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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하면 좀 어때 - 이런 나인 채로, 일단은 고!
띠로리 지음 / 푸른숲 / 2023년 7월
평점 :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망한 것 같아도 티만 안 나면, 또 한바탕 웃음으로 넘길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니까요. 그런 와중에 잠깐 허술해 보이는 것쯤이야 별일이랴 싶습니다.(8쪽)
이 부분에서 빵 터졌다. 그렇지, 망해도 티만 안 나면 되지! 이미 책을 읽기 전부터 마음의 평안이 느껴졌다. 나라는 사람이 늘 일에 아둥바둥, 완벽하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구멍을 자주 만들곤 한다. 그리고는 그 구멍으로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자책하고. 심지어는 퇴근하는 1시간 운전하면서 그 시간을 내내 자책한 적도 있다. 내가 왜 그랬을까의 무한 반복이었다. 그런데, 티만 안 나면 된다는 말에 안 웃을 수가 없었다. 사실 이 모든 구멍의 대부분은 나만 아는,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고 묻힐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들이니까. 다만, 내가 나의 허술을 넘기지 못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뭔가 내 갑갑했던 마음에 물꼬가 트인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3. 망했어도 티만 안 나면 오케이' 부분이 예사로 읽히지가 않았다.
이미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고, 그 깽값을 갚을 일만 남았다면 잠깐 웃고 지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한바탕 웃음으로 페이드아웃하며 끝나는 영화 장면처럼 말이다.(171쪽)
그러니 망했어도 티만 안 나면 오케이다. 사실, 모든 건 어느 정도 망해가고 있다. 우리는 산소 없이 살 수 없지만, 산소가 체내에서 산화하며 우리는 늙어가고 죽어가게 만든다. 그게 두렵다고 당장에 숨을 참으면 질식해서 죽어가게 될 뿐이다.(237쪽)
깽값이라니, 여기서 또 웃었다. 아무래도 이 작가에게 나는 놀아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런 식이라면, 계속 놀아나고 싶다는 느낌까지! 그리고 제대로 안심이 되었던, 그러면서도 무릎을 쳤던 문장이, '모든 건 어느 정도 망해가고 있다.'였다. 우리의 생이 이미 망해하고 있다는데, 이보다 더할 것이 뭐가 있을까 싶었다. 이 정도라면, 어떤 망함도 견줄 수가 없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작가는 이렇게 덧붙였다.
뻔히 망한 줄을 알아도 그냥 가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상상한 어떤 디스토피아적 세상이 언젠가 찾아온다고 해도, 한날한시에 모두 죽지 않는 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살아갈 것이다. 결국 그때도 나름의 사랑과 모험을 펼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세상이 망할 듯 천둥 치는 창밖을 바라보며 카페에 갇혀 시시하게. 서로의 얼굴을 보고 실없이 웃으며.(237-238쪽)
이게 진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이지 않을까, 책을 덮고 가만히 생각했다. 무수히 많은 망함에 직면하는 삶을 우린 살고 있고, 이 망함이 나로 인해 혹은 누군가로 인해, 아니면 우리 모두로 인해 생기는 망함일 수도 있지만, 그 어떤 것이 원인이라 해도 그 망함을 느끼는 순간은 이미 회복할 수 없는 때라는 것. 물은 이미 쏟았고, 왜 물을 쏟는 삶일까를 자책할 필요 없이, 이런 망함이 나에게 생겼구나, 하고 지금 가던 대로 그저 의연하게 계속 가보는 수밖에 없겠구나.
헌데 이런 생각이 삶에 대한 회의나 염세로 인한 체념이 아니라는 게 중요하다. 마치, '이게 또 썩 나쁘지만은 않겠는데!' 같은 뭔가 희망적인 느낌에 더 가깝다고나 할까. 그래서 뭔가 그 다음에 뭘 다시 더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은, 건강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친구들은 인형 만드는 게 리본 묶기보다 열 배는 어려운데, 도대체 그건 어떻게 하는 거냐며 황당해한다. 듣고 보니 그렇다.(...) 괴짜처럼 보일까 봐 굳이 말하지 않지만, 나는 내 그런 서투른 부분들과 그로 인한 실수들이 재미있다. 그래서 그냥 둔다.(51쪽)
친구들한테 "오늘 또 너무 큰 쓰레기봉투를 사버렸어"라고 말한 뒤 면박을 들을 때도 나는 웃으며 한 귀로 흘린다. 실수했다고 해서 온종일 창피해하거나 자책하지 않는다.(52쪽)
이 재미있는 작가를 어쩌면 좋을까. 이런 허술함을 '은밀하고 소소한 취미'로 퉁치며 그 자체가 모두 자기 자신임을 이토록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래서 안 고치는 거라고 열심히 설득하고 있는 이 모습에 또 웃을 수밖에! 그리고 뜨끔했다. 나는 온종일 창피해하고 자책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구멍이 있어야 인간적이죠, 하며 혼자 자책했던 나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배웠다. '그래, 나 원래 이런 사람이지, 참!'하고 작가처럼 생각해야겠다고. 이런 모습도 또한 나라고.
뭐니뭐니해도 제일 좋은 건 이제는 "뭐 해?"라고 먼저 묻는 일이 두렵지 않다는 것. 내 작은 텃밭에 있는 친구들에게 물을 주며, "뭐 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니?"하고 종알종알 떠들고 싶다. 그게 내가 바라는 전부다.(179쪽)
나도, "뭐 해?" 안부를 묻고, 종알종알 떠들고 싶다. 허술하면 좀 어떠냐고, 망했어도 티만 안 나면 괜찮다고, 웃어 넘기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