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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돗물을 생수병에 담으면 얼마에 팔 수 있을까? - 잘 팔리는 가격의 경제학
나가이 다카히사 지음, 김정환 옮김 / 토트 / 2019년 6월
평점 :
누구나 한 번쯤, 장사나 사업을 꿈꿔 봤을 것이다. 머릿속에 탑을 쌓듯이 커가는 모습도 그려 봤을 것이다. 구체적인 아이템 아이디어를 가진 경우는 더 생생한 그림을 그려봤을 것이다. 그런데, 항상 어려운 문제는 가격을 어떻게 정해야 좋은가 하는 것이다. 아닌가?
적어도 내 경우는 항상 그래왔다.
도대체 가격을 얼마로 정해야 물건을 파는 나도 만족하고, 사는 사람도 만족할까? 더 비싸게 팔아도 되는데, 멍청하게 너무 싸게 파는 거 아냐? 혹은 너무 비싸서 안 사면 어떡하지? 박리다매? 고가정책?
이러저러한 별별 생각을 다 해봤다.
그렇다고 아이디어 단계에서 소비자 대상으로 설문을 할 수도 없는 거고, 설령 그렇게 했다고 해도, 그것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 때문에 관련 경제책을 봐도 대부분, 수요, 공급과 같은 너무 교과서적인 얘기가 많거나, 사례만 주르륵 나열한 경우가 많았다. 그것도 아니면, 소비 심리 얘기였다. 실질적인 가격 결정에 대한 책은 그다지 보질 못했다.
내 경험과 생각을 이렇게 장황에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만큼 가격 결정이라는 문제에 고민을 많이 했었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하소연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최근 생각지도 않은 '수돗물을 생수병에 담으면 얼마에 팔 수 있을까?'라는 제목도 좀 단순하고 두께도 별로 되지 않은 책에서 그동안 고민하고 궁금해왔던 많은 것들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었다.
일단 전체적으로 이 책을 설명하자면, 기본적으로 가격결정을 행동경제학이라는 시선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 인간 심리적인 측면을 토대로 앵커링 효과나 프로스펙트 이론, 서브스크립션 모델, 프레이밍 효과 등에 대한 다양한 가격 반응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내가 오히려 이 책보다 더 어렵게 말하고 있는 거 같다. 이 책은 절대 절대 골치 아픈 경제서가 아니다. 아무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무척 쉽게 쓰인 책이다. 그만큼 번역도 잘 된 책이다.
'수돗물을 생수병에 담으면 얼마에 팔 수 있을까?'이 쉽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제목처럼 가격 결정에 대한 것을 직접적인 사례를 통해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돗물뿐만 아니라, 가구, 도시락, 커피, 유니클로, 맞선파티, 스키장, 100엔샵, 루왁 커피, 무료 잡지 등과 같은 많은 가격 결정에 참고가 되는 관련 사례가 잔뜩 들어 있다.
보통 이렇게 되면, 앞에서 얘기한 거처럼 사례만 나열된 책으로 끝나기 쉬운데, 이 책은 정확히 이러면 되고, 안 되고를 명확히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사례처럼 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충족되야 하는지를 확실히 집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떤 아이템에 대한 가격 결정을 할 때, 책 속 사례 중에서 비슷한 것을 찾아 조건에 맞는지를 대조해보며, 어떤 정책을 펴는 것이 더 안전한지 판단할 수 있다.
특히 내 경우 공짜, 무료, 공유 경제 그런 쪽 아이템에 관심이 높았는데, 책 속에 그러한 내용을 자세히 담고 있어서 아주 기뻤다. 소비자에게 공짜, 무료가 되려면, 공급자가 자선 사업가가 아닌 이상, 그에 상응하는 이득이 있어야 한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공짜 싫어하는 사람은 없기에 그만큼 좋은 아이디어지만, 어디선가 수익은 내야 한다.
일단 책에서는 우리의 제로페이 사업과 같이 수수료 없는 중국 전자화폐 상황과 19세 무료 스키장 이벤트, 미슐랭 가이드 등의 예를 들며, 이러한 무료 비즈니스를 수익 형태로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나눠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무료 비즈니스의 핵심과 주의점 또한 명확히 하고 있어, 이런 비즈니스의 큰 맥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공유경제 비즈니스, 무료 비즈니스 책에서는 주로 사회적 영향, 파급 효과를 많이 얘기하는데, 사업하는 입장에서는 수익이 더 중요하다. 수익 창출 아이디어는 자신의 몫이지만, 최소 정리라도 되어 있었으면 했는데, 그런 답답한 부분을 이 책이 후련하게 해소해줬다.
물론 '수돗물을 생수병에 담으면 얼마에 팔 수 있을까?'에 나온 내용 그대로 다 된다는 것은 아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 안 한다. 그러나 최소 이런 판단의 기준이라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에 무척 고마움을 가지고 있으며, 재미도 있었고, 가격을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지 아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 만큼 장사나 사업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꼭 보시라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