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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팔로 하는 포옹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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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상상력을 낳게 하는 홍보문구였다. 김중혁의 첫 연애소설.


김중혁의 캐릭터들, 하면 왠지 모르게 두 명의 남자가 떠올라서였을까. 


(김중혁의 소설 중에서 두 남자가 주인공인 소설들을 재밌게 읽어서인 것 같다.)


연애소설이라는 건 김중혁과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의심보다는 기대가 컸다. 예전부터 나에게 실망이라고는 시킨 적이 없는 작가였으니까.


읽고 나서 말할 수 있는 건, 이게 연애소설이 아니면 도대체 뭐가 연애소설인가? 라는 것이다.


연애소설의 사전적 의미는 말 그대로 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소설인데,


일반적으로는 소재와 주제가 모두 그 사랑에만 치중되어있기 때문에 연애소설은 장르소설 혹은 


통속소설로 구분되곤 했다.


그리고 이 소설집을 읽고서는 그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만 쓰면 연애소설도 순수문학이 될 수 있다고.





보트가 가는 곳

p.218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에 대한 내 마음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모호할 때도 있다. 그녀가 비틀거리지 않았으면 사랑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내가 그녀의 발뒤꿈치를 보고 있었던 것은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예를 들면 모든 게 평온하던 크리스마스이브 어느 찻집에서 그녀를 만났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가슴이 쿵쾅거리지 않았을 것이다. 내 심장은 상황과 사랑을 혼동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종말을 앞두고 쿵쾅거리는 심장이 그녀에 대한 동정을 사랑으로 변질시킨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사랑은 그런 착각과 변질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에만 치중되어있다'라는 말의 다른 표현은 '그 외에는 깊은 고민이 없다'이기도 하다.


삶에 대한 통찰력까지 지니면서 사랑의 설렘과 애틋함, 슬픔까지 담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보면 사랑에 주목하는 것이 또 삶에 대해 통찰하게 되는 길이 아닐까 싶다.


사람의 삶에서 사랑을 빼놓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을 너무나 외롭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니까.


그런 점에서 이 연애소설집은 인생에 대한 소설집이기도 하다.


"착각과 변질로부터 시작되는" 사랑으로 살아가는 인생에 대한.


물론 모두가 인지하고 있듯이, 사랑은 곱고 예쁘기만 하지는 않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알고 겪어본 사랑은 거칠고 삐뚤삐뚤한 형태일 것이다.





가짜 팔로 하는 포옹

p.114

 

내가 우습게 보이지?

왜 또 그래?

내가 우습게 보이니까 계속 네가 그러는 거 아냐.

내가 뭘 어쨌는데?

눈빛에 다 보여. 내가 그 눈빛 때문에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눈빛에서 '나가 죽어라, 주정뱅이야' 이런 말이 보여.

나 갈게. 혼자 술 많이 드시고 와. 더는 안 되겠다.

알았어, 안 그럴게, 가지마.

이러려고 나 불러냈니? 오랜만에 할 이야기 있다고 불러내서, 좀 멀쩡할 줄 알았더니, 너 똑같구나, 이규호.

알았어, 안 그럴게. 그냥 좀 안아주면 안 되냐?

뭘 어떻게 안아줘. 온몸에 가시가 돋아 있는데.

 




왜 사람이 사는 모습은 이렇게 다 똑같을까?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알콜중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술을 마시고, 


누군가는 누군가의 알콜중독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술값을 내주고,


고작 그것뿐인 이들이 왜 이렇게 평범한 연인으로 보이는 걸까?


또 나는 왜 알콜중독에 걸려본 적도, 다른 사람의 술값을 내줘본 적도 없으면서


남자의 구차함에, 여자의 지리함에 이렇게 공감하게 되는 걸까?


사람의 삶이라는 건 모습은 제각기 달라도 결국 본질은 같아서,


어떤 소설이든 나의 이야기와는 달라도 삶을 관통하는 부분이 있으면


그건 결국 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


나에게도 사실 가짜 팔이 있고, 나는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이 어떤지 알고 있다.





