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박수 소리.”
이 책의 저자인 이길보라 감독님의 다큐멘터리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인상 깊게 봤다.
‘이 영화는 입술 대신 손으로 말하고 사랑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이 자막이 나왔을 때 몸이 찌릿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몸과 마음이 다 찌릿찌릿^^했다. 우리나라에 드디어 이런 이야기가 나왔구나 하는 생각에...그 이야기가 책으로 나온다기에 기대하며 기다렸다.

책 <반짝이는 박수소리>는 영화 <반짝이는 박수소리>에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농인들은 박수를 칠 때 청인들처럼 손을 부딪쳐서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손을 머리 위로 들어 흔든다. 우리가 ‘반짝반짝 작은 별~’ 노래에 맞춰 양손을 흔들 듯이...한 번이라도 그 박수를 본 사람이라면 그 고요한 반짝임을 좀처럼 잊기 힘들 것이다.

이길보라 작가는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 농인 부모 아래서 태어나 자란 청인을 일컫는 말)이다. 이 책은 코다로서 겪게 되는 어린 시절과 혼란스러운 성장기, 그 후 자신의 청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등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첫 장에서는 자신을 ‘코다’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것을 알게 된 저자가 코다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들과 공유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은 들을 수 있는 사람과 듣지 못하는 사람 사이, 농문화와 청문화라는 두 개의 세상을 살아간다. 농부모에게 말 대신 수화를 먼저 배우고, 손으로 옹알이를 하고 소리의 세계와 다른 침묵의 세계를 경험한다.

최근에 본 영화 ‘미라클 벨리에’ 에서도 코다인 주인공이 나온다. 중학생인 주인공이 엄마 아빠와 같이 산부인과에 가서 의사의 말을 부모에게 통역을 한다. 어른들 세계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말(예를 들어, ‘엄마가 곰팡이 균이 심하니 성관계를 하지 말아라.’ 라던가)을 심드렁한 표정으로 엄마 아빠한테 전달하는 주인공처럼 이 책의 저자도 그렇게 일찌감치 어른이 되었다.

‘아홉 살 때 엄마 대신 은행에 전화해 우리 집에 빚이 얼마나 남았는지 물어봤던 일, 새로 이사 갈 집에 전화해서 전세가 어떻게 되고 월세가 어떻게 되는지를 물어봐야 했던 일, 이런 일련의 경험을 통해 또래 친구들보다 일찍 우리 집의 경제 사정을 가늠할 수 있었다. 눈치껏 우리 집에 다른 집보다 많은 빚이 있다는 것을 배웠고, 세상 사람들이 엄마의 장애를 어떻게 차별하고 어떻게 다르게 바라보는지를 배웠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다.’ -p34
또 다른 코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때마다 저도 경계에 있는 정체성이 싫었어요. 부모님에게는 보호받아야 하지만 다른 사람과 장애인 부모, 그리고 저, 이렇게 이야기를 할 때는 제가 장애인 부모의 보호자가 되어야 하니까요...제 삶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오기와 복수심이었는데, 저는 감히 동정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였어요.’-p34

2장에서는 미국의 ‘데프네이션 엑스포’ 행사 참여와 미국의 농인 종합대학 ‘갤로뎃 대학’ 방문기를 그리고 있다. 갤로뎃 대학 얘기는 다른 책에서도 봤지만 이 책에서 그 학교를 더 생생하게 그린 것 같다. 아마도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농인을 총체적으로 배려한 문화충격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도 예전에 봤던 책보다 더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왔다.

세계 유일의 농인 대학인 갤로뎃 대학의 교육 철학도 감동이지만 섬세한 ‘농건축’은 더욱 감동이다. 엘리베이터를 투명하게 해서 농인들이 느끼는 두려움을 해소하고, 어디서나 수어로 대화할 수 있게(1층에 있는 사람이 2층에 있는 사람이 대화할 수 있게) 사방이 트였고 외부 마감이 모두 통유리로 되어 있다. 수어로 대화하면서 걸을 때 외부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길에 약간의 경사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농인들이 살고 있는 환경, 우리나라 사람들의 농인에 대한 인식, 차별과 소외를 생각하니 정말 한숨만 나왔다. 우리나라는 언제쯤 이런 문화를 갖게 될까.

