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시 일상시화 4
유희경 지음 / 아침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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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시 #유희경 #일상시화 #아침달 #서평단 #서평 #책추천

시는 '있다'.(219쪽)

시인의 말이 내내 '시'였다. 사진에 대해, 아니 더 정확하게 카메라에 대해 말하고 있는 듯했지만, 사실은 모두가 시였다. 시인이 시를 버리고 카메라를 찾았고, 다시 카메라를 버리고 시를 찾았다고 했지만, 사실 시인은 내내 시 안에 있었고 또한 사진 안에 있었다.

느닷없이 나타난 듯 참으로 둥글고 환한 말이었다. 느닷없이 나는 감격하고 말았는데, 결단코 위기 때문은 아니었고, 달빛이 가진 공평함과 달빛 아래서 명백해지는 삶의 각양각색의 면모가 새삼 가까이 느껴져서도 아니었다. 그날의 달은 거대한 돌덩이였다.(...) "오늘도 달이 떠 있네." 나도 모르게 내뱉은 혼잣말에 옆에 있던 나의 친밀하고도 짓궂은 감시자가 웃음을 터뜨렸다.(138쪽)
어떤 사람들은 본다. 읽지 않는다./읽기와 보기는 그 행위의 형태로는 구분할 수 없다. 읽는(읽은) 이와 보는(본) 이는 구별되지 않는다.(150쪽)

시인은 읽는 사람이다. 우리는 이런 시 앞에서 혹여라도 보는 사람인 것은 아닌지. 내가 시인의 감시자였다면 나는 단연코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을 것이다. "그러게, 오늘도 달이 떠 있네."라고. 그렇다면 나도 덩달아 읽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시인이 카메라와 시에 진심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사진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이 시가 되는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사진으로 찍어 내 것으로 갖고, 또 갖고 있는 사진을 다시 잃어버리고 또 버리는 과정 또한 시인에게는 시의 삶이고 동시에 그 모든 것을 카메라를 통해 바라보는 시선이 곧 시를 바라보는 세상이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은 '거기 무언가 있(었)음'이다. 기억은 '거기'를 지우고 '무언가'를 지우고 '있(었)음'을 남겨놓는다. 사진의 거짓은 '거기 무언가 있(었)음'을 존재한다. 기억의 거짓은 오직 '있(었)음'만을 상대한다. 사진은 한정하고 기억한 확장된다. 사진과 기억은 유사한 형식을 갖지만 비교의 대상은 아니다.(74쪽)

'있(었)음'에 '거기 무언가'를 보태 사진으로 남기든, 그 사진을 잃고 다시 '있(었)음'만을 남기든, 그것이 사진이어서 또한 기억이어서도 된다는 것이다. 한정하고 확장하는 그 사이에서 세상은 여전할 뿐이다.

거기서 사진 속의 '나'는, 다른 기억에 안착하여 새롭게 살기 시작한 '나'는 안녕할까. 여기의 '나'가 꽤 늙어버렸다는 사실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부디, 그곳에서 행복하길. 여기의 '나'보다 더 오래 이어져가기를.(244쪽)