요요

p.298

 

차선재는 장수영이 걸어가는 모습을 한창 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었다. 쌓여 있는 말이 많아서 그걸 꺼내놓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못했던 말을 하기 위해서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던 적도 있었는데, 하지 못한 말이 더 쌓이고 말았다. 높이 쌓아올린 책더미에서 밑바닥과 가운데 책을 꺼내기 힘들듯 오래전 얘기를 꺼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 얘기를 꺼내려면 한 줄로 쌓인 모든 얘기를 허물거나 위에 쌓인 이야기를 전부 걷어내야 한다.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이 남아 있을까. 그 이야기들을 꺼낼 만한 시간이 다시 올까.





항상 그랬다. 할 말은 많았고, 시간은 부족했다. 시간이 있을 때는 말을 들을 사람이 옆에 없었다.


언제든, 누구에게든, 무슨 일에서든 미련과 아쉬움이 남는다. 


각기 다른 색깔과 모양을 가진 미련과 아쉬움들을 굴리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연애소설은 한 가지 결론으로 귀결된다. 나에게 소중한 인연에게 잘하자.


그냥 잘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자.


아무리 잘해도 후회는 남기 마련이니까.


역시 작가답게 기발한 아이디어로, 소설 속 인물들을 아주 사소한 역할이라도 일일이


거론하여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 작가의 말도 웃음 뒤에는 생각할 거리들을 남긴다.


<픽포켓>의 호텔에서 일하는 송진구 후배도, <뱀들이 있어>의 정민철과 데이트했던 여자 1,2도,


표지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두 자신 인생의 주인공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인연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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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삶 -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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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표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정말 평범한 표지다. 파란색 바탕에 짧은 단발머리의 소녀가 서 있다. 


소녀는 민소매 검정색 원피스를 입었고, 살짝 숙인 얼굴은 머리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 표지의 소녀에 별 마음이 쓰이지 않아서 오래 들여다 보지 않고 바로 책장을 넘긴다.


그리고 책을 읽는다.


신기한 일이다. 책을 읽고 나서 다시 보면, 표지는 완전히 달라져 있다.


검정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바다 깊숙한 곳에 가라앉아 있다.


단발머리는 푸석하게 뻗쳐 있고, 하얀 어깨는 유난히 추워 보인다.


그 다음에 시선이 가는 건 바로 소녀의 꽉 쥔 주먹. 


파랗기만 한 배경과 소녀의 머리, 옷을 비롯한 모든 부분은 다소 거칠게 그려져 있지만


이 주먹만은 다르다. 손목의 뼈에서부터 시작되는, 파랗고 뚜렷하게 돋은 핏줄들.


그 핏줄로 소녀의 표정을 알 수 있다. 소녀의 말을 들을 수 있다. 소녀가 말한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아저씨들

p.43

 

나는 나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내 이름은 나보다 우리집 개한테 더 잘 어울렸다. 단 한 번도 불려보지 못한 진짜 내 이름이 어딘가에서 나의 부름을 기다릴 것 같았다. 십자 낱말 퍼즐의 빈칸을 보는 것처럼 이름의 힌트를 찾아보았다. 이 이름 저 이름을 내 이름이라 생각해보았지만 어떤 것도 어울리지 않았다. 낭이든 당이든, 강이와 다를 것이 없었다. 내게 어울리는 이름이 있다면 '재떨이' 뿐이었다. 나는 무엇도 아니었다. 되고 싶은 무언가를 분명하게 정해놓은 적도 없었다. 병신 같지 않은 누구나가 되고 싶을 뿐이었다. 무인 모텔의 누구나 같은, 그런 누구나가 되고 싶을 뿐이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여중생들은 나의 여중생 시절과는 너무 다르다. 고래와 당나귀가 다르듯이.


그 시절 나는 왕따의 피해자도 아니었고 가해자도 아니었다. 


담배는 손에 쥐어본 적도 없고 집은 나갈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생활 패턴과 가치관, 가지고 있는 것과 원하는 것이 전부 다르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녀들을 이해한다.


이해한다, 가 아니라 안다, 가 맞는 말인 것 같다.


나는 강이가, 아람이가, 소영이가 말하는 것을 안다. 말하지 않는 것을 안다. 


다른 시간에 다른 곳에서 다르게 살아온 아이들의 삶을, 마음을 아는 건


이 아이들은 여중생이고, 나 역시 그때는 여중생이었기 때문이다.


