶을 살아내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말이 있을까 싶었다. 비극과 절망 속에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과거의 역사와 기억으로 아파하기도 하고, 현재의 사회와 현실에 절망하기도 한다. 매일 마주치게 되는 우리 사회가 이 정도일까 싶을 정도로,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구나 싶어 답답하고 속상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럴 때, 작가의 말로 조금 위로를 삼아볼까. 그래도, 아직은, 아름답다고, 살만하다고, 억지로라도 확신을 가져봐야할까. 이대로 무너지기엔, 지금까지 지탱해온 많은 분들의 삶이 너무 억울하니까.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하는지, 잘 생각하고 점검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그분들이 목숨으로 지켜내신, 소중하고 값진 삶일 테니까.

제주 4.3. 이 시공간의 크기가 너무도 크고 깊고 넓어, 지금의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역사적 범위를 품고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도 허투루 읽어내서는 안 되는, 그리고 반드시 정확히 알고 잊지 말아야하는, 앞으로도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하는 이야기. 누군가의 삶과 인생을, 그리고 미래에 대한 모든 꿈을 한순간에 집어삼키고, 그 자리를 공포와 아픔으로 가득 채워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은, 끔찍하면서도 아픈 이야기. 그것이 제주 4.3이었다.
작가의 <순이 삼촌>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제주 4.3을 단순히 역사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볼 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역사에는 그 시간을 관통하는 시간 속 사람들의 삶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며, 이 모든 일들은 이들의 삶을 담보로 이루어진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공간에서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은 매우 중요할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제주도우다>는 그들의 삶을 펼쳐 보여주는 동시에 그들이 지금껏 지키려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영미야, 창근아, 이 할아비도 어릴 적엔 꿈이라는 게 있었다. 허어, 황당한 꿈이주만, 중학생 시절에 나는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고 싶었주. 그런데 그 무서운 사건이 내 꿈을 완전히 발살 내버린 거라. 그 사건 후로는 모든 게 헛것으로 보여 무얼 쓸 수가 없었어. 모든 것이 헛것이고 그 사건만이 진실인데, 당최 그걸 쓸 엄두가 안 나는 거라, 무서워서. 그걸 글로 써야 하는데, 그걸 쓰고 싶은데 무서워서 말이야. 어, 지금도 무서워......"(1권 15쪽, '프롤로그' 중)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무섭다는 말을 함부로 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소설 속 이야기, 아니 우리 역사 속 이야기가 무서운 것이고, 이 무서움에 비하면 내가 겪는 무서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 사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죽음, 살육에 대한 공포를 넘어서, 충격적인 역사적 진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더 컸다. 지금까지 그저 막연하게나마 그랬겠지, 그랬대, 하며 남의 이야기인 듯 넘기려 했던 마음을 반성하고, 이제는 우리의 이야기로 진실을 받아들이고 내면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진실 앞에 주춤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창세야, 살아 있거든 이 편지 받고 소식 전해다오."라고 편지를 보내왔지만, 답장하지 않았노라고 했다. 왜냐고? 자신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살아 있는 죽은 자"라고 했다.(3권 356쪽, '에필로그' 중)
"영미야, 너 방 안의 코끼리란 말 알지? 우리가 자는 어둡고 좁은 방에 들어와 있는 코끼리, 너무 크고 너무 어두워서 그 실체를 잘 알 수 없는 것. 그게 4.3이야. 우리를 깔아뭉개버릴 것 같은 압도적인 무게와 거대한 부피. 정말 무섭다!"(3권 357쪽, '에필로그' 중)

바로 이 공포다. 하지만, 언제까지로 알 수 없는 공포 속에 벌벌 떨기만 할 것인가. 이제 기꺼이 방에 불을 켜고 내 방에 들어와 있는 코끼리의 실체를 봐야 한다. 눈 똑바로 뜨고 그 실체를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그런 인식을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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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과 잠자리 - 2020 보스턴 글로브 혼북, 2020 전미 도서상(National Book Awards)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140
케이슨 캘린더 지음, 정회성 옮김 / 사계절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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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는 어떤 이야기일까 짐작하기 어려웠다. 킹이라면 왕이라는 건데, 왕과 잠자리? 곤충 잠자리? 과연 둘 사이에 무언가 동화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는 건가, 잠시 생각하기도 했다. 소년 얼굴과 그 주변으로 날아다니는 잠자리의 표지 그림을 보면서, 이들의 관련성을 생각해보는 것으로 책읽기를 시작했다. 물론 이 소년을 중심으로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을 거라는 것은 이미 책에 대한 소개를 통해 짐작하고 있었지만, 책을 읽기 전 이렇게 저렇게 내용을 예측해보는 건 재미있는 상상이니까.
이 소년의 이름이 '킹'이다. 킹스턴 레지널드 제임스. '칼리드 형'이 있었고, 지금은 없다. 칼리드 형과 같은 반이었던 '마이키 샌더스'가 있고, 그 동생인 '샌디 샌더스'. 샌디 샌더스는 킹과 친구였고 친구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친구다. 여기서 이 책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킹과 샌디의 이야기.

