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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예쁜 손글씨 - 모던 감성 캘리그라피 라이팅북
김경주 글, 캘리그라피 김진경 / 소라주 / 2016년 2월
평점 :
품절
과거 학창시절, 난 미술은 무척 좋아했지만, 서예 시간은 그리 즐겁지 않았다.
뭐랄까 다시 한글 공부하는 느낌이었고, 글씨체 역시 너무 고리타분하고 딱딱했다.
게다가 먹물은 어찌나 잘 튀는지, 서예 시간만 끝나면 하얀 체육복에 검정 점들이 한두 개씩은 튀어, 빨아도 지우기 어려웠었다. 여러모로 싫은 시간이었다.
그 뒤 이 생각은 일본 여행 중에 도쿄 우에노에 있는 도쿄도미술관에 들렀다가 바뀌게 되었다. 일본에 왔으니 그들의 미술작품도 한 번 관람해볼 심산으로 갔었다. 그런데 하필 좋아하지도 않는 서예전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왕 온 거니 천천히 감상을 했다. 그런데 글씨들이 너무 멋있었다. 단순히 하얀 종이에 검정 글씨가 아니었다. 종이도 재질도, 색도 다양했고, 무엇보다 글씨체가 다 제각각이었다. 개성 넘치는 그들의 글씨에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던 서예는 지루한 거라는 고정관념이 싹 사라졌다. 단순한 글씨 쓰기로 여겨졌던 서예가 처음으로 멋진 예술 분야라고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 한국에 열린 전시회에서는 그런 감동을 다시 못 받았다. 특히 한글에서는 분명 사람이 쓴 글씨인데도 너무 정형화된 글씨체로 인해 컴퓨터 글꼴 궁체만 떠오르고, 지루했다. 한글의 한계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 엽서나 다이어리에 적는 예쁜 손글씨로 시작된 변화가 캘리그라피 열풍으로까지 번졌다. 나도 호기심이 생겨 관련 책 들이나 작품들을 봤다. 내가 원하던 거였다. 단어와 문장의 뉘앙스를 글씨체로 표현하고 있었다. 한글이 이렇게 예쁜 글씨였는데, 그동안 너무 박대만 한 미안한 느낌까지 들었다.
'당신의 예쁜 손글씨'는 이런 캘리그래피 트렌드에 딱 맞는 책이다.
보통 캘리그래피 책들을 보면, 도구와 자세, 기역, 니은과 같은 글꼴 공부로 구성된다.
이 책은 좀 다른 것이, 그런 기본적 내용을 축약시켜 몇 페이지로 간단히 설명하고 실제 써보는 연습을 하도록 되어있다.

저자의 말 그대로 '백 번 읽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낫다'라는 생각이 그대로 들어 있는 책인 것이다. 먼저 느끼고 고민하라는 거다. 그리고 연습을 통해 내 것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캘리그라피 도구인 필기구에 대한 설명도 그저 도구를 그린 일러스트와 이름뿐이다. 어떤 게 캘리그라피에 쓰기 좋은 명품인지 따지지 않는다. 이쑤시개나 젓가락도 좋은 필기도구가 되고, 그 흔한 플러스펜으로도 멋진 작품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연습도 잘 안 하면서, 붓펜만 이것저것 사들인 나에게 말하는듯하다.
장비병에 걸리기 쉬운 나 같은 사람에게 충고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참 여러 가지 사들였다.


이 책은 어떤 필기구를 쓰면 어떤 느낌이 나는지 하나하나 보여주고 있다. 가는 글씨 굵은 글씨, 부드러운 글씨, 각진 글씨 등이 다 다른 감성을 느끼게 해준다.
그날그날 마음에 드는 글씨를 골라 그대로 써보면 된다.


연습이 목적인 책이라서 왼쪽에는 실제 활용한 모습 또는 시화 형태로 예를 보여주고, 오른쪽에는 똑같이 쓰며 연습할 수 있게 옅은 회색으로 같은 문장이 쓰여있다.
편지나 엽서뿐만 아니라 활용 예와 같이 화분, 접시, 액자, 텀블러 등에 자신의 글로 디자인하여 활용할 수 있다.


책에 나온 문장을 보면, 하나하나 너무 멋지다. 시인이자 극작가인 김경주님의 글들을 갤리그라퍼 김진경님이 멋지고 아름답게 옮긴 것이다. 그래서 글씨 쓰기가 지겨우면 그냥 적힌 글들을 곱씹어 보는 것도 즐거움이 된다.
이 책으로 연습하기 전에는 내가 잘 따라 할 수 있을까 많이 걱정했는데, 괜한 짓이었다. 그냥 펜 종류에 맞춰 우선 연습장에 그대로 써봤는데, 생각보다 따라 하기 쉬웠다. 처음엔 많이 다르지만, 몇 번 써보면 금방 익숙해지는 것을 느꼈다. 좀 비슷하게 써지면, 자신감도 충만해져서 무척 기분 좋았다.
역시 모방이 최고의 학습 방법인듯 하다. 나중에 안 보고도 쓸 수 있게 되면, 나만의 서체로 발전시킬 수 있을 거 같다.
정통 서예를 하는 분들 중에는 이런 캘리그라피 열풍을 좋게 안 보는 분도 있다. 기본이 안된 글씨라고 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 경우 캘리그라피를 알게 되니 거꾸로 정통 서예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개인적으로 예술은 어떤 틀에 갇혀서는 안되고, 다양한 변화가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어떤 분야든 발전하는 것이다.
아직도 궁체로 된 장난스런 문구가 써 있는 티셔츠를 입고 있는 외국인을 보면, 이젠 멋진 한글 캘리그라피로 된 예쁜 티셔츠를 입히고 싶다. 한글이 단순히 과학적인 글자뿐만 아니라, 예술적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글씨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물론 그 정도 수준이 되려면, 좀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당신의 예쁜 손글씨'는 그런 한글에 대한 사랑과 멋진 자기만의 글씨체를 갖고자하는 마음에 분명 큰 도움이 되는 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