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저항하다 - 냉소주의의 시대, 저항의 감각을 키우는 철학 수업
다카쿠와 가즈미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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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저항' 두 단어를 연관지어 생각해본 적이 있었나, 싶다. 두 단어가 어떤 면에서 연결될 수 있을까, 책을 읽기 전부터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철학'은 저자가 눈치채고 있던 것처럼, 기존의 철학자와 그 철학자의 사상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어렵고 알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철학하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이기도 했고. 우리가 윤리와 사상이라고 할 때의 그 사상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헌데 '저항'이라고 하면 조금 더 근대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방식 안에서 생각해야 하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어찌보면 '철학'은 과거를 들여다보고 '저항'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는 편견 정도. 그래서 두 단어가 어떻게 관련성을 갖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이미 말했듯이, 저자의 말대로라면 철학은 철학자의 사상을 공부하는 것이 다가 아님을, 지금까지의 생각을 깨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이것부터가 '저항'의 시작이지 않을까.

철학이란 개념을 운운하는 것으로 세계에 대한 인식을 갱신하는 지적인 저항이다.(23쪽)

저자가 내린 '철학'의 정의다. 철학의 정의에 이미 저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철학이란 지금의 삶 속에서 생각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기존의 것에서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 현재의 현상을 다시 생각할 줄 아는 저항. 철학이 흔히 말하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의 삶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와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철학은 우리의 삶의 있는 그대로라고.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그런 면에서, 나는 과연 철학하는 삶을 살고 있나를 돌아보게 됐다. 영화와 소설에 담겨 있는 그들의 세계와 같이 나 또한 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저항하는 표현과 행동을 하며 살고 있는지 말이다. 늘 이 지점에서 드는 생각을 이제 나도 정리해야하지 않을까 싶어졌다. 과연 아는 것과 아는 것을 표현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의 간격을 어느 정도 좁힐 수 있을까.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하고 그 아님을 내 말과 몸으로 보여줌으로써 나는 그 모든 것을 내 삶을 끌어들일 수 있는 어느 지점에 와 있는 걸까. 저자는 이 모든 것의 성공과 실패는 중요하지 않다고 거듭 밝히고 있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내가 하고 있는 것의 결과에 또한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므로, 그 결과가 그 다음을 할 수 있게도 혹은 포기하게도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결과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고, 나의 노력이 얼마만큼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을지에 관심을 두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가 계속 철학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해 보였다.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을 스스로 고칠 수 있어야 하고, 이것을 통해 또한 사회의 변화를 꾀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시작이 결국 철학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았다. 철학이 그저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사상을 그대로 학습하여 아는 것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생활로 혹은 나를 둘러싼 거대한(내지는 아주 작은) 세계를 구성하는 것으로 내면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래서 저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그 저항을 통해 이루어지는 많은 작고 소소한 철학을 작게든 크게든 가져가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웠다.
저자는 성인 독자라면 학생의 입장에서 이 책을 바라보면 좋겠다고 했지만,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성인인 나에게도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이 조금 더 깨지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었으니까. 다르게 생각해봐도 좋다는,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의 변화가 곧 철학이 될 수 있음을 알았으니까. 꼭 학생, 청소년의 입장에서만 바라보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리의 작품과 영화, 혹은 삶의 현상과 문제 상황을 소재로 한 <철학으로 저항하다>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지금껏 자연 재해와 사회적 큰 이슈를 바탕으로 발견되는 저항의 철학이 있었다면, 이제 지금, 당장의 우리에게도 이 철학은 너무나 필요하기 때문에.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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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거기에 놓아두시면 돼요 - 2024 서울국제도서전 주관 '한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
캉탱 쥐티옹 지음, 오승일 옮김 / 바람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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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잠시 인상을 쓰게 됐다. 몸에 찍혀 있는 이 점들이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해 몇 장을 연거푸 넘겨보며 확인했다. 그리고는 다시 조금, 더 인상이 써졌다. 죽은 이의 몸에 대한 표현이 이런 점이었구나, 싶어 마음이 가라앉았다.(꼭 죽은 이에 대한 표현으로만 볼 수는 없겠지만,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이의 몸에 대한 변화, 시간의 변화, 혹은 다른 의미로, 몸에 나타나는 변화가 점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언젠가부터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읽어나가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곤 하는데, 여실히 이 책의 시작부터 마음을 무겁게 내리누르는 듯했다. 특히, 죽은 이를 옆에 두고 '하하하!' 웃는 그 웃음과 그 웃음 끝에, 할말을 잊은 듯 죽은 이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더 강한 슬픔을 느꼈다. 저 눈빛을 하고 누군가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싶어서.
아무리 고통스런 상황이라도 여러번 반복하다보면 익숙해질 수 있을까. 정말 아무렇지 않아지려면 얼마나 반복해야 가능할까. 과연 아무렇지 않아지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무덤덤해진다는 것은 감정을 잃는 것의 다른 표현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들이 반복적으로 마주하게될 수밖에 없는 죽음은, 언제까지고 괜찮을 수가 없는 모든 순간들이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죽은 이의 몸에 새겨지는 점들, 사실은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인 듯 보였다. 그 몸에 작은 점들이 새겨지고, 그 점들이 점점 모여 퍼지면서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는 이들이라고 한다면, 이들의 몸에 새겨지는 점들은 그저 이들에게서 생명을 앗아가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이 지금껏 갖고 간직하고 있던 모든 것들이 몸에 아로새겨지는 것은 아닐지. 이 책의 겉표지를 넘기면 앞뒤로 화려한 꽃들이 잔뜩 들어차있는 속지를 볼 수 있다. 어쩌면, 죽음을 앞에 둔 이들의 몸에 그동안 살아오면서 간직하고 있는 꽃과 같은 이야기들이 몸에서 자라나는 것은 아닐지. 그리고 그 이야기가 점점 커지고 번져, 온몸을 감싸게되는 순간, 그 모든 순간들이 기억, 이야기가 하나가 되어 꽃처럼 피어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게 됐다. 그리고 이런 생각 끝에 다시 처음부터 책을 읽어나가면서, 더이상 이 점을 보며 인상을 쓰게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점들이 아름답게 보였다.

