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대 눈동자에 건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1월
평점 :

그대 눈동자에 건배 - 히가시노 게이고
(단편소설 / 348p /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히가시노 게이고 하면 일단 일본 추리소설, 미스터리소설의 대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의 많은 장편소설이 그 뒤를 이어 떠오른다.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 등의 작품 등이 그러하다.
그의 장편소설은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얻은 바 있다.
그런 그의 작품 중에서 이번에 단편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단편소설은 일단 길이가 짧다보니 기대할만한 포인트가 없거나 급히 마무리 되는 경우도 있고,
충분히 내가 작품에 동화될만한 여유가 없어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소설은 그 짧은 페이지 안에 작가의 특징이나 매력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나는 솔직히 그의 작품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고(좋아하지만 아직 독서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작가와 작품을 안다고 하기엔 내공도 그렇고 여러모로 충분하지 않은 독자이지만 그래도 그런 나에게도 느껴지는 무언가는 있다.
다작을 한 작가이지만 그저 그런 작품이 아니라 작품색이 다양한 편이라는 생각.
때론 가볍지만 또 묵직하고, 미스터리에서 흔히 겪는 충격적인 소재로 쓰이기도 하지만 또 따뜻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단편소설집 <그대 눈동자에 건배>에는 그의 그런 다양함을 모두 모아놓은 듯하다.
아! 잔뜩 얽혀있는 부분을 다양한 방식으로 결국 풀어내는 미스터리와 반전의 매력은 공통적이다.
<새해 첫 날의 결심>에서는 살인미수 사건을 다룬다. 처음부터 좀 쎈데? 했지만
정작 사건보다 수사는 제대로 안하고 투덜대기만 하는 경찰들에게 눈길이 간다.
그의 장편소설 중에는 사회 문제를 다루는 작품도 있었는데 저런 장면도 리얼인가 싶고...
사건은 일단락 되지만 피해자 발견, 신고, 수사 내용을 모두 지켜본 노부부로서는 삶에 오기(?)가 생겼으니 다행인 것인가?
살인사건이 등장하는 단편소설에는 <10년 만의 밸런타인데이>, <고장 난 시계>, <크리스마스 미스터리>가 있다.
10년만에 재회한 옛 연인 미스터리 소설 작가 미네기시와 쓰다 치리코.
제목이나 배경에서 달달함을 기대했지만 뛰어난 추리력과 관찰력을 갖고 있던 그녀에게 제대로 당한 미네기시의 이야기.
암거래를 통해 심부름을 해주던 남자. 고민하다가 거액의 보수에 넘어가 의뢰를 실행하는데
의뢰를 넘어선 일까지 저지르게 되고, 고의는 아니었지만 철저하게 자신의 흔적을 감춰보고자 시계 수리까지 해 봤지만...
크리스마스 파티를 전후로 배우 쿠로스와 유명 각본가 야요이의 대결!
과연 완벽한 크리스마스 파티 무대는 누구의 것인가? 참고로 크리스마스 트리에 십자가를 장식하는 것은 금기라는 사실 기억하길...
<오늘 밤은 나 홀로 히나마쓰리>는 아빠 생각이 많이 났던 작품! 심지어 친정집에서 읽었는데...
아빠 뒷모습을 봐도, 나를 보고 웃는 모습을 봐도 계속 울컥했던 소설.
딸을 멀리 시집보내게 된 아버지 사부로. 아내가 어머니 밑에서 스트레스 속에 살다 지주막하출혈로 세상을 떠났다는 생각에
먼 지방의 명문가로 시집가게 된 딸 마호가 마냥 걱정스러운데...
아내는 지혜로운 여자였고, 그녀의 딸 마호 역시 엄마를 닮은 아이였다.
소설에서는 아빠 사부로의 기억을 따뜻하게 바꾸어 주었는데, 내 마음은 왜 이렇게 아픈 걸까?
<렌털 베이비>는 이거 괜찮은 발상인데? 싶었던 유사 육아체험에 대한 이야기.
아기로봇, 휴머노이드 베이비를 렌탈해주어 육아를 체험해볼 수 있게 하는데... 똥벼락도 맞고, 울음소리에 밤잠도 설치는 고된 체험!
너무 힘들어 당장 가져다 주고 싶었지만 위약금 때문에 돌려 보내지 못하고 정해진 기간을 채워나가던 에리.
열이 나는 진주의 곁을 지키고, 한바탕 유괴소동도 겪은 뒤 에리에게는 변화가 찾아 올까?
이 단편소설 작품집의 제목과 같은 작품 <그대 눈동자에 건배>. 몇 년만에 여자친구를 만들 기회가 찾아왔는데
렌즈를 벗겨낸 그 여자의 눈동자를 보고 자신이 진정 찾던 여자라는 사실을 깨닫는! 이거 설마 그린라이트? (잔인한 히가시노 게이고님...ㅠㅠ)
미쿠가 하교길에 지나치던 신사에서 만난 고양이. 치즈어묵보다 마시멜로를 더 좋아하는 고양이 이나리가 등장하는 <사파이어의 기적>.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이나리가 떠나게 되는데 파란 털의 고양이에게서 이나리의 기척을 느끼는데... 이것이 '기적'?!
와타라이가의 후손인 나오키. 아버지 신이치로의 반대를 무릅쓰고 배우가 되고자 미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무명배우 생활을 한다.
어느 날 아버지의 생신을 앞두고 누나에게 걸려온 전화. 아버지 생신을 챙겨드릴 마지막 기회라면서 아버지의 병환을 알린다.
중요한 오디션을 앞두고 있던터라 고민하다가 일본으로 날아가는데 아버지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발길을 돌렸고,
결국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찾아 다시 일본에 돌아오게 되는데 그 때 전해 받은 가문의 보물 <수정 염주>.
그 염주의 힘은 과연 어떤 것일까? 돌아가신 아버지를,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기를.
아홉 편의 단편소설 중 어느 작품 하나 아쉽지 않았고, 놓칠 수 없어서 모조리 소개하게 되어 리뷰가 상당히 장황해졌는데
그만큼 하나 하나가 대충 읽어 넘길 수 없었던 단편들이었다.
보통 책을 쭉 손에 들기 힘들어서 끊어 읽게 될 때 흐름이 끊길 수 있는 장편보다 단편소설을 찾게 되는데
아마 그런 시기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그대 눈동자에 건배>를 집어 들었다면 다음이 궁금해 꽤 속이 탔을 것 같다.
이어지는 내용도 아닌데 또 다음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그의 이야기.
얼마전 읽었던 장편소설에 이어 이번 작품도 역시... 라는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