‘한국에서 ’청각장애‘는 듣지 못하는 벙어리, 말 못하는 병신과 같은 말이었다. 그들의 언어인 수어는 청각이 결여된 사람들이 사용하는 미개한 언어로 취급받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농인을 다른 감각을 지닌, 또 하나의 문화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인식했다. 또한 그들의 언어인 수어를 ’언어‘라고 규정했다.’ - p63
이 문단은 한국과 미국의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 준다.

3장은 저자의 부모의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청인 가족 사이에 태어난 저자의 엄마 아빠는 아무도 수어를 가르쳐주지 않아서 언어 없는 유년기를 보내야 했다. 이후 초등학교는 기숙사형 농학교에 다녔는데 교실이 아닌 기숙사에서 선배를 통해 수어를 배우게 되었다고 했다.

수화라는 언어를 자신의 언어로 갖지 못하는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이야기는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농인들이 어렸을 때부터 어떻게 세상에서 소외되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가족에서 소외되고, 교육에서 소외되고(특수학교나 특수학급에 다닌다 해도), 그것은 직업에서의 소외로 연결되는 것이다. 저자의 엄마 아빠 학창 시절과 지금은 많이 다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도가니’ 속의 농인 아이들이 지내고 있는 모습, 그 아이들이 처한 물리적 언어적 정서적 환경만 봐도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구화 중심주의 특수교육을 하는 나라다. 학교 수업 시간에도 정식으로 수어를 가르치지 않고 아이들은 또래나 선배 아이들에게서 수어를 배우게 된다.

게다가 미디어에서는 구화를 사용하는 농인이 나오곤 하는데,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도 학습과 훈련을 통해 구화를 배우면 청인처럼 얼마든지 말하고 듣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오해를 갖게 한다. 그러나 극과 현실은 다르다. 아무리 구화를 열심히 훈련해도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입술을 읽는다는 것, 자신이 어떤 발음으로 말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정확한 발음을 해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요즘에는 농인 아이들에게 인공와우 수술을 시킨다. 아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간에. 우리나라처럼 ‘타자화’와 ‘다름을 배척’하는 것에 익숙한 나라에서 농인 아이들을 둔 부모는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듣지 못하기 때문에 수술을 통해 그 귀를 고친 다음 우리가 사용하는 음성언어를 사용해야만 해.’ 라고 하는 것은 폭력 그 자체이다. 이렇게 어렵게 성공하지 실패할지 모르는 인공와우 수술을 하고 어렵게 발음과 말을 배운 아이들이 청소년기가 되면 인공와우를 떼버리고 아이들 사이에서 배운 수화로 소통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학교와 사회에서는 그것을 비공식적 언어라고 규정했지만 그들에게 수어는 세세하고 내밀한 감정, 더 나아가 추상적인 개념까지 설명할 수 있는 완전한 언어’이다. 우리나라도 수어가 공식 언어임을 인정하고, 농인이 농인의 언어로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 수화언어법이 통과되었으니 우리나라도 달라질 거라 기대해본다.

4장은 저자의 어린시절이야기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농인이기 때문에 너를 잘 키우지 못할까 걱정했어. 그런데 우리는 네가 들리지 않아도 상관없고, 들을 수 있으면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했어. 듣지 못해도 우리와 평생 수어로 대화를 할 수 있고,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통역을 할 수 있으니까.- p98
라고 저자의 어머니는 말한다.
“너는 부모님이 장애인이니까 싸움도 하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지”라고. 그날 이후로 그런 것들에 대한 부담감이 생겼어. 내가 싸우면 장애인 아들이 싸운 거였다. -p 143 저자의 동생의 말이다.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노점상 등을 하며 부지런히 돈을 벌고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님. 잦은 이사 등은 어린 보라에게 충분히 힘들었을 것 같은데 보라는 참 씩씩하고 당찼다. 동생 손을 잡고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어린 보라를 길에서 만나다면 대견스럽고 예뻐서 꼭 안아주고 싶었다.