에스텔의 마음이 이상한 걸까. 내 눈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요양원의 환자와 간호사의 관계가 사무적으로, 딱 그만큼만의 거리를 갖고 있는 관계라 선을 긋고, 그 선 안에서 할 수 있는 것까지만 하면 된다는 게 더 이상해 보였다. 이유는, 상대가 사람이니까. 사람은 감정이 있고 체온이 있으며, 마음으로 이어져 있으니까. 다만 그 감정의 선이 서로에게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며, 어떻게 발현되어 어떤 모습을 하게 되는지는 각자 다를 것이다. 그래서 그 다름을 알아채지 못하고 자신이 보고싶은대로만 판단하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그런 다른 모든 마음을 알아봐주고 보듬어주었던 사람이, 에스텔이었다. 그런 에스텔이었기에, 그 많은 죽음을 마음에 품어 스스로 그 슬픔을 몸에 새겨 안으며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지만 솔직히 무너져내렸다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슬픔만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꽃으로 피어날 수 있었던 그 모든 기억들은 또한 아름다웠으니까. 그들의 모든 기억을 자신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름답게 피워낼 수 있는 에스텔의 삶은 그래서 그 자체로 소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지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게 된다. 함께 손을 맞잡고 최대한 서로의 몸을 밀착하고 있는 두 사람, 그리고 하나의 그림자. 이 그림이 이 책의 이야기를 말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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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생각 - 유럽 17년 차 디자이너의 일상수집
박찬휘 지음 / 싱긋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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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렸다. <딴생각>이라고 하니 뭔가 정형화되지 않은 독특함이 묻어날 것만 같았다. 딴생각은 '미리 정해진 것에 어긋나는 생각.', '주의를 기울리지 않고 다른 데로 쓰는 생각'이란 뜻을 갖고 있다. 가끔 책상에 앉아 딴생각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마다 약산 매직아이 같은 상태가 된다는 느낌이 이거구나 싶기도 하다. 해야할 일을 잔뜩 펼쳐놓고도 하는 딴생각의 시간이 참 달콤하고 소중한데, 그런 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 풀어낸 이야기들일 것 같아, 딴생각에 매력이 느껴졌다.
또 끌렸던 이유는 부제에 있다. 유럽 17년 차. 뭔가 해외 생활자에 대한 동경과 로망이 아직 좀 남아 있는지, 우리나라에서와는 다른, 일상 생활에서 얻게 독특함이 묻어있을 것만 같았다. 해외 생활이란 것이 특별할 것도 없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은 누구에게나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듯도 했다. 특히 디자이너라고 하니, 결국 내가 가보지 못한 길, 그래서 잘 알지 못하는 세계에, 더욱 예술적인 생활 속 딴생각이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재밌겠다, 싶었다. 다른 사람의 다른 생각을 엿보는 데에 묘한 매력이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책을 거꾸로 보고 싶어지는 표지도 한몫 했다. 글씨를 보려면 똑바로, 그림을 보려면 거꾸로. 이것이 저자의 생각을 그대로 담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꼭 바로 보려고만 하지 않아도 되는, 뒤집어 보고 거꾸로 매달려보는 그런 딴생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읽기 전 생각이 어느정도 맞아 떨어지면 더 신나게 책을 읽게 된다. 나와 동갑 저자라는 사실을 알아채는 순간 더욱 재미있게 몰입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동시대에 비슷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성장한 사람들끼리 통하는 공감대가 있었다. 자식을 키우면서 얻게 되는 생활의 깨달음부터 직장생활 하면서 주변 동료들의 행동과 생각에서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을 발견하게 되는 부분까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피식 웃게되는 지점도 생겼다.
전지자동차의 발전으로 아버지와 함께 차 밑에 들어가 수리하는 추억이 사라질 것을 염려하는 부분에서 살짝, 우리가 날로 발전하는 최첨단의 시대에서 아직도 잊지 말아야할 지점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마지막 저자와 아버지가 함께 찍은 사진에서는 뭉클하기도 했다. "고맙다, 아들아. 꿈에 그리던 도나우강 옆에 내 아들이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114쪽)라고 말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이 사진에서 함께 연상되어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딴생각이면서 같은 생각이었고, 공감되는 생각이었으며 고개 끄덕여지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런 딴생각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우리 일상이 이 딴생각으로 조금 더 풍요롭고, 멋질 수 있도록.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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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4 - 마케팅 전문가들이 주목한 라이프스타일 인사이트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이노션 인사이트전략본부 지음 / 싱긋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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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혼자 괜히 피식 웃곤 했다. 이 책에 소개된 트렌드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도 2024년에는 트렌드 좀 아는 사람이 되는 건가, 싶어 혼자 웃었다. 지금껏 마케팅이니 전략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가끔 언론이나 매체를 통해 전달되고 또 전달되어 지금 식상해질 때쯤, 뒤늦게 그런 게 있었어, 하고 뒷북일 경우가 잦기도 했다. 시대의 흐름을 잘 따라야한다고 하지만, 생각만큼 다양한 매체의 소식을 발빠르게 습득하여 나의 것으로 녹여내는 능력이 내게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노력하지도 않았고, 또한 노력해도 안 된다고 지레 겁을 먹기도 했다.
이 책을 접하고 조금은 자신감이 붙었다고 할까. 트렌드, 생각보다 별거 아닐 수도 있겠다는 자만도 약간 포함되기도 했다. 그럴만한 것이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것, 그리고 오히려 더 익숙한 것이 트렌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진작 관심을 보였어도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살짝 들기도 했다. 알려고 하지 않아서 그렇지, 알고나면 나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 싶기도 했다.

