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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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통혁당 사건으로 20년간 복역 후 출소한, 지금은 '시대의 스승'으로까지 불리는 신영복 선생의 마지막 강의록이다. 생애 마지막 강의. 과연 그 시간에는 어떤 화두를 던지고 어떠한 말들로 풀어나가고 싶을까. 신영복 선생은 이러한 일을 동양 고전으로 해내었다. 쉽게 읽히지 않는 텍스트를 가지고 그 문장과 의미를 세세히 풀고, 거기에 본인의 경험까지 입혀서 입체적인 고전 해석을 해낸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신영복 선생이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던지고 싶었던 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각기 다른 텍스트를 인용하지만 책 전반에서 일관되게 언급되고 관통하는 주제가 두 가지있다. 첫 번째는 세계인식이고, 두 번째가 인간이해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담론" 책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성찰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신영복 선생이 청중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었던 화두였다고 생각한다.
신영복 선생과 그의 저작들을 얘기하면서 그의 20년 간의 복역 생활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형수일때는 죽음과 가까지 지냈고, 장기수였을 때는 생명은 있지만 희망을 꿈꿀 수 없는 절망의 나날들이었을 거라 추측할 수 있다. 그런 날중에 그는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듯 하다. 장기수가 감옥 안에서 인간에 대해 그리고 관계에 대해, 생명에 대해, 삶에 대해, 세계에 대해 깊이 성찰했다는 자체가 현실성이 없어보인다. 이것이 신영복 선생이 책 첫머리에서 말한 "틀에서 벗어난 유연한 사고"인 것일까.
"담론"을 읽으며 다시 한번 텍스트를 새롭게 읽게 된 부분도 있었다. 노자의 상선약수가 그러한데, 물로 하방연대를 설명하는 방식은 신선했고, 그 뜻을 곱씹는 와중에 나름 감동도 느낄 수 있었기에, 이 부분을 읽으며 "모든 텍스트는 새롭게 읽혀야 한다"는 신영복 선생의 의미를 알 것도 같았다.
역시 녹록치 않은 책이었다. 예전부터 나에게는 신영복 선생에 대해 한 가지 편견이 있었는데 바로 쉬운 말도 어렵게 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강의 듣듯이 술술 읽을 수는 있지만, 여기에 담겨 있는 내용은 받아들이기에 결코 만만치가 않다. 일단 단어 하나하나가 관념적인 것들이 굉징히 많다. 신영복 선생이 사용한 그 관념적 단어들은 오랜 시간 고민과 사색의 결과들이다. 듣는 청중과 독자도 그 만큼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묵상하며 곱씹으며 읽지 않는 한 이 책의 내용들은 그저 내 눈을 스쳐지나가는, 그 이상의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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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기억한다 -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베셀 반 데어 콜크 지음, 제효영 옮김, 김현수 감수 / 을유문화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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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라는 단어는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선 말이 아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트라우마라는 단어는 그 말의 무게와는 관계없이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가 되었다. 지금은  트라우마 즉 외상후 스트레스라는 말과 그에 관한 증상들이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되었지만, 신경정신 분야에서는 외상후 스트레스 진단을 받아들이는 것에 상당히 오랫동안 사회적 저항이 있었다는 것과 사회적으로 용인받기 위해 저자를 비롯한 수많은 의사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본서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자가 수 십년 간 트라우마에 이토록 집중하고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책 중반에 적합한 예시가 나오는데 암 환자중 맹장 수술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거다. 정확한 진단과 그에 맞는 적절한 치료가 병행되어 최상의 치료 효과가 나타나는 것, 즉 치료성과때문이다. 의사로서 참다운 자세가 아닐까한다. 