마이키 샌더스는 백인 우월주의 단체 KKK 단원인 개러스 샌더스의 손자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마이키가 벌인 일에 놀랄 건 없다. 지금 이곳에서 마이키 샌더스는 나를 노려보고 있다. 나 또한 픽업트럭 뒤에 매달아 끌고 가려는 듯.(14쪽)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야."/ 아빠가 말한다./ "놈들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을 죽였어. 그리고 시신을 차에 매달아 늪가로 끌고 갔지. 보안관도 나쁜 놈이야. 그자는 죄 없는 사람들을 체포해 감옥에서 반평생 썩게 했어."(...) "그러니까 내 말은 샌더스 가족은 고통을 좀 겪어야 한다는 거야. 남들을 고통스럽게 했으니까."(91쪽)

사람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사람의 생명과 삶을 위협하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상처가 또 다른 분노를 만들며, 이런 악순환의 반복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지금 세상을 들여다보게 된다. 물론, 이런 반복은 인종에 대한 편견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샌디의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형이 나한테 그 이유를 말했기 때문이다.(...) 그때 형은 우연히 샌디의 말을 들었다. 바로 그날 밤이었다. 침실 불을 끄고 나서 한참 뒤 형이 내 쪽으로 돌아눕더니 샌디 샌더스를 가까이하지 말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너를 동성애자로 볼 수 있어. 그런 일은 너도 바라지 않을 거잖아. 안 그래?"(37쪽)
"나는 부끄럽지 않아. 남자를 좋아하는 게 죄는 아니니까.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고. 내 말 알겠어?"(53쪽)
"그래, 우리 할아버지는 인종 차별주의자였어. 그래서 어쩌라고? 할아버지가 인종 차별주의자인 걸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 그러는 너는......"(104-5쪽)
"아니. 하지만 진실을 말했기 때문에 행복해. 뭐든 나 스스로 결정했기 때문에 행복하고. 누가 뭐라고 하든지 말든지 말이야. 그래서 나는 행복해, 킹."(151쪽)

우리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마련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소신, 신념을 통해 생각하고 판단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 물론 그런 결정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물론 어떤 것이 옳다고 다른 이에게 강요할 수도 없다. 바람직함에 대한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것만은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소신과 판단을 존중하기. 다른 이의 생각이 나와 다르다고 배척하거나 공격하지 않기. 한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 자체를 인정하기. 섣부른 선긋기로 타인의 삶을 훼손하거나 상처주지 않기. 나와 나의 시선을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의심하며 점검하기.

아니다. 나는 행복하지 않다. 배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다. 나는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 그 단순하고 쉬운 질문 때문에 나의 내면세계는 충격에 휩싸인다. 나는 행복하지 않다. 내가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151쪽)

