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파란, 나폴리 작가의 작업 여행 1
정대건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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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참 낭만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이상, 나폴리는 파란색의 이미지와 함께 기억되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 이탈리아 여행을 가게 된다면, 주저하지 않고 나폴리를 가겠다고 결정할 것 같다. 그곳에서 마라도나를 만나고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맛있고 싼 피자를 먹어야지. 그리고 나와 어울리지 않게 바다에 퐁당 빠져 수영을 해보고 싶어졌다. 수영 후엔 햄은 빼고, 도톰한 파니니를 먹어야지. 마치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그곳을 오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새로운 곳 새로운 경험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어딘가를 가더라도 한 곳에 오래 머무는 여행을 좋아한다. 내가 있는 곳이 익숙해질 때까지 오래 나를 그곳에 놓아두는 것이, 관광객 모드가 아닌 생활자의 모드로 그곳을 내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더 안심이 되는 사람이다. 작가와 비슷하게 뼛속까지 집순이여서 어딜 쉽게 이동하지 않고 한곳에 틀어박혀 한 자세로 앉아있는 것을 참 잘한다. 그래서 작가의 이 작업여행에 나도 덩달아 긴장했다. 마치 내가 3개월간 그곳에 혼자 가야할 것만 같은 걱정이 앞섰다.
생각보다 새로운 공간에 적응하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는구나 싶었다. 생소하고 두려웠던 공간이 익숙하고 그리운 공간이 되는 데 90일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누군가를 알아가고 또 무언가를 해내고, 그 공간에 충분히 적셔지는 데는 사실, 90일까지도 필요 없다. 단 며칠만으로도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있을 곳인지 파니니를 알아보는 법이니까. 작가에게 나폴리는 있을 만한 공간, 자신을 풀어줄 수 있는 공간임을 직감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온갖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것들까지도 다 받아들일 수 마음이 가능했을 것이다.

"90일간 지내는 시간을 선물처럼 생각하고 있어. 한국에서는 내가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내게 주어지는 이런 시간은 한 번뿐이라는 마음으로 내게도 더 관대해졌어. 내가 돌아가서도 선물처럼,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면 이전보다 행복하지 않을까."(53쪽)

작가에게 나폴리에서의 시간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시간이었다. 자신을 닦아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관대함을 배운 시간이었고, 자유롭게 무엇을 선택하든 그 선택의 끝에는 또 다른 행복의 시작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운 교훈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일고 있는 나도, 지인이 충고해주었던대로 경험주의자가 되어 새로운 공간에서 직접 몸으로 체득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간접적으로 말고 직접적으로, 생각만하지 말고 행동으로, 실패를 걱정하지 말고 해보는 즐거움을 느껴보는 것으로. 그럼 그 끝에는 작가의 말처럼 분명, 보상이 있을 거니까.

가 보자, 포기하지 말고.//
이 여정 끝에 보상이 있으리라는 낙관이 생겼다. 아니, 설령 날씨가 끝까지 좋지 않더라도 이대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뭔가를 얻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순간 내가 품은 낙관이 나도 놀랐다. 사람이 태도의 관성을 바꾼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최악의 하루가 예상치 못한 놀라운 행복으로 마무리되었던 어제의 경험으로 몸에 새겨진 좋은 감각 덕분이었다. 나는 앞도 보이지 않는 신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153쪽)

기존의 나를 다른 나로 바꾸는 것이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우면서도 쉬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자신을 깨는 일, 익숙한 것을 낯선 것으로 바꾸는 일은 자신을 자신이 어찌하지 못하는 부분까지를 포함하고 있어서, 쉽지 않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나를 바꾸는 건 어쩌면 마음먹기 나름이니 어렵지 않을 수 있다. 어느 쪽에 장단을 맞춰야하나 싶기도 하겠지만, 그럴 땐 우선은 바꿔보는 걸로, 해보는 걸로. 그럼 그 끝에 무언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있을 것이다.
작가의 여행기를 읽고 나의 생활의 태도를 점검하게 됐다. 다른 이의 생활기는 곧 나의 생활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특히 아름다운 도시 나폴리와 이탈리아의 지역들에 대한 여행기는 또한 상상하게 만들었다. 내가 그곳을 어떤 목적으로 방문하게 될 것이며 그 여행에서 무엇을 얻게 될 것인가를. 경험해보고 싶어졌다.

