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김밥은 꼭짓점 하나를 먹고 다른 꼭짓점으로 공략 지점을 옮기거나, 혹은 옆면을 살짝 베어 물면서 제법 안정적으로 전체를 먹을 수 있다. 마지막 꼭짓점 하나를 입안에 쏘옥 밀어넣으면 밥알 하나 흘리지 않는다. 이토록 완벽하게 준비된 도형이 어딨단 말인가. 삼각은 면을 이루기 위한 최소한의 각이고, 그래서 가장 깔끔한 각이며,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각이다. 그러니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로 태어났을까.‘ 한탄하는 인간들이여. 삼각김밥 하나에도 이토록 속이 꽉 찬 이유가 존재하거늘, 당신의 모양과 능력에도 다 쓰임이 있음을 알아두시라. - P23

누군들 눈물 젖은 밥이 없을까. 오늘도 누구는 삼각김밥 한 귀퉁이를 서둘러 베어 물고, 누구는 유통기한 지난 삼각김밥을 버리지 못해 챙겨 가고, 누구는 폐기 처리된 삼각김밥을 먹으며 시급 만 원이 채 되지 않는 편의점 알바로 하루를 버티고, 누구는 삼각김밥으로 만든 어설픈 참치죽을 먹고 일터로 향한다. 오늘도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사연은 달라도, 눈물은 다 짜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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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늘 시작해버리고 만다. 그게 무엇이든. 어떻게 되든. 사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은 지금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렇지 않은가.
악의? 그까짓 것들. - P302

소설을 쓰지 못해도 괜찮다고 마음먹은 날, 나는 대단한 것을 만들어내겠다는 마음, 그러니까 나의 상과 대결하겠다는 원한을 그냥 접었을 뿐이다. 대신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것을 쓰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그게 꼭 ‘니꼴라 유치원‘이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이야기가 풀리기 시작했고, 나는 매일매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결국 이야기를 쓴다는 건, 살아가는 일과 비슷한 것 같다. 매일매일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그냥 계속 살아가는 것. 삶은 그런 식으로 지속되는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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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저 축구가 좋아서 할 뿐인데 얼결에 운동이 된 거지만, 또 생각해 보면 모든 운동이 그런 식이다. 사르트르의 ‘앙가주망‘ 개념을 살짝 빌려 표현한다면, 어쩌다 보니 생긴 ‘자연적인 연루‘가 참여적인 연루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축구가 좋아서 할 뿐인데., 개인적인 불쾌함을 견디지 못해 맞섰을 뿐인데, 체육 대회에 나가지 못해 속상해서 항의했을 뿐인데, 그냥 보이는 대로 엄마를 그려 갔을 뿐인데,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을 뿐인데, 사회가 욕망을 억눌러서 생겨나는 이런 작은 ‘뿐‘들이 모여 운동이 되고 파도처럼 밀려가며 선을 조금씩 지워 갈 것이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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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대한 유쾌하게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한나는 내 말에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유안, 마음을 잘 다잡아야 해. 지금 넌 회복되고 있는 거야. 몇 년이 걸리건, 나아지고 있는 거라고. 잃어버린 것을 자꾸 의식하지 마. 움직임을 완전히 멈추고도 편안할 수는 없어. 우리가 쉴 때도 우리는 끊임없이 몸을 뒤척이잖아. 살아 있는 건, 곧 움직이는 거야. 왜 ‘생동한다‘는 표현을 쓰겠어?"
그 이후로 나는 한나에게 다시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한나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한동안은 ‘움직임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의식적으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계속해서 나를 찾아왔다. 특히 깊은 밤에, 내가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침대 위에서 신음하다가, 문득 그 모든 통증들이 물러나고 나의 움직임도 근육도 고요해지는 어떤 새벽에.
고정된 것은 나를 편안하게 한다.
정적인 세계는 내가 돌아가야 할 고향이다.
어느 순간 나는 그런 생각을 도저히 멈출 수 없게 되었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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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쉽게 타인의 인생을 실패나 성공으로 요약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좋은 문학 작품은 언제나, 어떤 인생에 대해서도 실패나 성공으로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세상은 불확실한 일들로 가득하지만 단 하나 분명한 것은, 당신과 나는 반드시 실패와 실수를 거듭하고 고독과 외로움 앞에 수없이 굴복하는 삶을 살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괜찮다, 그렇더라도. 당신이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채 생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기만 한다면. 우리가 서로에게 요청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뿐이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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