사진 속의 '나'와 여기의 '나'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비교할 수 없는 각자의 몫만큼의 삶 속에서 오래 이어져갔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시인의 앞으로의 길을 따라가보고 싶어졌다. 어떤 나아가기를 마음 먹었을지, 궁금해졌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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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나는
다비드 칼리 지음, 모니카 바렌고 그림, 정림(정한샘).하나 옮김 / 오후의소묘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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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과의 일상이, 그 사람을 떠나보낸 후에 쉽게 잊힐 리가 없다. 아마 함께 있을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니었던 순간들이, 그 사람이 떠난 후에는 너무나 소중하고 그리운 순간들이 된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떠올리는 시간이 때로는 아프기도 또 때로는 따스하기도 해진다. 마음이라는 것이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으니까. 늘 한결같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아픈 것도 따스한 것도 모두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마음이라는 것만은 같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빈 자리의 시간들이 그 사람과의 기억들과 얽히며 여러 감정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은 그 감정들을 고스란히 지금의 감정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게 된다.
잊어야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라는 이유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는 순간 더 생각날 것이고, 슬퍼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순간, 예상치 못한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마냥 덮어만 둔다고 감정이 희석되지는 않는 법. 희석시키기 위한 방법을 아무리 찾으려해도 쉽게 찾아질 수가 없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 받아들이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일상을 여전히 함께 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쌓아온 일상의 삶이 있다. 이 일상은 힘이 무척 세다. 함께 본 영화, 함께 다닌 카페, 함께 키운 강아지, 그리고 함께 생활한 집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다고 일상이 바뀔 리가 없다. 바꿔 살 수도 없다. 바꿀 수 없어서 일상인 거니까. 또한 공간과 시간과 기억을 한순간에 지우기란 불가능이다. 그 공간이 사라져 없어지지 않는 한, 설사 공간을 옮긴다고 해도 기억까지 옮길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 그 일상을 이어나가는 도리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일상을 차곡차곡 계속 쌓아가며 다시 자연스레 혼자의 시간을 잘 견딜 수 있도록, 괜찮도록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당신은 알까? 여전히 나는 그곳에 가.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일상을 이어나가면 그것 또한 내내 이어지는 일상이 될 수 있으니까.
감정이란 것은 억지로 만들고 고치고 비튼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특히 사랑 혹은 그리움의 감정은 굳이 애써 포장하고 감추는 노력으로 바뀌지도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며 담담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차분해지고 고요해지고, 그리고 제일 중요한, 따뜻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이 한없이 슬프면서도 또한 아름다웠다. '당신'을 위해, 여전히 매일을 함께하고 있다는 그 마음이 뭉클하게 만들었다. 이 마음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더 슬퍼지는 날에도 늘 하던대로 함께하던 일상을 이어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되어줄 거니까.

덧-
손목의 시계에 자꾸 시선이 갔다. 아마도, 이들의 시간이 어떻게 서로 이어져있고 연결되며, 앞으로도 어떻게 흘러가게 될 것인가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런 의미에서, 저 시계가 멈추지 않고 잘 움직여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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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 완료 : 택배가 우리 집에 오기까지 우리학교 어린이 교양
율리아 뒤르 지음, 윤혜정 옮김 / 우리학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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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을 사는 우리는 집에 얼마나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있을까? 어느 책에서 한 사람당 만 개의 물건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나 많이? 라고 생각했지만, 가만히 집안을 둘러보면 그 정도가 충분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나게 많은 물건을 가지고 사람은 살아가는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 많은 물건이 다 필요한 게 맞을까. 이렇게나 이미 많이 갖고 있는데, 계속 또 무언가를 사고 있다는 생각에 잠시 엉뚱한 상상을 해보게 됐다. 집 안에 물건이 자꾸 쌓이고 쌓이고 쌓여, 집을 가득 채우다못해 창문 밖으로 물건이 튕겨져 나가는 상상. 사람도 들어서지 못하는 물건들의 집이 되는 상상.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끔찍하기도 했다.

지금의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택배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의심이 들 정도로 굉장히 많은 택배들이 오고가는 세상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판매자 사이트에서 클릭 한번이면 손쉽게 물건이 뚝딱 집까지 온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물건 하나 하나가 어떤 과정과 절차에 따라 우리 집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하나씩 살펴보면 어마어마하면서도 굉장한 과정이 있어야지만 가능했다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이 책이 그것을 알아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란 생각을 했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어요
전 세계가 우리 집에