 트라우마의 근본적 치료가 결국 세금도 더 늘릴 수 있다는 분석에서는 정부과 적극 협상하겠다는 저자의 의지도 느껴졌다. 공중 보건 정책의 중요성을 한번 더 강조하면서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아이를 양육할 수 있도록 투자를 많이 하는 북유럽은 그 투자의 결과가 아이들의 학업 성적과 범죄율로 나타남을 예시로 제시하였다.(p.271) 요즘 우리 사회에 비상식적인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데 그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거나 줄일 수 있는 단초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더 좋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희망을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상상도 해보게 되었다. 
 현 우리 사회는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이것도 가벼운 트라우마의 문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래 우리나라 분위기 정서를 들여다보면 떠오르는 단어가 하나 있다. 피해의식. 
이것 역시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 imf이후가 아닐까 한다.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청년실업, 그 와중에 대기업들은 정경유착으로 더 승승장구하고, 매년 장바구니 물가는 상승하는데 반해 오르지 않는 월급. 특히 미국산 소고기 수입, 세월호와 같은 사건에서 힘없는 국민은 보호 받지 못한다는 자괴감. 이런 경험들이 체내에 쌓이면서 기득권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면서 나는 약자, 피해자라는 논리가 생성된거 같다. 이 모든 과정이 국민에게 부과된 일종의 강제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몸은 기억한다"는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너무나 적합한 책이 아닌가 한다. 책을 읽으며 내가 상담을 받고 치료를 받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정신의학에 대해 잘 모르지만 트라우마를 지닌 사람은 치유되지 않는 통증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p.6) 것과 인간의 뇌와 마음, 신체는 모두 사회 시스템 속에서 협력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p.268) 부분을 통해 인간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해야하는 존재임을 그래서 외상후 스트레스를 입은 사람은 치료받아 하나의 사회적 인간으로 온전히 살아갈 수 있게 해야되는 것을, 이 책이 씌여진 목적을 알 수 있었다. 
 즉, 트라우마는 정신의 문제가 아닌 뇌의 문제라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홀로코스트, 전쟁, 학대, 폭행, 사고 등의 정신적 충격이 큰 일을 겪고 뇌의 일부분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것이라 하였다. 때문에 외상후 스트레스를 앓고 있는 환자는 치료를 받아야하는 대상인 것이다. 우리 사회는 트라우마를 앓고 있는 사람을 나약한 정신의 소유자 정도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트라우마는 결코 간단하거나 쉽게 취급할 만한 대상이 아니다. 저자는 외상후 스트레스를 지닌 사람들의 뇌 구조를 분석하여 트라우마를 갖게 되는 경과를 과학적으로 보여주어, 단순히 한 인간의 나약함으로 극복하지 못하는 문제가 아님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였다. 트라우마는 마음과 뇌가 인지한 정보를 다루는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편하여,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과 생각하는 것을 바꾸어 놓을 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능력도 변화시킨다고 하였다. 따라서 망가진 뇌구조를 원상태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하고, 위험 요소는 과거의 일로 이미 지나갔다는 사실을 신체가 깨닫게 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p.53) 
 그리고 어린 시절 학대의 사실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p.305)는 부분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런 스토리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접할 법한 오바스러운 대본이라 생각했기에, 이 역시 내가 트라우마를 지닌 환자에 대한 이해도가 전무하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트라우마를 겪은 후 나타나는 반응들이 살아남기 위한 노력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p.333)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나 한 사람만은 아닐거 같기에, 이런 이유로 특히 이 책은 한 사람의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판사 같은 사법계에 있는 사람들, 경찰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기기도 했다. 
 저자는 트라우마 환자들이 현실을 제대로 살게 하기 위한 치료법을 몇 가지 제시하고 있다. 언어치료, EMDR, 요가, 연극 등의 방법과 필요하다면 약물 치료를 병행하는 것도 권한다. 
