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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왕이 온다 ㅣ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평점 :

보기왕이 온다 - 사와무라 이치 장편소설
아르테 arte
일본 호러소설 <보기왕이 온다>
무려 제22회 일본 호러소설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인데 겁도 없이 이 소설을 펼쳤다. 평소 스릴러나 추리 소설은 즐겨 읽지만 겁이 많다보니 호러는 경계를 하곤 했는데 왜 이 소설에는 마음이 끌렸을까? 결론부터 꺼내자면 슬그머니 다가와 소름이 쫙 끼치며 몸을 굳어버리게 하는 느낌이 아니라 대놓고 달려들어 물어뜯는 강펀치다. 섬뜩한 공포소설 보다는 대놓고 때리니 내겐 오히려 괜찮았는데 후유증이 없진 않다. 보기왕을 묘사한 부분을 읽고 나니 자꾸 머릿속에 그려진다는...!
보기왕의 등장을 앞두고 잔뜩 긴장한 히데키의 모습을 시작과 동시에 던져주고는 히데키의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댁에서의 오묘한 경험으로 전환된다. 도쿄 뉴타운에 살던 히데키는 오사카 변두리의 외할머니 댁에 가게 되는데 할머니께서 외출하시고 할아버지와 둘이 남아있게 된다. 그 때 문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잊고 있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결혼을 해서 아내 가나가 임신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회사에서 동료 '다카나시'가 치사씨 일로 히데키를 찾는 손님이 왔다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치사'는 바로 가나의 뱃속에 있는 딸의 이름으로 아직까지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그런데 치사의 일로 찾아왔다니... 그런데 갑자기 다카나시의 팔이 붉게 물든다. 이튿날 다카나시는 출근했지만 그 다음 날부터 그를 회사에서 다시 볼 수 없었다. 그의 곁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일... 그리고 계속되는 이상한 메세지... 그는 결국 '보기왕'을 떠올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에 시달리다가 민속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친구를 통해 오컬트 작가 '노자키 곤'을 소개 받고 그에게 영매사 '히가 마코토'를 소개 받는다. 그렇게 찾아간 그녀에게서 들은 말은 "집에 가셔서 부인과 아이에게 다정하게 대해주세요."였다. 괴물로부터 가족을 지키고 싶었던 히데키는 화가난 채 돌아오는데 그 뒤 집으로 찾아온 노자키와 마코토. 치사가 마코토를 '핑크언니'라고 부르며 따르자 그들은 매주 주말 중 하루는 히데키의 집으로 와서 치사와 놀아준다. 그러던 어느 날 마코토가 그것를 느끼게 되는데...!!
도대체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평소에는 산에 사는데, 가끔 내려와서 사람을 납치해 산으로 데려간다고.
그래서 밤에 잠을 안 자면 "보기왕이 온다", "보기왕이 산으로 데려갈 거야"라고 겁을 주곤 했지.
또한 보기왕은 부모나 형제 목소리를 흉내내서 아이를 산으로 유인한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오. (p.268)
이 내용을 보면 어릴적 들어 보았던 '망태 할아버지' 느낌도 나는데 '보기왕'은 소설 속에서 실제 공격을 가하고 사람들이 순식간에 죽거나 다친다. 그러니까 그냥 속설이나 어떤 트릭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물리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진짜 끔찍한 존재인 것이다. 몇 번의 시도, 많은 해를 입은 그들... 그리고 소설의 말미에 다시 들려오는 소리.
"……사오……이, 사, 무아……으응…… 치, 가……리." (p.377)
사실 어찌보면 정당한 방문이 아닐까? 그것의 입장에서는 초대받은 '손님'일지도 모른다. 물론 부른 사람의 의도와는 좀 달랐겠지만 말이다. 사실 후반에 더한 반전이 계속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예상보다는 그다지 반전이 있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맥이 탁 풀리는 결말은 아니니 실망할 필요는 없다.
작가 '사와무라 이치'는 데뷔작으로 어떻게 이런 강렬한 작품을 꺼내 놓은 것인지! 밖에서 바람 소리가 유난히 강하다고 괴물을 떠올릴 것도 아니고, 밖에서 누가 똑똑 문을 두드릴 일도 없겠으나 어두운 밤 보기왕의 얼굴은 불현듯 떠오를 것만 같다. 정말 다행인 점이라면 나는 잘 때 꿈을 꾸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랄까? 내가 꿈을 잘 꾸는 사람이었다면 매일 밤 꿈에서 보기왕을 마주했을지도;;; 일본에서는 '사와무라 이치'작가의 후속작으로 시리즈가 출간되었다는데 국내에서도 조만간 만나볼 수 있길 바란다.
얼굴에 누리끼리한 것들이 들쑥날쑥 아무렇게나 늘어서 있었다.
어느 것은 날카롭고 어느 것은 구부러지고 어느 것은 길고 어느 것은 짧다.
그것들이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였다. 움직임은 서서히 얼굴 전체로 퍼져나갔다.
한 번도 맡은 적이 없는 기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무엇인가가 미끄덩미끄덩 움직였다. (p.147)
"괴물이나 혼령은 대부분 빈틈으로 들어오죠." (p.202)
"가족 간에 생기는 마음의 빈틈이에요. '골'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마음에 골이 있으면 그런 걸 부르게 되거든요." (p.203)
"아아…… 두…… 두고 보…… 열……려 있……다, 뒤쪽이." (p.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