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예대의 천재들 - 이상하고 찬란한 예술학교의 나날
니노미야 아쓰토 지음, 문기업 옮김 / 현익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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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IT 개발자로 일하고 있으나, 어릴 적에는 한 때 미대 진학을 고민하기도 했었다. 외가의 DNA 때문인지 전혀 그쪽 관련 학습을 받지 않았어도, 여러 미술 선생님의 실력을 인정 받았었다. 그러나 당시 '미술은 배고프다'라는 말 때문에 집안 형편을 고려하여 전혀 다른 방향의 진로를 선택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시야가 좁았던 결정이었다. 오히려 집안 인프라를 잘 활용했다면, 배고프지도 않고 오히려 명예도 얻었을 수도 있었다. 아직도 미련이 있는지, 나이가 들어도 미술 쪽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높다. 그래서 가끔씩 IT와 결합한 예술을 자주 생각하곤 한다.


'동경예대의 천재들'을 보게 된 것도 남은 미련 때문이다. 내가 가보지 못한 미대는 어떤 세상인지,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것들을 배우는지, 예술 창작 과정 같은 것에 대한 궁금증으로 본 것이다. 아울러 요즘 들어 고정되어 버린 내 사고를 보다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있었다.


내가 동경예대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블루 피리어드라는 만화를 통해서다. 학생들의 예대진학을 준비하는 모습이 향수 같은 것을 건드려, 몰두하고 봤던 만화다. 내가 좋아하는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 또한 이곳 출신이다.



'동경예대의 천재들'은 나노미야 아쓰토 작가가 동경예대를 다니는 학생들을 취재하며 나눈 이야기들을 담은 책이다. 책의 시작은 동경예대를 다니는 작가의 아내 이야기가 모티브가 된다. 미술학과만 다룬 것이 아니라, 미술캠퍼스 미술캠과 음악캠퍼스 음악캠 학생, 다양한 학과 학생들이 나온다. 전통적이고 많이 알려진 회화나 조각, 주얼리, 공예,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작곡 뿐만 아니라, 호른, 하프, 파이프 오르간, 타악기, 지휘와 같이 좀 더 드물고 색다른 분야도 나온다. 건축과도 미술학부에 있었고, 첨단예술표현과, 음악환경창조과라는 무척 생소한 과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책 전체적으로 미술캠과 음악캠을 비교하며 이야기를 펼친다.


'동경예대의 천재들'을 보고 있으면, 한국과 일본 학생들의 공통점도 보이고, 반면, 생각의 차이 같은 것도 많이 볼 수 있다. 음악캠 기악과를 입학하기 위해서 3살 때부터 악기를 다루는 게 보통이라고 한다. 한국도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그래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미술이나 음악이나 입학하기 위해서는 이래저래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알 수 있다. 반면, 네 컷 만화를 호른으로 표현하거나, 연필심을 얼굴에 붙였다가 종이에 자국을 남겨 자화상이라고 해서 입학 합격하고, 휘파람으로도 들어간 것을 보면, 우리 보다 입학 기준이 유연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을 통해 미술캠과 음악캠 학생들의 차이점을 알게 해준다. 미술캠은 시간 약속의 개념이 희박한데, 음악캠은 철저하다고 한다. 미술 쪽은 혼자 하는 작업이 많아서 그런 면이 있고, 음악 쪽은 같이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시간에 보다 철저하다는 것이다. 미술캠 학생들은 복장이 자유로운 반면, 음악캠 학생은 정장이나 구두를 많이 입는데 이것도 미술 쪽은 자르고 굽고 붙이는 등 제조 공장에서 하는 작업이 많다 보니, 편하게 입는 것이고, 음악 쪽은 공연에서 정장과 드레스를 많이 입기에 몸에 익숙하라고 교수가 그걸 권하기도 한다고 한다. 겉만 보고 지레 짐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내용들이다.


예술가는 배고프다는 것이 일본도 마찬가지인 거 같다. 오죽하면 '동경예대의 천재들'에서는 잉여인간 제조소라 표현하고 있다. 졸업생 절반 이상이 행방불명이 된다고 한다. 졸업하고 뭐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미술캠은 40% 정도가 대학원으로 진학하는데, 음악캠은 유학을 선택하기도 한다고 한다. 어쨌든 둘 다 일반적인 취업의 문은 좁다고 한다.


그러나 '동경예대의 천재들'에 나온 학생들은 취업 걱정 보다는 내가 어떤 예술을 보여줄지를 더 고민하는 거 같다. 예술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다. 부모의 권유로 입학한 경우도 있으나, 많은 이들이 좋아서 이 길을 선택했다. 심지어 사회에서 호스트를 하다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입학한 사람도 있다. 미술캠의 경우 60대, 50대 학생도 있다고 한다. 사람 수명이 길어져 앞으로 대학도 2, 3개 나오게 될 거라는데, 일본은 이미 그게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동경예대의 천재들'을 통해 뇌가 말랑말랑해지기를 원했는데, 일부 소득도 있었으나, 그보다 예술대학의 화려한 이미지를 깨고, 땀 범벅이란 실체를 알게 된 것이 더 큰 소득이었다. 예술의 길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소득을 떠나 책 자체가 재미있다. 일본 베스트셀러가 될만하다.


평소 미술이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미대입시, 음대입시, 예대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에게 좋은 정보가 될 것이고, 미리 간접 체험하는 데 도움 되는 리얼 스토리다. 아울러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할지 말지 고민될 때, 이 책이 조금이라도 참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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