 우리 뇌의 회로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기능에 집중되어 있다.(p.332)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서로 서로가 맞물려 지낼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트라우마를 개인의 문제로 가볍게 여기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이제는 사회적인 문제로,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그리고 나와 타인의 발전과 성숙을 위해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갖을 때가 아닐까 한다.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십 수명의 사람들의 추천사에 놀랐다. 단순히 인맥과 홍보의 효과로 많은 추천을 받은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 많은 추천사들이 그럴만 하다고 나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본서 "몸은 기억한다"가 우리 사회의 아픔, 회복에 대한 치유제 역할, 그 이정표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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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스캔들 - 은밀하고 달콤 살벌한 집의 역사
루시 워슬리 지음, 박수철 옮김 / 을유문화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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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물건은 나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보통 역사가들의 주력 연구 분야는 대개 정치 경제 사회 제도 분야 등에 집중되어 왔다.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소소한 물건들에서 그 기원을 찾는 일은 역사학계에서 비주류 처럼 여겨져 왔는데, 저자는 그 일을 과감히 실행했다.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물건들의 역사를 기록하여 일반인들에게 역사를 쉽고 가볍게 접할 수 있게 해주는 면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가시적인 현상을 거의 나열만 하고, 그에 대한 분석이 빈약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책의 전반에 흐르는 논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 사실은 "상식"이 아니라 교육에 의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 중, 원래부터 당연한 것은 없다. "하우스 스캔들"을 읽으며 미드 "빅뱅이론"중 한 장면이 떠올랐다. 제발 밖에 나가서 놀자는 라지와 이를 거부하는 쉘든의 한 마디. "인류는 몇 세기에 걸쳐 가장 완벽한 집 내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고로 나는 밖에 안나가겠다)" 
"하우스 스캔들"을 통해 나의 집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면, 저자의 집필 의도에 잘 들어맞는 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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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 마음이 머무는
아사다 지로 지음, 김정환 옮김 / 을유문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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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다 지로가 어떤 작가인지 설명하는 글을 보고나서야 그가 의외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철도원", "파이란",  "바람의 검, 신선조". 사실 글보다는 영화로 그의 문학 세계를 접하였다. 이 세 작품을 보면 작가 특유의 감성이 느껴진다. 노골적으로 눈물샘을 자극하려는 것이 보이는, 이래도 안울어? 이래도 감동 안받을꺼야?하는 듯한 작가 특유의 스타일이다. 너무 신파스럽고, 작가의 노골적인 감성 재촉이 계산되어 보이지만, 그의 작품을 보다보면 결국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마지막 남은 눈물 한 방울까지 짜내려하는 작가의 노력. 그것이 아사다 지로만의 스타일이다. 
아사다 지로는 서른 여섯, 작가로서는 비교적 등단이 늦은 나이였지만, 그만큼 왕성하게 다작 활동을 한 작가도 드물지 않나 싶다. 사실 그는 등단이 늦었을 뿐, 중학생 시절부터 작가의 꿈을 품고 계속 글을 써왔다고 한다. 그 오랜 시간동안 가슴 속에 작은 불꽃을 늘 간직하며 그 꿈이 결국은 이루어질 때까지 뒤돌아 보지 않고 도전했던 그의 열정이 대단하게 여겨졌다. 특히 다다미에 작가의 엉덩이 자국이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아내가 울었다는(p.61) 대목에서는 그의 집념이랄까, 열정을 엿볼 수 있지 않나 한다. 