근래부터 중학생이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허세에 찌든 모습이 유머 코드로 유행하고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여중생만이 가지는 불안감과 예민함과 외로움이 있다.


강이와 아람이와 소영이는 그때의 나보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그들도 역시 나처럼 불안하고 예민하고 


외로웠고, 그러한 것들이 소설에 잘 녹아들어 있는 덕분에 나는 그녀들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다.






아르바이트

p.73

 

이제 나의 꿈은 종이접기 박사가 아니었다. 나는 단어를 떠올렸다. 병신. 하지만 최소한 병신은 되고 싶지 않다는 꿈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머리를 긁적였다. 내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또다른 꿈을 떠올리려 해보았다. 나의 태몽이 떠올랐다. 엄마에게 태몽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엄마는 감자 캐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커다란 감자 한 알을 캐서 집에 가져와 불에 구워 먹었다고 했다. 숟가락으로 파먹고 또 파먹다가 설익은 부분이 나오면 다시 구워서 여기저기 계속 파먹었다고 했다. 그게 다냐고 물었더니 그게 다지만 맛있게 먹었다고 했다. 파먹히는 감자가 꿀 수 있는 꿈을 생각하다가 나는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다.





어른이 되면, 아니, 자신이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면 세상에 대해 할 말이 많아진다. 


줄어들지 않는 빈부격차, 척결할 수 없는 부정부패, 어찌할 수 없는 각종 차별들.


소위 어른이라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나쁜 면에 대해서 어려운 단어를 동원해 여러 방식으로 말하지만


사실 본질은 하나다. 어려도 알 건 아는 나이, 열다섯 살이 보는 그대로, 세상은 '병신'이다.


누구나 조금이라도 '덜 병신'이 되기 위해서 사투를 벌이는 곳이 이 세상이다.


이 소설은 중학생인 여자아이의 세상을 그린 소설이지만 어른이 오히려 이 소설을 더 읽어야 하는 건,


이 여자아이의 세상이 어른들의 세상과 똑같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험악한 얼굴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아버지, 학교 밖으로 도망칠 일만 걱정하는 엄마,


얼굴 보기 싫은 학생을 화단으로 내모는 선생, 죽고 싶지 않아서 칼을 들고 다니는 여자아이,


그리고 외톨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를 외톨이로 만들고,


친구들 사이에 남기 위해서 다른 친구를 짓밟아야 하는 아이들.


싸움의 방식만 다를 뿐 어른들이 사는 세상은 이 아이들이 사는 세상과 다르지 않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내가 쓴 글들이 대신 말해줄 것이다.'라는 한 문장으로만 끝나는


작가 소개에 어쩐지 납득이 가게 된다.


강이처럼 살았을 것이다, 가 아니라, 강이가 살았던 세상같은 세상을 살았을 것이라고.


그런 덕분에 작가는 이렇게 평범하면서도 이렇게 끔찍한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소설의 결말 또한 이 소설다웠고, 이 작가다웠다.





Chapter 1

p.332

 

나는 최선을 다했다. 소영도 그랬다. 아람도 그랬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떠나거나 버려지거나 망가뜨리거나 망가지거나.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이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나는 이제 읍내동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읍내동을 벗어나고 싶었던 나의 소원도 이상한 방식으로 도래해 있었다. 언제 그칠지는 알 수 없지만, 쉽게 녹아 사라지진 않을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상하고, 무섭고,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좋은, 함박눈이었다.





누가 강이에게 넌 더 최선을 다했어야 했어, 라고 말할 수 있을까?


누가 소영에게, 아람에게 넌 너무했어, 혹은 넌 모자랐어, 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줍잖은 격려도, 말뿐인 응원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고개를 끄덕여줄 수 있는 일이, 파란 바다 한가운데 가라앉아 주먹을 꽉 쥐고 서 있는 소녀에게


해 줄 수 있는 전부인 것 같다. 그리고 말하는 것이다. 넌 정말이지 최선을 다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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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
김종옥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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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자주 투정을 부리는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은 나도 확 짜증이 나서 내가 뭘 했냐고 따졌더니 그 애가 이렇게 말했다.