킹과 샌디, 두 소년이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은 달랐다. 행복할 수 있기 위해 선택한 방법 또한 달랐다. 그래서 느끼는 행복도 달랐다.
이 두 소년은 지금 자신들에게 벌어지고 있는 이 혼란과 상처와 아픔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해서든지 헤쳐나갈 방법을 찾고 있다. 다행인 건, 그 방법을 찾아나가는 과정에 두 소년이 함께 있다는 것이다. 조금 더 무서운 진실이 숨어있을 것만 같기도 하고, 그 진실을 통해 두 소년이 세상의 잔인함을 마주하게 될 것만 같기도 하지만, 그 마주함을 통해 이 아이들은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성장을 통해 세상을 편견으로 바라보던 시야가 조금이나마 환해지고 맑아져 더 넓어지겠지.
이 소년들의 다음 이야기가 무척 궁금해진다!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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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쓰다가 - 기후환경 기자의 기쁨과 슬픔
최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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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의 시대를 지나면서 이전보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듯 보였다. 아무래도 언론이나 매체에서 관련 기사를 자주 접하게 되고, 관련 책들도 많이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헌데, 이 책을 읽으며 진짜 관심이 많아진 것이 맞는지, 그 관심이 실제 환경과 지구를 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맞는지, 현재 우리나라가 환경에 대해 어느만큼의 대책과 방향을 지니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학교에서도 기후, 환경과 관련해서 많은 공문이 오고 있고, 각종 행사 및 대회, 관련 연수와 캠페인, 학생 활동 등이 추진되어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실제로 우리나라 전체를 이끌고 나갈 정책이나 국가의 장기적 계획은 적절하게 수립되어 추진되고 있는 것은 맞는지, 궁금해졌다. 궁금하다는 얘기는 아직까지도,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았다는 뜻이겠지.
저자의 말대로 결국 환경과 경제, 그리고 정치는 강한 연결고리를 지니고 있으며, 그 연결고리 안에서 어떤 저울질을 통한 미래에 대한 전망을 내놓을 지, 그 관계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예전에 <한국 탈핵>(김익중, 한티재)에 대한 사제동행 프로그램으로 저자 강연을 학교 학생들과 함께 들은 적이 있다. 사실, 그 때만 해도 환경이나 핵(원자력), 에너지 등에 대해 알아야한다는 생각까지 하지 못했던 때였고, 그런 면에서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내용과 저자의 강연 내용은,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가 가득했었다. 어쩌면 저때, 혹은 그 이후에도 환경과 관련해서는 정책을 추진하는 특정 분야 관계자, 전문가들이 알아서 추진하고 실행하는 문제이며, 그들의 평가와 판단을 신뢰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문가라면 믿을 만 하겠지, 하는 생각.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그 이후, 여러가지 다양한 사례들과 온몸으로 느껴지는 요즘의 지구 환경을 통해 제대로 실감하는 중이다.
그런 면에서, 환경은 누군가에게 맡기고 나몰라라할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 결국 누군가의 힘에 의해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스스로, 나 먼저, 나로부터 시작되는 환경에 대한 관심과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 기후 변화도 아닌 기후 위기라는 말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당장 할 수 있는 것들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 대안을 충분히 고려하고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등, 이런 저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솟아나게 만든 책이었다.

실제로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사회의 공고한 체제와 맞서는 도전이었다. 환경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고 고민할수록 지금 나의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통째로 포기해야 한다는 무거운 결론에 다다르곤 했다.(8-9쪽)

이게 참 아이러니라는 생각을 했다. 환경을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우리의 생명과 삶에 직결되어 있는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가 결국 기존 사회에 대한 도전이며 맞서 싸워야 하는 식의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가 말하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사회 체제와 더불어 한목소리로 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지금껏 우리가 너무나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아왔고, 이로 인해 환경 문제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구체적으로 논하지 않고 넘겼던 부분들, 무지했거나 혹은 쉽게 눈감으려 했던 부분이 분명 있었다. 이걸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고, 그래서 이제는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

지금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미래의 불안이 큰 위협일 테지만, 당장 불안한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미래의 불안 따위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미 기후변화의 피해를 직 간접적으로 입고 있는 취약 계층이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구조의 문제를 인식하기에는 그 일상이 너무 버거운 것이다.(81쪽)

그래서, 이 부분에서 아! 하고 무릎을 쳤다. 지금까지의 우리 사회를 변명해보자면, 우린 사회 전체가 불안한 오늘을 살 수밖에 없는 나라였을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지금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다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 그렇다면,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이제는 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물론, 이미 많이 지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늦었다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르다니, 알고도 움직이지 않는게 더 나쁘다.) 그러니 이제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해야 할 때. 알기만 하고 하지 못한다는 핑계는 이제 그만!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자발적인 마음을 갖는 것은 일방적인 강요로 가능하지 않다. 사람의 마음을 억지로 바꾸려 하는 것만큼 촌스럽고 아둔한 짓은 없다. 궁극적으로는 문제를 바로 보고 스스로 판단하고 관점을 갖게 하는 종착점까지 잘 안내하는 것이 진정한 소통이다.(108쪽)
문명의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숱한 인위적인 것들의 시작과 끝을 상상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자연과 인간, 환경과 문명은 모두 이어져 있다는 생각을 늘 되새겨야 한다. 모든 것은 어디론가 가게 되어 있다는 말은 결국 자연을 이용하는 것이 공짜가 아니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145-6쪽)

우리가 살면서 꼭 해야 할 것과 꼭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구분해 본다고, 환경 문제는 당연히 전자쪽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 모두의 공감을 얻는 것부터 시작일 것이다. 우리가 지금껏 누렸던 모든 것들에 이제 환경이라는 필터를 껴서 바라보자. 그리고 그 필터에 걸린 문제들을 볼 줄 아는 시선과 관점을 갖자. 이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할 처음 시작일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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