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기억한다 -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베셀 반 데어 콜크 지음, 제효영 옮김, 김현수 감수 / 을유문화사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트라우마라는 단어는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선 말이 아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트라우마라는 단어는 그 말의 무게와는 관계없이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가 되었다. 지금은  트라우마 즉 외상후 스트레스라는 말과 그에 관한 증상들이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되었지만, 신경정신 분야에서는 외상후 스트레스 진단을 받아들이는 것에 상당히 오랫동안 사회적 저항이 있었다는 것과 사회적으로 용인받기 위해 저자를 비롯한 수많은 의사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본서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자가 수 십년 간 트라우마에 이토록 집중하고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책 중반에 적합한 예시가 나오는데 암 환자중 맹장 수술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거다. 정확한 진단과 그에 맞는 적절한 치료가 병행되어 최상의 치료 효과가 나타나는 것, 즉 치료성과때문이다. 의사로서 참다운 자세가 아닐까한다. 
 트라우마의 근본적 치료가 결국 세금도 더 늘릴 수 있다는 분석에서는 정부과 적극 협상하겠다는 저자의 의지도 느껴졌다. 공중 보건 정책의 중요성을 한번 더 강조하면서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아이를 양육할 수 있도록 투자를 많이 하는 북유럽은 그 투자의 결과가 아이들의 학업 성적과 범죄율로 나타남을 예시로 제시하였다.(p.271) 요즘 우리 사회에 비상식적인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데 그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거나 줄일 수 있는 단초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더 좋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희망을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상상도 해보게 되었다. 
 현 우리 사회는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이것도 가벼운 트라우마의 문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래 우리나라 분위기 정서를 들여다보면 떠오르는 단어가 하나 있다. 피해의식. 
이것 역시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 imf이후가 아닐까 한다.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청년실업, 그 와중에 대기업들은 정경유착으로 더 승승장구하고, 매년 장바구니 물가는 상승하는데 반해 오르지 않는 월급. 특히 미국산 소고기 수입, 세월호와 같은 사건에서 힘없는 국민은 보호 받지 못한다는 자괴감. 이런 경험들이 체내에 쌓이면서 기득권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면서 나는 약자, 피해자라는 논리가 생성된거 같다. 이 모든 과정이 국민에게 부과된 일종의 강제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몸은 기억한다"는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너무나 적합한 책이 아닌가 한다. 책을 읽으며 내가 상담을 받고 치료를 받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정신의학에 대해 잘 모르지만 트라우마를 지닌 사람은 치유되지 않는 통증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p.6) 것과 인간의 뇌와 마음, 신체는 모두 사회 시스템 속에서 협력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p.268) 부분을 통해 인간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해야하는 존재임을 그래서 외상후 스트레스를 입은 사람은 치료받아 하나의 사회적 인간으로 온전히 살아갈 수 있게 해야되는 것을, 이 책이 씌여진 목적을 알 수 있었다. 
 즉, 트라우마는 정신의 문제가 아닌 뇌의 문제라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홀로코스트, 전쟁, 학대, 폭행, 사고 등의 정신적 충격이 큰 일을 겪고 뇌의 일부분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것이라 하였다. 때문에 외상후 스트레스를 앓고 있는 환자는 치료를 받아야하는 대상인 것이다. 우리 사회는 트라우마를 앓고 있는 사람을 나약한 정신의 소유자 정도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트라우마는 결코 간단하거나 쉽게 취급할 만한 대상이 아니다. 저자는 외상후 스트레스를 지닌 사람들의 뇌 구조를 분석하여 트라우마를 갖게 되는 경과를 과학적으로 보여주어, 단순히 한 인간의 나약함으로 극복하지 못하는 문제가 아님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였다. 트라우마는 마음과 뇌가 인지한 정보를 다루는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편하여,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과 생각하는 것을 바꾸어 놓을 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능력도 변화시킨다고 하였다. 따라서 망가진 뇌구조를 원상태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하고, 위험 요소는 과거의 일로 이미 지나갔다는 사실을 신체가 깨닫게 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p.53) 
 그리고 어린 시절 학대의 사실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p.305)는 부분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런 스토리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접할 법한 오바스러운 대본이라 생각했기에, 이 역시 내가 트라우마를 지닌 환자에 대한 이해도가 전무하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트라우마를 겪은 후 나타나는 반응들이 살아남기 위한 노력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p.333)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나 한 사람만은 아닐거 같기에, 이런 이유로 특히 이 책은 한 사람의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판사 같은 사법계에 있는 사람들, 경찰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기기도 했다. 
 저자는 트라우마 환자들이 현실을 제대로 살게 하기 위한 치료법을 몇 가지 제시하고 있다. 언어치료, EMDR, 요가, 연극 등의 방법과 필요하다면 약물 치료를 병행하는 것도 권한다. 
 우리 뇌의 회로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기능에 집중되어 있다.(p.332)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서로 서로가 맞물려 지낼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트라우마를 개인의 문제로 가볍게 여기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이제는 사회적인 문제로,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그리고 나와 타인의 발전과 성숙을 위해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갖을 때가 아닐까 한다.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십 수명의 사람들의 추천사에 놀랐다. 단순히 인맥과 홍보의 효과로 많은 추천을 받은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 많은 추천사들이 그럴만 하다고 나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본서 "몸은 기억한다"가 우리 사회의 아픔, 회복에 대한 치유제 역할, 그 이정표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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