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침의 순간 - 영원한 찰나, 75분의 1초
박영규 지음 / 열림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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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하고 삶의 굴레에서 허덕이고, 눈앞이 캄캄한 난관에 빠지거나, 주변 사람들의 사고, 죽음 등을 겪게 되면, 철학자나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인간의 삶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것이다.

역시도 어릴 적부터 삶과 죽음, 사후세계, 등에 대한 의문을 많이 가졌었다. 인간에게 정해진 운명이 있을까 해서 사주를 배워봤고, 세상을 관장하는 절대자에 대한 궁금증에 종교도 가져봤으며, 깊은 사고를 위해 선도 수련이나 참선도 해봤다.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불교적 사고, 해탈, 선문답, 화두와 같은 것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선문답이나 화두에 관련된 이야기는 제대로 이해할 없었지만, 내가 너무 재미있어 하고, 좋아하는 것인데, 박영규 작가의 '깨짐의 순간' 바로 그것들을 다룬 책이다. 중국과 한국의 유명 고승이 어떻게 커다란 깨침을 얻었는지, 중요한 계기가 선문답을 이야기하고 있다

선담, 선문답, 화두 이런 것들은 사실 무척 난해하다. 길지도 않은 마디 대화에 내용 자체가 기괴한 말장난 같고, 서로 동문서답하는 거처럼 들린다. 책에도 나온 내용인데, 부처가 되려고 좌선하는 제자 옆에서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려고 한다는 스승 얘기가 나온다. 불법의 본질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에게 요즘 쌀값이 얼마나 하나 묻기도 한다. 코를 비틀어 깨닫게도 하고, 뺨을 후려갈겨 깨침을 얻게도 한다. 다들 황당한 이야기들로 그들의 대화나 행동으로만 봐서는 도저히 이해할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책에서는 이런 알기 어려운 깊은 뜻을 가진 대화나 행동을 누구나 쉽게 있게 풀어 설명하고 있다. 우선은 그들의 선문답을 그대로 보여주어 독자 스스로 대화의 속뜻을 생각해보게 하고, 이어 선담을 저자가 자세히 풀어 설명을 하는 구조로 책이 되어 있다. 하지만 가급적 설명을 보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대화가 뜻하는 것을 상상해 보는 것이 책을 재미있게 감명 깊게 읽을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수학 문제지에 문제를 대충 읽고 바로 답안지를 보는 것이 공부에 크게 도움 되지 않는 거와 같다.



그리고 구조를 보면, 각각 나눠진 단원 뒤에는 이야기에 나온 스님들에 대한 역사적 약력이나 활동 등이 나와 있어, 인물에 대해 자세히 있다.

머리에 계속 남는 이야기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해탈은 어떻게 하냐는 사미승의 물음에 "이놈아, 누가 붙잡더냐?"라는 대답을 승찬 스님 이야기, 하나는 불안을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제자에게 마음을 가져오라는 달마의 답변이다. 사는데 외부에서 오는 고통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고통은 마음에서 온다. 그런데 그런 마음은 내가 키우는 것이다. 해탈이든, 불안이든 결국 나에게 달려 있다. 이야기를 통해 내가 비록 이야기 선승들처럼 드라마틱한 깨침은 오지 않았지만, 마음의 아픔은 조금이라도 있었다.

책을 보고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나는 전부터 부처처럼 한 번에 깨달음을 얻으면 순간 삼라만상의 모든 비밀을 알게 되고, 도술이나 예언 같은 기적을 행할 있지 않을까 했다. 같고 어리석은 상상이었다. 그러고 보니 기적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번의 깨달음으로 모든 이치를 알게 된다면, 깨침을 가진 스님들은 이상 수련을 필요가 없을 거다. 그런데 그들은 계속 쉬지 않고 수련을 한다. 깨쳤다고 끝이 아니다. 끝이 아닌 시작이다. 해탈, 부처가 되는 시작점인 것이다.

'깨침의 순간' 읽는 내내 진짜 많은 생각을 했다. 삶과 죽음, 윤회, 시시때때로 나를 송곳처럼 아프게 쑤셔 댔던 각종 기억과 불편한 마음들도 떠올랐다. 와닿는 글은 보고 보고 그랬다. 책이 평안보다는 많은 번뇌를 가져주었지만, 뭔가 지푸라기 하나를 잡았다는 기분이 든다. 깨침의 본질은 하나지만, 깨침의 길은 수만 가지라고 한다. 책에 소개된 선문답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길이지, 길은 아닌 것이다. 내가 잡은 지푸라기가  나중에 깨침의 도화선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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