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의 죽음

돈키호테는 어떻게 죽었어? 누군가 물었다. 처음이었다그의 죽음에 대해 물어온 것은, 다들 돈키호테가 어쩌다모험을 떠났고어떤 모험을 이어나갔느냐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래서 그가 어떻게 모험을 마무리하고 집으로돌아왔는지 그 끝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렇지, 돈키호테의 모험에도 끝이 있었지. 그를 집으로 데려오지 못해 안달이 난 학사 카라스코의 계략에 의해, 결투에서 패배하면 기사임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거기서 1년 동안 나오지 않겠다고 약속한 탓에 패배한 그가 도망가지 않고 약속을 지킨 탓에. 그는 집으로 돌아와 죽음을 맞는다. 돈키호테가 죽은 것은, 결과적으로는우울증 때문이었어. 우울이 극에 달해서 말이 돼? 돈키호테가 우울증이라니. 햄릿도 아니고 돈키호테가? 미치광이로 재미나게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 수 없게 되었으니 우울할 수밖에. 그런데도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고해를 하고 틀어박히니 병이 들 수밖에. 그 안에서 곡기 - P167

를 끊고 죽기를 기다린 것이지. 어쨌거나 우울해서 죽은 거야. 에잇 돈키호테가 우울증이라니, 실망이야, 말도 안 돼. 이 말을 몇번이고 되뇌던 그는 내게 화살을 돌렸다.
그런데 넌 언제 끝낼 거냐? 이만하면 되지 않았어?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사람들이 내게 물어오는 것은 대부분 시작에 관한 것이었다. 어찌하다 식당을
열게 되었는지, 어찌하다 돈키호테에 빠져들었는지, 돈키호테의 식탁은 어쩌다 돈키테의 식탁이 되었는지. 
그리고 돈키호테의 모험을 기대하듯, 내 모험담을 듣고
싶어했다. 고난과 극복과 재미와 설움과 그 밖의 모든 체험에 대해, 연애 얘기도 가장 설레고 짜릿한 부분은 어렇게 시작하게 되었느냐에 있지 않은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그 끝은 대부분 다양하게 지랄맞고 서글픈 일이어서 굳이 청해 들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그런데 끝을 묻다니. 실은돈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은 세세히 하지 않았다. 시작보다 어려-것이 끝을 맺는 일인지라. 제대로 끝을 맺지 못하면 다른 시작도 불가능한지라, 시작만큼 공들여 끝을 맺을 궁리를 하는 중이라고.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아무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시작도 못하고 사라지는가. 두려워서 자신이 없어서 확신이 없어서 아직 무르익지 않아서 무언가 모자라서 끝이 뻔해서 지금은 때가 아니어서. 머릿속에서 가슴에서 종이 위에서 흩어진 파일 속에서. - P168

그림이든 글이든 사랑이든 사업이든 운동이든 여행이든. 시작하지 않은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은 것. 시작을 하는 순간 실체가 생기고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되는 법. 
그러니 시작을 했다는것은 일단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것. 그 반의 동력이 대단하다는것. 그 힘으로 수레의 
바퀴는 어쨌거나 굴러가게 되어 있다는 걸. 그러니 
어떻게든 시작을 하고 볼일.

돈키호테의 시작을 되돌아보았다. 시작은 불현듯 기사 차림을하고 광야로 나선 형국이었지만, 그동안 전답을 팔아치워 사들인기사도 책이 없었더라면, 그 책에 몰입해 스스로 등장인물이되어 마땅치 않은 결말을 바꿔 써보지않았더라면, 그가 돈키호테로 나서게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거쳐도달한 시작. 돈키호테의 모험은 저절로 굴러가는 수레였다. 그가 오래전부터 흠모해온 이웃집 여인은 공주님이 되고, 풍차와양 떼에 맞서고, 슬픈 몰골의 기사에서 사자의 기사로, 스스로 위대해지고 모두가 즐거워지는 모험의 연속. 나서지 않았다면 결코 맛볼 수 없는 고단하지만 달콤한 맛.
글을 쓸 때에도, 가장 어려운 것이 첫 문장이라고들 한다. 물론이다. 첫 문장을 쓰지 못한다는 것은 아직 무얼 써야 할지 모르는 상태이니까. 첫 문장을 썼다는 것은 전체의 반에 이르렀다는것이니까. 그래서 이윽고 첫 문장이 나오는 순간, 이어서 문장이 - P169

문장을 끌고 와 이야기가 굴러가니까. 모험의 수레를 굴러가게 만든 위대한 반의 힘. 하지만 그 반의 동력으로 가는 수레는 반드시 끝의 목전에서 멈추게 되어 있다. 시작과 끝은 서로 다른 동력으로 움직인다. 다시 시작으로 돌아가 구르고 또다시 돌아가기의 무한반복. 글쓰기의 두려움은 결국 시작을 못 하는 것의 두려움이 아니라 끝을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어쨌거나 시작은 해볼 일이고 끝은 반드시 맺어야 한다.