‘나 역시 그 누구도 아닌, 농인 길경희와 이상국의 첫째 딸이 아닌, 그저 ‘보라’이고 싶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 부모님이 듣지 못한다는 걸 가정 먼저 말해야 하는 일. 주눅 들지 않고 밝고 씩씩한 표정으로 지내야 하는 일, 혹시라도 누가 우리를 부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부모님보다 먼저 그것을 알아채는 일. 누가 기분 나쁜 말을 던지면 그것을 통역하지 않고 내 선에서 걸러 내는 일. 그러나 그것에 대해 화를 내거나 울음을 터뜨리지 않는 일. 부모님께는 절대로 세상의 부정적인 소리와 나쁜 말을 전달하지 않는 일.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엄마, 아빠의 세상을 사랑했지만 홀로 짊어지기에 그것들은 너무 무거웠다.‘ -p 181
아마도 보라는 그 당참으로 고등학교 때 학교를 그만두고 책가방 대신 배낭를 메고 세상 속으로 걸어갈 수 있었으리라.

5장 <코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 편에서는, 구화를 쓰는 예린의 대필 도우미를 하면서 알게 된 대학의 장애학생 지원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비판한다. 예린을 농세계로 이끌며 저자는 자신정의 체성을 찾아간다.

‘엄마는 ‘내가 말 못하는 게 부끄러워?’ 하고 말하며 태연한 표정으로 그런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알기 전부터 ‘엄마를 부끄러워하면 안 된다는 것’을 먼저 배웠다. 그러나 사람들은 엄마를, 엄마의 고요한 세계를 부끄러워했다.
나는 엄마의 뻔뻔함을 가지고 생을 마주했다. 수많은 차이들 사이에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을 한 겹 두 겹 벗겨내며 입을 열었다. 손가락을, 눈썹과 이마 사이의 근육을 움직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이야기꾼이 되었다.‘

글이 쓸데없이 길고 딱딱하다. 나는 정희진 선생님처럼 간결하게 쓰지 못하겠다. 저자가 하는 말이 하나하나 너무 소중하고 마음을 울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의 언어로도 글을 쓰기 어렵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 생생한 문장을, 표현을, 아픔을, 충만함을 나의 초라한 언어로는 표현해 낼 수가 없다. 그래서 저자의 말을 거의 인용하고 말았다. 내가 인용하지 못한 좋은 문장도 많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이 한 권에 한국 사회의 농인의 삶과 농문화, 수어에 대한 생각 등이 다 들어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 쓴, 제대로 된 농인과 농문화에 대한 이해서가 전무하다. 그래서 이 책의 등장이 더 반갑고 뿌듯하다.

'수많은 차이들 사이에 수많은 이야기'를 발견한 이길보라 작가님이 더 많은 얘기를 보여주기를, 써주기를 기대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미국의 코다인 리어 헤이건 코헨의 책과 같은 제목이 같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코다로서의 경험도 비슷하고 사실, 그것만큼 매력 있는 제목도 없다. 다만 표지 그림을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처럼 느껴지도록, 여러 손이 어울려 반짝임을 만들어 내는 그림이면 차별화도 되고 의미 전달도 더 잘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살짝 든다. 작년 한국사회에 불거진 표절시비에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많은 사람들이 농인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농인은 또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소수민족이다. 우리가 프랑스 사람, 태국 사람 등의 외국인을 만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따로 배우지 않는 것처럼 역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사람들일 뿐이다. 밝은 얼굴로 상대방을 마주하는 것,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이다.> -마지막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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