나폴리에는 '카페 소스페소' 문화가 있다. 소스페소(sospeso)란 '매달린', '걸려 있는', '미루어진'이라는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다. 즉 카페 소스페소란 '맡겨둔 커피'라는 뜻으로, 커피를 마시고 싶지만 가난해서 마시지 못하는 누군가를 위해 나누는 행위다.(58쪽)

이탈리아 남부의 문화 소스페소. 이탈리아 중에서도 나폴리를 더 경험해보고 싶은 이유 중 하나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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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의 아이들 꿈꾸는돌 39
정수윤 지음 / 돌베개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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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초반부터 긴장감이 너무 높았다. 소설에는 분명 발단, 전개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이 소설은 시작부터 위기에서 출발하는 소설 같았다. 세 아이들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면서 이 아이들에게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가 두려움을 만들었다. 아직 열여섯의 어린 나이의 아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이 무섭고 공포스러운 일로 여겨졌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세계의 이야기인 것만은 확실하다. 물론 이야기는 넘어 넘어 들었고, 다른 경로를 통해 짐작할 수 있었던 이야기이긴 했다. 하지만 어떤 세계도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서는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법, 그리고 판단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북한의 체제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특히 그 생각과 갈망을 우리가 쉽게 짐작할 수는 없다. 혹은 자칫 다른 사회에 속한 사람들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대하거나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것만큼 경계해야 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의 배경은 분명 북한이기는 하지만,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순수하게 자유롭고 싶은 열망을 가진 꿈 많은 아이들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어느 곳에 있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고 꿈꿀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한다.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삶을 선택하여 살 것인가는, 순전히 자신이 정하기 사람이고 결심하기만 나름이다. 그런 결심에 어느 누구의 강요도 협박도 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가기만 할 뿐, 그 다음은 그 다음 문제인 것이다.
이 소설의 여름, 설, 광민이는 그런 아이들이었다. 어떤 이념이나 체제, 사회적 환경이나 가치관이 이들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저 이 아이들은 자신이 살고싶은 방향을 향해 본능적으로 움직일 뿐이고, 그런 움직임을 사회에서 받아들여주지 않는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으로 죽음의 위협 속에서 험한 공간을 도망치며 나아갔어야 했지만, 결국 이 아이들이 마주한 파도는 그런 모든 시간과 과정을 위로해주듯 따뜻하게 기다려주었고 감싸주었다. 그러니 그런 바다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다고 결심하는 아이들의 외침이, 뭉클하게 다가올 수밖에.

"그래, 좋다! 우리 여기, 이 바다를 우리의 나라로 삼자. 여기 이 바다를 우리가 살 곳으로 정하자."
"좋다, 좋아. 바다야! 우릴 받아 줘!"(...)
"우리는 우리가 결정하지 않은 세상 따위 원하지 않아. 여기가 바로, 우리의 나라야!"(212쪽)

나라는 어떤 것일까. 체제와 사상은 또 무엇일까. 우리는 살면서, 이런 질문을 늘 머릿속에 두고 살지는 않는다. 어쩌다 한번, 간혹가다, 가끔씩 질문의 답을 떠올려보는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늘 자신의 삶과 죽음의 경계 속에서 이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아이들이었다. 어느 나라 어디에서 내가 인정받고, 또 어떻게 사는 삶을 어디로 선택할 것인가가 중요했던 삶. 그런 삶 속에 놓인 아이들에게는 매 순간이 치열한 투쟁이고 싸움일 수밖에 없었다. 늘 도망치는 삶, 힘겹게 자신의 한 몸을 지탱하기 위해 치열하게 세상의 시선과 맞서야했던 삶이었다. 그래도 그런 외롭고 혹독했던 삶 속에서도 서로 의지하고 마주보고 웃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는 것, 늘 무사하기를 바라는 가족과 이웃이 있었다는 것은 이 아이들에게 있어 다행한 일이었다.

