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킹과 잠자리 - 2020 보스턴 글로브 혼북, 2020 전미 도서상(National Book Awards) 수상작 ㅣ 사계절 1318 문고 140
케이슨 캘린더 지음, 정회성 옮김 / 사계절 / 2023년 5월
평점 :
제목만으로는 어떤 이야기일까 짐작하기 어려웠다. 킹이라면 왕이라는 건데, 왕과 잠자리? 곤충 잠자리? 과연 둘 사이에 무언가 동화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는 건가, 잠시 생각하기도 했다. 소년 얼굴과 그 주변으로 날아다니는 잠자리의 표지 그림을 보면서, 이들의 관련성을 생각해보는 것으로 책읽기를 시작했다. 물론 이 소년을 중심으로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을 거라는 것은 이미 책에 대한 소개를 통해 짐작하고 있었지만, 책을 읽기 전 이렇게 저렇게 내용을 예측해보는 건 재미있는 상상이니까.
이 소년의 이름이 '킹'이다. 킹스턴 레지널드 제임스. '칼리드 형'이 있었고, 지금은 없다. 칼리드 형과 같은 반이었던 '마이키 샌더스'가 있고, 그 동생인 '샌디 샌더스'. 샌디 샌더스는 킹과 친구였고 친구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친구다. 여기서 이 책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킹과 샌디의 이야기.
마이키 샌더스는 백인 우월주의 단체 KKK 단원인 개러스 샌더스의 손자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마이키가 벌인 일에 놀랄 건 없다. 지금 이곳에서 마이키 샌더스는 나를 노려보고 있다. 나 또한 픽업트럭 뒤에 매달아 끌고 가려는 듯.(14쪽)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야."/ 아빠가 말한다./ "놈들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을 죽였어. 그리고 시신을 차에 매달아 늪가로 끌고 갔지. 보안관도 나쁜 놈이야. 그자는 죄 없는 사람들을 체포해 감옥에서 반평생 썩게 했어."(...) "그러니까 내 말은 샌더스 가족은 고통을 좀 겪어야 한다는 거야. 남들을 고통스럽게 했으니까."(91쪽)
사람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사람의 생명과 삶을 위협하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상처가 또 다른 분노를 만들며, 이런 악순환의 반복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지금 세상을 들여다보게 된다. 물론, 이런 반복은 인종에 대한 편견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샌디의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형이 나한테 그 이유를 말했기 때문이다.(...) 그때 형은 우연히 샌디의 말을 들었다. 바로 그날 밤이었다. 침실 불을 끄고 나서 한참 뒤 형이 내 쪽으로 돌아눕더니 샌디 샌더스를 가까이하지 말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너를 동성애자로 볼 수 있어. 그런 일은 너도 바라지 않을 거잖아. 안 그래?"(37쪽)
"나는 부끄럽지 않아. 남자를 좋아하는 게 죄는 아니니까.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고. 내 말 알겠어?"(53쪽)
"그래, 우리 할아버지는 인종 차별주의자였어. 그래서 어쩌라고? 할아버지가 인종 차별주의자인 걸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 그러는 너는......"(104-5쪽)
"아니. 하지만 진실을 말했기 때문에 행복해. 뭐든 나 스스로 결정했기 때문에 행복하고. 누가 뭐라고 하든지 말든지 말이야. 그래서 나는 행복해, 킹."(151쪽)
우리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마련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소신, 신념을 통해 생각하고 판단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 물론 그런 결정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물론 어떤 것이 옳다고 다른 이에게 강요할 수도 없다. 바람직함에 대한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것만은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소신과 판단을 존중하기. 다른 이의 생각이 나와 다르다고 배척하거나 공격하지 않기. 한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 자체를 인정하기. 섣부른 선긋기로 타인의 삶을 훼손하거나 상처주지 않기. 나와 나의 시선을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의심하며 점검하기.
아니다. 나는 행복하지 않다. 배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다. 나는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 그 단순하고 쉬운 질문 때문에 나의 내면세계는 충격에 휩싸인다. 나는 행복하지 않다. 내가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151쪽)
킹과 샌디, 두 소년이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은 달랐다. 행복할 수 있기 위해 선택한 방법 또한 달랐다. 그래서 느끼는 행복도 달랐다.
이 두 소년은 지금 자신들에게 벌어지고 있는 이 혼란과 상처와 아픔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해서든지 헤쳐나갈 방법을 찾고 있다. 다행인 건, 그 방법을 찾아나가는 과정에 두 소년이 함께 있다는 것이다. 조금 더 무서운 진실이 숨어있을 것만 같기도 하고, 그 진실을 통해 두 소년이 세상의 잔인함을 마주하게 될 것만 같기도 하지만, 그 마주함을 통해 이 아이들은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성장을 통해 세상을 편견으로 바라보던 시야가 조금이나마 환해지고 맑아져 더 넓어지겠지.
이 소년들의 다음 이야기가 무척 궁금해진다!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