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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의 아이들 ㅣ 꿈꾸는돌 39
정수윤 지음 / 돌베개 / 2024년 6월
평점 :
소설 초반부터 긴장감이 너무 높았다. 소설에는 분명 발단, 전개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이 소설은 시작부터 위기에서 출발하는 소설 같았다. 세 아이들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면서 이 아이들에게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가 두려움을 만들었다. 아직 열여섯의 어린 나이의 아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이 무섭고 공포스러운 일로 여겨졌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세계의 이야기인 것만은 확실하다. 물론 이야기는 넘어 넘어 들었고, 다른 경로를 통해 짐작할 수 있었던 이야기이긴 했다. 하지만 어떤 세계도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서는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법, 그리고 판단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북한의 체제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특히 그 생각과 갈망을 우리가 쉽게 짐작할 수는 없다. 혹은 자칫 다른 사회에 속한 사람들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대하거나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것만큼 경계해야 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의 배경은 분명 북한이기는 하지만,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순수하게 자유롭고 싶은 열망을 가진 꿈 많은 아이들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어느 곳에 있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고 꿈꿀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한다.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삶을 선택하여 살 것인가는, 순전히 자신이 정하기 사람이고 결심하기만 나름이다. 그런 결심에 어느 누구의 강요도 협박도 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가기만 할 뿐, 그 다음은 그 다음 문제인 것이다.
이 소설의 여름, 설, 광민이는 그런 아이들이었다. 어떤 이념이나 체제, 사회적 환경이나 가치관이 이들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저 이 아이들은 자신이 살고싶은 방향을 향해 본능적으로 움직일 뿐이고, 그런 움직임을 사회에서 받아들여주지 않는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으로 죽음의 위협 속에서 험한 공간을 도망치며 나아갔어야 했지만, 결국 이 아이들이 마주한 파도는 그런 모든 시간과 과정을 위로해주듯 따뜻하게 기다려주었고 감싸주었다. 그러니 그런 바다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다고 결심하는 아이들의 외침이, 뭉클하게 다가올 수밖에.
"그래, 좋다! 우리 여기, 이 바다를 우리의 나라로 삼자. 여기 이 바다를 우리가 살 곳으로 정하자."
"좋다, 좋아. 바다야! 우릴 받아 줘!"(...)
"우리는 우리가 결정하지 않은 세상 따위 원하지 않아. 여기가 바로, 우리의 나라야!"(212쪽)
나라는 어떤 것일까. 체제와 사상은 또 무엇일까. 우리는 살면서, 이런 질문을 늘 머릿속에 두고 살지는 않는다. 어쩌다 한번, 간혹가다, 가끔씩 질문의 답을 떠올려보는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늘 자신의 삶과 죽음의 경계 속에서 이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아이들이었다. 어느 나라 어디에서 내가 인정받고, 또 어떻게 사는 삶을 어디로 선택할 것인가가 중요했던 삶. 그런 삶 속에 놓인 아이들에게는 매 순간이 치열한 투쟁이고 싸움일 수밖에 없었다. 늘 도망치는 삶, 힘겹게 자신의 한 몸을 지탱하기 위해 치열하게 세상의 시선과 맞서야했던 삶이었다. 그래도 그런 외롭고 혹독했던 삶 속에서도 서로 의지하고 마주보고 웃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는 것, 늘 무사하기를 바라는 가족과 이웃이 있었다는 것은 이 아이들에게 있어 다행한 일이었다.
여운이 남는다. 그리고 또 다른 불안감도 몰려온다. 이 아이들이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잘 정착해서 살아갈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질 수 있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이 아이들이 또 어떤 역경에 처하게 될 지, 그래서 또 어디론가 도망쳐야만 하는 삶이 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의 긴장이 해소되는 듯하다 또 다른 긴장이 만들어졌다. 이 아이들의 그 다음의 이야기가 다시 궁금해졌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