여운이 남는다. 그리고 또 다른 불안감도 몰려온다. 이 아이들이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잘 정착해서 살아갈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질 수 있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이 아이들이 또 어떤 역경에 처하게 될 지, 그래서 또 어디론가 도망쳐야만 하는 삶이 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의 긴장이 해소되는 듯하다 또 다른 긴장이 만들어졌다. 이 아이들의 그 다음의 이야기가 다시 궁금해졌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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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바느질 클럽 - 모쪼록 살려내도록 온(on) 시리즈 7
복태와 한군 지음 / 마티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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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신기했다. '죽음'이란 단어를 쓴 클럽이라니. 도대체 어떤 클럽인데 이렇게 비장할까. 헌데, 표지 그림은 재밌었다. 양말인데 여러 색색의 실로 수가 놓여진, 아니 더 정확하게는 기워진 사진. 분명 제목에도 '바느질'이란 단어가 있다. 바느질 이야기인 것만은 분명한데, 죽음의 바느질... 우아, 이거 목숨 걸고 해야 하는 바느질 이야기인가 싶었다.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서, 정신 바짝 차리고, 온몸에 긴장감을 불어넣은 채 살아왔는데, 힘 꽉 주고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치앙마이 바느질을 통해 배웠다. 열심히 하는 것이 ,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이, 오래 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이러면 결과물은 빨리 만들어낼 수 있을지언정 금세 지쳤다.(...)
바느질을 '멈춤'에 특화된 장르다.(...) 바느질을 한다, 힘을 빼고. 힘들면 멈춘다. 나중에 이어서 하면 되니까. 바로 이것이 우리가 8년째 질리지 않고 여전히 즐겁게 바느질을 하는 비법이다. 적당히 멈추는 것. 더 하고 싶을 때 그만두는 것이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과정을 즐기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치앙마이 정신'이라고 부른다.(167쪽)

이 책을 읽으며 몇 가지 다짐하게 되는 게 있다. 우선, 치앙마이를 꼭 가봐야겠다는 결심(탄소발자국이 걱정이지만, 너무 궁금해서 안 가볼 수가 없을 것 같다. 그 전에도 궁금한 곳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더 궁금해졌다.). 그리고 다시 바느질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지 않고 고쳐쓰는 리페어에 대해 조금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바느질에 거부감은 없다. 어린 시절 엄마는 종종 집에서 재봉틀을 돌리셨다. 외할머니댁에 가면 더 큰 재봉틀이 있었고 할머니의 모든 옷은 손수 지어 입으신다고 하셨다. 학창시절 한번쯤 해봤던 저고리 치마 만들기 정도는 혼자 힘으로 뚝딱 만들었고, 결혼 후 아이들의 옷을 직접 만들어주고 싶어 제봉틀을 중고로 구매해 바지까지는 만들어 입혀봤다. 작은 것들은 손수 바느질을 해서 만들거나 혹은 수선했고, 그 솜씨가 대단하지는 않아도 불편함은 없는 정도였다. 소소하게 십자수 벽시계를 만들어 여럿에서 선물도 했었고.
하지만 양말은... 시도해보지 못했고 배겨나는 바느질의 흔적이 싫어 닳아 얇아진 양말을 버리지도 그렇다고 신지도 못한 채 방치해두곤 했다. 아,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안 되는 곳이 없구나. 비닐봉지와 벽돌에까지 바느질할 정도라면, 유 윈이었다.

"한군, 그만 좀 쉬어. 손목 아프다며." "멈출 수가 없어. 이 재미있는 걸 어떻게 멈춰?"(224쪽)

이 대목에서 안 웃은 사람이 있을까. 나도 손으로 꼼지락거리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마음이 어떤 마음인 줄 이해가 된다. 손목이 시큰거리고 손가락 굳어오는데도 계속 손을 움직여대고 있는 나, 엉덩이가 아프고 허리가 뻐근해지면서도 여기까지만, 조금만 더를 외치며 한두 시간은 더 버티는 나이가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고 다시 그 마음이 타올랐다, 뭔가를 꼼지락거리고 싶은 마음.

