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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거기에 놓아두시면 돼요 - 2024 서울국제도서전 주관 '한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
캉탱 쥐티옹 지음, 오승일 옮김 / 바람북스 / 2023년 11월
평점 :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잠시 인상을 쓰게 됐다. 몸에 찍혀 있는 이 점들이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해 몇 장을 연거푸 넘겨보며 확인했다. 그리고는 다시 조금, 더 인상이 써졌다. 죽은 이의 몸에 대한 표현이 이런 점이었구나, 싶어 마음이 가라앉았다.(꼭 죽은 이에 대한 표현으로만 볼 수는 없겠지만,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이의 몸에 대한 변화, 시간의 변화, 혹은 다른 의미로, 몸에 나타나는 변화가 점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언젠가부터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읽어나가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곤 하는데, 여실히 이 책의 시작부터 마음을 무겁게 내리누르는 듯했다. 특히, 죽은 이를 옆에 두고 '하하하!' 웃는 그 웃음과 그 웃음 끝에, 할말을 잊은 듯 죽은 이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더 강한 슬픔을 느꼈다. 저 눈빛을 하고 누군가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싶어서.
아무리 고통스런 상황이라도 여러번 반복하다보면 익숙해질 수 있을까. 정말 아무렇지 않아지려면 얼마나 반복해야 가능할까. 과연 아무렇지 않아지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무덤덤해진다는 것은 감정을 잃는 것의 다른 표현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들이 반복적으로 마주하게될 수밖에 없는 죽음은, 언제까지고 괜찮을 수가 없는 모든 순간들이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죽은 이의 몸에 새겨지는 점들, 사실은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인 듯 보였다. 그 몸에 작은 점들이 새겨지고, 그 점들이 점점 모여 퍼지면서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는 이들이라고 한다면, 이들의 몸에 새겨지는 점들은 그저 이들에게서 생명을 앗아가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이 지금껏 갖고 간직하고 있던 모든 것들이 몸에 아로새겨지는 것은 아닐지. 이 책의 겉표지를 넘기면 앞뒤로 화려한 꽃들이 잔뜩 들어차있는 속지를 볼 수 있다. 어쩌면, 죽음을 앞에 둔 이들의 몸에 그동안 살아오면서 간직하고 있는 꽃과 같은 이야기들이 몸에서 자라나는 것은 아닐지. 그리고 그 이야기가 점점 커지고 번져, 온몸을 감싸게되는 순간, 그 모든 순간들이 기억, 이야기가 하나가 되어 꽃처럼 피어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게 됐다. 그리고 이런 생각 끝에 다시 처음부터 책을 읽어나가면서, 더이상 이 점을 보며 인상을 쓰게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점들이 아름답게 보였다.
에스텔의 마음이 이상한 걸까. 내 눈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요양원의 환자와 간호사의 관계가 사무적으로, 딱 그만큼만의 거리를 갖고 있는 관계라 선을 긋고, 그 선 안에서 할 수 있는 것까지만 하면 된다는 게 더 이상해 보였다. 이유는, 상대가 사람이니까. 사람은 감정이 있고 체온이 있으며, 마음으로 이어져 있으니까. 다만 그 감정의 선이 서로에게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며, 어떻게 발현되어 어떤 모습을 하게 되는지는 각자 다를 것이다. 그래서 그 다름을 알아채지 못하고 자신이 보고싶은대로만 판단하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그런 다른 모든 마음을 알아봐주고 보듬어주었던 사람이, 에스텔이었다. 그런 에스텔이었기에, 그 많은 죽음을 마음에 품어 스스로 그 슬픔을 몸에 새겨 안으며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지만 솔직히 무너져내렸다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슬픔만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꽃으로 피어날 수 있었던 그 모든 기억들은 또한 아름다웠으니까. 그들의 모든 기억을 자신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름답게 피워낼 수 있는 에스텔의 삶은 그래서 그 자체로 소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지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게 된다. 함께 손을 맞잡고 최대한 서로의 몸을 밀착하고 있는 두 사람, 그리고 하나의 그림자. 이 그림이 이 책의 이야기를 말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