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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혹은 살인자 ㅣ 스토리콜렉터 62
지웨이란 지음, 김락준 옮김 / 북로드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탐정 혹은 살인자 - 지웨이란
(428p / 김락준 옮김 / 북로드)
타이완 미스터리 소설은 처음 접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기대 없이 보아서 그런지 꽤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타이완의 극작가이자 연극영화과 교수로 재직한 지웨이란은 이 소설의 주인공 우청을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서 출발 시켰지만 시작과 동시에 내동댕이 친다. 그가 앓고 있던 공황 장애로 인해 유머러스 하다가도 신경질적이고 포악해지는 그의 모습이 그를 주변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급기야 우청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변두리로 거처를 옮겨 사설탐정이 된다. 그가 범죄나 수사에 전문 지식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황당한 짓거리들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고, 동시에 자기 스스로를 구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동네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 있었지만 이웃에 사는 '아신'을 도와주면서 그와 친구가 된다. 이 곳으로 오기 전에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는 것을 거부하던 그가 여기까지 와서 친구를 사귀다니... 무언가 달라지고 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사건을 의뢰 받는 우청. 린 부인이 남편에 대한 조사를 의뢰하고 그 사건을 우청은 생각보다 잘 해결하게 된다. 그가 비록 전문가는 아니지만 사설탐정을 뜻하는 'private eye'에 's'를 붙인 'private eyes(비밀스러운 눈)'을 가졌기 때문이리라. 물론 그 스스로 하는 말이었지만 정말 제법 날카로운 관찰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열아홉 살에 병이 생긴 뒤 이 '비밀스러운 눈'은 더 예민해졌다고 하는 것은 아마 늘 촉각을 곤두세운 채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라는 것이겠지.
그렇게 맡은 사건은 해결을 했지만 주변에서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되어 버렸다. 사건을 맡은 왕 팀장은 우청을 범인으로 몰아 세우면서 신경전을 벌이는데...! 과연 우청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혹은 우청이 정말 범인인 것일까?!
"
나는 피해자들을 죽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내가 무사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
(p193)
처음 우청에게 사건을 의뢰했던 린 부인(천제루)을 비롯 새로운 곳에서 그와 갑자기 친해진 몇몇 인물들을 죄다 의심하고 읽었는데 내 눈도 아직 멀었구나 싶었다. 우청은 용의자로 지목되고 세상으로부터 모질게 지탄을 받게 되는데 그 와중에도 그를 믿고 곁을 지켜주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도움을 바탕으로 우청은 자신의 무고를 증명하기 위해 범인을 찾게 된다. 그 과정에서 오랫동안 앓았던 공황 장애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나 어떤 행동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것들이 조금은 긍정적으로 변화했던 것 같다. 어떤 것에 몰두하면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두게 된 영향도 있을 것이다. 톈라이, 아신 등의 진심 어린 배려가 왜곡된 가치관을 갖고 있던 어두운 인간에게 빛을 준 것은 아닐까? 그리고 범인의 뒤를 쫓기 위해 보았던 CCTV 녹화 영상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우청이 여러 일들을 겪는 동안 그 배경은 사회의 다양한 부분을 비추고 있었다. 우청이 주인공이자 사건의 중심이긴 하지만 그 주변에는 안타까운 사회상이 산재해 있었다. 공무원의 횡령과 협박, 사건의 해결을 돕기도 하지만 하루종일 종적을 감시하는 수많은 CCTV,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와 공격, 해결되지 않던 사건의 실마리를 발견하자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한 수사가 아닌 범인의 틀에 끼워 맞추는 식의 수사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살기 때문에 안정감 보다는 주변을 의식하고 끊임없이 나를 포장하려 한다. 결국 그렇게 자기 스스로를 괴롭히는 동안 공항 장애와 같은 병을 얻는 것이 아닐까... 뭐 근거 없는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사회에 조금 슬퍼졌던 것 같다.
이 소설은 일반적으로 미스터리 장르를 생각해 볼 때 유난히 두껍다고 할 정도의 분량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초반에는 유난히 빡빡한 느낌이 든다고 할까? 분명 계속 읽고 있는데 책장이 넘어가질 않아서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초반에 깔아놓은 글 들을 지나고 본격 스토리가 시작되자 가독성이 훨씬 높아졌다. 우청이 사건을 해결한 뒤 용의자로 지목을 당한 뒤에는 소설의 흐름이 산만하지 않고 앞을 향해 쭉쭉 뻗어나가 마지막 페이지까지 함께 달렸다.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니 사건은 해결이 되었는데 생각은 조금 많아진다고나 할까? 여운이 남는다.
처음 접하는 작가 지웨이란이었고, 정말 생소했던 타이완 소설이었지만 '북로드' 출간이라 어느정도 믿고 선택하긴 했는데 꽤 만족스럽다. 발표된지 두 달만에 5쇄를 찍었다니 작가 지웨이란... 기억해 두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