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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에서 지구의 안부를 묻다 - 기후위기 시대 펜, 보그, 스웜프에서 찾는 조용한 희망
애니 프루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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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보그, 스웜프. 조금 낯선 용어들이었다. 아무래도 이 용어들보다는 그냥 습지가 더 익숙하다. 습지의 소중함은 그동안 환경 관련 공부를 하며 익히 들어왔다. 습지가 품고 있는 생명과 그 안의 생태계가 보존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하지만 그동안 승자는 버려진 땅, 불필요한 땅, 그래서 어떻게든 사람에게 이롭게 쓰이도록 개척해야 하는 땅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로 인한 파괴와 훼손 등으로 점점 습지가 줄어들었고, 습지가 줄어든 것으로 인한 영향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갖지 않았다. 사람에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사회적 인식이 결국, 지금과 같은 지구 환경의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저자는 화가 많이 난 것 같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확고하고도 단정적인 어투로 한결같이 화를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화 안에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도 담겨 있었고, 그럼에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의 마음도 담겨 있었다. 마치 담담하게 말하고 있는 듯 보이는 문장들 사이에서 간절하게 느껴졌다. 지금이라도 제발, 우리의 습지들이 다시 회복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하지 않겠냐는 그 마음. 지금 하고 있는 회복 사업들이 어서 빛을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
이 글을 읽으며 나도 화가 났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왜 이리도 우리의 역사는 오개념과 잘못된 인식이 더 큰 힘을 발휘했던 것일까. 지금의 시각에서 무엇이 옳고 그렇지 못했는지를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껏 우리 사회를 나쁜 쪽으로 이끌었던 것은 대부분, 사람들의 섣부른 판단과 태도 때문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너무 많이 오래도록 잘못된 방향으로 지구의 생명을 파괴했고 사라지게 만들었다.
펜의 주민에서 런던의 의사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펜의 고인 물에서 나온 "유독하고 유해한 증기"가 열병과 학질을 일으킨다고 믿었다.(105쪽)
지구 환경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중이다. 지구는 스스로의 자정능력을 갖고 있다는 믿음도 버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자정능력이 발휘될 수 있는 시간을 인간은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자연'계에서 평형상태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으나, '자연의 균형' 같은 믿음은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환상임을 알게 되었다.(258쪽)
케임브리지셔의 습식 농경 실험에 큰 희망이 걸려있으나, 펜이든 열대림이든 망가진 자연을 되돌리고 복원하는 일이 엄청나게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가 점점 깨닫고 있을 뿐이다. 터주를 제자리에 되돌려 놓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정말 정말 정말 어렵다. 건축과 파괴에는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는 인류가 자연계를 복원하는 일에는 불쌍할 정도로 미숙하다. 그냥 우리 적성에 안 맞는 일이다.(113쪽)
우리 인류가 얼마나 무능하고 형편없는지를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이 부분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망가뜨릴 수는 있어도 다시 제 모습으로 되돌려놓을 수 없는 인류의 무능력함. 하지만 내내 하지 못함의 탄식만 하고 있기에는 너무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지금이라도 더 적극적으로 제자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 있는 습지에 대한 보존과 회복만이라도 힘을 써야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옛사람들에게 이토록 관심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강, 개울, 고인 물, 산, 깊숙한 동굴, 섬을 통해서 지금은 불가능한 방식으로 자연계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이다.(162쪽)
습지의 자연이 품고 있던 많은 생명들을 떠올려보게 된다. 새, 이끼, 나무 등 많은 동식물들의 안식처이며 사람들의 생활과 삶에까지 이어져 연결되어 있던 습지의 역할을 생각하게 된다. 결국 과거 가난하고 무식하며 더럽다고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했던 이들의 이야기가 실은 우리가 원하고 꿈꾸는 바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 과거의 모습을 지금의 인류가 어떻게 각색하여 처참한 결과를 만들어 냈는지 분명히 알아야하지 않을까.
돌이킬 수 없는 상실에 대해 타는 듯 뜨거운 감정을 느끼면서도 '진보'와 '향상'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는 심리. '지금',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이전의 모든 기대보다 우월하다는 오만한 생각. 그들이 내놓는 증거는 대부분 기술적인 '향상'이다.(72-73쪽)
'지금' 우리가 여지껏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생각을 한참 잘못 하고 있었는지 느껴야 한다. 어느 지점까지 와 있는지, 그래서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할 것은 무엇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알아야 하고, 알고 있는 것을 말해야 하고, 말한 것을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환경을 공부하며 내린 결론이고, 이 책을 읽으며 한 번 더 다짐하게 되는 생각이다.
스웜프와 새는 한 몸과 같다. 스웜프가 사라지면 새도 사라진다.(217쪽)
지구와 인류도 한 몸과 같다. 지금껏 지구를 발판삼아 인간은 제멋대로 참 잘도 살았다. 그렇게 잘 산 결과가 지금과 같다면, 그래서 지구가 사라진다면 인류도 사라진다. 아니, 지구상의 생명이 모두 사라진다. 우리 인간이 그토록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면, 지구가 사라지지 않도록 하자. 무엇이 중요한 지 좀 알자.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