이를테면, 헤리티지라는 용어가 참 낯설었다. 하지만 유산, 전통 정도의 단어로 생각하면 그다지 낯선 개념도 아니다 싶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원조를 좋아하기도 하지 않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수 있는 우리나라의 정서 상, 헤리티지 요소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조, 혹은 전통의 시작을 강조하거나 과거의 입맛, 패션 등의 추억 소환이 새로운 트렌드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면, 나도 전형적인 옛날 사람의 1인으로서 요즘 세대에 살짝 끼어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로컬에서 맛보는 즐거움은 나도 익히 경험하고 있는 바다. 이 지점에서 뭔가 트렌드에 잘 따르고 있는 사람이 된 듯해 으쓱해졌다. 로컬의 재미를 맛보기 시작는 중이라고나 할까. 우리 동네, 우리 마을이란 용어가 낯설지 않고, 그런 동네의 가게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경험이 생기면, 그 경험들이 쌓여 새로운 문화도 덩달아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도 대부분 대형화 기업화되어가고 있는 상업적 흐름 속에서 작은 동네, 마을의 작지만 특색있는 가게들의 성장은 또 다른 건강한 사회적 문화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소셜미디어에 대한 관심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생기기 시작했다. 강한 선입견을 갖고 담을 쌓고 살아왔다. 오히려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사용하면서는 다양한 문화와 분야, 새로운 양식과 가치가 다양하게 오고갈 수 있고, 특히 소통의 편리함이 유독 장점으로 보인다. 단순히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억지로 꾸미고 과정하는 시대는 지난 것이 사실이고, 이젠 사용자의 수준이 높아져,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바로 서 있다. 그러니, 덮어놓고 비판하던 시대를 넘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활용하고 내 생활에 녹여낼 것인가를 더 고민하는 방향에 서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어떤 말에든 AI가 포함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로, 인공지능이 주가 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여서, AI 역량을 어떻게 키워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단순히 과거의 사람과 비슷하게 말하고 움직이는 로봇을 넘어서, 새로운 가치와 문화를 만들어낼 줄 아는 AI의 등장은, 우리가 마주해야 할 가장 당면한 시대적 트렌드가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 방향에서 인간인 우리가 AI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하지 않을까. 경계의 눈초리는 이제 그만. 서로의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길을 각자의 영역에서 찾아나가야할 때인 것 같다.

