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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퀴벌레를 오해했습니다 - 싫어하던 바퀴벌레의 매력에 푹 빠진 젊은 과학자의 이야기
야나기사와 시즈마 지음, 명다인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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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식당에서 점식을 먹고 있는데, 의자 위로 기어 올라오는 바퀴벌레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맛있게 먹었던 요리였는데, 갑자기 입맛이 싹 사라지고, 다들 많이 들었을 반쪽만 남은 바퀴벌레 이야기를 떠올리며, 혹시 요리 속에 그런 뭔가가 남은 게 아닌가 하며 뒤적거렸다.
바퀴벌레에 대한 혐오는 대부분 직접적인 경험에 기인한다. 앞에서 말한 식당 뿐만 아니라 집, 야외 등에서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방송에서도 바퀴에 대한 좋은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지구가 멸망해도 바퀴벌레는 살아 남는다. 머리가 없어도 며칠을 산다. 옮기는 병균이 어마어마하다 등 다 안 좋은 이야기 뿐이다.
그러니 바퀴벌레에 대해 인식은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거의 노이로제에 가까울 정도로 안 좋다. 바퀴벌레만도 못한 놈들, #바퀴벌레 같은 놈이라 욕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바퀴벌레가 귀엽다는 사람이 있었다. 바퀴벌레를 오해했다고 한다. 뭐지? 뭐지? 귀엽다? 오해? 어디서 또 청개구리 빌런이 또 나타났나 했다. 하지만 그가 젊은 곤충학자인 걸 알고 그래도 뭔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호기심을 가지고 '내가 바퀴벌레를 오해했습니다'를 보게 되었다.
사실 의외였다. 파리, 모기 만큼 오래전부터 봐왔던 바퀴벌레라서, 나름 주워들은 게 많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동안 바퀴벌레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바퀴벌레를오해했습니다 라는 책 제목 그대로 오해하고 잘못 알았던 것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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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와 사마귀가 사촌이라고 한다. 전혀 닮지 않았는데 말이다. 먹성 좋은 바퀴벌레는 자연에서는 분해자 역할을 한다고 한다. 낙엽, 배설물, 과일, 썩은 나무 등을 먹어 청소를 해주며, 배설물을 통해 식물 종자를 퍼뜨리는 역할도 한다고 한다. 동물계의 하이에나, 대머리 독수리를 떠올리게 한다. 새들도 씨를 배설로 퍼뜨린다는 점에서 슬슬 바퀴벌레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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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우리가 알고 있는 진한 갈색, 검정에 가까운 몸 색깔 외에 바퀴벌레 중에는 배에 오렌지 선이 있거나 남색, 연두색, 반짝이는 청록색을 가진 것도 있다고 한다. Prosoplecta sp를 검색해 봐라. 이게 바퀴벌레라고는 전혀 생각이 안 든다. 그냥 무당벌레다. 더욱이 냄새를 풍기는 것도 있는데, 악취를 풍기는 것도 있지만, 풋사과 같은 향을 뿜는 것도 있다고 한다. 더더군다나 식용을 하는 것도 있다고 한다.
바퀴벌레 대부분 겁이 많고, 숨어 지내는 것들이 많다고 한다. 그럼 활기차게 방과 식당을 누비던 그것들은 뭐지 했는데, 그건 살기 위해 먹이를 찾아 다니는 거였다. 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거였다. 모기도 살겠다고 피 빨러 열심히 다니니 말이다. 자연에 선과 악은 없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느낀다. 선과 악은 그저 사람들의 필요나 편견에서 생기는 거다. #해충 이 사라지면, 마냥 좋을 거 같지만, 자연 생태계는 큰 위기를 맞게 될 수 있다. 물론 파리, 모기, 바퀴벌레가 들끓는 환경이 좋다는 소리는 아니다. 사람이 건강하게 살기에는 그들과 궁합이 안 맞을 뿐이다.
야나기사와 시즈마 저자 역시도 처음부터 바퀴벌레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밝히고 있다. 어릴 때부터 생물을 좋아하긴 했으나, 우리처럼 바퀴하면 기겁했던 사람이다. 자연관찰공원 곤충 사육관에서 일하면서, 바퀴벌레에 조금씩 친해졌다. 단순히 친해지는 것이 아니라, 바퀴벌레 사육에도 도전해 보고, 기획 전시도 하게 된다. 바퀴벌레에 대해 점점 알게 되면서 바퀴벌레가 귀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바퀴벌레를 오해했습니다'를 보면, #과학자, #곤충학자 가 어떻게 연구하는지 그 모습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연구하기 위해 여러 섬에 채집도 나가고, 채집한 바퀴벌레를 길러 연구도 하고, 해부도 하고, 이것을 표본으로 만들기도 한다. 새롭게 발견한 신종 바퀴벌레 연구를 학회지에 논문까지 투고하는 곤충학자로 성장하는 과정까지 책에 담겨 있다.
나도 먹바퀴, 독일바퀴 많이 봤었다. 알집을 꼬리에 달고 다니는 모습도 보고, 큼직한 덩치로 날라 다니는 바퀴 잡느라 난리 친 기억, 알에서 갓 깨어난 새끼 바퀴벌레 잡느라 잡지책을 집어 들고 때리던 기억, 하나하나 생생하다. 일종의 트라우마일 수도 있는데, 이 정도면 저자처럼 바퀴벌레를 관심 가지고 연구했다면, 뭔가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망상도 해본다.
'내가 바퀴벌레를 오해했습니다'를 보는 초반에는 스멀스멀 내 몸을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는 거 같았다. 그러다 바퀴벌레의 생태를 이해하게 되고, 다양한 #바퀴 종류를 만나게 되니 인터넷으로 실제 모습이 어떤 지 검색하게 된다. 다만 나로서 아쉬운 점은 책에 나온 다양한 바퀴벌레 이름이 대부분 일본어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먹바퀴, #독일바퀴, #이질바퀴 정도 외에 우리말로 된 이름이 없어 일본어와 함께 학명을 같이 표기한 것이다. 일본에 없는 것도 일본어로 만드는데, 왜 우리는 없는지 엄청난 아쉬움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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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변종 바퀴벌레를 화성에 보내 생긴 일을 다룬 SF 만화 테라포머를 보고 무척 황당하면서도 바퀴벌레라면 능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책을 보고 나니 바퀴벌레가 그렇게 공포의 대상까지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바퀴벌레를 제대로 알고 있는 만화 작가가 있다면, 귀여운 바퀴벌레 만화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조의 아파트라는 영화가 있었네. 우리가 극혐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지만, 한편으론 귀엽고 웃겼던 바퀴벌레들.
'내가 바퀴벌레를 오해했습니다'는 곤충이나 생물 등 과학을 좋아하는 분에게 매력적인 책인데, 인간극장처럼 저자의 경험 이야기로 전개되고, 내용들이 아주 쉽게 설명되어 있다 보니 바퀴벌레에 호기심이 있다면, 누구나 볼 수 있다. 자신의 바퀴벌레 경험을 떠올리고 보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