너는 아무것도 안 했어.


때로는 그런 게 제일 큰 문제가 된다. 하지 않은 일들. 하지 못한 일들.


그런 건 전부 미련이야, 라고 고개 저을 때도 있지만... 글쎄, 그냥 미련이라기엔 자꾸 마음이 쓰인다.


그때 뭔가를 했다면 지금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나는 물론 예외지만, 일반적으로는 역시 연애에서 그런 생각을 가장 자주 하게 되는 것 같다.


연애라는 건 결국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감정의 소모가 심한 일이니까.



김종옥은 그런 연애 후 감정에 대한 생각을 깊게 했던 작가인 듯하다.


그의 소설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의 <그녀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신호대기>, 그리고


표제작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은 그러한 그의 생각이 진하게 녹아들어가 있는 소설이다.


의도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책은 다른 소설들이 묶인 책들과는 달리 소설집이 아닌,


'소설'이라고 되어 있다. 짐작하는 바로는, 세 소설의 세 화자들이 각각 다른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같은 사람으로 느껴지는 데에 그 원인이 있는 것 같다.


'하지 않은 일'에 대한 미련이 세 가지 방식으로 그려지는 연작소설 같았다고 할까.


그래서 이 책은 장편소설로도, 소설집으로도 분류를 하기가 어렵다.


결국 하나의 이야기니까. 제목 또한 그렇게 보이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그녀는 거기에 있을 것이고, 신호를 기다리는 중이고, 목적지인 과천과 우리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한 사람이기도 한 세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

p.77-78

 

사람들은 대개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 일은 이전에 일어난 다른 일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치면 무슨 일이든 다 똑같다. 이를테면 이미 일어난 어떤 일이 그다음에 일어난 다른 일의 원인이 되었다면, 앞서 이미 일어난 일은 그전에 이미 일어난 일의 결과일 테니까. 모든 게 그렇게 연결되어 있는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고 지은에게 말했다. 그럼 일들은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나는가? 아니다. 내 말은 여기에 요지가 있다. 즉, 어떤 일들은, 그전에 일어난 일의 결과가 아니라, 일어나지 않은 일의 결과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일은, 어떤 하지 않은 일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무언가 일어나기 위해선, 무언가가 일어나지 않아야 된다.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다. 뒤돌아서 후회되는 일의 대부분은 하지 않은 일 때문에 생긴다.


그때 당시에는 최선을 다한 것 같았어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하지 않은 일이 너무 많다.


어쩌면, 산다는 건 하지 않은 수많은 일을 하나씩 지워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역시나 제일 무서운 건 방관과 회피, 외면과 침묵이라는 걸 다른 방식으로 일깨워주는 소설이었다.



그 외에 내가 가장 매력을 느끼면서 읽은 소설은 <거리의 마술사>와 <방학식>이었다.


<거리의 마술사>는 특히 작가의 등단작이면서 동시에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인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스토리가 거의 두 인물의 대화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공통 분모를 갖는다.


그건 딱히 어떤 장르라고 규정짓기 어렵지만 쓰기에는 매우 어려운 장르다.


두 사람의 대화만으로 소설 내의 긴장감을 줄곧 유지하기는 쉽지 않으니까.


<거리의 마술사>는 남우라는 신비스러운 캐릭터와 남우의 사건이 점차 밝혀지면서,


그리고 <방학식>은 집에 혼자 있는 어린 소년과 그 집에 찾아온 낯선 아줌마라는 상황으로써


'대화로만 이루어진 소설'의 단점을 무력화시켜나간다.


또한 의도된 부분은 아니겠지만 인물들의 대사가 묘하게 연극적이기도 해서,


마치 희곡을 읽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거리의 마술사>

p.200

 

"어쩌면 그애는 그런 걸 바랐는지도 모르겠구나."

"뭘 바라요?" 

"자기 세계 속에서만 사는 거. 단단한 껍데기 안에, 마치 달팽이처럼 말이지."

"달팽이라고요?" 그녀는 웃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네가 그렇게 얘기한 게 아니니."

"그랬죠." 그녀는 잠시 생각했다. "맞아요. 우리가 남우를 따돌린 게 아니라 남우가 우리를 따돌렸다고 볼 수도 있겠죠. 그애가 그걸 바랐다고요."