이렇게 끝도 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 이야기에 이야기를 더하는 힘이 있어, 한 가지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이야기가 숨쉴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었다. 한 꼭지씩 끊어 읽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해보고 싶어졌다.
이제 트렌드 아는 척 좀 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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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위대한 승리일 뿐
김솔 지음 / 안온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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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십삼 년 전처럼 다시 서로를 사랑하게 됐으니 현재의 몰골과 처지가 뭐가 중요하며, 우리 중 누가 먼저 죽고 누가 나중에 죽는 걸 굳이 왜 따진단 말이냐? 우리 모두 죽음에 이르러서는 사랑의 위대한 승리를 찬양할 뿐인데!(276쪽)

사랑의 모습을 어느 한 가지로 정의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사랑은 그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 각자의 생각과 감정, 경험과 판단이 전제가 되어 각인되는 것이니까. 또 사랑을 항상 맑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생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사랑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음미하다보면 늘 기쁘고 행복한 순간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만큼 아프고 쓰린 상처가 사랑의 이름 아래 포함되어 있고, 그 상처를 어느 한 순간도 잊거나 버리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의 마음과 몸에 각인시키게 된다는 것을 알아채게 될 테니까. 그래서 사랑이 애틋하면서도 무섭고, 겁이 나면서도 끌릴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

이 소설을 읽으며, 순간순간 공포스럽기까지 했다면 내가 소설을 잘못 읽은 걸까. 우선, 전체적으로 소설이 진행되어가는 모든 이야기들과 문장, 표현들이 대단하다는 느낌이 가장 먼저 들었다. 김솔 소설가의 문장력이나 소설의 흐름을 이끌어나가는 솜씨가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이렇게 소설을 쓸 수 있구나 싶고 중간에 쉽게 이야기를 끊고 책을 덮기 어려웠다. 그만큼 사람을 이끄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 소설이 점점 무섭다고 생각이 든 이유가. 십삼 년만에 마주친 그 '형제님'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소름돋았다. 얼마나 지독한 사랑의 과거를 품고 있기에 현재와 미래를 이토록 주도면밀하게 계획하고 있는 것인지. 과거를 쉽게 내보이지 않고 있음에도, 그 십삼 년 전 둘 사이에 있었을 일들의 순간 감정이 전해져 느껴지는 듯하여, 끔찍했다. 아마도 난, '나'의 마음에 공감하며 소설을 읽어나갔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궁금하기도 했다. 그때의 그 '형제님'이 진심으로 '나'와의 일을 쉽게 기억에서 지웠다는 판단하게 된 계기가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 하나였을까. 혹은 대화 속에서 전혀 자신의 처지를 눈치채지 못하는 그 우둔함이었을까. '나'는 이미 모습을 바꾸었고,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지옥의 끝까지 다녀왔다고 본다면, 과연 알아보고 그로 인한 감정을 다시 일깨우는 것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이 소설 어디에서도 그가 어떤 감정과 생각을 갖고 행동하고 이곳을 오고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알 수 없음, 그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음에 더욱 의문도 커지면서 또한 그를 계획의 한가운데로 몰아붙이기 쉽기는 했다.
그리고, '겟세마네'의 누가 '나'인 것인지가 끝까지 미스테리였다. 알고 싶었고 너무 궁금했고, 누구의 모습이어야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가 끝까지 해결되지 않은 숙제였다. 하지만 누구여도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누구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더라도 '나'가 그에 대한 복수의 모습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미 모든 계획 속에 그는 들어왔고, 그를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를 위한다고 하니 마치 그를 향한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 싶기도 하지만-사실,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지만-그를 파괴하기 위한 사랑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이미 자신의 사랑을 어떤 방식으로 정의내릴 것인가에 대해 군더더기 없는 확신을 갖고 있었으니까.

앵무새의 "다섯 시 이십육 분 지브롤터"에서 슬그머니 빠져나가려다가 너는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숨이 멎는 듯했다. 왜냐하면 십삼 년 전에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나는 넋을 놓고 너를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185쪽)

'나'가 그에 대한 복수를 내려놓을 수 없는 이유가 이 문장에 숨어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챌 수 있을 것만 같아, 많은 것들 중 하나도 눈치채지 못하는 그에게 화가 나고 원망스러웠다. '나'의 마음을 멈춰세울 수 있는 자는 그일 텐데, 싶었다.

제목을 반복해 읽어보았다. 결국 사랑이 승리한다는 것, 그것 뿐임을 보여주고 있음에 오히려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표지에서 느껴지는 바가 내용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다 읽고나서야 알아챘다. 그 느낌이 궁금하다면, 직접 읽어보는 수밖에.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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