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의 레퀴엠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3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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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의 레퀴엠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3) - 나카야마 시치리

장르소설 / 일본소설 / 출판사 블루홀6



<속죄의 소나타>, <추억의 야상곡>에 이은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3' <은수의 레퀴엠>을 읽었다. 사실 두 권의 전작들도 진작 구매했었는데 읽지 않고 모셔두었다가 이번에 출간된 세 번째 소설을 손에 넣으면서 <속죄의 소나타>부터 연이어 세 권을 읽었다. 주변에 이 시리즈를 접하신 분이 전작을 읽고 읽으면 더 좋다고 하셔서...(꼭 읽으라고 단호하게 얘기하셨던가?ㅎㅎ) 결론은 나 역시 누군가 이 소설을 언급한다면 차례대로 읽으라고 권할 것이라는 거!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는 꽤 다작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2009년에 <안녕, 드뷔시>로 데뷔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국내 출간된 도서가 11권이니까 결코 적지 않다. 그럼에도 어설프게 간만 보다가 재밌을만 하면 끝나는 그런 소설이 없다. 비록 소설의 분량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각 권마다 사회적인 문제도 품고 있고, 읽는 맛도 있으며 소설을 다 읽고 책을 덮었을 때 어딘가 불편한 찝찝함도 남지 않는다. 거기다 가독성도 엄청나다. 그래서 난 이 작가의 소설이 좋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읽은 <은수의 레퀴엠>에서는 가슴앓이를 좀 했던 것 같다. 이 소설이 품고 있는 사회적 문제가 4년 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마음 속에 너무나 진하게 남아있던 탓이다.


바다 위에서 수많은 사망자를 낸 선박 침몰 사건.

소설에서는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한국 선박 '블루오션호'라는 이름으로 등장했지만 누구나 '세월호'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선박 침몰, 불법 개조, 과적, 평형수 조작, 선원들의 직무유기, 늦은 구조 작업, 인재... 노후한 일본 선박을 한국에서 가져가 개조했다는 점, 기울어진 채 침몰하는 선박의 모습, 안내도 없이 도망가는 선원 등의 모습을 소설 속에 글로 적어 놓았지만 이 부분을 읽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침몰하는 세월호의 영상이 재생됐다. 아마 이 부분이 메인 스토리였다면, 그것에 허구를 잔뜩 섞어낸다던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각도로 잡아 헛소리를 늘어놓는 인물이 등장해 분통을 터뜨리게 했다면 이 소설을 온전히 읽을 수 없었을지도...


소설로 돌아가서...

<추억의 야상곡>에서 '소노베 신이치로'라는 사실이 법정에서 밝혀진 변호사 '미코시바 레이지'. '시체 배달부'라는 그의 실체가 사람들 앞에서 드러났기에 다시 변호사로서 법정에 서지 못할 줄 알았는데 지각의 약한 틈을 뚫고 솟아오르는 마그마 같은 변론을 또 다시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잠시 설레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편에서는 그의 눈썰미와 언변은 여전히 훌륭했으나 형량을 줄일 생각이 전혀 없는 피고인의 비협조적인 태도 덕분에 그 힘이 몇 번이나 꺾였다. 그 피고인은 바로 그가 간토 의료소년원에 있을 때 지도 교관이었던 '이나미'로 농담 한 마디 할 줄 모르는 인물이다.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변호사이지만 실력 발휘를 하려고 할 때마다 초를 치는 누군가 때문에 이나미의 변호가 쉽지 않은 미코시바.

<은수의 레퀴엠>에서 '은수'는 은혜와 원한을 동시에 아우르는 말이다. 미코시바에겐 '아버지'와 같은 이나미... 과연 미코시바는 '긴급 피난'으로 무죄를 선고받은 사람을 살해한 '이나미'역시 '긴급 피난'을 적용받아 '무죄'를 선고받게 할 수 있을까?!


길지 않은 소설의 내용을 여기에 적을 생각은 없다. 대신 나카야마 시치리의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를 읽으면서 든 생각을 좀 이야기 하자면... 참 신기하다. 이 시리즈를 읽다보면 검사측의 심문과 변론에 오히려 속이 답답할 때가 있다. 그들은 법과 정의를 존중하는 자들인데 나는 왜 그런 기분이 들까? 피해자와 유족들의 아픔보다 가해자의 인권이 우선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피해자가 보편적 시선으로 보았을 때 악인(惡人)이라면 검사측의 구형이 너무 무겁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법이 사람을 차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없는 사람에게 더 무겁고 단호한 것 같은 법... 그것은 내가 법에 입각하여 생각하기 보다는 감정적인 부분에 더 강한 영향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배심원 제도의 어떤 '헛점'이라고 할까... 그 부분에 대해서도 슬쩍 말을 흘린다. 본래의 의도대로 시민 감각이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 감정이 반영된다고... 내가 법이 사람을 차별한다고 느끼는 부분은 아마 유죄도 무죄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변호사 '미코시바 레이지'의 모습과 통할 것 같다. 돈을 많이 들여 능력있는 변호사를 선임한다면 법정에서 다른 사람보다 좀 더 유리한 고지를 밟고 서 있을 수 있다는 현실. 미코시바의 능력과 활약을 끊임없이 보여주면서도 그 사이 사이에 소설 밖 현실의 모습을 녹여내여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 같다. 대놓고 깊이 건들이기 보다 소설에 빠져있는 독자에게 현실의 모습을 곳곳에 드러내어 자연스럽게 끄덕이게 하는 능력이 있는 작가. 그래서 나는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이 좋다. 무겁지 않고 재밌는데다 현실에 은근 한 방 먹여주는...^^


마지막으로 이 소설을 더 재밌게 읽고 싶다면...

미코시바의 시선을 따라 가다가 그의 시선이 잠시라도 머무는 곳, 무심한 듯 다시 지나쳤다고 해도 일단 시선이 머물렀던 곳이라면 주의를 기울여라. 그 곳에 단서가 있다!




"속죄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그러니까 참회를 말로 하지 마라. 행동으로 보여." (p275)


"일본 법률과 여론은 도대체 왜 가해자에게 무르고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엄격하지?"

그것은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미코시바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모두가 자신이 사건의 당사자가 되리라고는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운명이 진흙투성이가 되리라고는 털끝만큼도 상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사건이 일어나도 안전지대 안에서만 모든 사안을 떠올리는 것이다.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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