<방학식>

p.242

 

"너는 우리가 처음 대화를 나눴을 때 오늘 방학식이 있었다고 했지. 그래서 일찍 집에 돌아왔고."

"예."

"그런데 어느 학교도 11월에 방학식을 하지는 않아."

소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건 누구나 알고 있단다. 오늘이 며칠인지 너도 알고 있지. 그것마저 거짓말로 속일 수는 없는 거야. 그렇지 않아? 11월이 아니야?"





저번 학기 들었던 소설 수업에서 교수님은 인물의 대화를 잘 쓰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다.


대화는 사건과 인물의 성격, 나아가 소설의 주제까지 잘 드러낼 수 있는 최고의 표현 수단이다.


그만큼 잘 쓰기가 어려운 게 대화다. 필요한 만큼, 과하지도 않게, 덜하지도 않게.


그래서 대화를 잘 쓰는 작가는 자연스럽게 그 다음 작품이 항상 기대된다.


김종옥은 대화를 참 잘 쓰는 작가다. 나는 그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등단작이 젊은작가상 수상작이라니, 앞으로는 얼마나 더 날아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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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법칙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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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의 표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끔 표지가 소설의 주제를 보여줄 때가 있어서.


이 책의 표지는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표지 중에 하나다.




 




하얀 종이 위에 연필로 그려진, 차분히 감겨 있는 눈.


나는 이 눈을 가진 사람이 잠들어 있는 건지,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인지 알 수가 없다.


아니, 심지어 살아 있는 건지 죽어 있는 건지조차 말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 사는 일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종이 위에 그려진 모습만 보고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





Chapter 12

p.101

 

어떤 때는 하도 생각을 많이 해서 이미 그 일이 일어난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실제 일어난 일과 상상 속에서 일어난 일을 구분하기 힘들 때도 있었다. 미래의 시간인데 과거의 일처럼 여겨졌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그려보는 게 아니라 일어난 일을 되새기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일에 대한 상상은 구체적이고 명확하며 세부가 뚜렷했다. 알려진 사실이나 자명한 인과가 아니라 추측과 비약에서 비롯된 것인데도 그랬다. 논리도 타당성도 없는 것이 깊이 파고들어왔다. 윤세오는 이미 그것을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소설의 두 축, 신기정과 윤세오는 각자의 세상에서 각자의 혼란을 겪는다.


그들이 겪는 혼란은 어지럽고 떠들썩한 카오스가 아닌, 밑도끝도 없이 하얗기만 한 백야다.


눈을 떠서 주위를 봐도 이곳이 위인지 아래인지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알 수 없어서


손을 뻗어 더듬거리며 한 발짝씩 내딛어야 하는 백야. 이 책의 표지만큼 깊고 넓은, 하얀 밤.


신기정은 이복동생 신하정의 죽음을 알기 위해 여러 정보를 모으지만 어떤 확신을 얻지는 못한다.


그녀가 모은 정보는 종이에 그려진 그림과도 같기 때문이다. 




Chapter 23

p.200

 

신기정은 서울에서 약 삼백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 거리만큼 동생의 시신을 확인한 때로부터 시간이 흘렀다. 그간 윤세오라는 이름과 부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동생이 지내던 고시원에도 가보고 윤세오 방에 몰래 들어가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동생은 미궁 같았다. 알수록 더 검고 깊은 구멍이 생겼다.

 

 




모든 것은 눈으로 대면하고 살갗을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보아야 명확해진다.


그녀가 그녀의 동생을 알기 위해 대면할 수 있는, 살갗을 만져볼 수 있는 상대는 윤세오였다.


신기정이 윤세오를 찾아간다. 이 짧은 문장이 이 소설의 스토리, 혹은 플롯이라고 해도 좋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의 만남 자체가 아닌, 신기정이 윤세오를 '찾아가는 길'에 있다.


친동생도 아닌 이복동생, 자매로서 아주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는 동생의 죽음으로


신기정은 "스스로는 대답이 불가능한 질문들을 계속해서 던"지게 된다.


