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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우다 1~3 세트 - 전3권
현기영 지음 / 창비 / 2023년 7월
평점 :
어떠한 비극,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인생은 아름답고,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_2023년 초여름 현기영
책을 펼치자마자 마주한 작가의 말이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삶을 살아내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말이 있을까 싶었다. 비극과 절망 속에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과거의 역사와 기억으로 아파하기도 하고, 현재의 사회와 현실에 절망하기도 한다. 매일 마주치게 되는 우리 사회가 이 정도일까 싶을 정도로,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구나 싶어 답답하고 속상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럴 때, 작가의 말로 조금 위로를 삼아볼까. 그래도, 아직은, 아름답다고, 살만하다고, 억지로라도 확신을 가져봐야할까. 이대로 무너지기엔, 지금까지 지탱해온 많은 분들의 삶이 너무 억울하니까.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하는지, 잘 생각하고 점검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그분들이 목숨으로 지켜내신, 소중하고 값진 삶일 테니까.
제주 4.3. 이 시공간의 크기가 너무도 크고 깊고 넓어, 지금의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역사적 범위를 품고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도 허투루 읽어내서는 안 되는, 그리고 반드시 정확히 알고 잊지 말아야하는, 앞으로도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하는 이야기. 누군가의 삶과 인생을, 그리고 미래에 대한 모든 꿈을 한순간에 집어삼키고, 그 자리를 공포와 아픔으로 가득 채워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은, 끔찍하면서도 아픈 이야기. 그것이 제주 4.3이었다.
작가의 <순이 삼촌>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제주 4.3을 단순히 역사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볼 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역사에는 그 시간을 관통하는 시간 속 사람들의 삶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며, 이 모든 일들은 이들의 삶을 담보로 이루어진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공간에서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은 매우 중요할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제주도우다>는 그들의 삶을 펼쳐 보여주는 동시에 그들이 지금껏 지키려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영미야, 창근아, 이 할아비도 어릴 적엔 꿈이라는 게 있었다. 허어, 황당한 꿈이주만, 중학생 시절에 나는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고 싶었주. 그런데 그 무서운 사건이 내 꿈을 완전히 발살 내버린 거라. 그 사건 후로는 모든 게 헛것으로 보여 무얼 쓸 수가 없었어. 모든 것이 헛것이고 그 사건만이 진실인데, 당최 그걸 쓸 엄두가 안 나는 거라, 무서워서. 그걸 글로 써야 하는데, 그걸 쓰고 싶은데 무서워서 말이야. 어, 지금도 무서워......"(1권 15쪽, '프롤로그' 중)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무섭다는 말을 함부로 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소설 속 이야기, 아니 우리 역사 속 이야기가 무서운 것이고, 이 무서움에 비하면 내가 겪는 무서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 사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죽음, 살육에 대한 공포를 넘어서, 충격적인 역사적 진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더 컸다. 지금까지 그저 막연하게나마 그랬겠지, 그랬대, 하며 남의 이야기인 듯 넘기려 했던 마음을 반성하고, 이제는 우리의 이야기로 진실을 받아들이고 내면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진실 앞에 주춤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창세야, 살아 있거든 이 편지 받고 소식 전해다오."라고 편지를 보내왔지만, 답장하지 않았노라고 했다. 왜냐고? 자신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살아 있는 죽은 자"라고 했다.(3권 356쪽, '에필로그' 중)
"영미야, 너 방 안의 코끼리란 말 알지? 우리가 자는 어둡고 좁은 방에 들어와 있는 코끼리, 너무 크고 너무 어두워서 그 실체를 잘 알 수 없는 것. 그게 4.3이야. 우리를 깔아뭉개버릴 것 같은 압도적인 무게와 거대한 부피. 정말 무섭다!"(3권 357쪽, '에필로그' 중)
바로 이 공포다. 하지만, 언제까지로 알 수 없는 공포 속에 벌벌 떨기만 할 것인가. 이제 기꺼이 방에 불을 켜고 내 방에 들어와 있는 코끼리의 실체를 봐야 한다. 눈 똑바로 뜨고 그 실체를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그런 인식을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