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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과자 - 나는 한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꿈꾼다
김규흔 지음 / Mid(엠아이디) / 2015년 2월
평점 :
어릴 적 시골에 가면 할머니께서 직접 만드신 한과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약과와 다식을 만들던 판의 모습도 머릿속에 남아 있죠. 그렇지만 어느 순간 한과는 명절 즈음해서 선물을 고를 때 외에는 주변에서 자주 보기 힘든 아이템이자 고급스러움과는 약간 거리가 느껴지는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2013년 추석을 앞두고 한 포털사이트에서 ‘추석 명절, 가장 받기 싫은 선물은?’이란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건 아니지만 설문결과 받고 싶지 않은 추석 선물 1위는 34.1%를 차지한 샴푸·비누 선물세트가, 2위는 22.6%를 차지한 한과세트였습니다. 명절 때 먹는 한과를 좋아하고 종종 선물도 하곤 했던 저로서는 약간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돌려 생각하면 소비자에게 그동안 한과에 담긴 의미나 영양, 멋스러움을 잘 알리지 못했고, 그 결과 그저 단순한 주전부리로 인식되면서 자연스럽게 대중에게서 멀어진 결과가 담긴 설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의 전통과자>의 저자인 김규흔 명장은 한과에 34년간 매진한 국내 유일의 한과명장입니다. 긴 세월동안 한과의 최초 낱개 포장, 유통기한 연장, 초코유과 개발, 쌀약과 개발 특허, 기능성 한과 개발 등 많은 성과를 이루어냈죠. 여기에 더해 한과문화박물관을 개관하고 한과문화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우리의 전통한과를 다시 대중과 일상으로 불러오고자, 그리고 한과를 세계화 해 궁극적으로 한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큰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 책도 그런 의지를 담아 펴낸 만큼 한과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재조명하고 있고, 당연히 책을 읽는 저도 그 가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김규흔 명장이 한과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가 재미있습니다. 서울로 올라와 홀로 지내던 중 옆집 아주머니의 주선으로 선을 나가게 됩니다. 결국 둘은 결혼하게 되는데 김규흔 명장의 동서, 즉 아내분의 형부가 당시에 한과공장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동서의 권유로 한과공장에서 관리 일을 돕게 되고, 이후 한과를 만드는 일까지 관심을 갖게 된 김규흔 명장은 각고의 노력 끝에 한과 만드는 방법을 하나하나씩 익혀 결국 1981년 27살의 나이에 자신만의 한과가게를 만들어 독립하게 됩니다. 김규흔 명장의 바람대로 한과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다면 옆집 아주머니께도 큰 공을 돌려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개업한 이후 김규흔 명장이 겪은 시행착오나 온갖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요.

이 책은 한과의 역사, 재료, 종류, 한과를 만드는 법까지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내용도 풍부할 뿐더러 중간 중간 삽입된 한과 사진은 때론 화려하게 때론 단아하게, 눈은 즐겁게 하고 입은 괴롭게 합니다.
‘1장 이야기가 있는 한과’에서는 한과의 역사와 우리 삶에 깃든 한과의 다양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삼국유사>에도 한과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요, 이는 역사에 기록된 한과의 가장 빠른 기록이라고 합니다. 고려시대에는 임금부터 백성까지 두루 한과를 즐겼다고 합니다. 고려의 19대 왕인 명종과 31대 왕인 공민왕 때는 찹쌀가루로 만든 유밀과의 사용을 금지하는 명령도 내렸다고 하는데요, 유밀과의 재료인 곡물, 꿀, 기름 등의 물가가 올라 민생에 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당시 한과의 인기를 반증하는 기록이라 할 수 있죠.
조선시대에는 왕의 밥상에도 6종류의 한과가 올랐다고 합니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을 살펴보면 명절 외에도 정월대보름, 단오, 동지 등 각종 행사에 한과가 함께 했습니다. 국가의 중요한 연회나 제례, 불교 의례는 물론이요, 혼례, 차례, 제사, 회갑례, 회혼례 등 사람들의 희노애락과 함께 한 음식이 바로 한과입니다.
아울러 지역마다 음식이 다른 것처럼 한과도 지역별로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서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강원도에서는 논이 아닌 밭에서 나는 작물로 한과를 많이 만들었고, 경상도는 제철과일을 이용한 한과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제주에서는 닭고기, 꿩고기, 돼지고기까지 재료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한과가 보다 대중화되면 전국 각지에서 지역별 특산품 못지않게 지역 특산 한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이어지는 2장에서는 본격적으로 한과의 재료를 다룹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 다양한 농수산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한과에 사용되는 재료도 다양하죠. 게다가 한과는 인공적인 첨가물을 물론 인공색소나 방부제도 전혀 들어가지 않습니다. 우리 땅에서 자고 나라는 천연재료를 사용하고, 색이 필요하면 자연의 방법으로 얻습니다.
