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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정의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절대정의 - 아키요시 리카코
(316p / 장편소설 / 일본소설 / 장르소설 / 스릴러)
주자덕 옮김
아프로스미디어
야키요시 리카코의 소설 <절대정의>
제목에서 대놓고 이야기 하는 '절대정의'라는 말은 혼란스러운 사회일수록 무언가 든든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이 그것은 이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아프로스미디어에서 출간된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정의'라는 단어에서 목이 졸리는 듯한 갑갑함 혹은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기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종종 옳고 그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법적으로 따진다기 보다는 '이건 너무한 것 아니야?', '이렇게 하는 것이 맞지' 등 자신이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치더라도 이슈가 되는 부분들에 대한 잘잘못을 나눈다. 그런데 원칙, 옳은 행동, 정의라는 단어가 이렇게 숨이 막힐 수도 있다는 색다른 감정을 심어준 소설이 바로 야키요시 리카코의 <절대정의>이다.
거의 사이보그와 같이 기계적으로 정의에 집착하는 노리코.
그녀에게는 퇴사 후 다니던 회사의 볼펜 한 자루가 집에 있는 것도 횡령이요, 지인들끼리 재미삼아 500엔 내기를 해도 도박이요, 학생들이 담배를 핀 것을 훈계하고 상황을 마무리 한 선생님과 경찰은 범죄 은폐에 해당하는 비열한 행위를 저질렀다고 이야기 하는 인물이다.
그녀와 학창시절 친했던 네 명의 친구들에게 불의에 맞서 도움을 주고 정의의 히어로로 불리지만 사실 그녀는 친구라서 도운 것이 아니라 그저 정의라는 이름하에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켰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노리코는 자신의 정의 실현을 위해서는 친구들이 평생 시련을 맛볼 지라도 그저 그건 너희들이 잘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라고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는 여자다. 노리코의 행동만 보면 얼마나 화딱지가 나던지...
정의를 지키려 하는 것이 엄밀히 따지면 법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닌 그런 것을 바로잡으려는 것이긴 하지만 사소한 부분에서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주변을 완전히 무너뜨리게 된다. 주변 친구들의 마음은 정의를 지킨다는 명목 하에 마구 할퀴어져 깊은 상처가 생겨 버렸다. 사실 친구들은 학생때만 해도 노리코의 그런 행동을 알면서도 동조할 수 밖에 없었다. 모두가 노리코를 정의의 히어로로 생각하는데 자신만 반발한다면 잘못을 해놓고 되려 따져묻는 사람이 될 테니까 자신만 나쁜 사람이 될까봐 끄덕이고 동조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런 노리코에게 도움을 받은 적도 있으니 노리코가 자신들을 위해 나서준 것이라 생각하며 노리코야말로 진정한 친구라고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하지만 그냥 그녀 스스로의 욕구 충족이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
틀린 행동은 아닌데 묘하게 속을 긁더니 그런 부분들이 쌓이니까 말미엔 아주 내가 성질이 나더라. 거기다 유미코의 남편 또한 내 속을 긁는 데 여러 몫을 했다. 정의는 분명 살아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정의를 지키려는 자들은 훌륭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물론 대부분은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노리코와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정의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우린 기계가 아닌 사람이니까... 노리코의 논리대로라면 세상에 입법부는 필요해도 사법부는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저 법에 적힌대로 시행만 하면 될 일이지 사람이 나서서 판단할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다. 사람은 자로 잰 듯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물론 감정에 호소해 모든 것을 눈감아 주는 것도 문제이지만 과정과 결과 그 이후까지 모든 것을 두루 살필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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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의 정의.
정의의 누디스트.
노리코의 정의는 너무나 드러나 있고, 노골적이고, 보는 사람이 눈을 돌리고 싶게 만든다. 어디든 상관없이 상대를 가리지도 않고, 망측스럽게 '정의'를 드러내며 달려든다. 융통성과 배려라는 옷을 두르지 않은 알몸의 정의 앞에 주위 사람들은 고개를 떨구고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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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정의 중에서... p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