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인문학 - 숲이 인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박중환 지음 / 한길사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식물이라는 단어는 흔히 약간 수동적이거나 제 기능을 못하는 경우에 사용됩니다. 식물인간이나 식물국회처럼요. 그런데 이는 식물 입장에선 참으로 섭섭한 표현입니다. 식물은 그 어떤 슈퍼컴퓨터보다 정교하고 과학적으로 작동하니까요. 우리 주변에는 많은 식물이 자라고 있습니다. 작게는 베란다 한 켠에 놓인 화분부터 도시를 숨쉬게 해주는 가로수는 물론이고 우리의 식탁에도 식물이 빠지지 않죠. 사실 저는 지금까지 식물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고 키우지도 않았습니다. 식물에 대해 읽은 책도 이 책이 처음인데요, <식물의 인문학>을 읽으며 식물의 놀라운 생존 전략과 함께 인류와 함께 한 여정에서 배우는 자연의 소중함과 교훈,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위해 식물과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 등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부산일보와 시사저널에서 22년간 취재기자와 데스크로 일하다 IMF로 인해 일을 그만두게 된 후 우연한 기회로 식물에 매료되어 결국 원예회사까지 창업하게 됩니다. 저자는 식물에서 상생의 미덕과 공존의 조화를 발견했는데요, 이런 식물의 세계를 접할 수 있는 책이 대부분 전공서적이나 외국 번역서라는 점을 아쉬워하며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이런 저자의 생각이 반영된 책이라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식물과 관련된 전문용어가 나오는 것도 아니구요, 무엇보다 식물이야기를 정치, 경제, 문학, 음악, 영화, 의학, 역사 등 다양한 주제와 버무려 풀어낸 점이 흥미롭습니다. 긴 기자생활로 다져진 지식과 필력 때문이겠죠. 다양한 색의 음식이 어우러진 비빔밥이 재료를 섞은 이후에도 맛깔스러운 것처럼요.

책은 식물을 구성하는 요소인 꽃, 잎, 열매, 뿌리로 장을 구분해 각각 6개의 꼭지를 담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연신 식물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스트레스 개화 이론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모든 식물은 갑자기 환경이 바뀌면 스트레스를 느끼고 생존 위기를 느끼게 됩니다. 이때 꽃대를 올린다고 합니다. 꽃을 피워야 열매를 맺고 후손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죠. 고사 위기에 처한 소나무일수록 작은 솔방울이 많이 맺히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합니다. 흔히 집에서 키우는 난에서 꽃을 보기는 쉽지 않은데요, 잘 보살피지 않으면 당연히 그렇겠지만 너무 잘 보살펴도 꽃을 피우지 않는다고 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 꽃대를 올릴 이유도 없는거죠. 난꽃을 보려면 여름까지는 잘 보살피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홀대하라고 합니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삶에 활력을 주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는 연구결과도 있는데요, 스트레스가 꽃을 피우는데도 영향을 준다는 게 참 흥미롭습니다.


식물의 역사는 기원전 25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후 4억 년 전 뿌리식물이 탄생하게 되고 이는 지구가 녹색별로 바뀌는 원인이 됩니다. 그리고 1억 4천만 년 전 속씨식물의 등장은 진화의 다양성을 촉발해 지구 생태계의 다양성을 이끌어 냅니다. 하지만 지구는 많은 질곡을 격죠. 6500만 년 전 소행성과의 충돌로 대기의 먼지가 태양을 가리면서 기온이 급속히 떨어지게 되고, 지구는 대멸종의 암흑기를 맞게 됩니다. 식물의 뛰어난 생명력은 여기서도 빛을 발하는데요, 땅 속 깊숙히 묻혀 있던 현화식물의 씨앗이 적절한 생존환경이 되자 싹을 띄우게 됩니다. 이게 4700만 년 전의 일이니 약 2000만 년에 가까운 세월을 견뎌내며 생명을 지킨 셈입니다.

이런 신기한 일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목격됐습니다. 2009년 경남 함안 성산산성 발굴 작업 중 고려시대의 연꽃 씨앗 세 개가 발견되었는데, 이 씨앗을 심은 뒤 4일 만에 스스로 발아해 이듬해 우아한 연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최적의 환경을 찾아 700년의 시간을 견뎌낸 셈이죠. 지구 생명의 근원을 바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근원과 아울러 식물의 경이적인 생명력이 함께 했기에 지금의 지구와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이죠. 식물은 인류의 문명과도 운명을 함께 합니다. 학창시절에 배운 대로 인류의 4대 문명은 강을 중심으로 발현했습니다. 강이 있어 비옥한 땅이 만들어질 수 있었고, 풍부한 산물과 자연환경이 구축되었기 때문이죠. 저자는 문명의 몰락은 숲을 파괴한 인간의 자업자득이라고 합니다.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은 거대하고 아름다운 도시와 신전을 건설했고, 이를 위해 나무를 마구 벤 결과 숲은 황폐화 됩니다. 숲이 사라지면 강은 홍수와 갈수를 반복해 자연 재앙을 부르고 농경지는 황무지로 변하게 됩니다. 미국의 기후과학자 벤자민 쿡은 마야 문명의 몰락도 “숲을 파괴한 자업자득”이라 주장하는데요, 온갖 난개발을 일삼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식물이 미리 알려준 경고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 폐해를 이미 많이 겪고 있고 있는 게 사실이죠.

영화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을 보면 숲을 파괴한 사루만에게 분노한 나무수염과 엔트들이 분노해 아이센가드를 초토화 시키는 장면이 나오죠. 우리 주변의 식물은 영화처럼 살아 움직이지는 않지만 반드시 상응하는 대가를 줍니다. 1936년 흙폭풍(Black Strom)이 북미 대륙을 덮쳐 2시간 동안 3억톤의 흙먼지를 일으키고, 여름 낮 기온을 46도까지 치솟게 만들었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가 상상만이 아니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는데요, 이는 무분별한 초지 개간이 원인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의 대규모 조림사업을 진행하게 되고 많은 지역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게 됩니다. 다른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죠. 요즘 황사 때문에 고생하는 분이 많이 계십니다. 황사를 일으키는 사막 또한 한때는 초원과 삼림이었지만 생태계의 변화로 불모지가 되었죠. 문제는 지구에서 사막화 되는 지역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다행인 점은 사막녹화 사업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건데요, 우리나라도 2001년 이후 ‘아시아산림협력기구’를 통해 사막에 나무를 심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식물을 가까이하면 얻을 수 있는 게 많습니다.

우선 녹색이 주는 시각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숲은 자연이 만든 안약”이라 불릴 만큼 식물을 보고 있으면 시각적 자극과 뇌활동이 줄면서 안정감을 느끼고 눈의 피로를 풀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인테리어 효과나 실내 공기를 맑게 하는 점은 다들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또한 식물을 보고 만지면 힐링 효과를 주는 뇌파인 알파파가 증가한다고 하니 집안이나 사무실 책상 위에 작은 화분이라도 두신다면 육제척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저자는 사람이 식물을 닮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식물은 경쟁하지만 다투지 않고 타협하고 상생하며 공존합니다. 그래서 식물세계에는 절대 강자도 절대 강자도 없습니다. 그로 인해 식물생태가 풍요롭고, 숲만큼 완벽한 생태계가 없다고 합니다. 과연 사람이 식물을 닮을 수 있을까요?


이 책은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추천도서( http://bit.ly/1KPUI0t )에도 선정됐다고 하니 믿고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들이 하기 좋은 날씨가 되면 가족과 함께 수목원이나 식물원에 방문해 식물이 주는 힐링 효과를 누려보면 어떨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