전 세계가 어떻게 움직여 돌아가고 있는지, 어떤 시스템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지를 잘 알게 해주는 말이었다. 더이상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있어도 모든 것은 이어지고 연결되어 있으며, 그 연결이 잘 이루어져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각종 물건과 식품들을 손쉽게 구입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어떤 세상의 무엇이더라도 촘촘하게 이어져있는 연결망 속에서 우리는 충분히 그 모든 것을 우리 집에 둘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단순히 와, 이렇게 물건이 우리 집으로 오게 되는구나, 하고 감탄만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의 물자가 물건이 되고 다시 움직여 우리 집까지 올 수 있는 과정에서 분명 많은 영향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자원을 채취하는 과정에서의 노동 문제, 가공하고 생산하고 유통하는 과정에서의 환경 문제, 물건을 사고 소비하고 버리면서의 쓰레기 문제 등. 물건은 단순히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만 오고가는 것이 아니라, 물건으로 인해 파생되는 다양한 문제가 함께 오고가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분명 삶의 편리에 의해 시스템이 갖춰지고 전 세계가 한몸처럼 움직여 돌아가고 있다. 그런 움직임이 어떤 가치와 의미에 의해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각 부분의 이야기를 통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집에 있는 물건 하나가 어떤 과정을 통해 우리 삶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처음부터 따져 보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고, 이 과정을 잘 아는 것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과정을 통해 우리 집에 오게 되는지, 안 가르쳐줘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며, 이렇게도 많은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접하게 되니, 놀라운 마음이 컸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분명, 이 모든 것들이 적절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음이 너무도 선명해 보였다. 그 사람들의 삶 또한 이 시스템 안에서 매우 중요한 지점이겠다는 생각도 분명해졌다.
수업에 활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해야할 이야기가 무척 많을 것이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결국, 우리가 사는 사회와 삶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하고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덧-
책을 읽으며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젖소' 부분. '우유를 얻기 위해 정보의 젖을 짭니다.'라는 문장이 자꾸 신경쓰였다. 젖소는 없다. 엄마 소에게서 젖을 짜는 것일 뿐. 이 또한 이야기 나누어봐야 할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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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자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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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자들 #김려령_소설집 #창비 #서평단 #서평 #책추천

오랜만에 김려령 작가의 소설집을 읽으며 느꼈다. 아, 이런 게 김려령의 소설이었지 하는 생각.
우리의 모습을 꼼꼼하게 포착해 하나하나 적나라하게 열거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처한 상황, 우리의 심리, 그 안에서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에서 다시 나를 돌아보고, 또다시 나의 시선을 바깥으로 열리는, 우리가 하고 있지만 하고있다고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심리와 생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감이 가고 또 화도 나고 또 슬프고 안타깝기도 했다. 아, 이 모든 감정을 이 책 한 권에 다 담을 수 있는 능력, 이건 김려령 작가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란 생각에 감탄도 했다.

욕지기가 올라왔다. 내가 인지하지 못한 내 모습이 혹시 그랬을까봐 속상해서 눈물이 다 났다. 그랬다면 징그럽다는 그의 표현은 매우 적확한 거였다. 하아, 젠장...... 내 의지로 간직한 게 아닌 물건들. 엄마의 한복 상자.(59쪽_'상자' 중)

깜짝 놀랐다. 사람의 생각을 이렇게까지 몰아갈 수 있는 거구나, 싶어 무서웠다.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핑계삼아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비하하면, 그 비난과 비하가 어떤 끝을 향해 가게 되는지가 이 소설에 그대로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했던 적이 있어 다시 심장이 두근거렸다. 무서운 경험. 결국 자신의 생각과 사고가 그 사람의 말에 휘둘리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자책하게 만드는 만들어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내 혼자서도 그 비난과 비하의 말 속에서 살아야 한다. 이게, 상자의 문제일까. 소름끼치도록 무서웠다.