한과의 주재료는 크게 곡류, 씨앗, 콩류, 견과류, 과실류, 채소류로 분류합니다. 무엇보다 이 파트를 읽으면서 한과가 그냥 맛있는 과자가 아니라 건강을 생각하고 영양을 가득 담은 웰빙 먹을거리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이 부분은 특히 한과 재료에 대한 지식을 떠나 우리가 평소 건강을 위해 어떤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부가정보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재료마다 워낙 다양한 효능을 가지고 있어 제가 다 옮기기가 벅찰 정도로요. 우리의 조상들이 맛 뿐 아니라 영양과 효능을 고려해 한과를 만든 지식과 지혜를 엿볼 수 있고, 그동안 한과를 단순한 과자로 생각했던 게 반성될 정도였습니다.
김규흔 명장은 한과가 자연을 말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연을 존중한 조상의 지혜가 담겨 있고, 자연의 미를 표현하며,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을 전하고 있다는 거죠. 말씀 드린대로 한과에는 인공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게다가 한과의 맛과 멋을 더해주는 색, 향을 내는 재료도 모두 자연에서 가져옵니다. 3장에서는 한과의 색, 맛, 향을 내기 위한 재료를 소개하는데요, 인삼이나 생강처럼 강한 맛을 내는 재료마저도 다른 재료와 어우러져 순하고 조화된 맛을 내도록 만드는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한과에 색을 입히는 이유는 첫째로 보기에 좋고 식욕을 증진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색을 내는 재료의 효능으로 한과의 신선도를 유지하고 저장성을 늘리기 위해서도 사용한다고 하는군요. 아울러 한과는 제조과정에서 발효를 거치는데요, 발효 덕분에 방부제 없이도 저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한과의 마지막 제조과정인 즙청에 꿀을 이용하는 이유도 맛도 맛이지만, 꿀의 방부효과로 방부제를 넣지 않아도 저장성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하니 그 지혜에 다시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맛과 지혜가 담긴 한과는 재료가 다양한 만큼 그 종류도 무궁무진한데요, 크게 유밀과, 유과, 숙실과, 다식, 과편, 정과, 엿강정 등 7가지로 분류합니다. 옛 문헌을 토대로 살펴보면 약 250여 종의 다양한 한과가 전해진다고 하는데 그 다양성은 가히 대단합니다.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분들은 5장과 6장을 눈여겨보시면 좋습니다. 5장에서는 한과를 만들기 위한 기초지식을 소개하고 6장에는 한과 레시피가 담겨 있습니다. 모든 음식이 마찬가지지만 한과도 보통 정성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구나 싶습니다. 하지만 친절하게 레시피가 공개되어 있으니 도전해 보셔도 좋지 않을까 싶네요. 자녀가 있는 분이라면 아이들에겐 건강한 간식을, 주변 사람들에겐 요리 솜씨를 뽐낼 수 있는 기회니까요.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세계의 전통과자가 소개됩니다. 프랑스의 마카롱, 중국의 월병, 일본의 와가시, 미국의 브라우니, 독일의 슈니발렌, 스웨덴의 페파카코르 사진이 입맛을 돋우는데요, 이 책을 읽고 나니 한과가 세계 각국의 전통과자에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는 단지 팔은 안으로 굽기 때문이 아닙니다. 한과에는 자연이 있고, 건강이 있고, 과학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고, 조상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혹은 평소 선물을 고르기 어려울 때 한과와 이 책을 함께 선물해 보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선물을 받는 분도 한과의 매력에 푹 빠지지 않을까요?
김치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무형문화유산입니다. 유네스코는 김치를 담는 김장 문화에서 가족 및 이웃과 함께하고 나누는 우리의 오래된 전통을 높이 평가해 김치와 김장 문화를 묶어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고 합니다. 이 책을 읽다보니 한과 역시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명절이나 관혼상제 등 우리의 오래된 전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유네스코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스스로가 한과를 얼마나 아끼고 있느냐가 문제겠죠. 보다 많은 분들이 한과의 진정한 매력을 느꼈으면 합니다. 그리고 김치에 이어 한과도 유네스코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그 날을 기다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