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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소설의 결말은 주인공이 기차의 요란한 굉음과 함께 어둠 속에서 터널을 통과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 터널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그 자신도,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은 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것이라는 대위의 말처럼 덤덤하게 그리고 묵묵히 주어진 오늘을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는 거창한 계획이나 계산된 준비 없이 물 흘러가듯 몸을 맡겼다. 숱하게 자신의 상처와 열망을 헤집으며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그는, 절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얻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탈출 아닌 탈출로 실행 된 한 차례의 절박한 자살시도 끝에 그가 얻은 것은 다음이라는 것은 약속이라는 것은 부질없다는 것이었다. 헤어지며 다음을 약속해도, 그 다음 다시 만났을 때 그가 어떤 길을 걷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좋아했던 미아를 만나지 못한 채로 전쟁터로 떠나가는 그의 모습에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이 시대의 청춘남녀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은 왜 일까.
목마르고 굶주린 자의 식사처럼 맛있고 매순간이 소중한 그런 삶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내가 길에 나설 때마다 늘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흘러간 것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기에 지금 이 시간이 오늘이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 무엇이 되자. 라고 단정 짓지 말고, 지금은 이게 더 중요하니까 하고 싶은 건 그때로 미루자고 오늘을 희생하지도 말자.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먹은 한가지이다.
그가 절에 자신을 받아 달라 찾아갔을 때 스님은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래 이 집에 있으면 얼마나 있을 라고 그러는고?
우리가 생에 머무는 것은 정해진 기간이 있을 수 없다. 소유한 집이 있다고, 직장이 있다고 우리네 삶이 붙박이처럼 한군데 박혀 있을 수는 없는 법. 요즘의 사회적 풍토가 부와 안정된 삶에 집중되어 있는 통에, 학생들은 자신의 젊음을 억누르고 학교와 학원에 24시간 갇혀 있다 시피하고, 직장인들은 회사에, 야근에 묶여 있어 꼭 먹기 위해 사는 것과 같은 형태가 되어 버렸다. 조금쯤 굶어도 아파도 괜찮을 텐데. 나는 너무도 겁을 집어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말로 무책임한 건 내가 원하는 것을 뒤로 숨기며 위선처럼 살아가는 것 일텐데. 우리는 너무나 강한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주변사람들에게 일정기대치 이상은 보여줘야 한다. 내 욕심보다는 가족들을 더 우선으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준이의 청춘을 함께 스쳐지나오면서 나도 준이처럼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 따위의 생각은 치우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있을지의 고민을 하는 대신 그 시간동안 하찮지만 하고 싶은 일을 조금씩이라도 하자. 걱정하는 만큼 미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니까.
작가의 말에서 황석영씨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 다만 자기가 작정해둔 귀한 가치들을 끝까지 놓쳐서는 안 된다. 삶에는 실망과 환멸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때려치운다고 해서 너를 비난하는 어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다. 그들은 네가 다른 어떤 일을 더 잘하게 될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유준을 바라본다면 그를 두고 학교를 때려치우고 방랑하며 부모님께 효도 하지 못하고 뚜렷한 직업 없이 빈둥거리는 날라리 같은 녀석. 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유준이 자신이 한 행동들에 대해 충분히 책임져 왔고, 적어도 원하지 않는 것에 억지로 끌려 다니며 빈껍데기처럼 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건 그때 가서 몸으루 때우든지, 우리가 저지른 실수의 흔적들을 치우든지 하면서 살아가면 된다. 나는 각오를 하구 있어. 저 봐, 길거리에서 애들이 막 총에 맞아 죽구 그러는데, 어쨌든 우린 살아갈 거잖아. 하여튼 앞날은 잘 모르지만 제 뜻대루 할 수 있잖냐구.”
나는 이 소설이 단순히 사춘기의 방황을 미화시켜 표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적인 관념에서 바라 볼 때 유준과 그의 친구들의 행동은 참으로 무모하고 치기어린 행동이라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성공이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유준과 그의 친구들에게 실패와 낙오는 인생의 자양분이었고, 평생 별의별 수단을 다하며 더 출세하려고 몸부림치는 그런 줄에서 빠져나와 자유를 찾을 수 있는 기회였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