그래, 이 집. 진짜 미끼는 이 집이다. 나처럼 힘없는 세입자를 노린, 세입자를 기물파손이나 정도로 유도하는 미끼인 것이다. 집주인은 조카를 이용해 세입자의 견물생심을 부추겼다.(173쪽_'세입자' 중)

무서운 세상은 단지 생각을 조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돈을 조정하는 것에서도 나타났다. 무엇을 위해 미끼를 놓고 사람을 시험하고 또 그 미끼에 걸려들도록 만들었을까. 결국 돈이었고, 돈으로 얽혀있는 모든 사람들이 진짜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도 했다. 이런 식이구나, 이 세상은. 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가 이런 식이라면, 세상에 대한 혐오감만이 밀려올 뿐이다. 이 세상을 어찌해야 좋을까. 어떤 방식으로 이 세상을 다시 제대로 돌아가는 세상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 끔찍한 세상에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기가 쉽겠다는 생각도 살짝 스쳤다.

내가 폭 안은 황금 꽃다발. 많이 먹어라. 속이 시원해질 때까지. 많이 먹고 오래오래 살아라. 네가 가지고 태어난 수명에서 하루도 모자라지 않게.(88쪽_'황금 꽃다발' 중)

그래도 남의 것 다 빼앗으면서 제 배만 채우는 사람들 가운데, 자식 곁을 지키는 이런 엄마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이게 엄마의 마음이지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짠하기도 했다. 이런 마음만으로 이 세상을 살아내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니까. 엄마는 이야기했다. '내가 떠나면 이놈 혼자 서러운 관리를 견뎌야 했다. 그래서 나는 못 떠난다. 이놈이 불쌍해서.'(88쪽) 그러니 이 불안불안한 시간을 끝까지 지켜줘야한다는 책임을 언제까지 가지고 가야할까. 이게 엄마의 마음일까. 황금 꽃다발이 언제쯤이나 빛을 발할 수 있을지.

그녀는 자신이 아이들을 낳았을 때 먹었고, 자신이 태어난 이날 어머니가 먹었을 미역국을 먹었다.(...) 이봐요, 어디서 뭘 하며 사는지는 모르겠으나, 꼭 한번 아비 노릇을 하려거든 그 모습 죽을 때까지 감추시오. 홀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생부로서의 유일한 아비 노릇입니다.(...) 그녀가 집을 나갔다.(228-9쪽_'청소' 중)

처음부터 불안불안했다. 날을 잡아서 대대적으로 닦고 쓸고 버리고 정리하는 청소의 날들이, 내내 불안했다. 어른들은 자주 말씀하신다. 외출할 때는 집안을 말끔히 정리해놓고 외출해야 한다고. 나갔다 다시 못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자식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너저분한 내 살림을 보일 수는 없으니까, 라고. 아마도, 이 엄마의 마음도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쉽게 마지막 장을 읽고 덮을 수가 없어, 결말 부분을 여러번 되돌아가 읽고 또 읽은 소설이었다. 이 감정을 뭐라 설명해야할 지도 알 수 없는 소설의 마지막이었고,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게 만든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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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에서 지구의 안부를 묻다 - 기후위기 시대 펜, 보그, 스웜프에서 찾는 조용한 희망
애니 프루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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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보그, 스웜프. 조금 낯선 용어들이었다. 아무래도 이 용어들보다는 그냥 습지가 더 익숙하다. 습지의 소중함은 그동안 환경 관련 공부를 하며 익히 들어왔다. 습지가 품고 있는 생명과 그 안의 생태계가 보존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하지만 그동안 승자는 버려진 땅, 불필요한 땅, 그래서 어떻게든 사람에게 이롭게 쓰이도록 개척해야 하는 땅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로 인한 파괴와 훼손 등으로 점점 습지가 줄어들었고, 습지가 줄어든 것으로 인한 영향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갖지 않았다. 사람에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사회적 인식이 결국, 지금과 같은 지구 환경의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저자는 화가 많이 난 것 같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확고하고도 단정적인 어투로 한결같이 화를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화 안에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도 담겨 있었고, 그럼에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의 마음도 담겨 있었다. 마치 담담하게 말하고 있는 듯 보이는 문장들 사이에서 간절하게 느껴졌다. 지금이라도 제발, 우리의 습지들이 다시 회복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하지 않겠냐는 그 마음. 지금 하고 있는 회복 사업들이 어서 빛을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
이 글을 읽으며 나도 화가 났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왜 이리도 우리의 역사는 오개념과 잘못된 인식이 더 큰 힘을 발휘했던 것일까. 지금의 시각에서 무엇이 옳고 그렇지 못했는지를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껏 우리 사회를 나쁜 쪽으로 이끌었던 것은 대부분, 사람들의 섣부른 판단과 태도 때문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너무 많이 오래도록 잘못된 방향으로 지구의 생명을 파괴했고 사라지게 만들었다.