이 책 "온기는 소주제를 1. 인생, 2. 신뢰, 3. 스승, 4. 사랑, 5. 감사, 6. 충, 7. 부모와 자식으로 나눠서 그간 출간되었던 아시다 지로의 글 중 각 주제에 맞는 부분을 발췌하여 실은 것이다. 아마도 저 일곱 가지 주제는 아사다 지로가 글을 쓰며 인생을 살아 오며 끊임없이 고민한 주제가 아닐까 싶다. 그의 평소 지론이 녹아져 있는 대목들로 책이 엮어져 아시다 지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갖고 글을 써내려 갔는지 이해할 수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이를 테면, '인생' 부분에서는 인생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시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런 다음 해결책을 찾으라고 한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말고 스스로 고난을 극복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한다. '사랑'에서 사회적인 약자이기는 하지만 결코 인간적으로 열등한 사람은 아니라는(p. 110) 부분, '감사'에서 인과 의에(p.144) 대한 작가의 생각은 그의 사상, 지론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확실히 글 잘쓰는 작가라 그런지 발췌 부분만 읽어도 작가다운 표현법을 배울 수 있었다. 하나만 꼽자면 '스승'에서 인생은 금리와의 싸움(p.88)같은 문장이다. 내 감정과 상황을 글로 표현하는데 서툴고 딱딱한 단어밖에 구사하지 못해서 그런지 신선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데 이런 발췌 도서는 저자가 인세를 위해 출판한 듯한 느낌이 들어서 굳이 이런 책을 내는 것보다는 또 다른 그의 창작물을 읽고 싶다는 바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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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사회 -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단 하루라도 살 수 있을까
수전 프라인켈 지음, 김승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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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사회"를 접하기 전에는 플라스틱이라는 물질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그다지 없었던 것 같다. 기껏해야 매주 한 번씩 분리수거 할 때, 플라스틱을 구분하여 내놓는 의식 정도? 모아져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보며 그 양이 참 많구나, 우리가 플라스틱을 많이 사용하긴 하나보다라는 딱 그만큼의 관심과 인지가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택배 박스에서 꺼내 표지를 천천히 훑어봤을 때, 무릎을 탁 치지 않을 수 없었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그리고 플라스틱시대" 입에서 아!하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플라스틱시대라니, 현 시대를 한 마디로 정의하는데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이 보다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말이 또 있을까. 그러니까 우리는 정말 플라스틱을 단 한 순간도 접하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없는 상태에 이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린 아이를 양육하는 가정에서는 플라스틱이라는 물질에 한 번 이상은 민감하게 반응한 일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물고 빨는 장난감, 식기에서 환경호르몬이 검출됐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다음 소비때는 플라스틱이 아닌 제품을 사려고 노력한다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평소에 하지않던 행위인 플라스틱 성분을 확인하고 안전검사를 통과했는지 여부를 따지게 된다. 장난감, 식기는 플라스틱이 아닌 물건을 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놀이매트, 카시트, 유모차, 아기 욕조, 음식 포장재 등 다른 아이템에서까지 모두 플라스틱을 골라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우리는 플라스틱빌에서 살고 있다는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어쩔 수없이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하지만 늘 찝찝한 마음은 거둘 수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한 번쯤은 읽고 고민해봐야 할 주제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주 가끔이지만, 플라스틱이 이렇게 건강이나 환경에 문제가 된다면 차라리 플라스틱 없는 세상을 만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른이 된 지금에 와서야 의아하게 생각되는 것이지만, 어린 시절에 시골에 가면 가정에서 배출하는 쓰레기를 거의 볼 수 없었다. 쓰레기로 분류되는 것은 대부분 타지 않는 가게에 가져가면 재활용되는 유리병이나 깡통정도였고, 타는 것들은 모두 아궁이에서 불쏘시개로 사라졌다. 