그동안 원치 않는 삶을 타의로 인해 '연기'하면서 살아온 그녀에게 이 사건은 첫 파동이었던 것이다.


이 소설은 결국, 하나의 점으로 살았던 사람이 그 파동으로 말미암아 다른 점들을 만나면서


하나의 선이 되는, 그리고 그 선이 무수히 그어져서 하나의 그림을 만드는 이야기다.





Chapter 14

p.119-120

 

신기정은 부이라는 이름을 여러 번 소리내어 불러보았다. 동생의 이름을 쓰고 그 옆에 부이라고 적은 후 각각의 이름을 동그라미로 둘러쌌다. 둘러싼 동그라미를 선으로 이었다. 하부라인과 상부라인의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번에는 윤세오의 이름을 적고 세 개의 이름을 각기 감싼 동그라미를 가능한 방향으로 연결해보았다. 맨 처음 동생이 있다. 그다음 윤세오, 그리고 부이. 순서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었다. 어디로 선을 긋건, 윤세오-동생-부이로 연결되는 선이건, 동생-부이-윤세오로 이어지는 선이건, 그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과정을 따라가고 함께하면서 독자는 여러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부이부터 조미연, 이수호, 김우술, 신재형까지. 세상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하고 소소한 사람들.


그러나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드라마보다 슬프고 영화보다 애처로운 사람들.


신기정이 윤세오를 만나야 하듯이, 우리는 그들을 만나야 한다. 만나서 알아야 한다.


세상은 종이처럼 하얗고 얄팍하지만 한 톨의 점만큼 소소한 사람은 다른 한 톨의 점 같은 누군가를 


만나 선이 되고, 뭔가를 그려나가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비록 세상 밖의 타인에게는 알 수 없는 그림일 뿐이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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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가 끝난 뒤
함정임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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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다닐 때 들었던 비평 수업 하나가 생각난다.


중간고사로 그 해 이상문학상 작품집 소설들을 달달 외우게 하는 수업이었다.


랜덤으로 몇 문장을 가져다놓고 사이사이에 뚫린 빈칸을 채우게 하는.


함정임 작가의 소설을 그 시험으로 처음 보게 되었다. <기억의 고고학 -내 멕시코 삼촌>이라는 소설.



그리고 삼 년이 지난 뒤 이 소설을 함정임 작가의 소설집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소설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달달 외우기 위해서 읽었던 그때와는 또 다르게 읽히기 시작했다.


춘아 고모의 외로움과 서글픔, 그런 춘아 고모를 생각하는 '나'의 그리움과 아련함까지.


생각해보면 삼 년 전 소설을 외우면서 기계적으로 읽을 때에도, 소설 전체에 녹아든 아련한 분위기는


진하게 느꼈던 것 같다. 나에게는 이런 고모가 없는데도 어쩐지 나까지 아련해진 걸 보면.


춘아 고모의 애인이 멕시코 사람이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베사메, 베사메 무초 노래가 나와서였는지도.


그 수업의 교수님은 수업 시간에 이 소설에 대해 강의하시면서 베사메 무초를 틀어주셨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소설을 베사메 무초의 노래가 흐르는 소설로 기억하고 있다.



이 소설이 소설집의 가장 첫 번째에 있었던 게 나에게는 다행이었던 것 같다.


덕분에 이 소설집이 조금 더 친근했고 서술자, 그리고 서술자 뒤의 작가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첫 소설의 분위기가 토속적이면서도 한편으로 이국적이었는데, 그러한 이국적인 분위기가


그 뒤의 소설에서도 계속 진행되어서 좋았다.


여행을 다녀온지 반 년도 되지 않았는데 늘 여행이 그리운 나로서는 


그런 분위기의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 간접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니까.


특히 정말 여행을 소재로 하고 있는 소설들이 그랬다.





