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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자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24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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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김려령 작가의 소설집을 읽으며 느꼈다. 아, 이런 게 김려령의 소설이었지 하는 생각.
우리의 모습을 꼼꼼하게 포착해 하나하나 적나라하게 열거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처한 상황, 우리의 심리, 그 안에서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에서 다시 나를 돌아보고, 또다시 나의 시선을 바깥으로 열리는, 우리가 하고 있지만 하고있다고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심리와 생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감이 가고 또 화도 나고 또 슬프고 안타깝기도 했다. 아, 이 모든 감정을 이 책 한 권에 다 담을 수 있는 능력, 이건 김려령 작가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란 생각에 감탄도 했다.
욕지기가 올라왔다. 내가 인지하지 못한 내 모습이 혹시 그랬을까봐 속상해서 눈물이 다 났다. 그랬다면 징그럽다는 그의 표현은 매우 적확한 거였다. 하아, 젠장...... 내 의지로 간직한 게 아닌 물건들. 엄마의 한복 상자.(59쪽_'상자' 중)
깜짝 놀랐다. 사람의 생각을 이렇게까지 몰아갈 수 있는 거구나, 싶어 무서웠다.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핑계삼아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비하하면, 그 비난과 비하가 어떤 끝을 향해 가게 되는지가 이 소설에 그대로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했던 적이 있어 다시 심장이 두근거렸다. 무서운 경험. 결국 자신의 생각과 사고가 그 사람의 말에 휘둘리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자책하게 만드는 만들어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내 혼자서도 그 비난과 비하의 말 속에서 살아야 한다. 이게, 상자의 문제일까. 소름끼치도록 무서웠다.
그래, 이 집. 진짜 미끼는 이 집이다. 나처럼 힘없는 세입자를 노린, 세입자를 기물파손이나 정도로 유도하는 미끼인 것이다. 집주인은 조카를 이용해 세입자의 견물생심을 부추겼다.(173쪽_'세입자' 중)
무서운 세상은 단지 생각을 조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돈을 조정하는 것에서도 나타났다. 무엇을 위해 미끼를 놓고 사람을 시험하고 또 그 미끼에 걸려들도록 만들었을까. 결국 돈이었고, 돈으로 얽혀있는 모든 사람들이 진짜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도 했다. 이런 식이구나, 이 세상은. 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가 이런 식이라면, 세상에 대한 혐오감만이 밀려올 뿐이다. 이 세상을 어찌해야 좋을까. 어떤 방식으로 이 세상을 다시 제대로 돌아가는 세상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 끔찍한 세상에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기가 쉽겠다는 생각도 살짝 스쳤다.
내가 폭 안은 황금 꽃다발. 많이 먹어라. 속이 시원해질 때까지. 많이 먹고 오래오래 살아라. 네가 가지고 태어난 수명에서 하루도 모자라지 않게.(88쪽_'황금 꽃다발' 중)
그래도 남의 것 다 빼앗으면서 제 배만 채우는 사람들 가운데, 자식 곁을 지키는 이런 엄마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이게 엄마의 마음이지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짠하기도 했다. 이런 마음만으로 이 세상을 살아내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니까. 엄마는 이야기했다. '내가 떠나면 이놈 혼자 서러운 관리를 견뎌야 했다. 그래서 나는 못 떠난다. 이놈이 불쌍해서.'(88쪽) 그러니 이 불안불안한 시간을 끝까지 지켜줘야한다는 책임을 언제까지 가지고 가야할까. 이게 엄마의 마음일까. 황금 꽃다발이 언제쯤이나 빛을 발할 수 있을지.
그녀는 자신이 아이들을 낳았을 때 먹었고, 자신이 태어난 이날 어머니가 먹었을 미역국을 먹었다.(...) 이봐요, 어디서 뭘 하며 사는지는 모르겠으나, 꼭 한번 아비 노릇을 하려거든 그 모습 죽을 때까지 감추시오. 홀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생부로서의 유일한 아비 노릇입니다.(...) 그녀가 집을 나갔다.(228-9쪽_'청소' 중)
처음부터 불안불안했다. 날을 잡아서 대대적으로 닦고 쓸고 버리고 정리하는 청소의 날들이, 내내 불안했다. 어른들은 자주 말씀하신다. 외출할 때는 집안을 말끔히 정리해놓고 외출해야 한다고. 나갔다 다시 못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자식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너저분한 내 살림을 보일 수는 없으니까, 라고. 아마도, 이 엄마의 마음도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쉽게 마지막 장을 읽고 덮을 수가 없어, 결말 부분을 여러번 되돌아가 읽고 또 읽은 소설이었다. 이 감정을 뭐라 설명해야할 지도 알 수 없는 소설의 마지막이었고,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게 만든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