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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복지 - 공장식 축산을 넘어, 한국식 동물복지 농장의 모든 것
윤진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6월
평점 :
동물을 먹지 않는다. 먹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한다. 내가 먹는 그 동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내 입으로 들어오게 되는지를 알게 된 후로 먹고싶지 않아졌다. 주변인들은 묻는다. 고기 먹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있지는 않냐고. 그런 적은 없다. 먹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먹어지는 경우를 참은 적은 있지만.
돼지의 삶에 대해 처음 인식하게 된 것은 <돼지 이야기>(유리, 이야기꽃)라는 그림책을 통해서였다. 너무 충격이었다. 그동안 돼지의 살처분에 대해 주의를 기울리지 않았던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고도 내내 돼지고기를 먹었었다. 연결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 돼지가 어떤 환경과 공간에서 자라 어떤 경로로 진열장에 놓이고 또 어떻게 우리 식탁까지 오게 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제 생각만 하지 말고, 먹지 않는 삶을 실천해야겠다고.
이 책을 읽으며 고민에 빠졌다. 이 책이 말하는 '돼지복지'에 대해서, 농장에서의 돼지의 삶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마지막, 결국 그런 돼지의 삶이 필요한 건 더 안전하고 건강한 돼지를 인간이 먹기 위해서라는 결론이 조금 불편했다. 6개월. 태어나서, 태어난 이유를 다 하기까지 살 수 있는 기간이 딱 6개월이었다. 더 이상 돼지를 키우면 손해라고 하니, 그 짧은 기간을 살다 인간의 식탁에 놓여야 할 운명으로 태어난 돼지라는 존재를, 나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농장에서 동물복지는 현실적으로 실행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축산업 종사자, 동물복지 인증제도 활성화를 위한 방향과 평가 지표를 고민하는 담당 관계자, 동물복지 축산물을 유통하고 싶지만 인증받은 농장이 턱없이 부족해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하기 어려운 기업체, 그리고 지속 가능한 축산 시스템을 공부하는 동물자원 전공 학생들이 동물복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합리적이며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였다.(15쪽)
고민했다. 이 책을 어렇게 받아들여야할지. 내가 읽을 책이 맞나, 내가 알고자 하는 동물복지의 최종 지점이 다를 경우, 이 책의 의도를 어디서 찾아야하나 고민이 됐다. 그리고 이 책의 의도를 처음부터 간과하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했다. 이미 전에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이동호, 창비)에서도, 돼지를 분양받아 잘 키웠고, 행복한 돼지의 삶을 보장해 주었으며, 마지막에는 부위별로 잘 나누어 지인들과 함께 나눠 먹었다.
분명 이 책이 갖고 있는 의미는 있다. 우리가 돼지를 식재료로 생각하고 축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전제로 하고 있다면, 그 전제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이 동물복지이고, 동물복지 농장이 더 많아질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보장해줘야하는 것도 사실이다. 돼지를 키우다 생명이 다 하면 장례를 시켜줄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면, 교수가 하고 있는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공장식 축산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는 건 분명하니까.
다만, 이 모든 생각은 인간중심적인 사고라는 것. 인간이 모든 세상의 종을 모두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 먹잇감으로 동물을 바라보는 사고라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덧-
한겨레출판에서 함께 출간된 <비건한 미식가>(초식마녀)와 함께 읽으니 더 혼란이 왔다. 이미 동물권에 대해 알고 있고 책도 여러 권 읽어본 입장에서, 그리고 채식을 지향하고 있는 입장에서 이 책이 딱 와닿지는 않았다. 일정 부분 동의되는 지점이 있었지만, 결국 먹는다는 결론에서는 거부감이 생겼다. 나의 내공과 공부가 더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더불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