돌과 나무 흙으로 만들어진 집 내부에도 플라스틱 가구는 그리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텔레비전이나 냉장고, 라디오 정도에서 플라스틱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제는 플라스틱이 없는 세상 만들기는 100%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한다. 풍요로운 물질 세계를 맛본 우리에게 지금와서 다시 플라스틱 이전 시대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아마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저자 수전 프라인켈은 플라스틱의 대중화로 이 책을 시작하였다. 저자는 플라스틱 이전에는 희소성 있는 자연물질, 이를테면 나무나 상아같은 물질로 상품을 만들던 시대였기에 대중에게 물질 소유의 공평함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플라스틱의 등장은 소비를 민주화하여(37쪽) 풍요로운 새 시대의 전령, 물질 세계의 유토피아(44쪽)를 맞이하게 하였다고 주장한다. 1945년 종전 이후 플라스틱 물건 생산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이는 사회적 계층간 이동을촉진하고, 대중의 누릴 수 있는 공통된 권리가 확대되어 점점 더 민주화되는 사회로 이행되었다(47쪽)는 그의 해석은 신선하였고 공감을 이끌어냈다. 프랑스의 시민혁명이 플라스틱에 와서 완성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저자는 머리빗, 의자, 프리스비 원반, 링거백, 라이터, 비닐봉지, 페트병, 신용카드 등 8개의 키워드를 사용하여 플라스틱의 장단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서술하였다. 먼저 머리빗과 의자에서 플라스틱이 세상을 민주화시킨 긍정의 효과를 이야기한 후, 이면에 감춰진 부정적인 면을 하나씩 밝혔다. 프리스비 원반에서는 플라스틱의 대량 생산으로 야기된 글로벌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과 산업구조를, 링거백에서는 호르몬, 면역, 호흡기 등의 건강 문제를, 라이터에서는 소비자의 달라진 소비패턴인 일회성의 시대를 문제삼으며 플라스틱으로 자본주의의 문제점인 저비용 고창출의 폐해를 설명해내려 했다. 비닐봉지와 신용카드 챕터에서는 이미 유용성과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에게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금하는 것은 비현실적임을 말하며 대안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사람들의 일회용 사용 행위를 법으로 규제하여 일회용 의존성을 줄이는 일(236쪽)이 그것이다. 또한 우리 삶에서 이제는 몰아낼 수 없는 플라스틱과 조화롭게 지내기 위해서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과 지구에 더 안전한 플라스틱을 개발해야 하고, 더 책임감 있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 즉 플라스틱빌의 주민인 우리가 변화하는(303쪽)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흥미로우면서도 약간은 경계심이 생기는 부분이 있었다. 링거백 챕터에서 "우리의 몸이 얼마나 조금은 플라스틱인지 생각하다 보니(168쪽)"라는 저자의 서술이 그것인데, 이 부분에서 어린 시절에 티비에서 본 만화영화, 미야자키 하야오의 미래소년 코난이 생각났다. 인더스트리에서 폐플라스틱으로 빵을 만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비현실적인 것인줄 알면서도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수전의 책을 읽다보면 미래소년 코난의 이 장면이 말도 안되는 가상의 일만은 아니라는 걱정이 몰려온다. 미세 플라스틱 조각들이 떠있는 대양 쓰레기를 먹은 물고기를 먹이사슬의 마지막에 있는 인간이 잡아먹으면(200쪽), 결국 우리는 인더스트리에서 플라스틱 빵을 만들어 먹는 격인 것이다. 코난의 장면은 재밌고 참신한 만화다운 발상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은 톰슨의 말처럼 '작은 시한폭탄'이 될 수 있는 우려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여러 플라스틱 물건을 사용하며 이 플라스틱이 어떤 화학적인 결합으로 만들어져서 내 손안에 들어왔는지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플라스틱사회를 읽으며 플라스틱의 놀라운 변신을 알 수 있었고, 그것은 마치 연금술을 보고 있는 기분마저 들게했다. 그리고 이제는 플라스틱이 단순한 재질이 아니라 꽤 다양하고 복잡한 과정을 통해 우리 생활 속에 스며들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다소 어려울 수도 있는 이 책을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심지어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필력때문이 아닌가 한다. 책을 읽을수록 저자의 탄탄한 글 구성과 논리에 감탄이 나왔다.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 간의 탄탄하고 빈틈없는 논리 구조가 돋보인다. 근래 이렇게 논리적으로 치밀한 구조로 쓰여진 글은 보기 드물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 저자가 쓴 책은 믿고 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글은 구조가 치밀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쉽지않은데, 중간중간 플라스틱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에서도 이 책이 크게 어렵지 않았던 것은 저자 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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