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의 여로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나쓰키 시즈코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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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여로 - 나쓰키 시즈코

(420p / 엘릭시르 / 문학동네)




 '일본의 에거사 크리스티'라고 불리는 나쓰기 시즈코. 국내에서 정식 출간된 그녀의 작품은 처음인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여성 변호사 <아사부키 리야코 시리즈>와 여성 검사 <가스미 유코 시리즈>외 다수의 작품 활동을 하면서 제 26회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제 10회 일본 미스터리문학 대상을 수상했다.




 가벼운 우울증과 이인증을 앓고 있으며 삶에 큰 미련을 갖고 있지 않은 여자 노조에 리카코.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고 데릴사위로 들어갔던 집안인 도모가나 가의 압박 등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결심한 남자 도모가나 다카유키의 제안으로 함께 동반 자살을 계획하게 된다. 아마기의 삼나무 숲 안에서 수면제를 복용하고 잠이 드는데 그녀의 삶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잠이 든 뒤 약을 토해내 치사량에 이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그녀를 당혹스럽게 한 것은 그녀의 옆에 죽어 있는 도모가나였다. 그는 칼에 찔려 죽어 있었고, 그 칼의 자루가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던 것이다. 이제 그녀는 동반 자살을 시도한 것이 아니라 도모가나의 살인 용의자로 몰릴 위험에 처했다. 그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범인을 찾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는데... 범인을 뒤쫓는 동안 그녀는 눈 앞에 목표가 생기고, 오히려 자신의 삶에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는 듯 하다. 하지만 범인을 찾기 위한 행동이라 하더라도 스스로를 막 드러내 보이는 위험천만한 행동들을 보여서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데... '이와타'에게 쫓기던 때 그녀를 구해준 남자 '다키이'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게 되고, 함께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게 된다.


 여기서 사건의 많은 키를 쥐고 있는 '이와타'라는 인물이 참 묘하게 표현됐다. 처음엔 이름뿐이던 남자, 정확히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진 못했지만 여기저기서 그의 흔적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에겐 사연도 있다.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가 한 남자로 인해 죽음에 이르게 되고, 그는 그 아픔을 간직한 채 '다카이'의 누나와 결혼하는데... 그 아픔은 결혼한 뒤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고, 증오 또한 사그라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는 왜 리카코를 노렸을까? 그 의문은 너무나 황당하게 해소된다.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 그리고 그 대상에 대한 증오가 어떻게 이런 결과를 가져왔을까?



『나의 고결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겠어요


"인간은 무슨 짓이든 하는군요."

……

"많은 번민이 있지만 끝내 태연히 저질러요. 앞으로 더욱더 무슨 일이든 하게 될 테죠. 어쩌면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는 행위조차도……."

(본문 중에서...)




 리카코와 다카이는 이 사건을 도모가나의 아내인 유키노와 내연남으로 여긴 이와타의 합작품이라고 예측하고 사건을 파헤쳐 가는데 잔잔하게 흘러가던 중반부와는 달리 후반으로 향하면서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게 되고 각 인물들의 내밀한 부분까지 드러낸다. 그 과정을 지나면서 인간이 갖고 있는 다양한 모습들을 확인하게 된다.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이면서 가정에 충실한 배우자, 한 사람에게 증오와 사랑을 모두 느꼈던 사람, 책임감 있는 남자이면서 다른 사람의 인생은 제 손으로 망쳐놓은 남자... 어느 위치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참 다른 모습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지금 우리들도 이렇게 극과 극은 아니더라도 이면을 갖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1970년대에 쓴 소설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사건의 진실에 숨겨진 소재나 트릭이 고전적이게 다가오지 않았다. 21세기에 와서 접했지만 여전히 만족할만한 내용을 갖춘 미스터리, 추리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소설을 읽을 때면 이름에서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은데 그래도 이 소설은 등장인물이 그리 많지 않았고, 주요 인물과 스쳐가는 인물간의 구분이 비교적 선명했기 때문에 모든 이름을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리카코가 붙잡힐만한 상황이 좀 있었다고 생각되는데 주인공이라 그런가 참 잘도 피해간다. 사실 유력 용의자로 몰렸음에도 공항에서 티켓을 예매할 수 있었고 두 번의 비행을 했다는 사실이...^^ 하지만 소설의 흐름이나 내용 자체는 꽤 만족스러웠기에 그녀의 다른 작품들 또한 국내에서 출간되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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