옷을 사지 않기로 했다. 최대한 소비하지 않는 삶을 살기로 했다. 이유는 잘 살고 싶기 때문이다. 돈이 많은 부자로 잘 사는 삶 말고, 안전하고 깨끗해진 지구에서 잘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죽음의 바느질 클럽'은 내가 해나가야 할 또 하나의 숙제가 됐다.
헌데, 이 숙제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재밌을 것 같은 예감이다. 그래서 오히려 조금 들뜨고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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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만의 방
김그래 지음 / 유유히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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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해외로 일하러 나가면 어떨 것 같아?"(11쪽)

나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두 딸에게 말하며 나는 같이 가겠냐고 물었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흔쾌히 재밌을 것 같다며 가겠다고 동의했다. 해외 근무가 결정된 후 아이들 아빠까지 따라나서면서, 온 가족이 해외 생활을 시작했었다. 그곳도 베트남. <엄마만의 방>의 '엄마'에 더 마음이 쓰였던 이유일 것이다.

압도적으로 넓은 땅 위에 거대한 공장 여러 개가 늘어선 풍경을 보고 엄마는 생각했다.
'진짜 왔구나. 이제 돌이킬 수 없구나.'
'잘 견뎌보자.'(37쪽)

딱 그랬다. 정신없이 한국의 집과 짐을 정리하고 캐리어 몇 개만 끌고 도착한 베트남에서의 느낌이 딱 이거였다. 아, 내가 진짜 오긴 왔구나. 앞으로 해결해야할 일들이 많고, 특히 가족을 모두 데리고 왔으니 그에 대한 책임감이 무겁게 자리했었다. 낯선 나라와 환경, 날씨 앞에서 금방 지치고 걱정되는 부분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함께 이야기하고 해결할 가족이 있어 안심이 되기도 했던 시간들이었다. 아마 '엄마'는 나보다 더 막막하고 긴장되는 시간들이었지 않았을까.

혼자서는 여행한 적 없던 사람.
이제 모두가 과거가 됐다.
그는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이 많아졌다.
어쩌면 엄마는
겁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조금 더 용기 낸 사람이 된 걸까.(109-110쪽)

남들은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남들은 가고 싶어도 쉽게 갈 수 없는 좋은 기회라고도 했다. 그때 생각했다. 그저 나는 조금, 용기를 냈을 뿐이라고. 지금까지의 나의 삶을 조금 더 확장하기 위해, 해보지 않은 것이 두려워 먼저 포기하고 뒷걸음치기보단, 해보고 후회하는 쪽을 택하기로 용기내는 마음을 조금 먹어본 것 뿐이었다. 그리고 해본 후에 알았다. 생각보다 그렇게 많이 어려운 길은 아니었다고. 해볼 만했고, 또 용기내길 잘했다고.

"근데 H주임. 이제 베트남에서 한국 갈 때보다 한국에서 베트남 올 때 '집에 간다'고 느껴지지 않아?"
"음... 생각해보니 저도 그렇게 느낀 것 같아요."(195-196쪽)

그랬다. 한국은 잠시 다니러 오는 곳이었고, 베트남의 집으로 돌아갈 때는 훨씬 마음이 가벼웠다. 뭔가 일을 다 마치고 돌아간다는 홀가분함도 있었고, 또 편히 내 침대에 누워 쉴 수 있겠다는 마음도 가졌던 것 같다. 한국이 집이 아니라 베트남이 우리집이라는 생각. 오히려 베트남 집에 도착했을 때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역시, 매일 정들이고 생활하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아늑함은 그곳이 어느 나라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정을 붙여 생활하고 있느냐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내가 살던 그 곳에 다시 간다면 집에 돌아왔다는 마음이 들 것 같다. 익숙하고 정들었던 곳에 대한 그리움이 아직 남아 있다.

