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백의 발상의 전환 - 오늘날의 미술, 아이디어가 문제다
전영백 지음 / 열림원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주 미술관에 가는 편인데,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 마음 놓고 못 가고 있다.

내가 미술관에 자주 가는 이유는 아티스트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접하는 재미 때문이다. 특히 현대 미술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최근의 작품들은 과거의 회회나 조각의 일반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선, 현대인이 동감할 수 있는 새로운 재료, 구성, 이야기를 담고 있고, 현대 물질문명을 반영하여 프로그램과 기계, 전자 등 각종 테크놀로지까지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최근의 미술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나, 솔직히 부가 설명 없이는 이해가 쉽지 않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피카소의 추상화는 이젠 난해한 축에도 끼지 못하는 거 같다.


'전영백의 발상의 전환'은 바로 이러한 어려운 현대 미술을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한 책으로 미술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도슨트 역할을 해준다. 특히 이 책은 일반적인 예술성보다는 아이디어, 즉 발상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이 시대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 아티스트 32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크게 개인, 미학, 문화, 도시, 사회 공공 이렇게 5가지 주제로 아티스트를 나눠 소개하고 있다. 책을 읽어보면, 이런 나눔의 의미가 잘 드러나는데, 첫 주제의 개인편 초반에 나오는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마리나의 '예술가가 여기 있다'라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의자에 앉아 1분간 서로를 보고 앉아 있는 퍼포먼스, 행위 예술은 이게 뭐야 할 정도로 심플하면서, 황당할 수 있지만, 옛 동료이자 연인을 만나는 순간에서 이 행위의 의미를 폭발적으로 다양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저 자리에 예술가가 앉아 있었지만, 마음속으로 나를 대신 앉혀서 생각만 해도 다양한 마음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전영백의 발상의 전환'에서는 한 예술가에 한 작품만 보여주고, 뒤에 그 작가의 출신, 학력 각종 배경, 작품 경향 등을 잘 정리해서 알려준다. 아쉬움은 일지만, 적어도 그 예술가의 한 작품만큼은 제대로 알 수 있다. 그래도 아쉬움은 분명히 생긴다. 그러다 보니, '발상의 전환'을 보면서 꼭 챙겨야 할 것이 스마트폰이다.  구글링을 통해 작가 설명에 나오는 다양한 작품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이 과정을 통해 아티스트 이름도 한번 더 보게 되고, 책에 나온 설명 또한 다시 되뇌게 되는 것이다.




32명의 작가 중 빵 터지게 하는 작가가 있었다. 뱅크시? 물론 여기에 뱅크시의 그래피티도 나온다. 그보다 난 서도호 작가의 '틈새 집'에서 웃게 되었다. 영국 리버풀 건물 사이에 어디선가 날아와 박힌 거 같은 한옥은 쇼킹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책에 나온 설명을 보니 서도호 작가는 집에 대한 다양한 작품 발상 아이디어를 지녔다. 책 속 설명을 읽다 보니, 나도 서도호 작가의 작품을 직접 체험한 기억이 난다. 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기념작으로 전시된 바로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이 그것이다. 모기장 같은 비치는 소재와 철사로 섬세하게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그 속에 관람자들이 들어가서 새로운 예술적 체험을 하게 했었다. 모기장으로 알고 있었던 소재도 나중에 알고 보니 한복에 쓰이는 은조사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책 속의 작가를 하나하나 깊이 알아가는 재미가 진짜 쏠쏠하고,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경험하게 해준다. 


그러고 보니 이 책에는 주로 설치미술 작가들이 많이 등장한다. 형태나 표현이 고정화된 과거의 예술과는 달리, 다양한 방법을 통해 관람자가 직접 시공간의 변화를 체험하게 해주는 것들이다. 현대 미술은 분명 어렵지만, 알고 나면, 비슷한 시대를 사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소름 돋는 체험을 하게 해준다. 그런 면에서 책 속에 나오는 김수자, 이불 양혜규, 신미경과 같은 한국인 작가의 예술 세계에 더욱 특별한 감정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 모르겠다. 같은 문화 영역에 살다 보니, 공감하는 부분도 무의식적으로 공명하고 있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을 보고 느낀 또 다른 점은 예술 하기 참 어렵다는 거다. 우리가 보통 예술가하면 떠올리기 쉬운 모습은 베레모를 쓰고, 무언 가에 쉽게 몰두하면서도 여유가 많아 보이는 사람인데, 책 속의 작가들은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뭔가 치열함이 느껴지고, 새로운 발상을 떠올리기 위해, 엄청난 고생을 했을 거 같다. 제임스 터렐은 43년째 로든 분화구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겉으론 화려해 보이지만, 그들의 예술 작업은 막노동보다 더 어려웠을 것이다. 


책 제목이기도 한, 발상의 전환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덕분에 아티스트적 다양한 발상의 전환을 엿볼 수 있었다. 완전히 다른 개성의 작가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었던 것 역시 큰 흥분과 짜릿함을 안겨 주었다. 아울러 그들의 작품을 통해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이끌리고, 무엇을 고민하는지도 볼 수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미술관 나들이도 힘든데, '전영백의 발상의 전환'으로 찐하게 예술 나들이를 떠나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