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사회 -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단 하루라도 살 수 있을까
수전 프라인켈 지음, 김승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플라스틱 사회"를 접하기 전에는 플라스틱이라는 물질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그다지 없었던 것 같다. 기껏해야 매주 한 번씩 분리수거 할 때, 플라스틱을 구분하여 내놓는 의식 정도? 모아져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보며 그 양이 참 많구나, 우리가 플라스틱을 많이 사용하긴 하나보다라는 딱 그만큼의 관심과 인지가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택배 박스에서 꺼내 표지를 천천히 훑어봤을 때, 무릎을 탁 치지 않을 수 없었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그리고 플라스틱시대" 입에서 아!하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플라스틱시대라니, 현 시대를 한 마디로 정의하는데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이 보다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말이 또 있을까. 그러니까 우리는 정말 플라스틱을 단 한 순간도 접하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없는 상태에 이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린 아이를 양육하는 가정에서는 플라스틱이라는 물질에 한 번 이상은 민감하게 반응한 일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물고 빨는 장난감, 식기에서 환경호르몬이 검출됐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다음 소비때는 플라스틱이 아닌 제품을 사려고 노력한다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평소에 하지않던 행위인 플라스틱 성분을 확인하고 안전검사를 통과했는지 여부를 따지게 된다. 장난감, 식기는 플라스틱이 아닌 물건을 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놀이매트, 카시트, 유모차, 아기 욕조, 음식 포장재 등 다른 아이템에서까지 모두 플라스틱을 골라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우리는 플라스틱빌에서 살고 있다는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어쩔 수없이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하지만 늘 찝찝한 마음은 거둘 수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한 번쯤은 읽고 고민해봐야 할 주제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주 가끔이지만, 플라스틱이 이렇게 건강이나 환경에 문제가 된다면 차라리 플라스틱 없는 세상을 만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른이 된 지금에 와서야 의아하게 생각되는 것이지만, 어린 시절에 시골에 가면 가정에서 배출하는 쓰레기를 거의 볼 수 없었다. 쓰레기로 분류되는 것은 대부분 타지 않는 가게에 가져가면 재활용되는 유리병이나 깡통정도였고, 타는 것들은 모두 아궁이에서 불쏘시개로 사라졌다. 돌과 나무 흙으로 만들어진 집 내부에도 플라스틱 가구는 그리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텔레비전이나 냉장고, 라디오 정도에서 플라스틱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제는 플라스틱이 없는 세상 만들기는 100%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한다. 풍요로운 물질 세계를 맛본 우리에게 지금와서 다시 플라스틱 이전 시대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아마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저자 수전 프라인켈은 플라스틱의 대중화로 이 책을 시작하였다. 저자는 플라스틱 이전에는 희소성 있는 자연물질, 이를테면 나무나 상아같은 물질로 상품을 만들던 시대였기에 대중에게 물질 소유의 공평함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플라스틱의 등장은 소비를 민주화하여(37쪽) 풍요로운 새 시대의 전령, 물질 세계의 유토피아(44쪽)를 맞이하게 하였다고 주장한다. 1945년 종전 이후 플라스틱 물건 생산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이는 사회적 계층간 이동을촉진하고, 대중의 누릴 수 있는 공통된 권리가 확대되어 점점 더 민주화되는 사회로 이행되었다(47쪽)는 그의 해석은 신선하였고 공감을 이끌어냈다. 프랑스의 시민혁명이 플라스틱에 와서 완성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저자는 머리빗, 의자, 프리스비 원반, 링거백, 라이터, 비닐봉지, 페트병, 신용카드 등 8개의 키워드를 사용하여 플라스틱의 장단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서술하였다. 먼저 머리빗과 의자에서 플라스틱이 세상을 민주화시킨 긍정의 효과를 이야기한 후, 이면에 감춰진 부정적인 면을 하나씩 밝혔다. 프리스비 원반에서는 플라스틱의 대량 생산으로 야기된 글로벌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과 산업구조를, 링거백에서는 호르몬, 면역, 호흡기 등의 건강 문제를, 라이터에서는 소비자의 달라진 소비패턴인 일회성의 시대를 문제삼으며 플라스틱으로 자본주의의 문제점인 저비용 고창출의 폐해를 설명해내려 했다. 비닐봉지와 신용카드 챕터에서는 이미 유용성과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에게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금하는 것은 비현실적임을 말하며 대안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사람들의 일회용 사용 행위를 법으로 규제하여 일회용 의존성을 줄이는 일(236쪽)이 그것이다. 또한 우리 삶에서 이제는 몰아낼 수 없는 플라스틱과 조화롭게 지내기 위해서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과 지구에 더 안전한 플라스틱을 개발해야 하고, 더 책임감 있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 즉 플라스틱빌의 주민인 우리가 변화하는(303쪽)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흥미로우면서도 약간은 경계심이 생기는 부분이 있었다. 링거백 챕터에서 "우리의 몸이 얼마나 조금은 플라스틱인지 생각하다 보니(168쪽)"라는 저자의 서술이 그것인데, 이 부분에서 어린 시절에 티비에서 본 만화영화, 미야자키 하야오의 미래소년 코난이 생각났다. 인더스트리에서 폐플라스틱으로 빵을 만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비현실적인 것인줄 알면서도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수전의 책을 읽다보면 미래소년 코난의 이 장면이 말도 안되는 가상의 일만은 아니라는 걱정이 몰려온다. 미세 플라스틱 조각들이 떠있는 대양 쓰레기를 먹은 물고기를 먹이사슬의 마지막에 있는 인간이 잡아먹으면(200쪽), 결국 우리는 인더스트리에서 플라스틱 빵을 만들어 먹는 격인 것이다. 코난의 장면은 재밌고 참신한 만화다운 발상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은 톰슨의 말처럼 '작은 시한폭탄'이 될 수 있는 우려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여러 플라스틱 물건을 사용하며 이 플라스틱이 어떤 화학적인 결합으로 만들어져서 내 손안에 들어왔는지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플라스틱사회를 읽으며 플라스틱의 놀라운 변신을 알 수 있었고, 그것은 마치 연금술을 보고 있는 기분마저 들게했다. 그리고 이제는 플라스틱이 단순한 재질이 아니라 꽤 다양하고 복잡한 과정을 통해 우리 생활 속에 스며들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다소 어려울 수도 있는 이 책을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심지어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필력때문이 아닌가 한다. 책을 읽을수록 저자의 탄탄한 글 구성과 논리에 감탄이 나왔다.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 간의 탄탄하고 빈틈없는 논리 구조가 돋보인다. 근래 이렇게 논리적으로 치밀한 구조로 쓰여진 글은 보기 드물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 저자가 쓴 책은 믿고 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글은 구조가 치밀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쉽지않은데, 중간중간 플라스틱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에서도 이 책이 크게 어렵지 않았던 것은 저자 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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