수많은 역할을 내려두고
자신으로서 사는 삶.
그런 삶이 그에게 꼭 필요해 보였다.
누군가의 엄마.
혹은 아내.
혹은 딸이자 며느리.
그 속에서 행복한 시간도
분명 있었겠으나
그가 오롯이 혼자서 누리는 행복도
가져보았으면 했다.(249-250쪽)

너무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대부분의 '엄마'들에게 붙은 다양한 책임의 이름들. 그 이름들 속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온전히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간절히 필요한 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오롯이 혼자서 누리는 행복'을 얼마나 찾고 싶은지. 누군가는 무책임으로 몰아붙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누구나에게 당연히 주어져야 할 자기 자신의 삶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그런 삶을 지켜주고 응원해주고 싶은 것이다.
'엄마'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누군가는 해외 생활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마냥 부러워하기도 하겠지만, 실제 생활이 매번 부러울 상황들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진짜 생활에서 부딪혀야하는 많은 것들을 혼자 묵묵히 잘 해내고 있을 '엄마'를 작가와 같은 마음으로 응원한다. 부디 건강하게 생활하시다 돌아오시라고. 그리고 지금의 이 시간들이 충분히 '엄마'만의 시간으로 만드시라고.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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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리의 한국인 제빵사입니다
서용상.양승희 지음 / 남해의봄날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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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한국인 최초로 파리에 빵집을 열고 프랑스 제빵 대회를 석권하기까지 그 치열했던 25년의 이야기

한 마디로 대단한 뚝심이고 소신을 삶이었다. 이런 분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면 나라면, 이란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난 자신 없어, 난 이렇게 못 했을 거야, 어떻게 이렇게 살 수가 있었지, 같은 답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된다. 이번 이야기도 다르지 않았다. 낯선 나라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어려운 일이었을 지, 이 책을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갔다. 그리고 존경스러웠다.
우선, 자신이 하겠다고 결정한 일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 일 하나만을 생각하며 나아갔다는 점이 그랬다. 우여곡절도 많았고 타국에서 이방인으로서 겪어야했던 불합리하고 어려운 일도 많았다. 그럼에도 빵에 대한 소신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길의 험난함으로 다시 귀국의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지 않았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타국에 머물렀던 순간이 있었고, 그 순간들에서 조금 더 지치고 힘든 상황에 놓였을 때 귀국은 좋은 도피처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돌아갈 곳이 있고 그곳에서는 이 모든 문제가 사라질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안정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마음을 수차례 떨쳐내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고자 마음먹었던 것이지 않을까.
그리고, 자신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 지점을 명확히 하고 있었던 점이 그랬다. 돈을 많이 벌거나 혹은 이 나라에 잘 정착하겠다는 목표가 아니라, 자신이 만든 빵이 어떤 빵으로 사람들에게 가 닿기를 바라는지가 이분들에게는 중요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뭔가 빵 하나에 대단히 거창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느낌을 조금은 알 것도 갔다. 나도 내 일에서 종종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조금 욕심이 있다면, 내가 만든 빵을 먹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갓 만든 빵의 따스함, 입안에 퍼지는 구수한 향기와 바삭하고 고소한 식감. 손안에 든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고객에게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고객분 아니라 함께 빵을 만드는 직원들, 그리고 우리 가족도.(194쪽)

'행복하게 해 주는 빵'을 만들고 싶다는 말에서 이미 벌써 입가에 미소가 만들어진다. 이 세상의 모든 빵이 사람들에게 와 닿는 의미 또한 여럿이겠지만, 빵을 먹으며 행복했던 무수히 많은 기억들이 있고, 그 중에서도 누군가가 이런 마음으로 빵을 만들었을 것을 상상하며 한입 베어 물었을 때는, 더욱 더 온몸으로 행복감이 퍼져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25년이다. 이 긴 시간을 한결같기는 쉽지 않다. 나도 내 일을 한 지 24년째다. 비슷한 시간을 지나왔으니, 어느만큼의 긴 시간일지, 그 시간들은 어떻게 해야 이만큼 쌓일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한 분야의 최고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담보로 했을 때 이룰 수 있는 결과인지도 잘 안다. 내가 지금 내 일에서 최고일 수 없으니, 이보다 더 많은 노력이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이분들의 이야기가 허투루 읽히지 않는다. 허투루 읽을 수도 없고.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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