돈키호테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는 못내 아쉬웠다. 이렇게 죽게 놔두다니. 자신은 이제 라만차의 돈키호테가 아니라, 그저 착한 자 알론소 키하노라 말하며, 자신의 모든 모험을 부정하게 만들다니. 이런 허망한 끝이 어디있는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니. 미친 그가 사라지고 나면 산초의 재미와 익살도 사라지게되는 것을. 마음이 아팠다. 모험이 끝났다는 아쉬움도 컸지만, 스스로 이루어낸 모든 것을 부정해버린 돈키호테가 밉기까지 했다. 제발 그냥 계속 미쳐 있으면 안 될까요?

끝을 낸다는 것은 어찌 보면 쉬운 일이다. 자의에 의한 일단 멈춤 상태이든, 타의에 의한 중지와 절단 상태이든, 됐다 이제 안녕, 손을 탈탈 털고 나면 그걸로 끝. 그것은 끝이 아니라 결별이다. 그런 끝을 보아서는 안 된다.

미쳐 살다가 제정신으로 죽은 그는, 죽은 것일까, 죽지 않은 것일까. 그는 정말 자신의 모험을 부정한 것일까, 아닌 걸까. 죽은 그는 돈키호테일까, 알폰소 키하노일까. 무엇이 주소 무엇이 산 것일까. 살아있다는 것은 마쳐있다는 것이 아닐까? 나는 과연 제정신을 차려야 할까, 계속 미처 있어야 할까.
이 시작의 끝은 무엇일까. 이제는 돈키호테의 모험이 아니라 돈키호테의 죽음을 생각할 때. 끝의 시작을 시작할 때.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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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로

길을 통하여 세상으로 나왔고 길을 통하여 사람들과 만났다
빛과 그림자를 보았고
눈물과 한숨을 익혔다
길을 통하여 빛보다 그늘이
더 빛난다는 것을 배웠고
사람들보다 더 많은 별들이
사람들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마침내 나는 길을 통하지 않고는
꽃도 보지 못하고
열매도 따지 못하게 되었지만

나는 내가 길에 갇혀버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어느 날 나는 길 밖으로 나왔다
더 많은 세상으로 나왔고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났다
더 많은 빛과 그림자를 보았고
- P38

더 많은 눈물과 한숨을 겪었다 그리고
별들보다도 더 많은 나무와 풀이
사람들 속에서 자라고 있다는 걸 알면서
세상도 사람들도 길이 되었다
별들도 나무와 풀도 길이 되었다

그런 다음
세상을 통해서 사람들을 통해서
사람들 속에 사는 별들을 통해서
나는 다시 길로들어갔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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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어제 2심 판결 후에 산불 피해를 살피러 경북 안동으로 내려갔다. 그를 만난 자리에서 어느 이재민이 뭐 하다 이제 오느냐고 일갈했다는 뉴스보도가 있었다. 또 다른 노인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모습을 뉴스 영상으로 보았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거기에 있는 모습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다르게 들렸을까.

어리석음이 종종 늙음의 얼굴로 온다는 것은 기필코 늙는 존재인 내게도 섬뜩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 어리석음이 마침내 늙음에서 개화했겠나, 인생 곳곳에 만발했을 것이다. 남의 인생을 이렇게 함부로 생각하며 앉아 있다. 시국이 이래서 헛소리하는 이들을 향한 원망과 분노가 있다.
시국을 핑계로 미운 것을 마음껏 미워하며 분풀이하는 심보는 아니고?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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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나는 손상되었습니다.
엄중함을 엄중함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받은 상처로 사랑하는 것,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남은 상처로 손상되었고 그 일부를 일기에 담았습니다.
지난 겨울과 봄은 나름으로 삶을 가꾸며 살아도 권한을 가진 몇 사람이 작정한다면 도리 없이 휩쓸리고 뒤흔들릴 수밖에 없는 작은 존재,
내가 그것이라는 걸 실감한 국면이자 계절이었습니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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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코미디언이 가장 두려워하는 관객은 누구일까? 정답, 비건이다. 본인이 피곤하게 살기로 했으면 잠자코있을 것이지 왜 웃음이라는 사치를 바란단 말인가? 일단 비건이 관객으로 왔다면 웬만해서는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역시 고기를 못 먹어서인지 잔뜩 예민한 얼굴을 하고와서는 웃기는커녕 얼마나 말이 많은지. 하는 농담마다 되도않는 딴지를 걸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불편하게 만들기 일쑤다.
"방금 ‘돼지 같다‘는 표현을 쓰셨나요?"
"공연이 잘되면 치맥을 하시겠다고요?"
"동물을 펫숍(애완동물 가게)에서 샀다고 하셨나요?"
"지금 사용하시는 빨대는 일회용품인가요?"
등등 그야말로 호환마마보다 무섭다. 이런 관객을 만나면 코미디언은 준비해온 농담은커녕 내내 반성만 해도 모자라다. 차라리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킹키가 관객인게 낫다. ‘섹스가 그렇게 좋냐‘고 놀리면 되니까. 비건을 웃기려고 했다간 본전도 못 찾는다.
그런데 만약 코미디언이 비건이라면? 문제는 한층 더심각해진다. 사람들은 내가 자기소개를 할 때 가장 많이 웃는다.
"비건이고 코미디언이라고요?" - P13