<어떤 여름>

p.84

 

나는 여자가 다시 책 속에 파묻히기 전에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다. 여자는 자신도 니스에서 내린다고 말했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꽉 막혔던 답답한 기분이 홀가분해지며 야릇한 쾌감에 사로잡혔다. 내친김에 앞으로의 일정을 물었고,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프랑스의 몇몇 호텔들을 여행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도시들이 아니라, 호텔들이라고요? 그녀의 영어는 완전하지 않았지만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주로 짧게 대답해서 자칫 비약으로 오해가 있을 수 있어 확인이 필요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곤, 가방에서 빨간색의 아주 작은 수첩을 꺼내더니 순순히 나에게 보여주었다. 시테아 브장송, 보졸레의 레 마리톤느 호텔, 리옹의 콩코르드 호텔, 그르노블의 유럽 호텔, 엑스레벵의 엑스 오리앙탈 호텔, 안시의 임페리얼 팰리스 호텔, 스트라스부르의 메종 루주 호텔, 랭스의 카테드랄 호텔, 파리의 르 세나 호텔…… 그녀의 수첩에 적힌 목록을 대충 훑어보니 프랑스 중동부 부르고뉴에서 북동부 샹파뉴까지 올라가 다시 파리로 내려오는 여정이었다. 호텔업과 관련이 있는 일을 하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살짝 예의 그 미소를 지었다.





언젠가 연애칼럼을 쓰신다는 분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소개팅에서 할 만 한 좋은 대화 중 하나는 여행에 관한 것이라고.


여행은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의 상상력을 일깨워주고, 동시에 서로의 호감을


높여준다고. 그때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여행은 거의 무조건적으로, 불가항력적으로 사람을 낭만적으로, 긍정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함정임 작가는 이러한 여행의 이점을 소설에서 최대한 활용한다.


판타지 없이도 인물이 환상을 겪도록, 사진첩 없이도 인물이 과거를 떠올릴 수 있도록.


덕분에 그녀의 소설들은 현실적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환상적이다.





<구두의 기원>

p.141-142

 

"마을로 들어서자 멀리 성成이 보였다. 마을은 성으로부터 일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왼편 고원 위에 있었다. (중략) 알프스 산록의 이 고원 마을에서 스페인 국경지대인 페르피냥까지는 오백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였다.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 몽펠리에나 세트에 도달해, 해변의 묘지 입구에 있는 포구에서 점심식사를 주문하고 있어야 했다. 한겨울 창공을 꽉 채우고 있는 빛살이 압박감을 주었다. 나는 갑갑함을 느꼈다. 세 시간 전의 돌발 행동에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자 가능한 한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어졌다. 마을 입구에서 발길을 돌려 자동차가 세워져 있는 곳으로 가려고 했다. 그때, 정적을 깨고 아이들의 함성이 폭발적으로 터져나왔다."




이 소설집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땐, 왠지 모르게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피곤하고 몽롱하면서도 내가 다녀온 여행지가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그런 상태.


여행하는 동안 정말 행복했던 프랑스와 스페인, 


아쉬움이 많이 남아서 꼭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이탈리아,


내가 지금 제일 가 보고 싶은 나라 중에 하나인 미국의 뉴욕과 로스앤젤레스까지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긴 여행을 마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도 가장 많이 떠올리게 되는 건,


그런 이국적인 분위기가 가장 덜했던 <저녁식사가 끝난 뒤>였다.


추모하지 않는 것으로 추모를 한다는 이야기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추모라는 건 조용히, 소소하게, 행복한 마음으로 할 때 진실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순남씨 혼자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결말도 소소하게 귀엽고 아기자기했다.


무엇보다 그 일을 이상하게 여기는 순남씨에게 남편이 한 말이 명대사다.





<저녁식사가 끝난 뒤>

p.52

 

"모두 당신처럼 기다리다 놓친 거라고 생각하지 않소? 그리고 기다리다 놓치기도 하는 거요. 그게 무엇이든…… 난 그게 더 나을 때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 말을 계속 생각하게 되는 건, 우리 사회에 추모할 일이 너무 많아서인지도 모른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들도 많고, 놓쳐서 계속 아쉬워하는 것들도 많고.


놓친 걸 아쉬워하고 있다가 다른 중요한 걸 놓치고, 그것을 다시 아쉬워하기를 반복했다.


이 소설은 나에게 그러지 말라고 다독거려주는 것 같다. 얼마쯤은 놓쳐도 된다고.


그래서인지 이제 아쉬워하는 걸 그만두고 진심으로 어떤 것을 추모하고 싶어진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러했듯이, 역시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내가 추모하고 싶은 일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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