펜의 주민에서 런던의 의사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펜의 고인 물에서 나온 "유독하고 유해한 증기"가 열병과 학질을 일으킨다고 믿었다.(105쪽)

지구 환경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중이다. 지구는 스스로의 자정능력을 갖고 있다는 믿음도 버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자정능력이 발휘될 수 있는 시간을 인간은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자연'계에서 평형상태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으나, '자연의 균형' 같은 믿음은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환상임을 알게 되었다.(258쪽)
케임브리지셔의 습식 농경 실험에 큰 희망이 걸려있으나, 펜이든 열대림이든 망가진 자연을 되돌리고 복원하는 일이 엄청나게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가 점점 깨닫고 있을 뿐이다. 터주를 제자리에 되돌려 놓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정말 정말 정말 어렵다. 건축과 파괴에는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는 인류가 자연계를 복원하는 일에는 불쌍할 정도로 미숙하다. 그냥 우리 적성에 안 맞는 일이다.(113쪽)

우리 인류가 얼마나 무능하고 형편없는지를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이 부분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망가뜨릴 수는 있어도 다시 제 모습으로 되돌려놓을 수 없는 인류의 무능력함. 하지만 내내 하지 못함의 탄식만 하고 있기에는 너무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지금이라도 더 적극적으로 제자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 있는 습지에 대한 보존과 회복만이라도 힘을 써야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옛사람들에게 이토록 관심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강, 개울, 고인 물, 산, 깊숙한 동굴, 섬을 통해서 지금은 불가능한 방식으로 자연계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이다.(162쪽)

습지의 자연이 품고 있던 많은 생명들을 떠올려보게 된다. 새, 이끼, 나무 등 많은 동식물들의 안식처이며 사람들의 생활과 삶에까지 이어져 연결되어 있던 습지의 역할을 생각하게 된다. 결국 과거 가난하고 무식하며 더럽다고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했던 이들의 이야기가 실은 우리가 원하고 꿈꾸는 바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 과거의 모습을 지금의 인류가 어떻게 각색하여 처참한 결과를 만들어 냈는지 분명히 알아야하지 않을까.

돌이킬 수 없는 상실에 대해 타는 듯 뜨거운 감정을 느끼면서도 '진보'와 '향상'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는 심리. '지금',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이전의 모든 기대보다 우월하다는 오만한 생각. 그들이 내놓는 증거는 대부분 기술적인 '향상'이다.(72-73쪽)

'지금' 우리가 여지껏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생각을 한참 잘못 하고 있었는지 느껴야 한다. 어느 지점까지 와 있는지, 그래서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할 것은 무엇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알아야 하고, 알고 있는 것을 말해야 하고, 말한 것을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환경을 공부하며 내린 결론이고, 이 책을 읽으며 한 번 더 다짐하게 되는 생각이다.

스웜프와 새는 한 몸과 같다. 스웜프가 사라지면 새도 사라진다.(217쪽)

지구와 인류도 한 몸과 같다. 지금껏 지구를 발판삼아 인간은 제멋대로 참 잘도 살았다. 그렇게 잘 산 결과가 지금과 같다면, 그래서 지구가 사라진다면 인류도 사라진다. 아니, 지구상의 생명이 모두 사라진다. 우리 인간이 그토록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면, 지구가 사라지지 않도록 하자. 무엇이 중요한 지 좀 알자.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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