자기소개가 나의 가장 성공한 농담이다. 앞서 언급한 딴지도 전부 내가 한 말이다. 나는 가장 불편한 관객이며 안 웃긴 코미디언이다. 그럼에도 나는 비건으로 농담을 만들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 언젠가 동료 코미디언들을 앉혀놓고 비건을 주제로 농담을 도전했다. 나는 점점 뜨거워지는데 애들은 점점 차가워져서 그 방에 기후위기가 오는 줄 알았다. 무대가 끝나자 다들 ‘미안하다‘, ‘반성하겠다‘ 하고 줄줄이 고해성사를 했다.웃음 타율이 0에 수렴했다. 연민과 반성은 코미디언으로 받을수 있는 최악의 성적이다. 비건보다 차라리 살인, 전쟁, 강간, 낙태, 납치, 나치, 정치, 근친, 기근으로 웃기는 편이 쉽다. 실제로 대부분의 코미디언이 이 주제들을 빼놓곤 농담할 거리를 찾지 못한다. 농담은 금기와 궁합이 잘 맞기 때문이다. 의문이 남는 일이다. 비전이야말로 모두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금기가 아닌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보니 나는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고기도 안 먹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거기다 취미는 다도이고, 즐겨 듣는 음악은 클래식이며, 쉬는 날에는 책을 읽으며 반신욕을 하고, 심지어 직업은 작가였다. 내 모습은 영락없는 속세의 수행자였다. 어쩌다 이렇게 깨끗, 아니 ‘깩끝‘해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내가 코미디언이라는 사실 자체가 반전이었다. - P14

누가 이렇게 살라고 시킨 것도 아니었다. 어릴 적에 절에서 행자 생활을 하면서 스님처럼 산 적이 있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도 속세에 나와 산 지가 벌써 10년이었다. 정작 출가스님이 된 건 내가 아니라 우리 아빠였다. (농담이 아니다.) 마침 얼마 전 그가 출가한 지 7년만에 처음으로 재회한 일이 있었다. 식당에 마주 앉아 식사를 하는데 둘 중 한 명만이 열심히 고기를 먹었다. 그게 누구였을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스님보다 더 스님이 된 건가? 스님이 왜 고기를 먹느냐고 묻자 아빠, 아니스님, 아니 아빠, 아니 그분은 말했다. ‘현상‘에 집착하지 말라고.
그렇게 스님보다 현상에 집착한 지 3년이 넘었다. 그런데 애초에 현상을 무시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우리는 지구라는 현상 속에 살고, 웃음이라는 현상을 욕심내고, 우리가 과거에 내렸던 결정으로 말미암은 현재라는 현상에 산다.스님은 잘 살고 있는 걸까?
사실 나의 현상을 초래한 사건은 아주 사소하다.그냥 친구랑 밥 좀 먹으려고 그랬다. 친한 친구가 어느 날부터 비건이 된다고 하길래 걔랑 밥 먹으려면 고기를 못 먹는대서 나도 안 먹기로 한 거다. 정작 내가 뭘 먹고 뭘 먹지 않겠다는데 가장 반기를 든 것은 엄마였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을 졸업한 지가 10년이 넘었는데도 말이다.  - P15

관종이 되고 싶다면 비건을 강력 추천한다. 사람들의 화제의 중심에 늘 당신이 있을 것이다. 당신이 재채기를 두 번연속으로 할 경우 "어머, 비건이라 감기 걸렸네", 간식을 먹을 경우 "그거 비건 맞아요?", 화를 낼 경우 "풀만 먹으니까 확실히 예민하네", 마른 경우 "고기를 안 먹으니까 빼빼 말랐잖아", 살이 찐 경우 "비건인데 왜 이래, 고기 몰래 먹는 거 아니야?" 등 비건을 대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놀라울 정도의 통일성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나라가 진정 단일민족국가가 맞구나 느낄 것이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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